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가좌동에 자리한 1유로 프로젝트의 외부 전경

Finding the Future in the Past
오래된 공간이 꿈꾸는 미래, 1유로 프로젝트

빈 집이나 버려진 건물을 1유로에 임대하는 유럽의 도시 재생 사업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는가? 2023년 1유로에 공간을 빌려주는 건물이 서울 송정동에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그렇게 시작된 ‘1유로 프로젝트’는 2년 후인 올해 3월 북가좌동에 2호점을 오픈했다. 이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오래된미래공간연구소 최성욱 대표를 만나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1유로 프로젝트를 간단하게 설명해주세요.
한마디로, 임대료를 1유로만 받는 프로젝트예요. 네덜란드에서 건축과 도시 재생을 공부하고 건축회사에서 일을 했어요. 그때 정부가 버려진 공장이나 아파트를 매입하고 민간 기업이 참여해 낙후된 지역을 활성화하는 프로젝트를 가까이에서 경험했죠. 건물에 입점한 회사가 따로 또 같이 상생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더라고요. 한국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이런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꿈을 순수하게 민간의 주도로 하나씩 실현하고 있는 셈이죠.

예전부터 유럽에서는 1유로 프로젝트가 활발하게 시도되고 있다고요.
1유로에 공간을 임대해주는 사업이 많이 이뤄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1유로 프로젝트’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서울 송정동에 오랫동안 방치된 건물로 임대 사업을 시작하며 저희가 처음으로 1유로 프로젝트라고 부르기 시작했거든요.
 
송정동의 건물은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궁금해요.
한국에 귀국하자마자, 서울시에서 민간 자문으로 활동하게 됐어요. 주로 오래된 동네를 활성화시키는 일이었죠. 7년간 공공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재생 공간에 콘텐츠가 부족한 것이 늘 아쉬웠어요. 송정동 도시재생지원센터장을 맡고 있을 때 동네의 한 오래된 건물을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마침 그 건물주가 저를 찾아왔더라고요. 방치된 건물을 잘 활용해보고 싶다고요. 유럽의 1유로 임대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건물주도 긍정적이었죠. 지자체를 설득해 프로젝트를 진행해보려고 했지만, 당시 국내에선 생소한 개념이라 쉽지 않았어요. 센터장을 그만두고 ‘오래된미래공간연구소’라는 회사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죠.

공사 비용은 어떻게 부담하나요?
전기, 설비 등은 건물주가, 나머지 비용은 총 *4단계를 거쳐 엄선한 입점 브랜드와 N분의 1로 나누어 부담해요. 개별 인테리어, 화장실과 복도 등의 공용 공간 사용료, 운영 관리비가 포함된 금액이죠. 1유로 프로젝트는 단순히 임대만 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 인큐베이팅의 역할을 하거든요. 브랜드 입장에서는 혼자 하는 것보다 심리적 부담이 적고 공동 성장의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으니 괜찮은 조건인 거죠.

*프로젝트 참가 신청서를 작성, 건물 투어, 공간 운영 제안서, 대면 인터뷰의 과정을 거쳐 입점 브랜드를 선정한다.
각 브랜드의 개성이 잘 드러나면서도 통일감 있는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에요.
미색을 기본 컬러로, 벽돌과 나무, 콘크리트를 주재료로 활용하는 인테리어 가이드라인이 정해져 있어요. 전체적으로 결이 비슷한 브랜드가 모였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고요.

임대 기간은 얼마나 되나요?
송정동 1유로 프로젝트 1호점은 3년 단위로 임대하고 있어요. 계약 기간이 끝나면 연장 여부를 결정하고요. 추가로 공동 성장의 시너지를 위한 내부 규칙이 있어요. 한두 번의 실수를 제외하고 규칙을 의도적으로 어긴 브랜드는 경고를 받고, 경고 10개가 쌓이면 퇴출됩니다. 반대로, 약속을 잘 지키며 영감을 주는 업체에게는 운영 관리비 할인, 연장 우선권, 사업 결정권 같은 인센티브를 제공하죠.
최근 북가좌동에 오픈한 2호점도 동일한가요?
1호점에서 실험해보니, 공동 성장 시스템이 어떤 브랜드에게는 피로감을 주기도 하더라고요. 2호점은 1년마다 갱신하기로 했어요. 1년이란 기간이 입점 브랜드에겐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는 동시에 다른 가능성도 열어둘 수 있는 적당한 기간이라고 생각했고요.

