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야마 키비

The Flavors and Sights of Gifu and Toyama Prefectures
기후와 도야마의 맛과 멋 - Part 2. 도야마현

일본 알프스의 극적인 풍경부터 바다의 짙은 내음까지. 혼슈의 다채로운 자연을 품은 기후현과 도야마현에서 맛과 멋을 찾아가는 두 가지의 48시간 여행.

Day 1 11:00 쿠로베 협곡(黒部峡谷)과 쿠로나기 온천(黒薙溫泉)

도야마현에 걸쳐 있는 일본 알프스를 여행할 때, 쿠로베 협곡을 제외한다면 적잖이 아쉬울지 모른다. 이 협곡은 일본의 3대 계곡 중 하나로 꼽힌다. 깎아지른 V형 계곡 우거진 숲, 그 사이를 가르는 에메랄드 빛의 쿠로베강으로 이뤄지는데, 도야마의 ‘비경’이라는 표현을 붙이는 게 아깝지 않다. 
협곡의 강물을 이용해 전력을 얻으려는 한 세기 전의 시도가 오늘날의 협곡 철도를 만들었다.  1923년부터 단계적으로 개통됐고, 댐 공사가 끝난 후 1970년대부터는 관광열차로 운행되기 시작했다. 우나즈키역(宇奈月駅)을 출발한 앙증맞은 토롯코(トロッコ) 열차는 과거의 정서를 고스란히 재현한다. 댐과 발전소를 짓기 위해 개척한 철로를 따라 토롯코는 슬금슬금 쿠로베 협곡 안으로 달려 들어간다. 야마비코(山彦) 다리를 건넌 열차의 우측으로 서서히 보이는 협곡의 숨은 경치는 압권이다. 울긋불긋한 단풍이 짙은 숲을 이뤄 층층이 겹쳐지고, 그 아래를 드세게 흐르는 쿠로베강 옥색으로 반짝인다. 이른 시간부터 그림자가 드리운 깊은 협곡 속에는 살짝 산짐승의 움직임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터널을 반복하며 나올 때마다, 탑승객들은 쿠로베 협곡을 향해 감탄을 내뱉는다. 
출발한지 약 30분 후, 협곡 열차의 중간 지점인 쿠로나기역(黒薙駅)에 다다른다. 이곳부터 쿠로나기 온천까지는 산길을 약 30분 걸어가야 한다. 사람 두 명이 겨우 지나갈 만한 소로를 따라 이리저리 나아가다 보면, 드디어 쿠로나기 온천 료칸이 나타난다. 오직 협곡 열차와 도보로만 접근할 수 있는 은둔의 온천, 비탕(秘湯)이다. 
에도 시대 초기 1640년경에 처음 발견됐다는 이 온천은 1868년부터 일반인의 접근을 허용했다고 한다. 지금의 료칸 건물도 120년 정도 된 것이다. 100년 역사가 넘은 우나즈키 온천의 온천수도 이곳에서 공급되고 있다. 료칸과 온천은 협곡 열차 운영 시기에 맞춰 5월부터 11월까지만 손님을 받는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열차 개통 전에는 워낙 외진 곳이라 사람들이 한두 달씩은 머물다 갔다고. 요즘에는 당일로 와서 온천만 하고 돌아가는 사람도 많고, 유럽에서 찾아온 단기 투숙객도 제법 되는 편이다. 쿠로나기의 온천수는 약알칼리성 부드러운 촉감이 특징이다. 온천의 원탕은 료칸에서 약 50미터 떨어져 있는데, 계곡 깊숙이 주변의 환경과 한 몸이 된 듯 숨어 있다. 노천에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없었다면, 알아채지 못했을 듯하다. 협곡의 급류 소리와 바람 소리 아래 자연과 하나 된 온천을 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살짝 치유되려 한다. 
 

