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수향

My Beloved, Collapsing World
나의 사랑하는, 무너지는 세계

2018년 아이슬란드 아티스트 레지던시 활동을 계기로 물, 돌, 빛, 입자에 관해 작업하는 사진가 안수향. 가장 좋아하는 세 가지, 여행을 하고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며 살아가는 그녀는 물가에 서 있기보다 바다에 뛰어들기를 선택한 이후 사진과 글이 더 즐거워졌다고 말한다. 서프보드에 올라 흔들리고 무너졌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하며 매 순간을 보낸 모로코 바다에서의 여름을 기억하며.

글 사진 안수향

혼자 힘으로 바다를 딛고 일어난 첫 아침을 기억한다. 바다에선 걸음마를 새로 배워야 한다고 했다. 그 봄, 처음엔 그저 바다가 좋아서 철없이 뒹굴기만 하다가, 여름이 되어서야 비틀거리는 팔과 다리로 어떻게든 바다를 버틸 줄 알게 됐다. 내게서 산산이 부서지는 개별적인 파도는 붙들지 않으면 절대 만날 수 없는 미시적 세계다. 나는 용기를 내 팔을 젓고 일어나 세계를 붙든다.
서프보드를 디딘 발바닥 아래로 파도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짜릿했다. 보드 너머의 모든 감각이 발끝에 스미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영원할 수 있을 듯한 찰나, 무너지는 세계와 오롯한 환희, 맹목적인 걸음, 무구한 표정, 주저하지 않고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마음, 이 모두를 모아 ‘서핑(Surfing)’이라고 불렀다. 서핑, 서핑이라는 말을 입에 머금게 된 그해, 여름은 찬란했고 애틋했다. 눈이 멀 정도로. 시작부터 이렇게 아름다우면 도대체 어쩌자고, 고쳐 쓸 노력 없는 이 게으르고 유치한 문장을 당신에게 기꺼이 보여줄 수 있을 만큼.
모로코 타가주트(Taghazout)와 임수안 (Imsouane)에서 한 달 가까이 지낸 적이 있다. 오로지 서핑을 위해서였다. 파도가 있으면 주저 없이 바다에 뛰어들었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었다. 기분이 좋으면 웃었고 누군가를 위해 웃지 않아도 괜찮았다. 나의 바람대로 서 있었고, 모두 그런 듯했다. 좋았다. 그렇게 해변에서 만난 오롯한 우리는 모두 친구였다. 그중엔 평생 이렇게 보아도 참 좋겠단 마음이 드는 사람도 있었다. 친구의 이름은 아우마르, 우리는 함께 사막에서 모래를 덮고 누워 저녁 노을을 바라보기도 했다. 모래에 밴 한낮의 온기를 빌리는 일도 미안해질 만큼 무르고 여려진 마음 위로 노을이 저물 때, 아우마르는 ‘별’과 ‘바다’와 ‘반짝이는’이라는 말을 내게 알려주고 심었다. 나의 심상 속 바다는 별과 함께 영원히 반짝이며 빛나고 있다.
바다 위, 여전히 흔들리며, 나아가는 중이다. 바다 위에선 흔들림은 죄악이고 불안은 미성숙한 인간의 것이라는 어리석고 견고한 믿음과 법칙이 바로 설 수 없다. 모든 것이 흔들리는 곳에서 제자리를 지키려는 노력은 되레 허망하다. 그러므로 내려놓아야 버틸 수 있다, 이곳에선. 파도 앞에 놓인 모래성처럼 어떤 개념이나 추상도 8초에서 9초 간격으로 찾아오는 물의 집단성 앞에서 무너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개념이 무너지고 상식이 무너지고 당신들이 사라지고 나면, 바다 위엔 나와 파도만 남는다. 나는 다가오는 세계를 붙잡는다. 뭍에선 도무지 지을 수 없는 표정을 잔뜩 지으며.
바다에 뛰어든다는 건 어떤 세계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일이자 매 순간 흔들리겠다는 다짐이다. 서프보드 아래의 세계는 땅에 닿으며 무너지고 있다. 점점, 아름다운 방법으로. 나는 다시 세계를 붙잡기 위해 파도를 넘는다. 저쪽 너머에 있다. 나의 사랑하는 찬란한 세계가. 나의 사랑하는, 영원한 여름과 무너지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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