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연출한 김가람 피디

 

ⓒ 신동훈

The Earth For Travel
여행을 위한 지구가 있다면. 김가람 PD 인터뷰

한때 지구의 즐거운 모습을 담기 위해 세계를 누볐고, 지금은 지구의 누추하고 남루한 면면을 살피기 위해 여행하는 김가람 KBS 교양 다큐멘터리 PD.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며 오히려 희망을 얻고 있다는 그의 지속 가능한 여행 이야기. 

인터뷰어 박진명
인터뷰이 김가람*
사진 신동훈
*김가람 PD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비롯해 〈6시 내고향〉 〈생로병사의 비밀〉 〈TV 유치원〉 등을 만들었다. 지금은 〈환경스페셜〉을 연출하고 있다.

입사한 지 얼마나 됐죠?
2011년 회사에 들어와 올해 13년 차가 됐어요. 입사 당시에도 동기 중 나이가 제일 어렸는데, 아직까지 후배와 일을 해본 적도 없고, 후배도 없네요. 막내 PD 생활만 13년 째인 셈이네요. 보통 저희 교양국은 프로그램의 1회당 한 명의 담당 PD가 배정돼요. 사실 동료와 함께 일할 기회가 잦지 않긴 해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담당하며 촬영, 편집, 내레이션 대본 작성을 모두 혼자 해냈다고요. 가능한 일인가요? 편당 제작 기간은 얼마나 되나요?
편당 8주 정도 소요돼요. 처음 2주는 가고 싶은 나라를 정한 다음 여행에 필요한 것을 서치하고 섭외하죠. 2주 정도 여행지에서 촬영을 하고 돌아오면 파일 인제스트(촬영본 파일을 적합한 형태로 변환시키는 업무)에 또 2주를 보내요. 그 다음 일주일은 촬영 편집과 내레이션 대본을 작성하고, 방송 전 마지막 1주는 음향, 밝기 등을 조정하는 후반 작업을 하죠. 3년간 쉴 새 없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프로그램을 만든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일과 여행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거라고 생각했어요. 또 매회 가고 싶은 곳을 직접 정할 수 있다는 것도 큰 동력이었죠. 〈걸어서 세계 속으로〉의 각 회차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PD마다 여행하는 방식이 다 달라요. 어떤 PD는 한국인 가이드와 함께 편하게 유명 관광지를 돌아보기도 하고, 누구는 오지나 트레킹 위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죠. PD의 성향에 따라 각 편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도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예요.

수많은 여행 콘텐츠 중에서 〈걸어서 세계 속으로〉가 유독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걸어서 세계 속으로〉는 영상이지만 여백이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저곳에 갔다면 어떨까’라고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달까. EBS에서 방영하는 〈세계테마기행〉과 많이 비교되곤 하는데, 두 프로그램의 가장 큰 차이점은 출연자의 유무예요. 〈세계테마기행〉은 뭔가를 계속해서 설명하는 출연자가 있는 반면,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는 잠깐씩 등장하는 PD말고는 없죠. 전통 음식을 먹는 상황을 예시로 들게요. 출연자가 있다면, 음식에 들어간 재료나 배경 지식을 먼저 설명하고 음식을 먹고 나서 리뷰를 하겠죠. 그런데 〈걸어서 세계 속으로〉는 PD가 카메라 앞에서 어색한 여행자처럼 한 입 먹은 후 끄덕끄덕하고 끝이에요. 요즘에는 여행 예능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영상에서 특정 페르소나가 프로그램의 얼굴이 되어 재미를 유발하곤 하죠. 그런데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는 그런 인물이 없어요. 주관적 설명이 없는 영상을 볼 때 시청자는 직접 ‘걸어서 세계 속으로’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 같아요. ‘저건 무슨 맛이 날까’라고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날 것의 영상미도 한몫 하는 것 같아요.
맞아요. 사실 카메라 개수도 적고, PD가 직접 등장해야 할 때는 통역가가 대신 촬영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실제 상황에 가장 가깝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사실 여행지에서 실망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걸어서 세계 속으로〉는 사전에 촬영 세팅이 안 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시청자 입장에서 볼 때 ‘평범한 나도 저기 가면 저 정도는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촬영지에서 계획된 상황은 보통 몇 퍼센트 정도인가요?
즉흥적 상황과 비율을 따져보면, 반반인 것 같아요. ‘현지에서 만난 한 가족이나를 초대했다’는 장면, 여행 프로그램에서 많이 보곤 했죠? 꼭 필요한 경우에는 미리 섭외하기도 해요. 한 번은 인도 시크교 가정의 생활상을 담고 싶었어요. 요즘 젊은 층도 시크교의 오래된 의식을 따르고 있는지 궁금해 할아버지부터 손주까지 3대가 함께 사는 시크교 집안을 미리 섭외했죠. 루마니아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할아버지와 독재 정권(1989년 루마니아를 24년간 독재했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총살형에 처하며 독재 정권이 무너졌다)에 맞서 싸운 아버지 그리고 현재 유럽연합에서 일하는 딸이 있는 가족을 섭외해 각자가 겪은 격변의 시대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물론 현장에서 갑작스럽게 초대를 받는 때도 있어요. 아르헨티나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에서 열린 축제를 촬영하고 있는데, 옆 동네 이장님이 제게 오더니 본인 동네에도 오라는 거예요. 다음날 그 이장님네 놀러가 양고기도 먹고 재미있게 놀았죠.

