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팜의 외관

 

ⓒ 플라스틱팜

The Joy of Repairing
수선의 즐거움, 플라스틱팜

서울 연희동에 자리한 플라스틱팜 대표 김정아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명확하게 알겠다. ‘고쳐 쓰는 삶’이야 말로 지속 가능한 삶의 시작이자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인터뷰어 박진명
인터뷰이 김정아(플라스틱팜 대표)

2020년 프랑스 정부는 플라스틱, 음식물, 전자기기 등의 폐기물을 줄이고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폐기물 방지법’을 제정했다. 2022년부터 음식물을 제외한 모든 상품의 재고는 판매자 마음대로 폐기할 수 없으며 과일과 채소를 플라스틱으로 포장하는 것을 금지하는 등 강도 높은 정책을 시행 중이다. 그리고 올해 10월부터는 옷 한 벌을 수선할 때마다 최대 25유로(약 3만5,000원)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프랑스 내에서는 이 정책이 패스트 패션의 소비를 줄이는 한편, 침체돼 있던 의류 수선 산업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의류가 얼마나 생산되고 폐기되는지 통계조차 정확하지 않은 실정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동안 발생한 의류 폐기물은 약 8만2423톤(가장 최신의 통계다). 친환경 소재도 좋지만 재고나 폐기물 등 이미 생산된 제품을 적극 활용하는 브랜드를 찾다 플라스틱팜을 발견했다. 일상과 자연을 넘나드는 라이프스타일∙패션 브랜드 플라스틱팜은 업사이클 소재로 빈티지 제품을 리메이크하는 ‘CRV(Collect/Reuse, Remake, Restore/Vintage)’ 프로젝트를 막 시작한 참이었다.
플라스틱팜을 간단하게 소개해주세요.
플라스틱팜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위한 패션∙라이프스타일 브랜드입니다. 일상과 아웃도어에서 모두 입을 수 있고 자연적인 색채와 질감을 가진 패브릭 제품을 만들고 있어요. 최근 지속 가능한 재료의 사용 범위를 넓히기 위해 빈티지 제품을 업사이클하는 ‘CRV(Collect/Reuse, Remake, Restore/Vintage)’ 라인을 론칭했는데요. 말그대로 재활용 소재를 사용해 과거의 제품을 현대적 디자인으로 재해석하는 거예요. 지속 가능한 패션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플라스틱팜이라는 이름에 숨은 의미는?
여러 가지의 뜻을 담고 있어요. 플라스틱이라는 단어가 ‘조형, 조소’라는 의미로 쓰일 때는 ‘조형미가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곳’이 될 수 있고, 널리 알려진 의미의 플라스틱 폐기물 소재를 활용해 제품을 만드는 곳으로도 해석할 수 있어요. 팜, 그러니까 농장이란 단어를 사용해 자연과의 조화를 떠올리도록 의도했고요. 인공적 느낌의 플라스틱과 상반되는 단어이기도 한데요. 자연과 인공이 어떻게 융화되어 공존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고 볼 수 있죠.
 
CRV는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나요?
몇 년간 의류와 가방을 만들다 보니 의류 샘플, 자투리 원단 등이 하나둘 쌓이더라고요. 점점 협소해지는 공간과 늘어가는 짐을 처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누적됐어요. 비슷한 시기에 플라스틱 물병을 재활용한 원단을 제작했는데, 원단 인쇄 과정에서 정상품보다 불량품이 더 많이 나오는 상황을 마주하게 됐죠. 환경에 영향을 덜 미치는 방법으로 옷을 제작하고 있는데, 또 다른 쓰레기가 발생한다는 게 너무 아이러니한 거예요. 자책감도 들고요.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취미 활동으로 부식된 오토바이를 고치거나 앤티크 조명을 복원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저희 브랜드에 적용해보면 좋겠다는. 다시 심장이 뛰더라고요. 여태껏 의류와 가방을 생산하면서 샘플링만 수차례, 계절이 지나가버리면 샘플링한 제품을 생산조차 못해보는 일이 부지기수였거든요. ‘모든 제품이 샘플이자 한정판이 되어도 괜찮겠다, 오히려 더 가치있는 제품이 탄생할 수도 있겠다’고 발상을 전환한 거죠.

리메이크 옷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요?
모든 제품이 ‘원앤온리’라는 점입니다. 비슷할 순 있어도 똑같이 만들 수 없으니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제품인 셈이죠. 생산자 입장에서는 자유롭게 이것저것 시도해볼 여지가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재료가 한정적인 데다 제품 제작 속도도 느리지만 꼭 맞는 주인을 만나게 될 거라는 믿음이 있거든요.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재미있는 작업인 것 같아요.
작업 시 가장 좋아하는 과정은?
CRV 작업 과정은 수집, 세척, 해체, 조립의 과정을 거치는데, 그중 조립하는 걸 가장 좋아해요. 리메이크 작업의 하이라이트죠. 그 외의 작업은 인내가 필요하기 때문에 조금 지루하거든요.