2호점은 건물 3채로 이뤄져 있어요.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됐나요?
팝업 행사 공간 겸 공유 오피스로 활용하고 있는 A동은 목욕탕이 있던 건물이에요. 브랜드가 입점한 B, C동은 빌라였고요. 모두 건물주가 같은데, 송정동 1유로 프로젝트를 하며 알게 된 지인을 통해 그 분을 만났어요. 요즘 힘들지 않은 업종이 있겠냐마는 임대업도 굉장히 어렵거든요. 전국적으로 빈 건물도 많아지고 있고요. 어려운 경제적 상황과 사회적 이슈를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서로 잘 맞아 건물의 재생을 함께 고민했고, 2호점을 열게 된 거죠.

오랜 건물을 개조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2호점의 경우 제가 느낀 건물의 첫인상을 그대로 살리고 싶었어요. 건물을 처음 봤을 때 느낌이 너무 좋았거든요. 인위적으로 덧대기보다 최대한 원상태를 보존하는 동시에 임차인들의 새로운 니즈를 반영하려고 노력했죠.
2호점에 입점한 브랜드를 소개해주세요.
1유로 프로젝트는 단순한 상업 공간이 아니라, 좋은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양방향 커뮤니티 플랫폼이에요. 천연 소재로 생활용품을 만드는 브랜드 네이처픽, 전 과정 수작업으로 막걸리를 빚는 우리서막, 저강도 회복 운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모브플렉스, 편안함을 추구하는 친환경 패션 브랜드 아워순환 등 총 10개의 브랜드가 입점해 있죠.

A동 전체를 행사 공간으로 만든 이유가 있다면?
어떤 콘텐츠가 지속 가능할지 테스트하는 플랫폼으로 활용하고 싶었어요. 대관 일정이 없을 땐 공유 오피스로 사용해요. 지금은 출판사에서 도서 5,000권을 기증 받아 1유로 서비스를 이용한 고객을 대상으로 무료 나눔하고 있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은 무엇인가요?
최근에 미국 LA에 다녀왔는데요, 날씨 좋고 자연환경도 아름답고 사람들도 친절했는데, 빈부의 격차가 피부에 느껴질 정도로 극심하더라고요. 조금 샛길로 새자면, 여행 유튜버가 제 오랜 꿈이거든요.(웃음) 질문으로 시작하는 여행을 주제로 영상을 만들고 싶어요. 예를 들어, ‘3년 뒤 내가 살 집은?’이란 질문을 던지고 적합한 집을 찾기 위해 떠나는 거죠. LA에서도 건축, 부동산, 디자인,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혼자 주절주절 떠들면서 다녔어요. LA를 꿈의 여행지로 여기곤 하지만, 막상 거주한다고 생각하면 물음표가 생기더라고요. 결과적으로 제가 살 곳은 찾지 못했어요. 

영상은 언제 업로드되나요?
그건 미정이에요. (웃음) 1유로 프로젝트는 운영자 자치위원회를 구성해서 운영할 예정이에요. 그렇게 되면 이 프로젝트에서 제가 할 일은 정체성과 톤앤매너를 지키는 것밖에 없거든요. 그럼 영상 편집할 시간이 생기겠죠? (웃음)

앞으로 만들고 싶은 공간이 있다면?
송정동 1유로 프로젝트 근처 건물에 커뮤니티 호텔을 오픈할 예정이에요. 1유로 프로젝트에 카페, 식당, 옷 가게, 생활용품점 등이 입점해 있으니,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여행자도 이 지역에 머물며 이 모든 것을 누리기만 하면 되거든요. 저는 1유로 프로젝트가 유휴 공간을 특정 브랜드와 매칭해 하나의 점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이제 그 점을 연결해 동네의 라이프스타일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어요. 지역의 정주율을 높이면 자연스레 경제, 문화, 커뮤니티가 발전하게 마련이잖아요. 중요한 건 동네의 원형을 살리는 동시에 주민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충족시키는 건축과 설계가 이뤄져야 한다는 거예요. 유럽이나 일본의 여느 소도시처럼 말이죠. 오래된 동네를 살리기 위해 재개발만이 해답은 아니란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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