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긱쿠리어

Messenger from the Future
미래에서 온 메신저

자전거 메신저 서비스 긱쿠리어(GIG Courier)는 두 다리로 페달을 굴리는 삶이 세상을 구하진 못하더라도 도시 환경을 건강하게 바꿀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박진명
인터뷰이 김의호(긱쿠리어 대표)

자전거로 퀵서비스를 제공하는 긱쿠리어를 알게 되고, 영화 <인어공주>에서 남자 주인공을 맡은 배우 박해일이 떠올랐다. 극중 집배원으로 등장해 자전거를 타고 마을의 사사로운 안부를 전하고 다니던 빛바랜 장면과 함께. 무려 20년 전의 영화라 굉장히 오래 전 일처럼 느껴지지만, 자전거 배송은 유럽이나 일본은 물론 멀지 않은 곳에서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긱쿠리어는 서울 을지로에 기반을 두고 자전거로 탄소 배출 없이 물건을 배송한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미래 지향적인 일을 해내고 있는 것. 긱(gig)의 사전적 의미는 마차, 일용직 등 다양하지만, 긱쿠리어에 사용한 긱은 ‘일회성 연주’의 의미를 담고 있다. 바닥에 타이어가 스치는 소리, 체인이 돌아가는 소리를 만들어내며 도로 위를 휘젓는 자전거 메신저가 마치 무대 위의 뮤지션 같다는 생각으로 지은 이름이라고. 두 다리와 두 바퀴만으로 서울 곳곳을 누비며 자전거 인식의 틈을 좁히고 있는 긱쿠리어의 김의호 대표를 만났다.

참고사항 : 쿠리어(Courier)는 배달원을 뜻한다.

얼마 전(1월 17일)에 오픈 1주년을 맞이했다고요. 1년간의 소회가 궁금합니다.
긱쿠리어를 많이 알릴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큰 가방을 메고 자전거를 타다 보면 알아보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기고, 한국에도 자전거 메신저가 생겨서 기쁘다는 응원도 많이 받아요. 주문량이 조금씩 쌓이면서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은데, 그래도 여전히 목마르죠.(웃음) 도쿄에서 메신저로 활동할 때는 하루 80킬로미터씩 자전거를 탔는데, 요즘은 하루 평균 40킬로미터밖에 못 타고 있거든요.

자전거 메신저라는 직업이 생소한데요.
자전거 메신저는 자전거의 발명과 함께 등장했어요. 19세기 후반, 미국 전신 회사들이 전보를 배달하기 위해 자전거 메신저를 고용하면서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았죠. 교통 체증이 심화되면서 자전거 메신저의 수요는 증가했어요. 최근에는 탄소 중립 이슈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고요.

긱쿠리어가 가진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신속성과 효율성, 그 이상의 가치가 있어요.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데 동참하고 자전거 메신저 문화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긱쿠리어를 주로 이용해요. 사실 교통 체증을 감안하면, 배송 시간은 오토바이와 비슷해요. 게다가 보통 오토바이 퀵은 주변에 있는 주문을 모아 한번에 출발하는 경우가 많아 도착 시간을 보장하기 어렵잖아요. 반면, 긱쿠리어는 왕복 15킬로미터 이내일 때 1시간 안에 도착한다고 안내합니다. 일반 퀵보다 가격이 높게 책정되어 있지만, 신속성을 생각하면 그리 비싼 건 아니죠.

자전거 메신저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어릴 때부터 자전거를 정말 좋아했는데,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자전거 메신저를 알게 됐어요. 도쿄 곳곳을 돌아다니는 메신저들을 보며 언젠가 나도 도전해보리라 결심했죠. 일본어에 자신감이 붙었을 즈음 ‘티서브(T Serv)’라는 도쿄에서 가장 큰 자전거 메신저 회사에 지원했어요. 마침 졸업을 앞두고 있어 시간 여유도 있었거든요. 일단 자전거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았고, 지리를 구석구석 알게 되면서 도시를 새롭게 알아가는 즐거움도 컸죠. 무엇보다 메신저 커뮤니티를 정말 좋아했어요. 메신저 문화와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매료되어 졸업 이후 2년 반 동안 풀타임으로 메신저를 했어요. 2020년 귀국하고 서울에서 자전거 메신저 서비스 긱쿠리어를 열게 된 거죠.

