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이화동 희곡서점 인스크립트

Between Bookshop and Theatre
희곡으로 지은 작은 무대, 인스크립트

연극이 시작되기 전, 어두운 극장 안 무대를 비추는 한줄기 스포트라이트. 주인공은 희곡이다. 이화동에서 희곡 전문 서점 인스크립트를 운영 중인 대표 박세인, 권주영 부부를 만나 희곡과 연극, 서점과 극장, 여행과 일상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희곡 전문 서점을 열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주영 가장 큰 이유는 저희 본업이랑 관계가 있을 것 같은데, 둘 다 연극을 업으로 삼고 있어요. 연극 업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어떻게 하면 연극이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항상 가지고 있었어요. 연극 이전에 희곡이라는 장르 또한 한국에서 마이너한 점이 아쉽고 안타깝기도 했고요.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널리 알리고 싶은 생각을 가지게 되어 공간을 구축하기까지 이른 것 같아요.

최근에 이전하셨는데, 연희동에서 대학로로 오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세인 사실은 반대 질문을 더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왜 대학로가 아니고 연희동에 자리를 잡았는지에 관한. 처음에는 서울 서쪽에서 시작해보고 싶기도 했고, 사는 곳도 그곳이라 연희동에서 시작했어요. 운영하다 보니 아무래도 더 많은 분들을 적극적으로 만나려면 대학로로 오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을 했습니다. 연희동 공간은 작아서 대여섯분만 들어와도 꽉 차곤 했는데요. 더 넓은 공간이 있으면 손님들이 책 보시기에도 좋고, 다양한 행사나 공연을 하기에도 좋겠다는 판단이 들어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인스크립트에서는 어떤 기준으로 책을 큐레이션하나요?
세인 희곡 서점이다 보니까 당연히 희곡 위주로 들이려고 하고 있어요. 신간 희곡이든 고전 희곡이든 골고루 가져와서 최대한 다양하게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영화 서적도 희곡만큼이나 많이 다루려고 해요. 그 외의 장르는 아무래도 책장에 한계가 있으니 더 신경 써서 큐레이션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시기에 따라 큐레이션 테마가 바뀌는데, 지금은 시리즈별로 문학과 지성사 채석장 시리즈를 전부 가져다 놨어요. 

영화 관련 서적이 많아 놀랐어요. 아무래도 영화와 연극이 맞닿아 있어서 그런 걸까요?
주영 희곡이라는 장르를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접근하고 있을까를 고민한 결과예요. 영화 시나리오도 희곡과 거의 똑같은 형식의 문학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장르는 조금 다르지만요. 기본적으로 글로 된 이야기를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결과물로 만들어낸다 라는 형식은 똑같기 때문에 연극 못지않게 영화에도 중점을 뒀습니다.
 
인스크립트를 찾는 분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이전하기 전 후로 변화가 생겼을까요?
주영 전후가 그렇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연희동에 있었을 때 오셨던 분들이 위치가 멀어져도 또 찾아와 주셔서 되게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인 연희동에서도 주민분들보다는 희곡이나 시나리오가 필요해서 멀리서 찾아오신 분들이 더 많았어요. 그래서 오히려 가까워진 분들이 많기도 해요. 대학로에서 공연 볼 겸 들르시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는 것 같고요. 