+쿠로베 협곡 열차 쿠로나기역까지 1,520엔, 시기에 따라 요금이 다르다. : www.kurotetu.co.jp

+쿠로나기 온천 당일 입욕료 1,000엔 : www.kuronagi.jp

17:00 후간운하 칸스이 공원(富岩運河環水公園)

도야마시 중심부에 조성된 후간운하 칸스이 공원은 도심 속 오아시스 같다. 쇼와 시대 초기 치수(治水)와 화물 수송 목적으로 건설한 후간운하를 현대적 공원으로 개발한 것이다. 운하변의 넓은 잔디밭과 주변의 현대적 건축물이 세련된 광경을 자아내고, 시내를 오가다 24시간 언제든지 여유롭게 쉬어 가기 좋다. 저녁 무렵에는 퇴근한 직장인과 산책 나온 반려견들까지 합세해 붐비는 편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타벅스’라는 별칭을 얻는 스타벅스 도야마 칸스이 공원점도 빼놓을 수 없는 볼 거리. 호수 공원 한쪽에 유리벽으로 외관을 두른 세련된 매장은 테라스석이 특히 인기다. 이왕이면, 커피 한잔을 테이크 아웃해서 공원 양 편을 잇는 덴몬교(天門橋)의 전망탑에 올라보자. 공원과 도심 그리고 멀리 일본 알프스의  다테야마 연봉까지 시원하게 열리는 풍경이 애수 어리기까지 하다. 조명을 밝히는 야간에도 매력적이니 짬 내서 방문해볼 것을 추천.

+전망탑 개방 시간 : 9am~9:30pm

19:00 다이슈 갓포 아라카와(大衆割烹 あらかわ)

1967년에 창업한 이자카야인 아라카와. 2대째 이어오는 노포의 단정한 문을 열면 왁자지껄 분위기에 소리에 몸이 절로 들썩인다. 6석 남짓한 다찌노미(입식 테이블)에 앉아 셰프의 솜씨를 관람하며 음식을 차례대로 기다려본다. 두말할 것도 없이 도야마의 해산물이 주종목이다. 겐교(幻魚)  구이, 시로에비 튀김과 사시미, 호타루이카 절임과 회, 다진 생선 튀김, 방어 조림 등 도야마 사람들이 일상을 채우는 음식이 숨 돌릴 틈 없이 놓인다. 작은 시로에비 튀김은 고소하면서 달달하니 몇 킬로그램을 먹을 수 있을 것 같고, 검은 호타루이카 절임의 진득한 식감은 술과 밥을 동시에 부른다. 메뉴를 고르기 힘들다면, 아라카와 에추 플레이트(Arawaka Echu Plate)를 주문하자. 도야마의 명물과 별미가 한 접시에 옹골차게 담겨 나온다. 여러모로 도야마산 사케와 궁합이 잘 맞는 것은 당연. 이것이 바로 노포의 맛 아닐까. 배가 불러올 때쯤, 피자와 달걀말이로 마무리하며, 도야마의 저녁을 걱정할 게 업겠다.   

+에추 플레이트 3,800엔 : www.wildriver.jp

8:00 히미 어시장 식당(氷見魚市場食堂)과 아마하라시 해안(雨晴海岸)

