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맛집 마다밀에서 담근 제철 술

 

ⓒ 피치 바이 매거진

The Joy of the Season
계절에 얽매이는 기쁨, 마다밀

SNS를 통해 제철 식자재를 소개하고 맛있게 먹는 방법을 제안하는 후암동 삼층집. 채널 운영자이자 푸드 크리에이터 진민섭이 오픈한 조식당 ‘마다밀’이 후암동에서 용산역 근처로 자리를 옮겼다. 사계절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공간에서 그를 만나 제철 음식이 주는 호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어 박진명, 유선우
인터뷰이 진민섭(마다밀 대표)

3년 전, 엑스(구 트위터) 계정 ‘후암동 삼층집’으로 활동하며 F&B 콘텐츠를 제작하기 시작했어요.
회사에 다닐 때였죠. 처음으로 엑스와 유튜브에 금귤 정과를 만드는 사진과 영상을 올렸는데, 운 좋게도 바이럴이 잘 됐어요. 이를 계기로 2023년 3월엔 첫 책 <오늘 이 계절을 사랑해!>를 출간했고요.

6개월 전, 후암동에 마다밀이라는 조식 식당을 연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아침의 가치를 나누는 커뮤니티 브랜드 아침(Achim)에서 아침 프로비전(Achim Provision)이라는 오프라인 공간을 열었는데요, 그 건물에 조식당을 만들고 싶었대요. 아침과 인연이 있던 제게 제안이 왔고 입점 형식으로 그곳에 마다밀을 오픈하게 됐어요. 6개월간의 프로젝트가 끝나고 저는 저만의 둥지를 틀게 된 것이죠.

후암동이 아닌 용산역 근처로 오게 된 이유는?
솔직하게 말하자면 재정적 이유가 가장 크고요(웃음), 후암동보다 접근성이 좋았으면 했어요. 동시에 후암동처럼 오래된 동네가 주는 정겨움도 잃고 싶지 않았고요.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곳이 바로 이 자리였죠. 높이가 낮은 주택과 상점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고즈넉한 분위기가 가장 마음에 들어요.
리모델링할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저는 음식부터 인테리어까지 색에 포인트를 주는 걸 좋아해요. 테이블 다리나 의자 다리에 하늘색과 주황색을 넣어 포인트를 살렸죠. 동네 분위기에 자연스레 녹아 들면 좋을 것 같아 건물 원래의 구조를 최대한 복원했는데, 컬러풀한 공간과 잘 어울리도록 서까래 사이사이에 하늘색 페인트를 칠했어요.

공간 구성도 많이 고민했을 것 같아요.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빈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굉장히 고민되더라고요. 수익을 따져 테이블로 채워야 하나 하고요(웃음). 마다밀을 단순한 식당이 아닌, 계절이 담긴 이야기를 풀어내는 공간으로 활용하려고 해요. 예를 들어, 계절을 주제로 다양한 분야의 브랜드와 협업을 할 수도 있겠죠. 그래서 팬트리를 설치했는데,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에 걸맞은 책, 오브제, 술 등을 전시할 예정이에요.

팬트리에 제철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 제철 과일로 담근 술이 눈에 띄더라고요.
술 마시는 것보다 담그는 걸 좋아하거든요. 혼자 살다 보니 과일과 채소를 한 번 구입하면 제때 소비를 못해 금방 상하는 거예요. 처음엔 먹고 남은 식자재로 술을 담그기 시작했죠. 지나가는 계절을 저장하는 기분이 들어 좋더라고요.
레스토랑에서 셰프로 일하다 백화점 F&B 팀으로 이직하는 등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어요. 원래 요리사가 꿈이었나요?
군대를 전역하고 나서 막연히 식음료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그러다 SK 뉴스쿨이라는 1년 과정의 요리 학교를 알게 됐고요. 입학할 때만 해도 그저 회사에 들어가기 위한 발판으로 생각했는데, 대학교 4년 과정을 1년 동안 밀도 높게 배우다 보니 점점 요리에 진지해지는 거예요. 이후 권숙수라는 한식 레스토랑에서 2년간 일했어요. 커리어의 다음 단계를 고민하다, 백화점에 입사했고요. 이후 푸드 스타트업, 브랜딩 에이전시에서 경력을 쌓은 후 지금의 자리를 찾은 거죠.

레스토랑에서 식자재를 직접 다뤄본 경험이 회사 업무에서도 많은 도움이 됐을 것 같아요.
제철 식자재를 깊이 이해하게 된 건 권숙수의 영향이 크죠.  파인 다이닝이다 보니 전국 각지의 귀하다는 계절 식자재가 모이거든요. 매 계절 가장 맛있는 재료를 접하며 많이 배운 것 같아요.
마다는 ‘(계절)마다’에서 따온 이름인가요?
맞아요. 브랜드의 확장성을 고려해 마다 뒤에 ‘밀(meal)’이라는 단어를 붙였어요. 케이터링 사업을 하게 되면 마다케이터링, 워크숍을 열면 마다워크숍 등 다양하게 활용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죠.