인스크립트 서점지기의 일상 루틴이 궁금해요. 
주영 서점 운영자들은 아마도 루틴이 비슷할 것 같긴 한데. 책을 주문하고, 배송된 책 리스트를 뽑아서 혹시 상한 책이 있는지 확인하고, 제자리에 맞게 꽂아놓죠. 달마다 어떤 책을 소개할지 고민하고 책 소개 글을 쓰기도 하고요. 보통의 서점지기와 조금 다른 점은 공연을 많이 보러 다닌다는 거예요. 서점 마감 시간이 오후 7시인데, 그 이유는 보통 오후 8시에 공연을 하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공연을 봐야 해서요. (웃음) 연극을 보러 다니면서 현재 어떤 희곡이 무대에 오르는지 확인하죠. 그게 조금 다른 루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창작자를 위한 무료 대관이나 연극 공연을 진행하시는데, 이를 위해 공간 구성과정에서 신경 쓰신 점이 있나요?
세인 일단 의자 개수를 확보해야 된다는 생각을 먼저 했어요. 서점 가운데 자리한 테이블을 원형으로 만들었는데, 공연 때는 해체할 수 있게 피자처럼 쪼개지게 만들었어요. 의자도 창가 좌석에 놓인 의자가 높은 객석 역할을 하게끔 해서 극장처럼 단차를 만들었습니다. 가변 무대 위의 가구처럼 유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죠.
주영 연희동에서부터 욕심이라면 욕심인데 공간을 최대한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게 신경을 많이 썼어요. 특징이라 하면 가운데를 최대한 비워놓는 것입니다. 이 공간을 활용해 무언가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창작자를 위한 무료 대관을 진행하시는 걸 보고 조금 놀랐어요. 무료로 대관해주는 것이 쉽지 않으셨을 텐데 하겠다고 결심하신 계기가 있을까요?
주영 희곡 서점을 운영하면서 가장 원했던 것 중에 하나가 창작자가 사용하는 공간이었으면 하는 것이었어요. 이들이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사용하면서 무언가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나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창작자에게 여전히 가장 힘든 건 돈 문제인 것 같아요. 무엇을 하고 싶어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저희가 조금이나마 공간과 시간을 내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희곡은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표정, 감정이나 마음상태가 지문으로 적혀 있잖아요. 연기하는 연극 배우의 입장에선 희곡이 어떻게 다가오나요?
세인 연극배우에게 희곡은 너무 익숙한 글인 것 같아요. 가장 많이 읽는 글 중에 하나이고요. 아무래도 업이다 보니까요. 희곡이 일반적인 독서를 위한 글로서는 많이 안 읽힌다는 것을 서점을 준비하면서 실감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이 공간을 통해 희곡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은 마음도 컸어요. 저에게는 되게 소중하고 재밌거든요. 그럼에도 물론 어려운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낭독서 모임도 하고 여럿이서 함께 읽는 시간을 마련하고 있어요.

기억에 남는 희곡 속 인물(캐릭터)이 있다면?
주영 이 질문은 사실 처음 받아봐서요. (웃음) 후안 마요르가(Juan Mayorga)의 <영원한 평화>라는 책인데, 얼마 전에 읽었고, 개인적으로 이 작가를 좋아하기도 해서 소개해볼게요. 이 작품에 임마누엘이라는 캐릭터가 나오거든요. 균형 잡힌 캐릭터이면서도, 동시에 우유부단하고 고민이 굉장히 많은 인물로 그려져요. 제 생각에 삶이라는 것도 고민과 선택의 순간에 계속 놓여 있거든요. 삶은 계속해서 고민해야 하고, 선택해내야 한다는 것을 임마누엘을 통해 드러낸 것 같습니다. 그런 이유로 최근에 가장 흥미롭게 다가왔던 캐릭터였던 것 같아요.
세인 저는 캐릭터를 뽑는 질문은 패스하겠습니다.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주영 좋아하는 캐릭터가 너무 많아서 그래요. (웃음)

 
가장 좋아하는 작가 혹은 개인적으로 아끼는 책이 있다면?
세인 최근에는 티아구 호드리게스(Tiago Rodrigues)의 작품을 좋아해요. 작가의 <소프루>라는 책도 좋지만, <바이하트>라는 작품이 정말 좋아요. 일반적인 서사라기보다는 연출가이자 작가이자 배우인 자신이 공연했던 방식을 적어둔 구성 대본이랄까요. 여러 가지 문학 작품을 가져와서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까지 함께 그려내는데, 정말 간결하면서 너무 좋더라고요. 책으로만 읽어도 눈 앞에서 공연이 그려지는 작품이에요.

한국 희곡과 번역서인 외국 희곡에도 차이가 있겠네요. 
세인 희곡이라는 장르는 대본과 문학의 중간점에 서 있잖아요. 읽는 책인 동시에 공연화를 위한 것이기도 해서 번역가도 많이 고민할 것 같아요. 특히 구어체를 그대로 사용할지, 또는 딱딱하더라도 작가의 의도를 더 반영해 표현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 하는 고뇌가 있겠죠. 아무래도 희곡은 대사가 대부분이니 번역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달라지기는 합니다.
주영 고전 같은 경우에는 번역가가 굉장히 많은 편이에요. 실제로 읽어보면 번역가 별로 조금씩 다르기도 하고요. 확실히 희곡은 해석의 영역이 더 큰 것 같기는 해요. 숨어 있는 것들이 많다보니까.
세인 그래서 희곡이 어렵게 다가오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희곡의 진입장벽 중 하나가, 처음부터 설명을 친절하게 깔아놓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런 맥락에서 시와 맞닿은 부분도 있죠. 
 
