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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 Old stuffs and the Earth
맛있는 커피, 오래된 물건 그리고 지구

황학동 주방∙가구 거리에 자리한 카페 원써드가 제안하는 지속 가능한 삶은 이렇다.

박진명
인터뷰이 박선영(원써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신당역에 내려서 도보로 10분 정도. 지속 가능성과 친환경을 콘셉트로 한 카페 원써드(One-Third)에 닿으려면 신당 중앙시장과 주방∙가구 거리를 가로질러야 한다. 가는 내내 반짝거리는 은색의 식기들, 노포집에서 봤을 법한 낡은 의자와 테이블, 새로운 제품을 만들기 위해 찍고 있는 의자 틀 등이 눈앞에 펼쳐졌다. ‘수제비집’이라고 쓰인 낡은 간판 밑에서 환한 대낮 맥주를 즐기는 주민들, 오래된 가게 사이사이에 들어선 ‘요즘' 가게 등 쉽게 흉내낼 수 없는 정겨운 동네 풍경을 보고 듣다 보니 어느새 원써드에 도착했다. 제조업이 배출하는 탄소가 전체의 3분의 1이라는 의미로 ‘원써드’라는 이름을 갖게 된 카페 앞에 이르니 유쾌하고 다정한 상상이 그려졌다. 그 상상 속에는 지속 가능한 삶을 살아가는 나, 제자리를 찾아가는 지구가 있다고 말한다면 너무 거창할까.

📝 메모 1. 황학동

황학동에 처음 와봐요. 이곳은 어떤 동네인가요?
주방∙가구 거리가 가장 유명해요. 1980년대부터 중앙시장 뒤편에 자리잡기 시작한 주방기구∙가구 특화거리인데요. 창업할 때 집기나 식기류를 구매하고 폐업할 땐 되파는, 그런 곳이죠. 중고 제품은 아무래도 다시 판매하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멀쩡한 제품이 산처럼 많이 쌓여가고 있는 곳이기도 해요. 다시 사용되지 못하고 쌓여만 가는 중고품을 순환시키고자 이곳에 ‘원써드(One-Third)’를 오픈했어요.

지속 가능성이나 친환경 콘셉트를 생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영국 런던에서 디자인 경영을 공부하던 당시, 이미 유럽 전역에서는 지속 가능성과 친환경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었어요. 한국에서는 아직 낯설고 어려운 주제여서 그때 국내에 이런 방향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가장 쉽고도 확실한 환경 보호 방법 중 하나가 일단 만들어진 제품 하나를 오래 오래 쓰는 일이잖아요. 서울에 중고가 가장 많이 쌓여있는 곳을 찾다가 황학동 이 자리를 만난 거죠. 선택지에는 동묘도 신설동도 있었어요.

표현할 수단을 정하기에 앞서 지속 가능성이라는 키워드에 먼저 접근한 거네요.
네, 맞아요. 이 주제를 대중에게 편안하고 친근하게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을 생각하다 보니 카페에 이르게 된거죠. 사람들이 쉽게 모이는 특성을 가졌고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넓은 공간도 있고.

📝 메모 2. 커피 맛에도 ‘진심'인 원써드

주로 동네 주민이 많이 방문하나요? 주변에 온통 주방 기구∙가구 상점 뿐이기도 하고 지하철역과도 살짝 거리가 있어서 외부 사람들은 일부러 찾아와야 할 것 같은데.
이 동네에는 동대문이나 시청, 광화문 쪽에서 일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살아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창일 땐, 카페에서 일하거나 작업하는 분도 많았고요. 주말에는 멀리서 오는 손님이 많죠.

커피 마시는 것, 예쁜 물건을 보는 것 말고도, 원써드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은?
작년에는 8팀의 아티스트와 협업해 전시를 했어요. 각자 황학동을 돌아다니면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고르고, 자신만의 아트 워크로 완성시키는 형태의 전시였어요. 또 환경을 주제로 동네 주민, 청년 등이 모여 살롱을 진행했어요. 3~4개월 정도 정기적으로 만나서 테이블이나 의자, 식기류 등을 리사이클링해보고 자원의 순환, 지속 가능성을 깊이 있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였죠.

메뉴는 어떻게 개발했나요?
원래 카페나 맛집 찾아다니는 걸 좋아했어요. 심심하면 유튜브 레시피를 찾아보고 식자재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라 신나게 준비했던 것 같아요. ‘3분의 1’이라는 이름의 음료는 아인슈페너에서 착안한 메뉴인데요. 크림에 율무 가루를 넣어 더 걸쭉하고 고소한 맛을 냈어요. 대부분의 메뉴는 제 입맛과 취향, 경험을 반영해 개발했어요. 뭘 할까 고민된다면,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를 들여다 보는 게 가장 좋은 해결책인 것 같아요.

