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시리즈는 그 눈 속에서 만난 풍경을 담은 작업이다. 펑펑 내리는 눈 속에서 사람이 만든 장소, 원래 목적이 있던 사물은 제 기능을 못하고 꼼짝없이 갇혀버린다. 대신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던 풀 한 포기, 쓰러진 나무 군락, 파헤쳐 놓은 땅, 채굴되어 사라질 섬, 굴러다니던 돌덩이가 자신의 모습을 아름답게 드러낸다.
사진은 고요한 느낌 때문에 눈이 그친 직후의 순간처럼 보이지만, 모든 장면은 일부러 폭설이 내리는 시간 동안 장노출로 촬영했다. 세세한 디테일보다는 하얀 눈의 특성을 최대한 사진 속에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촬영 도중 폭설로 오도 가도 못하는 위험한 상황도 발생했지만, 그때마다 두려움보다 하얀 구름 속을 헤엄치듯, 고요하고 경이로운 느낌에 오히려 마음이 평온해지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