그럴 땐 정해 놓은 일정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을 텐데요.
일정을 느슨하게 잡는 편이기도 하고, 계획이 틀어질 때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 성격이에요.

혹시 MBTI 끝자리가 P인가요?
완전. 저와 달리 프로그램 시작할 때 논문부터 찾아보는 동료들이 있어요. 존경스럽다니까요. 저도 〈걸어서 세계 속으로〉 팀에서 섭외를 많이 하는 편에 속하지만, J인 동료를 따라가지 못해요(웃음).

아무래도 현장에서는 계획대로 안 되는 일이 되는 일보다 많죠. 곤란한 상황도 영상에 고스란히 담기곤 하더라고요.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프로그램을 만들 땐 순탄치 않는 상황이 많죠. 촬영장에 나가면 항상 실망스러워요. 꼭 누군가 애를 먹이고 당연히 될 것 같던 일이 펑크가 나고, 어떤 장소에는 출입조차 불가능하다던가. 그런 상황도 다 촬영하긴 해요. 뭐라도 해보려고 하면 새로운 것도 만들어지더라고요. 현장을 경험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하우도 쌓였어요. 데일리 프로그램이 아니다 보니, 오늘 무조건 해야 하는 인터뷰 같은 게 없으니까 ‘오늘 안 되면 내일 하지, 뭐’ 하는 마음의 여유도 있고요.

 
방송에 쓸만한 분량이 넘쳐나는 여행지도 있는 반면, 빈약했던 곳도 있었을 것 같아요.
인도에 도착하자 마자 이번 편은 되겠다 싶더라고요(웃음). 일단 길거리에 사람이 많다는 건 그만큼 많은 일이 일어난다는 뜻이거든요. 반면 아르헨티나 푸에르토리코는 인구 밀도가 적고, 여름이었는데도 바람이 엄청 많이 불어서 고생을 좀 했어요. 12월에 방영 예정인 회차였는데, 한겨울인 우리나라 모습과는 대비되는 남미의 휴가철을 보여주면 재미있을 것 같아 그 도시를 선택했거든요. 그런데 웬걸, 해변에는 쓰레기 봉투만 날아 다니고 하늘은 어둡고. 루마니아에선 사람들이 인터뷰하는 걸 극도로 꺼렸어요.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34년이 지났는데, 서로가 서로를 감시했던 기억이 남아 있는지 케이블카에서 핸디캠만 들어도 ‘지금 뭐 찍는 거냐’며 분위기가 험악해지더라고요. 현지 대학생 가이드도 깜짝 놀랄 정도로 루마니아 사람들이 카메라에 예민했던 기억이 나네요.

‘나 진짜 잘 만들었네’라고 스스로 감탄하는 회차가 있다면?
저는 매회 ‘이번에도 펑크 안 내고 잘했다!’고 생각을 하는데요(웃음). 그중에서도 제가 현장에서 느낀 감정을 잘 전달했다고 느낀 회차를 좋아해요. 두 편이 있는데, 하나는 라트비아 합창제예요. 라트비아에서는 5년마다 3만 명이 모여 거대한 화음을 만드는 노래대전이 열리거든요. 그 많은 사람이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데 경외감이 들었어요. 또 하나는 브라질에서 열리는 버스킹 삼바 공연이요. 브라질에서는 금요일마다 사람들이 거리에서 삼바를 춰요. 나중에 가족이나 친구랑 다시 가게 되면 술 한잔 기울이며 함께 놀고 싶은 분위기더라고요. 사실 현장에 도착하면 여기서 몇 분짜리 그림을 만들 수 있을지 감이 오거든요. 그런데 저기 두 곳에서는 조금 더 시간을 들여서라도 왜 여기서 노는 게 재미있는지, 촬영하는 PD가 왜 이 상황에 매료됐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시청자 반응도 좋았고요. 아직까지도 가끔씩 다시 보곤 해요. 볼 때마다 매번 재미있더라고요(웃음).

