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 이탈리안 레스토랑 타라이

A Taste of Northern Italy: Tarai
이탈리아 북부의 집밥, 타라이

서울 연희동의 한적한 골목에 자리한 타라이는 여느 이탤리언 레스토랑과는 조금 다르다. 이곳에서 내어주는 한 끼에는 셰프 파트리샤가 고향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추억과 그리움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제철 식자재로 이탈리아 북부의 가정식을 만드는 타라이를 찾아 셰프 파트리샤와 남편 세종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타라이는 셰프님의 고향을 담아낸 공간이라고 들었어요. 고향은 어떤 곳인가요?
파트리샤
티라노(Tirano)라고 스위스에서 차로 5분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이탈리아 북부의 산악 지역이에요. 한국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이탈리아 음식과는 많이 다른 고유의 식문화를 갖고 있죠. 보통 올리브오일이나 토마토, 해산물 등의 재료를 떠올릴텐데, 티라노 지방의 음식은 훨씬 묵직한 편이에요. 자연환경이 거칠고 겨울철 날씨가 추운 데다 과거엔 주로 밭과 목초지에서 육체 노동을 하며 살았기 때문에 충분한 영양과 열량을 섭취하는 게 중요했거든요. 그런 이유로 치즈나 버터 같은 유제품을 즐겨 먹죠. 폴렌타(Polenta)는 저희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예요. 특히 제겐 남다른 의미가 있어요. 할머니가 폴렌타를 만드시던 모습, 가족들이 다 같이 둘러앉아 먹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깊이 연결된 음식이거든요.

타라이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가 궁금해요.
세종
폴렌타는 구리 냄비에 옥수수가루와 물을 넣고 3~4시간씩 저어가면서 만드는데, 이때 사용하는 막대 이름이 타라이(Tarai)에요. 이탈리아 북부 지방의 가정식을 생각하면 할머니가 해주시던 폴렌타가 떠올라서 타라이라고 이름 지었어요.

어떤 계기로 한국에 와서 요리를 시작하게 됐나요?
파트리샤 
우연에 가까웠어요. 한국에서 살게 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프랑스에서 살 때 한국을 2주간 여행했어요. 굉장히 흥미로운 경험이었어요. 제가 살아온 환경과는 여러 면에서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 지금의 남편을 만나면서 조금씩 이곳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서울에서 일할 기회가 생겨서 이주했고 결혼을 하게 됐죠.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이 꽤 힘들었어요. 특히 음식이나 생활 방식 같은 부분에서요. 자연스럽게 요리에 깊이 빠져들게 됐고요. 고향의 음식을 통해 제 정체성을 확인하고 나고 자란 곳과 다시 연결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 젤라토 가게 멜레코테(@melecotte_gelateria)를 열게 되었고, 좋은 먹거리를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져서 인근에 타라이를 시작하게 됐어요. 말하자면 처음부터 계획했던 건 전혀 아니었어요. 많은 일이 우연히 이어진 결과라고 생각해요. 인생은 종종 우리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으로 데려가곤 하잖아요.
세종 이탈리아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나 엄마와 함께 식사 준비를 하면서 먹는 것에 대해서 교육을 받아요. 좋은 재료를 사는 것부터 만들고 먹는 것까지 모든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죠. 식사 준비나 식사 자체에도 서너 시간씩 걸리고요. 그런 문화가 파트리샤에게 자연스럽게 체화됐고, 한국에 살면서 새삼 그런 걸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이탈리아 식사 문화는 어떤가요?
파트리샤
이탈리아에서 식사는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것을 넘어 아주 친밀한 사회적 행위이자 가족의 시간이에요. 식사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타라이를 운영하면서 느낀 연희동만의 매력은?
파트리샤
푸릇푸릇한 풍경이 군데군데 섞여 있어서 대도시에 있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에도 좋고요. 서울의 다른 동네와는 조금 다른 커뮤니티라는 느낌이 있어요.
세종 한적하고 아기자기한 곳에서 살고 싶어서 이 동네에 왔는데, 슬로푸드 상권이 발달해 있고 ‘빨리빨리’ 분위기가 덜 한 편이에요. 큰 빌딩 없이 낮은 주택이 모여 있어서 아내의 고향과도 조금은 닮았고요.