어려운 점도 많을 것 같아요.
빈티지 의류나 부자재가 주재료이다 보니, 수집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일이예요. 제가 사용하는 컬러를 편식하는 편이기도 하고, 재사용 여부나 내구성 등을 일일이 따져야 하니 원단을 고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요. CRV 라인이 자리를 잡고 나면 재고가 있는 패션 브랜드와 협업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리사이클 제품을 낯설어 하는 사람에게도 어필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또 이 분야는 많은 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에 혼자서 공부하기 벅찰 때가 있어요. 업사이클링을 시도하는 아티스트나 지속 가능성을 지향하는 브랜드와 교류할 수 있는 커뮤니티에도 참여해보고 싶어요.
요즘 최대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프리다이빙에 푹 빠져 있어요. 수면 위로만 떠다니다 바다 깊숙이 들어가게 되니 더 큰 세계를 만난 기분이에요. 게다가 프리다이빙은 아무 장비 없이 자연을 즐기는 스포츠라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덜 하죠. 물속을 탐험하다 보면 자연의 위대함을 새삼 느끼고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생기는 것 같아요. 아웃도어 활동을 할 때는 자연을 정복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생태계를 존중하고 지키려는 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초보라 수심 깊숙이 내려가는 데 한계가 있지만 차근차근 배워보고 싶어요.

가장 최근 다녀온 여행지는 어디인가요?
올해 5월 인도네시아 발리를 다녀왔는데요. 우붓(Ubud)이라는 지역이 특히나 좋았어요. 충분한 햇살과 비, 바람, 땅에서 나는 모든 것과 사소한 일에도 행복해 하는 사람들 덕에 좋은 시간을 보내고 왔어요. 자연 소재로 지은 건물, 편리함보다는 자연과 인간을 생각하는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더라고요. 현지 수공예품과 예술 작품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지역 문화와 예술을 자랑스러워하고 발리의 아름다운 자연을 알리려는 현지인들의 의지가 제게 영감으로 다가왔어요.
업사이클링 관련해서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있다면?
요즘 제가 주로 사용하고 있는 재료를 수집하는 여행을 해보고 싶어요. 미국에는 ‘정크 드로어(Junk Drawer)’라는 이름으로 다양하고 특이한 업사이클 재료를 분류해서 판매하는 빈티지 창고가 있는데요. 직접 방문해 눈으로 보고 단추나 체인, 팬던트, 비즈 등을 구매해보고 싶어요. 한국에서도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인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국내에는 그런 시스템이 없나요?
있긴 해요. 서울시에서 관리하는 새활용플라자에 ‘소재 은행’이라는 코너가 있는데, 이용하면서 늘 아쉬운 점이 있었거든요. 일단 카테고리와 제품 수량이 매우 한정적이죠. 미국의 정크 드로어를 직접 경험하고 국내 실정에 맞게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고 싶어요.

나만의 지속 가능한 여행 노하우를 알려주세요.
저는 캠핑을 좋아하는데요. 집에서 미리 식자재를 세척하고 소분해서 가져 가려고 합니다. 현지에서 구매하면 포장재 등의 쓰레기가 발생하니까요. 여러 사이즈의 텀블러와 물통을 가져 가서 두루두루 활용하고요.
여행을 할 땐 현지 식당에 가는 걸 좋아해요. 지역 식자재를 사용하는 식당을 이용하면, 재료가 이동하는 데 발생하는 탄소발자국을 줄일 수 있고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플라스틱팜으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지 궁금해요.
플라스틱팜 CRV는 친환경이라는 이점보다 매력적인 디자인으로 이 시장에서 살아남고 싶어요. 반짝이는 새것보다 친숙한 것, 서로 융화되는 재질, 자연스러운 컬러 등 제가 선택하거나 만든 것은 과거부터 미래까지 아름다울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 제가 바라본 빈티지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어요.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평생 해도 부족할 것 같아요. 이 작업이 지속 가능하도록 홍보를 열심히 해야겠죠. 언젠가는 셀프 수선집도 운영해 보고 싶어요. 직원의 도움을 받아 준비된 업사이클 재료로 스스로 리폼하고 업사이클하는 오프라인 매장이요. 새로운 것을 찾는 일보다 자신만의 취향을 담아 직접 고치는 일이 더 재미있다는 경험하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미용실처럼 온라인 시장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공간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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