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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My Little Forest

The Nature, White in the White 눈 속의 순수

흰색은 백지처럼 무(無)의 상태를 연상시키고, 빛이 모두 섞일 때 생기는 색, 즉 유(有)의 상태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다 지니고 있기에 더 가질 것도 없는, 혹은 형태상 아무것도 없기에 더 풍부해지는 의미의 풍경. 사진가 김주원은 WHITE를 통해 자연의 숭고함과 아름다움, 작고 이름 없는 존재와 장소에 대한 가치를 생각한다.

글 · 사진 김주원
joowon.myportfolio.com

WHITE 시리즈, 강원도 대관령, 2012 ⓒ 김주원
WHITE 시리즈, 강원도 대관령, 2012 ⓒ 김주원
WHITE 시리즈, 충남 태안, 2011 ⓒ 김주원
WHITE 시리즈, 충남 태안, 2010 ⓒ 김주원
몇 해 전 겨울, 폭설이 내린 강원도 에서 갇혀버린 적이 있다. 주위는 하얀 눈으로 둘러싸여 사람이 없는 풍경 속에 눈 내리는 작은 소리만 가득했다. 그리고 바람 소리와 나무가 춤추는 소리도. 이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풍경 속에서 자연의 대상, 오랜 풍경이 마치 살아 숨 쉬는 듯했다.

〈WHITE〉 시리즈는 그 눈 속에서 만난 풍경을 담은 작업이다. 펑펑 내리는 눈 속에서 사람이 만든 장소, 원래 목적이 있던 사물은 제 기능을 못하고 꼼짝없이 갇혀버린다. 대신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던 풀 한 포기, 쓰러진 나무 군락, 파헤쳐 놓은 땅, 채굴되어 사라질 섬, 굴러다니던 돌덩이가 자신의 모습을 아름답게 드러낸다.

사진은 고요한 느낌 때문에 눈이 그친 직후의 순간처럼 보이지만, 모든 장면은 일부러 폭설이 내리는 시간 동안 장노출로 촬영했다. 세세한 디테일보다는 하얀 눈의 특성을 최대한 사진 속에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촬영 도중 폭설로 오도 가도 못하는 위험한 상황도 발생했지만, 그때마다 두려움보다 하얀 구름 속을 헤엄치듯, 고요하고 경이로운 느낌에 오히려 마음이 평온해지곤 했다.
WHITE 시리즈, 강원도 대관령, 2010 ⓒ 김주원
눈이 세상을 채우면 주변의 사물이나 풍경이 눈 속에 가려지며, 작은 존재의 모습이 드러난다. 눈으로 채워지면서 동시에 눈으로 비워지는 모습이 〈WHITE〉를 통해 추구하고 싶은 세계다. 세상이 복잡하고 화려한 것을 추구할지라도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고 싶은 내 마음 때문에 흰색을 더 사랑하는 게 아닌가 싶다.

〈WHITE〉 작업을 2009년부터 시작했으니 햇수로 벌써 10년째다. 겨울이 되면 나는 5분 대기 상태에 돌입한다. 항상 뉴스의 날씨 정보에 귀 기울이고 눈이 내린다는 소식이 들리면 강원도, 서해안의 위험한 길을 뚫고 차를 몰아 떠난다. 10센티미터 미만의 적설로는 완전히 깨끗한 하얀 풍경을 담을 수 없다. 보통 20센티미터 이상 폭설이 내렸다는 뉴스가 들리면 그곳으로 달려간다. 눈이 너무 많이 내리면 제설이 제때 되지 않아 위험한 구간도 많고 촬영해야 할 풍경을 찾기 어려울 때도 있다. 물론 실패한 경우도 많다.

폭설 예보를 듣고 찾아간 곳에 이미 눈이 그쳤거나 원하던 풍경이 아닌 경우도 부지 기수고 도로가 통제되어 진입하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그 때문에 작업을 위해서 눈이 내리기 전에 미리 방문하여 눈 내린 풍경을 예상해야 한다. 겨울 이외의 계절에 방문하는 장소에서 눈 덮인 풍경을 상상해보거나, 눈이 내렸으면 하는 풍경을 미리 스크랩해두는 것도 즐거운 기다림과 준비의 과정이다.
WHITE 시리즈, 전북 부안, 2016 ⓒ 김주원
10년 전과 지금의 겨울 풍경은 많이 다르다. 예전보다 따뜻한 날이 여러 날 지속되고 적설량도 점점 줄어든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지구 온난화에 따른 환경 변화가 큰 이유 중 하나다. 몇 년 전 이 작업을 시작할 때, 언젠가는 더이상 한국의 눈 내린 풍경을 볼 수 없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것이 점점 현실이 되는 느낌이다.

겨울 내내 눈이 내리지는 않기에 긴 시간과 호흡으로 작업해야 한다. 향후 작업이 쌓이면 사진집으로 묶어 펴낼 계획이다. 그때쯤이면 작품을 보는 나의 관 점이나 생각은 얼마나 변해 있을지 궁금하다. 이렇게 긴 시간을 두고 하는 작업은 나와의 싸움 같다. 내 속에선 ‘춥고 위험한 그곳에 또 왜 가느냐고, 이만하면 되지 않았냐’라는 목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처음의 그 설렘을 다시 기억하라는 더 큰 목소리가 항상 나를 눈 속 풍경으로 이끈다.
WHITE 시리즈, 경기도 용인, 2020 ⓒ 김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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