마다밀을 준비하며 영감을 얻은 여행지가 있다면?
일본 도쿄나 교토에 있는 식당을 많이 참고했어요. 일본에는 지역별로 현지의 제철 식자재를 강조하는 식당이 많거든요. 특히 교토에는 오반자이(おばんざい)라는 문화가 발달돼 있어요. 큰 그릇에 제철 식자재로 만든 갖가지 반찬을 조금씩 담아 내는 가정식을 뜻하는데, 각각의 재료를 존중하고 낭비를 최소화한다는 의미가 담겼죠. 마다밀의 대표 메뉴 ‘마다 플레이트’는 오반자이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어요.

마다 플레이트는 어떤 요리로 구성되나요?
가을의 마다밀은 이 계절에 가장 맛있는 우엉, 당근, 고구마 등의 뿌리 채소와 배, 단감 등 가을을 대표하는 과일로 구성했는데요, 우엉과 당근을 얹은 브루스케타부터 블랙 올리브를 올린 고구마 당절임, 우엉과 고등어를 넣은 주먹밥, 단호박 후무스, 된장 버섯 파스타, 과일 샐러드까지 총 6가지를 큰 접시에 담아 제공해요.
여행지에서 맛집을 찾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면?
인스타그램을 많이 참고하는 편이에요. 태그 검색을 하다 보면 흔치 않은 식당 하나 정도는 알게 되거든요. 그 식당을 태그한 사람의 계정을 검색하는 게 포인트예요. 피드를 보면 자신과 비슷한 취향인지 알 수 있으니까요. 일단 그런 계정을 발견하면 어떤 식당에 다니는지 탐색하며 그중에서 가보고 싶은 식당을 저장하곤 해요.

제철 식자재를 구하는 팁을 알려주세요.
동네의 작은 슈퍼마켓에도 MD가 있다고 생각해요. 가장 잘 팔릴 만한 상품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노출시키는 판매 전략은 어디서나 활용되는 법이니까요. 특히 매대 중앙을 유심히 살펴보세요. 제철 식자재는 눈에 가장 잘 띄는 데 있거든요. 그리고 햇감자, 햇사과, 햇감 등 ‘햇’이라는 단어가 있으면 그 계절 가장 맛있는 식자재라는 뜻이랍니다. 이런 식으로 동네 슈퍼마켓을 관찰하는 것도 계절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중요한 건 맛있는 제철 식자재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애호박은 사계절 내내 재배되지만 여름이 제철인 채소인데요, 노지에서 키운 애호박은 어디서 구입하든 다 맛있거든요. 부수적인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제철 식자재를 먹는다는 한 가지 사실만 기억하면 훨씬 즐거울 거예요. 자세한 내용은 <오늘 이 계절을 사랑해!>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웃음)!

좋아하는 계절이나 기다리는 제철 식자재가 있다면?
아무래도 식자재가 풍부한 여름과 가을을 가장 좋아해요. 특히 여름에는 당도 높은 과일이 맛있는 계절이죠. 혹시 계절마다 식자재의 색감이 조금씩 다른 거 아세요? 가끔 스트레스 받을 때면 식자재를 쌓아두고 밀프렙(Meal prep, 식사와 준비의 합성어로, 며칠 동안의 식사를 한 번에 미리 준비해 놓는 것을 의미한다)을 하거든요. 여름엔 빨갛고 노랗고 푸른 풍부한 색감의 식자재를 펼쳐 놓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봄엔 푸릇푸릇하고 가을과 겨울에는 채도가 낮아지며 차분한 색감을 갖게 되는데, 그 흐름을 보고 있으면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후암동 삼층집 계정에서 보늬밤조림 영상을 보고 몇 번이나 따라해봤는데, 매번 실패했어요. 만드는 데만 며칠 걸리고 또 2~3개월 숙성해야 하니 기다리는 시간을 못 참겠더라고요. 이런 제게 해줄 조언이 있다면?
보늬밤조림은 설레임의 맛이라고 생각해요. 밤이 제철인 10월에 만들어 크리스마스나 연말에 먹게 되니 그 시간이 고스란히 깃든 음식인 거죠. 보늬밤조림이 숙성되길 기다리는 시간을 즐겨 보세요. 사실 저도 영상을 올린 3년 전 딱 한 번 해보고 시도도 못하고 있긴 하지만요(웃음).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일단 이 동네에 신고식을 잘 치뤄야겠죠(웃음). 앞서 언급했듯 ‘마다’라는 브랜드를 확장해 다양한 일을 시도해보고 싶어요. 그중 하나로 제철 식문화를 테마로 한 잡지를 만들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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