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남용

L’art de La vie
라드라비

한 아티스트의 상상이 매일 현실로 되살아나는 장소. 마을 끝 산자락에 꿈 꾸듯 자리 잡은 문화 공간에서 듣는 상상과 현실 사이의 예술.

허태우
사진 최남용
촬영 협조 라드라비 아트 앤 리조트

오후 2시. 라드라비 아트 앤 리조트의 카페에는 몇 명의 손님이 여유롭게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늦더위의 햇살은 건물이나 나뭇가지 사이 틈으로 헤집고 들어오며 반사된다. 갤러리에서 유심히 작품의 설명을 듣던 한 무리의 손님이 떠났다. 화려하지 않지만 화려하고, 소박하지 않지만 소박하고, 오래된 듯하지만 오래되지 않은, 이 공간의 분위기는 이상일 작가를 닮을 수밖에 없다. 프라이빗 빌라, 갤러리, 카페, 레스토랑, 멀티 플렉스, 작업실 그리고 정원과 정자.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곳이지만, 시간의 흐름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호리호리한 체형에 도포 휘날리듯 외투 자락과 스카프를 날리며 성큼 걷던 작가는 카페의 푹신한 소파에 누울 듯 기대어 앉는다.

이곳을 얼마동안 구상해서 만들었나요?
공사는 2년 만에 다 끝냈죠. 2015년에 완공했어요. 나머지 시간은 숙성의 시간이었어요, 숙성시키는 김에 코로나가 와서 더 숙성됐고. 저 계단도 다 제가 돌칼로 자르고 망치로 다듬어서 손맛 나게 만든 거예요. 한옥이 오래된 것처럼 보이잖아요. 그것도 옛날에 지은 게 아니에요. 들기름을 계속 발라서 만들었죠. 한옥에 살면서 종갓집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귀동냥으로 듣고 직접 해보면서 느끼고 배운 거에요.

그래서 이렇게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군요.
하나씩 하나씩 관리했죠. 저기 깔려 있는 덱도, 새것은 브라운 톤이잖아요. 요트용 나무인데, 붉은 브라운 톤이면 튀어 보이니까 옛날에 쓰던 것을 찾아서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했어요.

라드라비 아트 앤 리조트의 건축은 자연스럽다. 바위는 원형 그대로 보존했고, 물길을 그대로 두었다. 빌라에는 홍송, 적벽돌, 회색돌, 참나무 등의 친환경 자재를 썼다. 리조트 부지 위쪽에 들어선 3채의 한옥 서경루, 목단채, 산수채는 산을 정면으로 마주하는데, 처마의 끝 선을 앞산 능선에 맞춰 설계했다고 한다. 인공적으로 어긋나지 않도록, 전체적으로 풍경과 공간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헤어스타일리스트이자 플로리스트, 공간 디자이너, 아티스트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한 이상일 작가가 첫 구상부터 완공까지 모든 과정을 주도했다.

상상은 할 수 있지만, 실행에 옮기기까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전문직으로 35년 넘게 일을 하면 일단 금전적 물질적 여유가 생기죠. 노후에 사는 데 지장 없을 정도로.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은퇴에 나이 제한이 없어요. 세월이 갈수록 클라이언트가 많아질 수 있는 환경이죠. 그래서 그냥 자신감 있게 한 거예요. 가장 자연스럽고 자신감이 있어야지 그게 가장 아름다운 게 아닌가.

단순히 상업성만 고려한 공간은 아닌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그래요. 그냥 편안하고 멋있게 살아갈 수 있는데, 이건 아니다 싶은 그런 게 있어요. 제가 사회로 부터 너무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그걸 누리기만 하는 것은 끝까지 자기 호사만 부리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렇게 산자락에 다 펼친 거예요. 사실 문화 사업은 이윤을 보고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보람을 느껴야 하고, 후배들을 생각한다면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더 좋은 일이죠.

자신만의 상상을 현실화하고 싶었던 것인지.
성향이 있죠. 취향이에요. 저는 사실 벗이 없어요. 나의 세계만 있고 내 철학이 너무나 강해서 다른 사람이 접근을 잘 안해요. 딱 봐도 접근하기 편한 사람은 아니잖아요. 이렇게 앉아서 얘기하면서도 머리 한 구석에선 항상 다른 생각을 해요. 집중해서 대화를 하다가 다른 곳에 존재하는 듯 없어지기도 하고. 있다가 없어지고, 없다가 있고. 그러니까 현실적으로는 굉장히 피곤한 사람이에요.

예전부터 그런 평을 많이 들었나 봐요.
그렇죠. 항상 정해진 틀을 싫어했어요. 교과서처럼 다 만들어 놓은 것들 있잖아요. 그런데 살면서 느낄 수 있는 자신만의 체험은 교과서 내용보다 더 우월한 게 많잖아요. 그래서 거부했죠. 초등학교 2학년 시절을 돌이켜보면 하늘을 파랗게 그리라고 선생님이 알려줬는데 난 그렇게 파란 게 싫었어요. 그냥 다른 애들처럼 똑같이 알려주면 알려주는 대로 했어야 되는데 나는 항상 토를 달았잖아.

