기억할 만한 첫 번째 여행에 대해 얘기해 주세요.
두 가지 기억이 있어요. 하나는 어릴 때 부모님과 영덕에 갔거든요. 영덕 해수욕장 근처에 숙소를 못 잡아서 애매한 동네에서 민박을 하게 된 거예요. 마을 앞에 작은 해변이 있었는데 바닷가 에서 갑자기 멸치가 막 올라왔어요. 그걸 본 동네 사람들이 전부 뛰어나와서 주워 담더라고요. 그때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아주 어릴 때라 정확한 기억은 안 나지만, ‘이 멸치들은 왜 이렇게 해변으로 올라오지?’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두 번째는 처음으로 혼자 떠난 여행이에요. 외할머니가 부여에 살고 계셨어요. 중학생 때쯤인지 더 어릴 때 였는지, 혼자 어딘가 가보고 싶은데 모르는 곳은 무서우니까 부여에 갔죠. 그 기억이 너무 좋았어요.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았나요?
일단 혼자 그런 경험을 해본 게 난생 처음이라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것 같아요. 부여 버스터미널에 내렸는데, 할머니 뵈러 갈 때 뭐라도 사 가고 싶은 거예요. 한두 블록 정도 되는 시내를 혼자 막 돌아다니다 국거리로 소고기 반 근 정도 샀어요. 혼자 낯선 도심을 돌아다닌 기억이 참 좋았어요. 외할머니댁이 부여에서도 시골이거든요. 구룡이라고, 어릴 때 가면 겨울에 토끼도 잡고 가게도 하나 밖에 없는 동네. 지금도 그 때랑 똑같아요.
평소 여행을 좋아했나요? ‘월간 여행’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가 궁금해요.
본의 아니게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어요. 기타 세션을 하면서 공연 팀을 따라서 미국도 가고, 유럽도 가고, 싱가포르도 가고, 전국 투어도 하고…. 어렸을 때부터 모르는 곳에 가는 걸 좋아했어요. 같은 길로는 잘 안 다니고, 자전거 타고 엄한 데 다녀와서 혼나곤 했죠. 그런 것도 여행이라고 한다면 계속 관심이 있고 좋아했던 것 같아요.
사실, 여행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개인적으로 인생의 큰 사건(?)이 있었어요. 그 일을 겪고 추석 즈음에 혼자 빈집에 남게 됐는데, 도저히 못 견디겠더라고요. 어디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에 처음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거예요. 기왕 가는 거 기록이라도 해둘까 하는 마음이었죠. 도망가듯이 떠난 셈이에요.
그 기록을 차곡차곡 쌓아서 앨범을 낼 생각도 했던 건가요?
처음에는 앨범까지 낼 생각은 아니었고, 음악을 하는 사람이니까 자연스럽게 음악으로 기록하게 된 거죠. 당시의 내 상태를 남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그때 만든 음악들이 전반적으로 밝은데요, 저한테 주고 싶은 음악을 만든 것 같기도 해요. 스스로를 달래고 치유해주는. 그래서 그 프로젝트에서 촬영한 영상도 다 1인칭이에요. 제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다녔으니까요.
아빠하고 처음 여행도 했어요. 당시 저희 아빠가 칠순이셨거든요. 아빠가 젊을 때 색소폰을 부셨어요. 그래서 아빠가 색소폰 연주하신 것도 앨범에 넣었죠. 영상도 있고요. 연세가 많으시니까 박자를 잘 못 맞추셔서 제가 막 손가락질 하는.
어릴 때 아버지가 연주하시는 걸 들은 적도 있어요?
한 번도 없어요. 고3 때인가 옛날 사진을 보다 보니 아빠가 색소폰을 들고 있는 거예요. 그 때 처음 알게 됐죠. 사실 지금도 아빠랑 더 친해요. 가끔 저한테 “지금 네가 하는 음악은 다 거짓말이야.” 라고 하세요. 옛날에는 마이크 한 대 놓고 한 번에 라이브로 끝냈는데, 지금 너는 다시 녹음하고, 또 녹음하지 않냐, 그게 무슨 음악이냐는 거죠. 그런데 그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저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거든요.
최근 영상에선 라이브로 연주하시잖아요.
네, 라이브로 녹음한 게 바로 음원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