타라이를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있었다면?
파트리샤
사람들이 우리가 하는 일에서 진정성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탈리아의 한 조각을 그대로 한국에 가져오고 싶었죠. 공간을 설계할 때도 그런 부분을 많이 고민했고요. 이곳에 온 이들이 마치 친구네 집에 초대받은 것처럼 느꼈으면 해서 주방과 홀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길 바랐고요. 벽도 저희가 직접 칠했어요. 제가 자란 고향집에서 볼 수 있는 벽처럼 만들고 싶었거든요. 유럽에서 구해온 고가구, 할머니 댁에서 가져온 소품과 주방 도구로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했어요. 공간 자체에서 우리가 어떤 사람들이고,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 느껴졌으면 했죠.

음식을 만들 때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파트리샤
그 요리가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떤 재료를 사용하는지부터 테이블에 오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재료 자체를 존중하려고 해요. 본연의 맛이 잘 드러나도록 요리하는 게 가장 중요한 원칙이에요. 음료에 사용하는 시럽도 과일을 사용해서 직접 만들죠. 물론 일이 훨씬 많아지지만 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계절마다 메뉴가 달라지는데, 메뉴를 개발할 때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는 편인가요?
파트리샤
새로운 레시피를 만드는 데엔 팀워크가 필요해요. 다 같이 이야기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메뉴를 개발하죠. 우선 제철 식재료의 매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데 집중해요. 처음 레스토랑을 열었을 때는 쉽지 않았어요. 당시에는 한국의 제철 식재료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했거든요. 새로운 메뉴를 만들 때 이탈리아 음식의 전통은 존중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고집하지는 않아요. 이탈리아 셰프 중에는 자국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강한 분들이 많아요. 전통 레시피를 건드리거나 재해석하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기도 하죠. 저희는 그 뿌리는 지키되 한국적인 것을 더하려고 해요. 이탈리아와 한국을 연결하는 하나의 다리를 만드는 거죠. 그런 방식이 한국의 여러 이탈리안 레스토랑 가운데 타라이만의 특징이 아닐까 해요.
세종 가능하면 사용하는 대부분의 재료를 직접 구입하고 만들려고 해요. 시중에 파는 제품은 만드는 과정을 직접 보지 못 하잖아요. 예를 들어 저희는 피스타치오를 사서 직접 저온 로스팅을 하고 맷돌에 갈아서 피스타치오 페이스트를 만들거든요. 번거롭더라도 그렇게 하는 게 타라이의 콘셉트예요. 식재료가 어디서 왔고 어떤 맛이 나는지 컨트롤할 수 있으니까요. 파스타 면과 소스도 최대한 저희가 직접 만들고 있어요.

그런 철학은 어떻게 갖게 되었나요?
세종
이탈리아의 전통 농가 민박인 아그리투리스모(Agriturismo)에서의 경험이 인상 깊었어요. 정원에서 허브나 채소를 재배하고 가축을 직접 키우면서 얻는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주거든요. ‘저 사람은 자기 직업에 한 치의 거짓이나 부끄러운 점이 없겠다.’ 싶었죠. 앞으로 점점 더 그런 가치가 중요해질 거라 생각해요. 사라져가는 것 중에서 가치 있는 것들을 지켜 나가고 싶어요.