볼 때마다 다른 느낌이 드나요?
저는 현장음을 살리려고 신경을 쓰는 편인데요. 인터뷰 목소리만 따지 않고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농담, 인터뷰 요청이 부끄러워 서로 미루는 대화 등 현장의 목소리에 집중하려고 해요. 그렇게 신경 쓴 부분 덕에 결국 시간이 지나도 당시의 현장 분위기와 그때 느낀 감정이 생생히 떠오르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즐겨 보는 여행 콘텐츠는?
저는 평소에 제가 찍은 것만 봐요(웃음). 휴대폰에 유튜브 앱도 설치 안 할 정도로 다른 여행 콘텐츠는 안 봐요. 부러워서요(웃음). 여행 가기 전 의존하는 거라곤 구글맵밖에 없어요. 지도에서 거점 도시를 하나하나 찍어보며 이미지로만 상상하곤 해요. 아, 최근에 MBC에서 방영 중인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를 우연히 봤어요. 저도 이전에 촬영한 인도 암리차르 황금사원(Amritsar golden temple)에서 무료 급식 먹는 장면이 나오길래 보게 됐죠. 보면서 ‘내가 찍은 곳을 찍었나, 내가 안 찍은 곳도 찍었네, 잘했네’라며 재미있게 시청했어요. 

 
여행지를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글쎄요. 딱히 주제를 정하고 가본 적은 없어요. 항상 영상 말미의 내레이션을 ‘이러 이러해서 여기는 아르헨티나다, 이러 이러해서 여기는 인도다’라며 끝내곤 했거든요. 그건 여행이 끝난 후에만 느낄 수 있는 감상인 것 같아요. 사실 〈걸어서 세계 속으로〉는 아카이빙의 성격이 강해요. 지금까지 150개국 이상 다녔으니까 안 가본 나라를 찾는 게 더 힘들 거예요. 다른 여행 프로그램이라면 기획할 때 ‘도대체 이 나라를 왜 가는 거야’라는 질문을 분명 하겠죠. 반면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볼 때 시청자들은 ‘지금 여길 왜 가는 거야’라는 의문은 전혀 갖지 않아요. 그냥 프로그램 성격인 거죠. 저는 국내 미디어에 소개되지 않은 곳, 혹은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서 다룬 지 오래된 나라를 위주로 선정 했어요.

개인적인 여행 스타일은 어떤가요?
지루함을 빨리 느끼는 성격이라 특별히 좋아하는 장소나 스타일이 있진 않고, 그냥 되는 대로 다니는 편이에요. 〈환경스페셜〉을 맡기 전만 해도, 금요일이면 퇴근하고 고속버스나 기차를 탔어요. 남편이 외국인이다 보니 어딜 데리고 다녀도 너무 신기해 하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 저도 괜히 국내 풍경이 새삼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당일치기나 1박2일 여행을 좋아해요. 저 정말 P가 맞네요(웃음).

아무리 돌아다녀도 가보고 싶은 곳은 계속 생기지 않나요?
제가 중동 국가나 몽골에 가본 적이 없거든요. 그 지역을 좀 둘러보고 싶어요. 

최근 저서 〈걸어갑니다, 세계 속으로〉가 나왔어요. 그동안 다녀온 모든 여행을 집약한 한 권의 책인데요. 출장 중 틈틈이 남긴 기록 덕분인가요?
정말 농담 아니고 출장 중엔 한 줄도 적지 않았어요(웃음). 방영된 영상이나 남편이 찍은 사진을 보며 복기했죠. 저는 사진도 잘 안 찍어요. 직업 때문인지 기록하는 데 이골이 나더라고요. SNS 계정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이고요.