도야마만의 별명은 ‘텐넨노이케스(天然のいけす). 번역하자면 천연의 수족관(혹은 양식장)이다. 다테야마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든 깨끗한 물 덕에 플랑크톤이 풍부하고, 수심이 깊은 지형의 바다에서 다양한 해산물이 풍성하게 살아가기 때문이다. 도야마시 중심부에서 차로 약 50분쯤 걸리는 히미어항(氷見漁港)은 현내에서 가장 많은 어획량을 달성하는 곳이다. 매일 아침 제철 해산물이 어항의 경매장으로 집결하고, 히미의 겨울 방어는 일본에서 최고로 쳐준다. 여행자가 히미의 해산물을 가장 신선하게 맛볼 수 있는 곳은 항구 건물 2층에 있는 히미어시장 식당이다. 외지인은 물론 어항의 어부들도 찾아오는 맛집. 새벽부터 영업을 시작하는 곳으로, 잡은 지 몇 시간 되지 않은 제철 생선을 회와 덮밥으로 바로바로 내준다. 어획 상황에 따라 내용물이 조금씩 달라지나, 맛은 보증되는 셈. 회를 가득 올려 입맛을 사로잡는 카이센동과 감칠맛이 팽배한 특선 어부의 생선국  료시지루(漁師汁) 한 그릇이면, 도야마의 바다가 뱃속으로 한가득 스며드는 듯하다.  
항구와 멀지 않은  아마하라시 해안은 도야만의 대표 경관 포인트다. 짙푸른 바다와 다테야마 연봉이 한 번에 담기는 경관으로, 도야마를 홍보하는 사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 JR히미선의 단선 열차가 그 앞을 지나가는 장면도 유명한지라, 때를 맞춰서 으레 수십 명의 관광객이 카메라를 들고 기다리고는 한다. 순간 포착을 위해서는 해변 앞 미치노에키(휴게소) 아마하라시 안의 카페인 이소미 테라스(Cafe Isomi Terrace)가 명당이다. 테라스에서 앉으면 바다와 다테야마 연봉 그리고 열차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미치노에키는 카페, 기념품점, 조망 테라스, 관광 안내소를 겸하고 있기 때문에 여행자에게 꽤 유용하다. 

+ 당일 잡은 6가지 해산물을 올린 밥 위에 올린 히미 하마동(氷見 浜丼) 보통 사이즈 2,080엔 : himi_uoichiba

+ 미치노에키 아마하라시 : michinoeki-amaharashi.jp

13:00 카이텐 도야마 스시(廻転とやま鮨)

일본 전국 회전 스시 1위! 도야마역 앞에 위치한 카이텐 토야마 스시 입구에 써 붙은 홍보 문구다. 가게 앞의 대기석에 줄지어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로 넌지시 수상 트로피도 보인다. 이곳은 ‘도야마만 스시(富山湾鮨)’라는 로컬 브랜드를 활용해 합리적 가격의 맛 좋은 스시를 낸다. 역 앞에만 본점과 두 개의 지점을 운영 중이며, 최근에는 도쿄 긴자에도 진출한 전국구 맛집이다. 순서를 기다리다 안으로 들어서니 회전 초밥집 특유의 활기가 느껴진다.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컨베이어에 둘러싸여 능숙하게 초밥을 쥐는 셰프들. 손님은 자신만의 초밥 접시를 기다리며 눈을 반짝이고 있다. 이곳에서는 회전 초밥은 물론 세트 메뉴도 다국어 태블릿 메뉴판으로 주문 가능하다. 노도구로(금태), 시로에비(흰새우) , 토야마콘부(다시마), 호타루이카(반딧불 오징어) 등 도야마만의 신선한 해산물을 사용한 스시를 캐주얼하게 즐겨보자. 나도 모르게 수북하게 쌓여가는 초밥 접시는 조심하고.

+런치 세트 1,500엔 부터 : r720200.gorp.jp

15:00 요시노토모 주조(吉乃友酒造)