이탈리아 식재료와 한국 식재료가 다를 텐데, 그 부분은 어떻게 해결하나요?
세종
비슷한 걸 찾으려고 해도 기본적으로 기후와 토양이 다르기 때문에 좌절할 때가 있긴 하지만, 오히려 재미있는 지점이 많아요. 한국은 이탈리아보다 훨씬 더 다양한 해산물을 사용하고 산이 많다 보니 나물도 종류가 많잖아요. 봄에는 여러 나물을 맛보며 파스타에 올릴 만한 걸 찾기도 해요. 여러 식자재를 조합해보면서 몰랐던 부분을 알아가고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는 과정은 타라이를 운영하면서 가장 재미있는 일 중 하나예요.
파트리샤의 할아버지가 셰프셨다고 들었어요.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게 있을까요?
파트리샤
제가 여섯 살 때 돌아가셔 함께한 기억이 많지는 않아요. 요리하시던 모습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정도죠. 할아버지는 스위스에서 평생 셰프로 일하셨어요. 할아버지의 요리가 어머니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저도 어머니를 통해 할아버지의 레시피와 음식을 배웠어요. 지금도 고향집에는 할아버지가 사용하시던 요리책과 직접 남기신 노트들이 있어요. 그중 일부는 타라이에서 보관하고 있고요.
세종 할아버지도 물려받아서 쓰시던 요리책이 있어요. <주방의 기술>이라고 1800년대에 출간된 책이에요. 그 책도 타라이 지하에서 보실 수 있어요.

타라이의 대표 메뉴를 소개해주세요.
세종
토마토 비골리파스타가 시그니처 메뉴예요. 오븐에서 저온으로 로스팅한 방울토마토로 소스를 만들고, 우동처럼 두꺼운 비골리 면을 직접 뽑아서 만드는데요, 가장 심플하면서도 타라이의 철학을 잘 보여주는 음식입니다. 메뉴에 종종 올리는 미트볼 파스타는 파트리샤 할머니의 레시피로 만들어요. 할머니의 별명인 ‘비사’를 따서 ‘노나 비사의 미트볼 파스타’라고 이름 지었어요.
얼마 전 다녀온 휴가는 어땠나요? 어떤 시간을 보내고 왔는지 궁금해요.
세종
덴마크를 여행했어요. 저희 생각엔 덴마크가 동시대 외식 문화의 최전선에 있는 나라인 것 같아요. 미쉐린 레스토랑이 많고, 슬로푸드 문화와 창의력이 더해진 컨템퍼러리 미식 신도 발달했어요. 이탈리아에선 밀라노와 티라노 지역에 주로 머물렀어요. 전통 음식을 선보이는 식당 위주로 찾아 다니며 먹고 걷고 먹고 걷기를 반복한 여행이었죠. 레스토랑을 운영하다 보니 인사이트를 얻어야 한다는 생각에 강박적으로 계속 먹으러 다니게 되더라고요.

고향에 돌아가면 꼭 방문하는 장소가 있나요?
파트리샤
하이킹은 꼭 해보길 추천해요. 코스가 다양하고, 해발 3,000미터 정도까지 올라갈 수 있는 루트도 있어요. 하이킹을 한 뒤 이탈리아어로 ‘리푸지오(rifugio)’라고 부르는 산장에서 하룻밤 묵을 수도 있죠. 대부분 현지 식재료를 활용한 음식도 제공해요. 겨울 스키 여행지로도 꽤 유명하고요. 티라노와 가까운 보르미오(Bormio)와 텔리오(Teglio)를 함께 여행하는 것도 추천해요. 보르미오에는 고대 로마의 천연 온천이 있고, 텔리오는 메밀가루로 만든 파스타 피초케리(Pizzoccheri)의 고향이에요.

앞으로의 목표나 재밌는 계획.
파트리샤
몇몇 아이디어는 갖고 있지만, 지금은 레스토랑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팀 규모가 커졌기 때문에 제가 갖고 있는 비전과 방향성을 팀원 모두가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지, 서로 호흡을 잘 맞추며 일하고 있는지를 챙기는 게 중요한 시기거든요.
세종 뒷마당에서 포도를 키우고 있는데 농사가 성공하면 다른 작물도 키워서 디저트를 만들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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