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실킨츠기 공방의 전경

 

ⓒ 쿠실 킨츠기

The Beautiful Fault
결함에서 찾은 아름다움, 쿠실 킨츠기

함께한 추억이 쌓인 기물의 소중함과 상처를 수선하면서 치유되는 마음. 이것이 바로 킨츠기(金継ぎ)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인터뷰어 박진명
인터뷰이 이숙(쿠실 킨츠기)

나의 할머니는 살아생전 검소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이가 나가거나 금이 간 컵과 접시는 눈에 보이는 족족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재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깨진 도자 파편을 이어 붙여 그 위에 금가루를 뿌리는 예술의 한 기법이 유행하는 요즘 세태를 보면, 할머니는 분명 이렇게 말했겠지. “내가 빨리 죽어야지.”
‘이가 나간 그릇을 사용하면 복 나간다’는 말을 미신처럼 믿었던 우리네 할머니들과 달리, 다도의 세계에서는 깨지거나 금이 간 도자를 이어 붙이는 행위를 품격 있다고 여겨왔다. 15세기 말, 일본에서 시작된 킨츠기(金継ぎ)는 도자를 수선하는 옻칠 공예 기법이다. 말 그대로 킨(金, 금)과 츠기(継ぎ, 이어 붙인다)를 합친 단어로, 불완전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일본의 ‘와비사비(わびさび)’ 정신과 맞닿아 있다. 깨진 부분을 평평하게 갈아낸 뒤 옻으로 조각을 이어 붙이고 옻이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데 수개월. 킨츠기 작업자들은 어떤 마음으로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이겨내는지, 킨츠기 공방 ‘쿠실 킨츠기’를 운영하는 이숙 작가에게 물었다.
킨츠기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힘이 실리고 있는 설 중 하나는 15세기 말 일본의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가 깨진 청자 다완을 수리하기 위해 중국에 보내며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전해져요. 중국에서 고쳐온 찻잔을 본 요시마사는 수리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일본의 장인에게 다시 의뢰했대요. 당대 도예가들은 고민 끝에 옻으로 수리를 한 후 그 자리에 금분을 뿌려 장식하며 미학적으로도 마음에 드는 방식을 찾아냈습니다. 그 기법을 킨츠기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죠. *<킨츠기 수첩>(나카무라 구니오 지음, 컴인 출판) 참조

킨츠기 수선 방식을 자세하게 설명해주세요.
일단 주재료로 옻을 사용하는데요. 옻은 내열성, 향균성, 방수성, 접착성 등의 성질을 가지고 있어요. 밀가루와 섞으면 깨진 기물을 접착하는 데 사용할 수 있고, 황토를 섞으면 실금이나 단차가 생긴 부분을 메울 수 있죠. 수리한 곳을 금분이나 은분으로 장식하면 완성됩니다. 옻으로 마감을 해도 상관 없어요. 각자의 취향을 따르거나 기물과 어울리는 방법으로 마무리하면 돼요.

이렇게 설명을 들으면 엄청 간단해 보여요.
막상 해보면 쉽지 않아요. 일단 옻칠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하고(최소 3번에서 최대 10번까지), 경화되기까지 2~3일이 걸리거든요. 시간과 인내심, 정성이 필요한 작업이죠.
킨츠기를 어떻게 접하게 되었나요?
중학생 때 일본의 전통시가 하이쿠(俳句, 총 17자로 이루어진 시)를 접하면서 일본어의 매력에 빠지게 됐어요. 결국은 나이가 들어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지만. (웃음) 언어를 배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본 전통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고요. 우연히 킨츠기 작품을 발견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감격해 일본에 가면 꼭 배워야겠다고 결심했어요. 2019년 국내에서 열린 킨츠기 클래스에 참여하면서 킨츠기와의 인연이 시작됐죠.

쿠실 킨츠기라는 이름으로 공방을 운영하고 있어요. 공방을 연 계기가 있다면?
킨츠기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전, 하프돌(half doll, 19세기 서양 여성의 모습을 재현한 상반신 인형)이라 불리는 도자기 인형을 가마에서 구워 유약한 후 채색하는 작업을 했어요. 지금은 그 작업실에서 킨츠기 수업과 작업을 하고 있고요.