갤러리는 라드라비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일 작가의 독특한 연필 드로잉과 설치 작품으로 이루어진 전시장은 개인의 삶을 풀어놓은 스토리로 관객을 이끈다. 작가 직접 도슨트가 되어 설명해주는데, 관객은 무엇보다 작품의 사이즈에서 압도된다. 일상의 기억을 재현하고 해석한 캔버스 위에 온몸을 집중해 손끝으로 그려낸 고난의 흔적이 두텁게 쌓여 있다. 하나의 선이 무수히 중첩되어 흑과 백을 가르고 사람과 사람을 살아나게 한다. 이상일 작가는 매일 새벽 구도자처럼 방석에 앉아서 연필을 잡는다.

드로잉 세계에 빠지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와이프가 프랑스에서 공부하는 동안 너무 적적하고 고독했어요.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와이프는 유학을 떠났고, 나는 현실에 머물러야 했어요. 학비도 그렇고 또 애들 교육비도 그렇고 숍도 운영해야 하니까 일을 계속했죠. 그러다 보니까 너무 무료하잖아요. 고독하고.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와이프의 화장대에서 아이 펜슬이 보였어요. 그걸 드는 순간 가슴이 다시 끓기 시작했어요. 뜨겁게. 어렸을 때부터 너무너무 그리는 걸 좋아했는데, 몸속에 쌓아둔 채 잠궈놓았던 게 나중에 터진 거죠.

그런데 왜 이 드로잉일까요. 여러 가지 다른 장르도 많은데···.
다른 장르도 다 해봤죠. 다 해봤는데, 연필이 나하고 딱 맞아요. 그동안 제가 머리카락을 쭉 계속 보듬어왔잖아요. 그것처럼 이 연필 하나로 그림에 몰입하는 데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연필은 광물, 흑연이잖아요. 자연적이기 때문에 더 좋아요.

여기 라드라비에 걸려 있는 작품은 몇 년에 걸쳐 완성한 것인가요?
한 20년 넘게. 그리고 아직 프레임에 넣지 않은 것도 100여 점 있어요. 지금 진행 중인 것도 있고. 그러니까 시간만 되면 밥 먹듯이 호흡하듯이 그리죠. 그런데 여기를 개관한 뒤로는 집중력이 조금씩 떨어지네요. 다른 데 신경쓸 게 너무 많아서··· 내 세계만 있으면 좋아요 나는. 혼자 있으면 계속 새로워지는 사람이니까.

작업실 바닥에는 300호도 넘어 보이는 크기의 드로잉 작업이 놓여 있다. 수북하게 쌓인 몽당연필은 그간의 노력을 진술하는 키 작은 증인 같다. 두루마리 그림을 펼치면 또 다른 세계가 등장한다. 사람, 도시, 산, 숲 혹은 이종교배한 지구상의 풍경과 유적. 머리 속 상상이 손 끝을 통해 표현된 장면은 세상에 전시되어 존재할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다녀온 여행지 중에 가장 인상적인 곳은 어디였나요?
네팔이에요. 트레킹하면서 제 인생관이 바뀌었죠. 안나푸르나 트레킹 첫날 밤이었어요. 로지에 잠자리가 다 준비되어서 잠시 담배를 피우려고 밖으로 나갔는데, 하늘에 별이 총총 떠있고 안나푸르나 봉우리가 황금빛으로 보여요.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면서 빛이 봉우리에 걸쳐 진거죠. 그걸 보는 순간 눈물이 막 줄줄 흐르더라고요. 어떻게 생각하면 자연이 나에게 스며들게 된 이유는, 제가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너무 생존 경쟁에만 매달려서 그랬던 것 같아. 수많은 별이 막 쏟아지는 걸 보면서 종교에서 회개하듯이 눈물 콧물이 흐르고, “이제 정말 앞만 보고 달릴 필요가 없구나,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야 되겠다” 그후부터 여행을 많이 다녔어요.

여행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겠네요.
여행은 우리가 살면서 1년에 네 번씩 꼭 다녔어요. 두 번은 정말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최고의 럭셔리한 곳을 가고, 두 번은 정말 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오지로. 그렇게 여행해서 느낀 감정을 교차시켜야 또 나에게서 새로운 게 나오고 안목도 넓어지니까요. 세계적 부호가 간다는 최고의 휴양지에도 빚을 내서라도 가서 경험할 때도 있었어요. 앞서 얘기했지만, 체험해서 얻는 것만큼 소중한 게 없어요. 여행을 통해 새로운 콘셉트와 형상이 나오죠. 이곳의 모든 게 여행 속에서 받은 영감이에요.

상상하는 것 자체가 매우 즐거워 보여요.
상상의 세계로 막 들어가니까 그리고 그림이 여기 이미 다 그려져 있으니까. 항상 자기의 꿈을 저버리지 않고 그래서 지금도 계속 꿈을 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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