책에 나온 에피소드 중 콩고민주공화국 콜웨지(Kolwezi)의 광산에서 코발트를 캐는 남매 모린과 카스 이야기를 정말 감명 깊게 읽었어요. 여행의 두 번째 챕터가 시작된 곳으로 꼽기도 했는데, 그 여행에서 가장 강하게 남은 인상은 무엇인가요?
콩고민주공화국 콜웨지는 〈환경스페셜〉 취재로 가게 됐는데요. 호텔 문을 열고 나가면 눈과 코, 목이 너무 아팠어요. 먼지가 얼마나 많은지 창문을 다 닫고 있어도 3M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목이 금세 칼칼해지더라고요. 숨 쉬고 눈 뜨는 것도 힘든 광산에서 코발트를 캐는 아이들을 보고는 정말 깜짝 놀랐죠. 촬영 감독과 나눈 첫 마디가 ‘이거 다큐멘터리 된다’였어요. 그런데 3~4일 지나니까 아이들의 삶이 보이는 거예요. 엄마를 도와주려고 나온 아이도 있고, 생존을 위해 삽을 들고 나온 부모 없는 아이도 있고. 그런 모습에 차츰 익숙해지는 게 오히려 무서웠어요.

 
아무렇지 않게 아동의 노동 착취가 자행되고 있는 거네요.
전 세계 코발트 생산량의 70퍼센트가 콜웨지에서 생산된다고 해요. 미국에서도 코발트를 채굴할 수 있는데, 그동안 광산 허가가 안 났거든요. 왜냐하면 코발트 채굴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오염이 너무 심하니까. 그런데 세상에 아파도 되는 사람이나 초록초록한 풍경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콜웨지에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요즘 세상이 돌아가는 걸 보면, 지구에 공장이나 화장실 역할을 하는 곳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하루종일 캔 코발트 덕에 호사를 누리는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저 아이들이 아이폰을 사용하진 않죠. 그럼 아이폰 유저가 과연 저들에게 고마움을 느낄까요? 전혀 그렇지 않더라고요. ‘저런 일이라도 해야 먹고 살지’라는 댓글을 본 적이 있어요. ESG 경영이나 친환경적 이미지를 내세워 칭찬받는 사람들은 따로 있죠. 어쩌면 우리는 위험에 노출된 아이들의 절박한 삶을 즐겁게 이용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지속 가능성과 재활용, 그린 뉴딜 등의 어렵고 피상적 단어를 외칠 게 아니라,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그 지점에서 시작해야 해요. 그게 없으면, 다 헛것이라 생각해요.

진실을 알고 나면 불편해지니까 사람들이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래서 여행을 많이 다녀야 한다고 생각해요. 눈으로 직접 봐야 ‘내가 이 나라에서 태어났으면 아무리 환경에 관심이 있고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한다고 해도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도 할 수 있으니까요.

〈환경스페셜〉을 제작하면서 무력감에 사로잡힐 땐 없었나요?
‘나 하나 노력한다고 뭐가 바뀔까’라고 생각하면 모든 일이 다 쓸모가 없어져요. 주제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저는 오히려 치유받고 있어요. 〈걸어서 세계속으로〉에서 인종적 불의나 동물 보호 등의 문제는 일단 제쳐두고 지구에서 생기는 즐거운 일을 보여줬다면, 〈환경스페셜〉에서는 여행을 하며 찝찝했던 부분을 짚어낼 수 있어 보람을 느끼거든요. 사실 미디어 종사자가 하는 일은 어떤 삶이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쿨’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5년 전만해도 사람들이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게 당연했는데 지금은 그게 힙하지 않고 구린 일이 되어버린 것처럼. 그런 인식을 바꿔나가는 게 미디어의 역할인 것 같아요.

〈환경스페셜〉을 보고 느낀 점을 어떻게 실천하면 좋을까요?
몇몇 환경운동가는 시청자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하면 이렇게 말해요. 각자 좋아하는 물건을 만드는 곳에 메일을 보내라고. 기업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최대 이윤과 경제 활성화이니까 코발트를 최저가로 사기 위해 아동 노동 착취를 방조하는 건 백번 양보해서 이해한다고 쳐요. 그럴 거면 적어도 친환경과 윤리, 도덕을 논하지는 말아야죠. 저희 프로그램도 그 메시지를 시청자에게 계속 보여주고 있는 것이고요. 그런 문의 메일이 1통일 땐 힘이 없지만, 1,000통, 100만 통이 모인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럼 기업도 비윤리적 문제를 무시할 수가 없게 되겠죠. 꼭 행동을 하지 않아도 좋아요. 방송을 보고 난 뒤 전혀 그렇지 않으면서 친환경적 이미지를 가진 기업을 보고 쿨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친환경 소재로 만든 옷으로 패션 하울 영상을 수시로 찍는 유튜버를 보고 불쾌하게 느끼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친환경 여행’을 모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느 책에서 봤는데,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비유하더라고요(웃음). 사실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사는 것 자체가 환경 오염이에요. 탄소배출량을 줄이려고 사람다운 활동을 못하게 할 거면 우리가 뭣하러 지구를 지키냐고요. 사람답게, 즐겁게 살기 위해 기후 위기나 지속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거잖아요.