두 분 여행을 좋아하시는지, 좋아하는 여행지가 있는지. 
주영 저희는 중독자예요. (웃음) 여행 중독자. 그래서 서점을 열고 가장 괴로운 게 여행을 못 가고 있는 거예요. 원래 장기여행이나 한 달 여행을 되게 좋아했는데, 지금은 못하고 있어서 여행 가고 싶은 욕구가 가득합니다.
세인 아직도 못 가본 곳이 너무 많아서 더 많이 여행하고 싶죠.

그러면 최근에 가고 싶은 여행지 있으세요?
주영 둘이 가고 싶다고 자주 얘기하는 곳은 튀르키예예요. 저희 인연을 맺어준 친구가 있는데, 지금 튀르키예에서 살고 있거든요. 그 친구의 인스타 스토리가 올라올 때마다 튀르키예 시장 풍경과 음식, 자연이 너무 아름다워서 계속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일단 이스탄불에 가서 식도락 여행을 해보고 싶어요. 튀르키예는 아무래도 유럽과 아시아가 섞여 있는 곳이다 보니까 그곳만의 독특한 문화와 풍경이 굉장히 궁금하기도 하고요. 

중독자라고 하시니까 궁금해지네요. 다녔던 여행지 중에 특히 마음에 남아있거나 또 가고 싶은 곳이 있으실까요?
주영 너무 많은데.. 발리 우붓하고..
세인 저는 말레이시아의 티오만 섬.
주영 맞아요. 티오만 섬. 바다가 너무 예뻐요. 해변에 안전 요원도 없이 자연 그대로였거든요. 스노클링을 했는데 정말 말도 안 되게 예쁜 산호랑 물고기들이 가득했어요. 훼손되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고 왔습니다.

느긋한 여행지를 좋아하시나봐요?
세인 원래 도시 여행도 많이 다녔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 중에 하나가 방콕이거든요. 주로 여름 나라를 좋아하는 건 맞는 것 같아요. 그러다가 점점 자연 자연한 곳으로…
주영 나이 들수록 그렇게 되는 것 같긴 해요. (웃음) 저도 몰랐는데 점점 도시가 좀 어려워지더라고요. 
 
여행 짐을 쌀 때 매번 챙기는 책이나 물품이 있다면?
주영 책은 무조건 한 권씩 챙겨요. 꼭 책을 정말 사랑하고 좋아해서라기 보다는, 항상 꿈꾸는 게 여행 가서 책 읽는 거예요. 보통은 평소에 읽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 읽었거나 집에서는 절대 안 읽을 것 같은 두꺼운 책들을 많이 가져가는 편이에요. 
세인 저는 여행지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책을 가져가는 편이에요. 숲에 간다면 숲 관련 책을 가져가는 느낌으로. 책을 4D로 읽는 느낌이랄까요.

두 분의 여행 성향은 비슷한 편인가요?
세인 여행 스타일은 달라요. 주영이는 정보를 찾아보는 걸 좋아해서 계획을 다 짜는 편이고, 저는 계획은 잘 못 세우지만 여행에서 겪은 것들을 기록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여행 전 담당, 여행 후 담당으로 나눠서 여행하는 것 같아요.
주영 그래도 캐리어보다 배낭을 들고 다니는 걸 좋아하는 건 서로 같아요. 무계획으로 언제 어디든 떠날 수 있게 말이죠.

마지막으로, 인스크립트가 앞으로 어떤 공간이 되었으면 하나요?

주영 언제나 어렵게 느껴지는 질문이에요. 부정적인 의미로 어렵다는 게 아니라, 저희가 매번 고민하고 있기 때문에 어려운 지점인 것 같아요. 아직 구체적인 단계는 아니지만, 오프라인 공간 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희곡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를 천천히 고민 중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대학로로 온 만큼 연극과 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들이 쉽게 들르고, 편하고 재미있는 시간들을 보내는 공간이어야 되지 않을까. 그게 우리가 가장 원하는 인스크립트의 모습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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