공간의 구조를 정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한 점이 있다면?
공간의 크기. 탁 트이고 유리가 통창인 공간에서 제가 셀렉한 가구나 그릇, 식기류가 매력적으로 보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최대한 인테리어를 하지 않을 것. 공간을 꾸미면서도 탄소 배출을 줄이고 싶었거든요. 여기서 새 제품은 에스프레소 머신 하나밖에 없어요. 선반은 중고 철제 의자를 겹겹이 쌓아 올려 만들었는데요. 옆, 옆집에 있는 ‘동일금속' 사장님이 제 머릿 속 상상을 구현해줬죠.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다시 방문하고 싶게 만드는 콘텐츠를 계속해서 개발하고 있어요. 포스터나 선반에 놓여진 제품 등을 정기적으로 바꾸고, 전시나 살롱 같은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기 위해서 원써드의 방향과 맞는 브랜드나 아티스트에게 이것저것 제안도 하고 있고요. ‘또 와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아요.

📝 메모 3.지속 가능한 동네와 지구를 만들기 위한 디자이너의 역할

좋아하는 카페나 여행지가 있다면?
주저없이 영국 런던을 꼽겠어요. 제가 커피를 좋아하고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한 곳이거든요. 5년 전 런던에서 공부할 때만 해도 한국에는 스페셜티 커피가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어요. 런던 골목골목에 있는 카페와 로스터리를 찾아 다니며 전에는 없던 향과 맛을 경험하다 보니 커피가 점점 재미있어지더라고요. 당연히 비건 옵션이 있고 어린이나 강아지 동반이 가능한 걸 보고,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상상해왔던 것 같아요.

카페를 준비하면서 주로 어디서 영감을 많이 얻었는지 궁금해요.
인터넷이나 요즘 트렌드를 참고하기 보다는 오로지 제 경험에 의존했어요. 기억을 더듬어 특히 좋아했던 런던의 카페 인테리어나 메뉴를 구글링하곤 했죠.

테이블과 의자가 정직하게 놓여 있는 구조가 요즘 카페와는 다른 점인 것 같아요. 요즘은 큰 소파나 낮은 테이블을 배치해 자유롭고 다양한 구성을 보여주는 곳이 많은 편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작업하거나 일하기 위해 카페를 찾는 손님을 배려하고 싶었어요. 저도 카페를 다니면서 작업할 때 그  공간의 분위기에서 영감도 많이 얻고 기분 전환도 되고 좋았거든요. 원써드에 있는 동안은 편하게 일하고 작업할 수 있었으면 해요.

황학동에서는 오랜 시간 동네를 지키고 있는 상인, 주민들과의 상생도 중요할 것 같아요. 어디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요.
처음 창업할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이기도 해서 먼저 다가가려고 많이 노력을 했어요. 옆 건물에 있는 세탁소나 금속 사장님에게 일부러 공구를 빌리거나 반갑게 인사한다거나… 많이 노력했죠. 지금은 나름 친해져서 지나가면 아이스크림을 나눠주시기도 해요. 이 자리가 원래 오래된 냉면 가게였거든요. 처음엔 중앙시장에 나가서도 ‘냉면집 자리에서 카페하려고 한다'고 운을 떼면, 따뜻하게 맞아주곤 했어요. 현지 주민과의 상생은 지속 가능한 요소 중 하나이니 그만큼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명함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고 적혀 있어요. 원써드라는 브랜드에 대한 확장성을 담고 있는 것 같은데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엄청 많아요.(웃음) 청년 아티스트, 브랜드와 협업도 계속해서 해내고 싶고요. 얼마 전, 다른 디자인 스튜디오와 협업해서 DDP 디자인 페어에 출품을 했어요. 황학동의 그릇으로 만든 램프인데요. 주최 측이 새로운 제품을 양산할 수 있는 기회를 줘서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이번 계기로 저 혼자 해오던 작업에 다양한 아티스트의 생각과 감각이 더해져서 많이 배우는 중이죠. 또 카페라는 공간을 통해 다양한 환경 이야기도 전하고 싶어요.

지속 가능한 환경과 삶을 꾸려나기 위해서 디자이너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디자이너는 미적인 감각이나 센스가 뛰어난 직업군이잖아요. 그 재능을 다같이 더불어 잘 살게끔 사용하는 데 디자이너의 역할이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 공부할 때 ‘디자인이 세상을 바꾼다'는 문장을 본 적 있는데, 개인적으로 그건 아닌 것 같고요(웃음). 디자인이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칫 지루하고 진지해질 수 있는 환경이라는 주제를 시각적으로 재미있고 편안하게 보여주고, 사람들의 생각을 전환하는 것에 제 역할을 다하고 싶어요.

📝 메모 4. ‘솔드 아웃'이라는 라벨이 붙어 있는 의자는 판매된 제품이라고 했다. 자신이 음료를 마시던 컵, 디저트를 먹던 접시, 앉아 있던 의자, 진열된 그릇, 벽에 붙은 포스터 등은 모두 집으로 데려갈 수 있다. 손 때 묻은 가구, 누군가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접시와 식기 등 마음에 쏙 드는 제품을 이 거리에서 찾아보고 원하는 색을 입혀보면 어떨까 상상하니 꽤 괜찮은 생각 같았다. 누가 지속 가능한 삶을 거창하다 말하나. 알고 보면 별 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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