 
〈피치 바이 매거진〉은 늘 지속 가능한 여행을 이야기해왔지만, 새삼스레 진정한 지속 가능한 여행이란 무엇일까 혼란스러워지는데요.
저는 지속 가능한 여행이 ‘독점과 전용’의 반대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특별한 누군가가 되려 하지 말고 평범한 사람으로 여행하는 거죠. 단체 관광버스를 타고 가는 패키지 여행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잖아요. 힙하지 않아 보이죠. 그런데 저는 패키지 여행이 훨씬 더 지속 가능성에 부합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관광버스를 타면 주차 걱정은 커녕 운전하지 않아도 돼요. 그 차에는 40여 명이 타는데, 버스 크기 반만한 승용차는 많이 타도 4명. 탄소배출량만 따져도 이렇게 차이가 나죠. 언젠가부터 개인화된 여행이 마치 친환경인 것처럼 여겨지더라고요. 사람 없는 곳에 가서 나만의 휴식을 즐기는 것, 좋죠. 그런데 그런 여행에 친환경 · 생태 점수를 더 높게 주는 것에는 비판적 입장을 가지고 있어요. 누구나 할 수 있고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여행, 그게 지속 가능하다고 봐요.

그런 의미에서 지속 가능한 여행이 사람들의 반발을 사는 이유도 분명히 있겠죠.
여행은 일상에 몇 없는 정말 특별한 순간이잖아요. 모처럼 흥청망청 돈을 쓰고 싶어서 좋은 호텔에 갔는데, 친환경 정책이란 이유로 수건이나 시트를 재활용하라고 하면 짜증이 난단 말이죠. 그걸 사람들의 인식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COP 26(Conference of the Parties 26, 2021년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를 일컫는다)이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렸을 때를 예로 들자면, 공항에 전용기 600대가 몰려 이착륙 시 교통 정체가 발생했다고 하더라고요.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기후 위기를 논의하는 회의에 오면서 너무 당연하게 전용기를 타고 오는데, 일반 시민더러 탄소배출량이 적은 비행기를 타고 호텔에서 물을 아껴 쓰라고 하면 그 말이 들릴까요. 솔직히 일반인이 1년에 여행을 몇 번이나 가겠어요. 그 좁은 비행기 안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타고 있어요. 반발이 생길 수밖에 없죠. 여행지의 숙소도 마찬가지로, 스위트룸이나 비싼 호텔부터 친환경 정책을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COP 26에 참여하는 지도자가 ‘나는 전세기를 타지 않고 이웃 나라 지도자들과 함께 이동하겠다’고 하면, 그때부터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와닿겠죠.

 
여행 · 환경 다큐멘터리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고 느껴져요.
앞서 언급했듯 진짜 쿨한 것에 대한 인식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것, 그게 영상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서 저희가 해야할 역할인 것 같아요. 효능이 없지 않다고 보거든요. 만약 〈환경스페셜(2021)〉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가 5~6년 전 방영되었다면,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을 것 같아요. 최근 몇 년 사이 페트병을 줄여야 한다는 외침에 물음표를 붙이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다들 어느 정도 동의하는 상황이 된 거죠. 그런 인식을 미디어가 조금씩 바꿔왔고, 그래서 우리가 하는 일이 절대 미미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때 PD의 역할은 어디까지 일까요?
어느 날 갑자기 동남아에서 기후 위기로 인한 자연 재해가 발생해 100만 명의 난민이 생기는 것과 환경 오염이 서서히 진행되면서 1년에 10만 명씩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건 분명 다르죠. 후자일 때는 우리가 이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니까요. 언젠가 문제가 해결될 날이 올 수도 있고요. 제가 만드는 프로그램이 기후 변화의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고 대응할 시간을 확보하는 데 보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마지막으로, 다음 여행지를 귀띔해 준다면?
〈환경스페셜〉의 다음 아이템을 위해 인도네시아 출장을 준비하고 있어요. 폐기물을 주제로 또 다른 이야기를 전해드릴 예정이니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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