주로 어떤 사람들이 킨츠기를 배우러 오나요?
아무래도 도예 전공자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해요. 이외에 플로리스트, 푸드 스타일리스트, 디자이너, 주부 등 정말 다양한 분야의 수강생이 있죠.
의뢰 받은 작업도 하는지 궁금해요. 작업 의뢰 시 수리 가능한 범위는 어떻게 되나요?
주로 도기와 자기로 된 그릇을 의뢰 받고 있어요. 어렵긴 하지만 유리도 가능하고요. 어떤 킨츠기 작업자는 칠기로 된 작은 함이나 목기도 수리한다고 들었어요. 저도 제가 가진 목기를 수리해본 경험은 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소개해주세요.
제가 처음 받았던 수리 의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사실 킨츠기를 배워 혼자 연습할 때만 해도 그저 저의 성향과 잘 맞는 작업이라고 생각했을 뿐 지금처럼 공방을 운영할 계획은 없었어요.
어느 날, 작업실 옆 갤러리의 대표가 지인의 깨진 청자 이야기를 하며 수리를 할 수 있을지 물어보더라고요. 당시 실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저에게 킨츠기를 가르쳐준 선생님을 소개해줬어요. 며칠 뒤, 의뢰자가 직접 저를 찾아와 본인의 기물을 수리하는 과정을 직접 보고 싶은데, 제가 소개해준 선생님의 작업실이 너무 멀다며 제게 맡기고 싶다는 거예요. 속으로 얼마나 부담스러웠는지.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수리를 시작해 거의 3개월에 걸쳐 작업을 했죠. 그동안 의뢰자는 틈이 나는 대로 제 작업실에 들렀죠. 그도 그럴 것이 도암 지순탁 선생(경기도 무형문화재 제4호 분청∙백자장 전승자로 지정된 도자의 명장)의 청자였거든요. 그때의 부담감은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날 정도예요. 어렵고 조심스러운 작업이었기 때문에 킨츠기를 한층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무언가를 아끼는 마음은 무엇이고, 애정이 담긴 물건은 어떤 태도로 다뤄야 하는지도요.
이후 의뢰자는 저의 첫 수강생이 되었고 그 분의 조언으로 킨츠기 수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게 됐죠. 지금도 좋은 친구로 잘 지내고 있어요.
 
킨츠키 관련해서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있다면요?
이제 막 마키에(蒔絵)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마키에란 칠기 표면에 옻칠로 그림을 그리고 금이나 은을 뿌려 마감하는 기법인데요. 킨츠기가 하나의 장르로 받아들여지기 전인 1990년대까지 마키에 장인은 골동품 수리를 하곤 했거든요. 이 기법을 킨츠기에도 활용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마키에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며칠 전 일본 도쿄를 방문해 배워봤는데요. 앞으로 일본에 갈 때마다 꾸준히 배워보려고 해요.
마키에를 어느 정도 익힌 다음엔 가나자와(金沢市)에 가고 싶어요. 옻칠과 금박 공예로 유명한 도시인데, 좋아하는 곳이라 자주 찾죠. 마키에를 배우기 이전에는 마키에 공예품이 아름답지만 지나치게 화려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깊이 이해하고 나면, 다른 시선으로 작품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킨츠키를 접하고 난 후, 가장 달라진 삶의 변화가 있다면?
제가 행동은 느린데 성격이 급해요. 그 부조화가 만드는 실수가 많죠. 그런데 킨츠기에서는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거든요. 작업의 모든 공정에서 완성도를 높이지 않으면 결국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일이 생기더라고요. 이러한 과정을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적어도 킨츠기 작업을 할 때만큼은 성격이 좀 차분해지는 것 같아요. 일상에서는 여전하지만.(웃음)

마지막으로, 킨츠기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나요?
의뢰를 받고 수리하는 데는 짧게는 1개월, 길게는 2개월 이상 걸려요. 그동안 그 기물을 매일 들여보고, 오랜 시간 손에 쥐고 작업을 하죠. 그러다 보면 정말 이상하게 물건에 정이 들어요. 값이 비싸든 아니든, 취향에 맞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냥 애정이 생겨요. 남의 것에도 그런데, 제 기물을 고칠 땐 더 하죠. 구입한 장소부터 당시의 내 모습, 곁에 있던 사람들까지 떠오르니 그리움도 생기고요. 그런 시간은 마음을 고요하고 따뜻하게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힘도 길러줘요.
어쩌면 우리에게는 그런 경험이 필요한 게 아닐까요? 그릇을 수선하며 환경을 보호하자는 거창한 의미까지는 아니더라도, 킨츠기를 통해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가지며 이 아름다운 순간을 꼭 누려보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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