서울과 도쿄는 비슷하면서도 정말 다르잖아요. 서울에서 어떤 가능성을 보았는지 궁금해요.
2009년 무렵, 우리나라에도 자전거 메신저가 있었어요. 서울은 애초에 자동차 중심으로 설계되었고, 강도 있고 언덕도 많고, 회사가 곳곳에 흩어져 있는 데다가 너무 덥고 춥고. 메신저가 활동하기에 어려운 도시이긴 해요. 일본에서는 자전거 메신저가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어요. 워낙 자전거 인프라를 잘 갖춘 나라이기도 하고요. 겨울에 아무리 추워도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아요. 또 도쿄 황궁을 중심으로 회사 건물이 밀집해 있고 번화가가 형성되어 있어서 배달 시 이동 거리도 짧은 편이죠. 또 아직도 서류에 직접 사인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아서 문서 배달이 많아요. 두 도시는 모든 면에서 완전히 다르다고 보면 돼요. 하지만 서울에도 분명히 수요가 있을 거라고 판단했어요. 게다가 친환경을 내세운 배송 서비스는 탄소 중립 시대에 걸맞은 아이템이기도 하고요. 서비스만 잘 발달시킨다면 당장은 아니라도 앞으로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긱쿠리어 멤버는 어떻게 채용하나요?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한다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다른 배달 서비스와 병행해도 아직은 상관 없어요. 대학원생이었던 한 친구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배달을 다녀오곤 했어요. 공식 채용은 없고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놀면서 서비스를 만들어가고 있는 단계예요.

세계 자전거 메신저 대회(Cycle Messenger World Championship)가 있다고 들었어요. 대회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지 궁금해요.
지금 함께 일하고 있는 친구도 2019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대회를 통해 알게 됐어요. 대회 기간 중 한국인이 한 명 더 있다는 이야길 들었는데, 그때는 만나지 못했어요. 인스타그램 팔로우만 했죠. 제가 귀국했을 때 그 친구도 한국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더라고요. 그렇게 서울에서 처음 만나 긱쿠리어에 합류했죠. 

대회는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나요?
클로즈드 코스(Closed Course)에서 실제 메신저 업무를 시뮬레이션하는 대회인데요. 주최 측에서 설정한 체크 포인트를 따라 정해진 시간 내에 매니페스트(Manifest, 화물 목록)를 가장 빨리 배송 완료하는 사람이 위너가 됩니다. 하지만 승자를 가리는 경기라기보다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는 메신저가 함께 모여 교류하는 축제에 가까운 행사죠.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없었나요?
대회 중에 언더그라운드 대회도 열려요. 길고양이, 영어로 앨리 캣(Alley cat)이라고 불리는 대회인데요. 방식은 간단해요. 도시 곳곳에 설정한 체크 포인트를 찍고 오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다른 도시에서 온 메신저들은 자카르타 지리를 잘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훨씬 스릴이 넘치죠. 한 손으론 구글맵을, 다른 손으론 핸들을 잡고 2시간 동안 60킬로미터를 탔어요. 도로 위 하얗게 흩뿌려진 매연과 냄새, 스쳐지나는 장면 장면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날 만큼요.

메신저 문화가 발달한 도시는 어디인가요?
1993년 세계 메신저 대회가 처음 열린 독일 베를린을 비롯해 유럽 주요 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뉴욕, 샌프란시스코 같은 미국 대도시에도 자전거 메신저가 많아요. 스위스 알프스의 산악 지대에서 활동하는 친구도 있어요. 동남아시아 쪽은 이제 막 생기고 있는 추세고요. 올해 9월, 세계 메신저 대회가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릴 예정이라 저희도 문 닫고 갑니다.

기억에 남는 자전거 여행지가 있다면?
일본에서 귀국할 때 도쿄에서 서울까지 자전거를 타려고 했어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입국 절차가 복잡해져 바다를 건너진 못하지만, 일본 안에서는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에 시작했죠. 도쿄에서 후쿠오카까지, 17일 동안 총 1,400킬로미터를 탔어요. 한창 코로나가 심할 때라 유명 관광지를 가도 사람이 없는 거예요. 덕분에 일본을 통째로 빌려서 여행하는 느낌이었죠.

긱쿠리어는 공존을 가장 우선하는 가치로 둔다고요. 자전거와 공존,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자전거 문화가 탄탄하게 자리 잡은 사회는 건강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도시에 자전거가 많으면 도로 위에서 자연스럽게 서로 배려하는 법을 배우게 되거든요. 법적으로 자전거는 제일 우측 차로에서 탈 수 있어요. 그리고 자전거 도로가 인도 위에 있는 경우도 많고요. 자동차 운전자와 보행자가 각각 자전거 교통법을 인지하고 있다면 서로 엇갈리더라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겠죠. 도로 위에 있는 모든 이동 수단이 존중 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공존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어요.

긱쿠리어가 생각하는 지속 가능한 삶이란?
욕심을 버리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희는 괜찮은데 오히려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해요. ‘주문 그렇게 받아서 먹고 살겠냐, 스타트업 지원금 신청해라, 빨리 규모를 키워야 한다’. 다 맞는 얘기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런 욕심 때문에 결국 지속 가능하지 못한 채 끝난다고 생각하거든요. 일단은 브랜드 철학에 집중하며 현재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지금처럼 긱쿠리어의 가치에 공감하는 단골 거래처를 하나씩 늘리다 보면 끝끝내 자전거로 배불리 먹고 살 수 있지 않겠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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