다테야마 연봉에서 내려오는 청량한 물로 좌우되는 맛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도야마의 사케다. 도야마에서는 가장 좋은 물을 얻을 수 있는 장소에 양조장들이 세워졌고, 예부터 바다와 산에서 가져오는 식자재와 잘 어울리는 사케를 주조해왔다. 1877년에 창업한 요시노토모 주조는 도야마의 명주(名酒)를 이끄는 양조장 중 하나. 60년 넘게 쌀과 누룩, 물로 빚은 준마이(純米)만 생산하고 있는데, 준마이 전문 양조장은 현 내에서 이곳이 유일하다고. 시음과 양조장 투어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어서 도야마 사케를 한층 더 이해해보기 좋은 곳이다.
요시노토모 주조는 양조장 내 정미 시설에서 직접 쌀을 도정하는 것부터 직접 진행한다. 일본에서도 드문 케이스다. 좋은 물에 어울리게 최고의 사케 쌀 품종이라 일컬어지는 야마다니시키(山田錦), 고햐쿠만고쿠(五百万石) 그리고 도야마의 개량 품종 토미노카오리(富の香)만 사용한다. 이 또한 전부 도야마에서 기른 것으로, 술 맛이 좋지 않을 수 없다. 준마이 중에서도 최고 수준인  정미율 18퍼센트 사케까지 양조하는데, 쌀알의 82퍼센트를 깎아내고 남은 중심 전분질로만 술을 빚었다는 의미다. 이렇게 탄생한 사케는 쌀 본연의 감칠맛이 확연히 드러나고 향부터 목 넘김이 매우 깔끔하고 부드럽다. 몇 년 전부터 요시노토모는 현대적 감각을 부여한 키사키(Kisaki, 后) 레이블의 사케도 시장에 선보이고 있다. 여성 고객층까지 고려한 브랜딩이며, 제품 자체도 화이트나 스파클링 와인의 풍미를 구현했다. 와인 잔에 따라 마셔도 어울리는 키사키는 이미 국제 품평회에서도 여러 차례 수상했다. 정미율 28퍼센트의 준마이 ‘키사키 28’ 한 잔을 살짝 맛보면 그 위력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코와 입에 차분히 감겨오는 향이 너그러운 도야마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키사키 28 블랙 1만 1,000엔 : yoshinotomo.com

18:00 스시도코로 사사키(寿し処 佐々木)

이미 눈치챘겠지만, 도야마는 스시 자부심이 높다. ‘도야마만 스시(富山湾鮨)’ 브랜드도 스시 협회와 도야마현이 함께 스시 홍보를 위해 만든 것이다. 원래 도야마 지역 특산은 송어 초밥  마스즈시(鱒寿司)지만, 오늘날에는 역시 손으로 쥐는 니기리즈시(握り寿司)가 주류다.
도야마 시내 번화가의 작은 건물 1층, 사사키(佐々木) 셰프가 운영하는 스시도코로 사사키에서는 장인의 손길로 재탄생한 도야마 스시의 정수를 음미할 수 있다. 가게는 전체 15석 내외의 단출한 규모이나, 흠 없이 정돈된 실내 분위기부터 깊은 내공을 풍긴다. 도야마 출신의 NBA 선수 하치무라 루이(Hachimura Rui)의 사인 유니폼, 야구 선수 스즈키 이치로(鈴木一朗)의 야구 배트 장식품은 이 스시 전문점의 유명세를 추측할 수 있게 한다. 오너 셰프 사사키는 도야마현 스시 협회장으로 활동하고, 36년째 스시에 전념하고 있다. 생선을 다루는 칼 솜씨와 회를 쥐는 니기리(握り)에 탁월하고 능숙할 텐데, 스시를 향한 그의 정성은 하루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다. 여전히 매일 아침 도야마 각 지역의 생선가게에 직접 가서 최고의 식자재를 구매해오고 있다. 시로에비(흰새우)는 이와세(岩瀬), 아지(전갱이)는 신미나토(新湊), 키지에비(닭새우)는 나메리카와(滑川), 아라(능성어)는 이와세(岩瀬)… 마치 수십 년의 일상이라는 듯이 술술 읊는다. 항구에서 바로 오니 선도가 좋을 수밖에 없고, 맛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 정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사키 셰프는 시로에비 껍질을 직접 가고, 생강 절임도 직접 만든다. 
장인의 군더더기 없는 동작을 거쳐 정갈한 담음새로 올려진 오마카세 차림상은 작은 작품 같다. 한 점의 초밥이 입에 들어갈 때마다 그 맛이 사라질까 아쉽다. 고소한 맛, 단맛, 감칠맛, 기름진 맛, 담백한 맛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신선한 해산물은 자연이 주지만, 그것을 완벽한 맛으로 이끌어내는 건 사람의 손끝 아닐까.  

+오마카세 코스 1만5,000엔부터, 전화 예약 필수 : 076-431-67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