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연 작가가 기록한 도시 풍경 속 야생동물의 모습

 

ⓒ 권도연

Twinkle
권도연 작가의 반짝반짝

도시의 변형된 생태계 속에서 적응해 살아가고 있는 존재와의 눈맞춤. 

글・사진 * 권도연
자료 협조 페리지갤러리
* 권도연은 〈북한산〉 〈야간행〉 연작에 이어 〈반짝반짝〉에 이르기까지 도시 풍경 속 야생동물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다. 이외에 〈SF〉 〈섬광기억〉 〈고고학〉 〈개념어사전〉 등의 작업이 있으며, 미국 포토페스트 비엔날레, 인천아트플랫폼,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 미술관 등에서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했다. 2023년 10월 6일부터 11월 25일까지 권도연 작가의 개인전 '반짝반짝'이 페리지갤러리에서 열렸다.

달빛이 강에 닿으려면, 하늘을 가로지르는 차가운 행주대교 덕에 기둥에 바짝 붙어서 똑바로 내려오지 않으면 안된다. 달빛은 버드나무 사이로, 물가를 지켜보는 삵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린다. 콘크리트 둑에서 졸고 있는 너구리에게도, 수풀 속에 앉아 코를 하늘로 치켜들고 노래를 시작하려는 고라니의 등 위로, 물살을 가로지르며 헤엄치는 수달에게도 쏟아져 내린다.
행주대교 남단에는 올림픽대로, 행주대교, 인천 수도권 매립지 방면 도로, 공항로가 만나는 클로버형 인터체인지가 형성되어 있다. 자동차의 회전반경을 맞추기 위한 램프 구간 내부에는 원형의 시설 녹지가 자리 잡는다. 이곳에는 작은 숲이 있다. 차량 소음과 먼지가 심했지만, 사람의 출입이 없고 버드나무가 우거져 도시에 사는 야생동물의 은신처로서 매력적인 장소였다. 이 숲은 부나방을 꼬이게 만드는 가로등처럼 야생동물들을 홀렸다. 하지만 야생동물들이 이곳을 이용하려면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시설녹지를 드나들려면 사방을 둘러싼 도로를 건너야 하기 때문이다. 이곳을 둘러싸고 있는 도로에서는 고라니, 너구리, 수달, 삵의 죽음이 반복해서 관찰되었다. 이 숲은 분명히 매력적인 서식지이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생태 덫이 되어 이 지역 개체군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새벽별이 뜨면 나는 이곳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아카시아가 많았다. 초여름에는 그 냄새로 공기가 청결해진다. 공기를 크게 들이마시면 폐 가장자리가 가볍게 어는 듯했다. 행주대교 아래에서 그 냄새를 맡으며 천천히 강을 걷다 분이를 만났다. 분이는 이곳을 좋아했다. 한강을 향해 부채꼴로 펼쳐진 콘크리트 둑을 올라가면 벚나무가 있었고 그것에 조명을 비추듯 가로등이 서 있었다. 봄이 되면 가로등 곁의 벚나무가 가장 먼저 개화했다. 꽃이 질 무렵의 밤엔 떨어지는 꽃잎들이 은백색으로 빛났다. 분이의 집에서는 그 광경이 다 보였다. 분이는 낮 동안 이곳에 머물다가 해가 지면 올림픽대교를 건너 강서습지에서 먹이 활동을 하고 새벽녘 올림픽대로를 건너 시설녹지로 돌아오는 일상을 보냈다. 로드킬로 많은 동물의 주검이 있는 올림픽대로를 분이는 거침없이 건너다녔다.
분이는 친절했다. 사람의 동작 언어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분이와 같이 사진을 찍을 때마다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사진 찍을 때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걸 알려주지 않아도 과거가 될 만반의 자세를 하고 정확하게 멈췄다. 빛이 충분하지 않은 곳에선 이따금 플래시가 터졌다. 사진은 우리의 현재를 오렸다. 내가 불빛을 터트리면 풍경이 하얗게 날아갔다. 어느 때는 너무 흐릿해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이 남겨졌다. 그리고 그렇게 오려진 순간들은 내 가슴 어딘가를 찌르듯 건드렸다. 행주대교와 강서습지를 오가던 분이의 평범한 일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강과 아라뱃길을 유람선으로 잇는 이른바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행주대교 아래의 조용하던 숲은 일순간 뒤집어졌다. 공사 장비가 들어오고 강바닥을 파내는 공사가 시작되자 검은 흙이 작은 숲을 뒤엎었다. 단 며칠 만에 숲은 사라졌다. 그리고 분이도 사라졌다.
올해의 여름은 다른 해보다 무더웠다. 여름밤 강을 걷다 보면 유난히 서늘한 기운이 있는 곳이 있다. 그곳에는 더운 공기, 찬 공기가 섞여 있다. 분이를 만나기 위해 2년 동안, 이 숲을 다니며 공기의 변화를 느꼈다. 반쯤 잠기고 반쯤 드러난 생과 죽음이 서로 용해되는 섬세하고 역동적인 이 곳을 온몸을 다해 좋아했다. 그들의 삶에 조금 다가 가려 했지만 역시나 알아낸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았다.
9월이 되자 검은 흙으로 뒤덮인 벌판 가득 풀이 자랐다. 그 속에 분이처럼 앉아 보았다. 분이가 자칫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갈지 몰랐다. 다시 서서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벌판이 소소하게 흔들렸다. 풍성하게 자란 풀과 풀이 서로 닿아 소리를 내고 바람 방향으로 마른 물결이 번졌다. 분이는 어느 방향에서 올까. 조금씩 방향을 바꿔가며 서서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사라져 가는 이때, 어둠을 수평선으로 나누는 반짝반짝한 불빛 같은 것, 저기 그게 있다는 지표 같은 것이, 그 아름다운 것이 필요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록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감탄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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