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초지돈대의 포탄 자국

 

ⓒ 이상엽

Ganghwa Dondae
돌에 새긴 변경의 역사

근대기 조선을 둘러싼 강대국의 격전장이던 잊힌 장소. 강화도에 설치된 54개의 돈대에서 굴곡진 역사적 풍경을 되짚어 본다. 

글・사진 이상엽

철북돈대에서 바라본 의두돈대. 철책으로 완전히 이어져 있다. 철북돈대의 전면은 인공 시설물(군이 설치한 구조물)을 설치할 때 개축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현재는 굴곡면을 이룬다. 이곳은 여전히 전쟁이 멈추지 않았음을 표상한다.

강화도 돈대는 늘 그곳에 있었지만 정작 제대로 대면하려 하니 낯설다. 돈대는 처음 설치될 때부터 그 목적이 불분명했고, 세상에 드러날 때는 비극적이었다. 구한말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요호사건처럼 말이다. 이 사건들은 조선의 흑역사다. 흔한 드라마나 영화에도 제대로 등장하지 못한 것은 철저하게 조선이 유린당한 역사의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대 여행은 ‘다크 투어리즘’이다. 다크 투어리즘은 인류의 죽음이나 슬픔을 대상으로 한 여행을 뜻한다. 강화 돈대에 얽힌 근대 개방 과정에서 프랑스와 미국, 일본에 의한 전쟁과 학살이 있었고, 역사는 그것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 채 은폐됐다.
강화 돈대는 조선 숙종 때 52개소를 설치했다. 그 형태는 돌을 원형이나 장방형으로 쌓아 곳곳에 포좌를 설치하고 위에는 낮은 성가퀴를 쌓은 것이다. 쉽게 돌로 만든 작은 성채를 연상하면 된다. 1679년에 이르러서는 강화 해안을 따라 돈대를 건립해 섬 전체를 요새화하는 5진·7보·52돈대가 완성됐다. 돈대를 만든 그때, 동아시아는 17세기 중반에서 19세기 중반까지 약 200년 동안 유례없는 평화를 누린다.
1681년 명나라를 무너뜨린 강희제가 오삼계의 난을 진압하면서 청나라는 완전하게 중원을 장악한다. 조선은 병자호란 이후 효종기에 어수선했던 국제 정세를 정리하고 1674년 집권한 숙종기에 안정기에 들어간다. 일본은 1651년 집권한 도쿠가와막부의 5대 쇼군인 이에츠나(家綱)에 의해 막번 체제가 완성되면서 국내외로 평화기가 찾아온다. 하지만 이 평화 시기는 매우 모순적이고 이율배반적인 생각과 행동이 동거하는 시기였다.
지배 권력은 보수적인 안정 희구를 원했고 민중은 새로운 권리와 삶을 희구했다. 청나라는 강희제 때 추구했던 팽창정책이 성과를 거둔 후 한족의 관료제를 도입하면서 만주팔기의 활력을 포기했다. 조선의 왕과 사대부들은 성리학을 최고의 이념으로 삼아 사회질서를 과거로 돌리려 했다. 일본은 겐로쿠 시대(1688~1704)의 내수 시장 폭발로 호황을 누렸지만 쇄국정책으로 일관했다. 동아시아 서쪽 반대편의 유럽은 근대라는 개념을 발명했고, 해양을 통해 부를 거머쥔 제국이 되어 동점하기 시작했다. 동아시아는 밀려드는 외부의 사상과 호기심으로 조용히 충돌했다.

 

초지돈대의 포탄 자국. 신미양요 때 진내에 있던 군기고, 화약고, 진사 등 군시설물은 미군에 의해 파괴됐다. 포대에 남아 있던 40여 문의 대포 역시 파괴되거나 강화해협으로 굴러 떨어졌다. 운요호 사건 때는 110mm와 40mm 함포로 포격을 가해 초지진 포대는 일시에 파괴됐다. 그 뒤 초지진은 완전히 파괴되어 허물어지고 터와 성곽의 기초만 남아 있었다. 현재의 돈대는 그것을 복원한 것으로 현재 포탄 자국도 기실 허위에 지나지 않는다.

(왼쪽) 숲을 이룬 동검북돈대의 팽나무 군락. 동검북돈대는 54개 돈대 중에서도 가장 큰 큐모로, 평면 방형이며 둘레가 261m다. 주변의 팽나무가 신비롭고 스산한 풍경을 만든다. 이곳은 마을 사람들이 당제를 올리는 장소다. 석벽은 모두 붕괴되었지만 토축과 면석으로 그 존재가 확인된다. 서남쪽 하단에서 건물지 2곳이 발견됐는데, 멀리 서남쪽으로 위치한 영종도를 볼 수 있다.

(오른쪽) 상암돈대의 포구를 통해 본 풍경이다. 상암돈대는 전면이 급경사를, 후면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산을 등지고 있다. 바다를 향해 설치한 4문의 포좌는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 상암돈대의 축석은 방형의 거칠게 다듬은 돌을 그랭이질해서 정교하게 짜 맞췄다. 횡줄눈은 대체로 일치하지만 종눈줄은 일치하지 않게 쌓아 구조적으로 매우 안정되어 있다. 또한 돌들 사이에 ‘사잇돌’을 박아 견고하게 완성했다.

분오리돈대의 전경. 외벽의 30% 정도를 복원한 이 돈대는 동쪽 절벽의 자연암반을 이용해 석축했기 때문에 아찔한 풍경을 연출한다. 분오리돈대는 54개 돈대 중에서도 매우 특이한 외형을 갖추고 있어 찾는 이들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현대 역사는 동아시아의 근대를 19세기 중반으로 규정한다. 문제는 모두 서양 세력이 진출해 맺은 폭력적인 조약에 의한다는 점이다. 중국은 1842년 영국과 난징조약을 맺었고, 일본은 미국과 1858년 미일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한다. 모두 불평등조약이었다. 이에 조선은 일본의 강압적인 요구로 1876년 강화도조약을 맺는다. 우리는 이를 대체로 동아시아의 근대로 규정하고 있다. 이 격동의 동아시아 근대에 조선의 변방 강화도가 모순의 격전장이 된다. 돈대로 둘러싸인 강화는 프랑스, 미 그리고 일본의 강제 개방을 요구받았고, 이윽고 청과 러시아, 일본의 전쟁터가 된다. 이렇듯 조선은 가혹하리만치 고통을 겪었다. 그 고통의 현장에 돈대가 서 있었다.
해방 후 한국전쟁과 군사 쿠데타로 돈대는 전혀 다른 가치를 부여받기도 했다. 과거의 군사 목적이 아닌 역사 문화 유적으로 각광받는 현실과 마주한 것이다. 한동안 폐허로 잠자던 돈대가 다시 눈을 뜬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박정희 정권 때였다. 자주국방을 내세우며 핵무기를 개발하려다가 미국과 갈등을 빚은 박정희는 반미구국의 성지로 강화도를 선택했고 신미양요로 죽어간 백성의 혼을 달랜다는 명목으로 정부는 손돌목돈대 등 신미양요의 현장을 대대적으로 복원했다. 덕분에 갑곶돈대부터 초지돈대까지 약 10여 개의 돈대가 출처 불명의 복원을 통해 국민에게 선보이게 된다. 그렇게 안보 관광지로 각광을 받던 돈대는 국내 여행 활성화에 편승한 지방자치단체의 볼거리로 선정되어 또 한 번 수난을 겪는다. 오늘날 54개 돈대 중 10개는 멸실이고, 20여 개는 군의 소유이며, 나머지는 버려지거나 고증 없이 복원을 거쳤다. 나름대로 원형을 지키고 있는 것은 몇 안 된다.
그리고 지금, 돈대는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는 또 다른 시험대에 오른다. 이는 ‘보편적이며 탁월한 가치’를 지녀야 하는 세계유산의 기준을 넘기 위해 여러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랜 세월 주목받지 못했고, 어느 순간 민족의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를 함께해야 했으며, 또 다시 버려지고 이용당한 돌덩어리 사물이 과연 인류의 가장 순수한 역사기념물로 보존될 수 있을까?

 

(왼쪽) 적북돈대 터 근처에서 발견한 군의 벙커. 한눈에도 돈대의 면석을 이용해 건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적북돈대는 원래 바다로 돌출한 육지의 첨담부이며, 낮은 야산의 정상부에 자리한다. 현재 훼손 상태가 심해 원래 어떤 모양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이렇게 군의 점유와 훼손으로 망실된 돈대가 여럿이다.

(오른쪽) 월곶돈대에서 바라본 휴암돈대. 나무에 가려 성곽의 형태는 보이지 않는다. 휴암돈대는 강화읍 월곶리 고성마을 뒷산 해안 끝자락에 위치한다. 돈대 터에 가보면 길이 3~4m 석벽 일부만 남아 있고 군 시설물로 인해 원형을 알 수 없다. 철책 때문에 이곳이 DMZ라고 착각하지만, 강화 앞바다는 평화수역으로 설정된 곳이다. 즉 누구나 해안으로 나가 배를 타고 바다로 갈 수 있다는 뜻. 물론 그리하는 사람이 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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