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pground Music
캠핑 가서 듣는 음악

시시각각 다르고, 사시사철 다른 캠핑의 분위기는 흘러나오는 음악에 한껏 귀 기울이게 만든다. 주말마다 플레이리스트를 검색하는 캠퍼를 위해 23년차 드라마 음악감독이 캠핑 가서 듣기 좋은 음악을 주르륵 늘어놓았다.

김수한

“무밥은 눈이 펄펄 내리는 날 먹어야 맛이 나니라.”
어릴 때 듣곤 하던 마법 같은 아버지의 말씀이다. 함박눈이 온 세상에 내리는 날 먹는 무밥이라. 나는 가을무로 지은 한겨울 무밥을 꽤나 좋아하는 편이지만 아직까지 아버지가 말씀하신 이 무밥의 맛은 보지 못했다. 사실 더 궁금한 것은 그 궁극의 맛보다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상 속 정경이다. 따뜻한 방 아랫목,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상 앞에 앉아 여닫이문을 활짝 열어 둔 채 하얀 눈이 펄펄 내리는 바깥 풍경을 보며 천천히 먹는 밥 한 끼. 이게 내가 생각하는 미식의 최고 경지다.

올겨울, 15년 만에 겨울 캠핑을 다시 시작했다. 예전의 겨울 캠핑은 흡사 군대의 혹한기 훈련과도 같아 갈 때마다 진저리를 치곤 했지만 이젠 장비도 좋아지고 캠핑장 여건도 훌륭해졌다. 삼사 일 정도야 지지리 궁상 떨지 않고 갖은 폼을 잡으며 즐겁게 지내다 올 수 있다. 게다가 겨울은 사람 많은 봄·여름·가을보다 훨씬 고적해서 캠핑하기 가장 좋은 시기가 혹시 겨울이 아닐까 하는 살짝 정신 나간 생각까지 하게 된다.

무밥 이야기에서 캠핑 이야기로 이어지니, 혹시 무밥 해먹으러 캠핑 가는 거 아닌지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물론 무밥을 해먹긴 하지만 그런 거 말고도 캠핑의 매력은 아주 많다. 여기에 일일이 늘어놓을 수 없을 만큼. 입만 아프니 한 가지만 얘기하고 싶다. 음악이다.

캠핑장에서의 음악은 확실히 뭔가 다르다. 집, 작업실, 뮤직 바 등의 장소에서 듣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자연에서는 잘 갖춰진 고급 오디오 시스템이나 감상을 위해 면밀히 설계된 공간 따위는 소용없다. 때로는 스마트 폰이나 싸구려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더 큰 감흥을 주기도 한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바람 부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새 우는 소리, 장작 타는 소리, 비 내리는 소리, 낙엽 떨어지는 소리…. 이런 소리들이 섞여서일까. 그럴 때 음악은 한층 더 풍부하면서도 오히려 여백 있게 느껴진다. 경험상 아침 저녁을 가리지 않고 그러하다.

이제 캠핑장에서 들을 음악 몇 곡을 추천하려 한다. 캠핑장의 매너를 염두에 두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조용한 곡들이 대부분이다. 각 추천곡에는 짧은 설명을 덧붙인다.

Hollywood

더 얼터네이트 루츠 The Alternate Routes

기타 인트로가 시작되고 보컬이 들리는 순간 곧바로 걸려 들게 된다. 한 번 들으면 절대 잊히지 않을 곡이다. 여러 번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장담한다. 더 얼터네 이트 루츠는 컨트리, 포크, 록을 넘나드는 밴드인데 어떤 곡이건 설익은 느낌이 거의 없다. ‘Desdemona’ ‘Nothing More, All My Love’ 등의 곡도 들어 보기를 권한다

Master & Hound

그레고리 앨런 이사코브 Gregory Alan Isakov

그레고리 앨런 이사코브의 곡은 하나만 콕 집을 수 없을 만큼 모든 곡이 다 좋다. ‘San Francisco’를 비롯, 추천하고 싶은 곡이 너무 많다. 아예 앨범 정주행을 권한다.

A Case of You

이포 오도노번 Aoife O’Donovan

이 곡은 밴드 펀치 브라더스(Punch Brothers)의 만돌리니스트 크리스 타일(Chris Thile)의 콘서트 무대에서 이포 오도노번이 게스트로 참여해서 부른 곡이다. 조니 미첼 (Joni Mitchell)의 원곡도 당연히 좋다.

Moon River

프랭크 오션 Frank Ocean

전 세계에 모르는 이가 별로 없는 ‘Moon River’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확인해보시라. 프랭크 오션의 음색에는 정말이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역시 잘 알려진 노래 ‘Hotel California’를 감쪽같이 가사만 바꿔 부른 ‘American Wedding’도 강력 추천한다. 첫 소절부터 단박에 이글스(Eagles)를 잊게 만든다. 듣는 김에 같은 앨범에 있는 ‘Strawberry Swing’도 그냥 지나치지 말기를. 사족으로,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의 ‘Moon River’도 물론 아주 좋다.

Sky Blue Sky

윌코 Wilco

전날 마신 술이 덜 깨서 정신이 나른하거나 해먹에 늘어져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을 때, 이 곡이 당신을 아예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릴 것이다. 윌코의 다른 곡들에 비해 이 곡은 상당히 말랑말랑하다. 마음을 따뜻하게, 기분 좋게 만들어 준다.

Take It with Me

톰 웨이츠 Tom Waits

세상 다 산 남자의 헛헛함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일까. 소주 안주가 필요치 않다. 듣는 김에 다른 가수가 부른 버전도 찾아보시길. 솔베이 슬레타옐(Solveig Slettahjell)이 부른 것도 좋고 레이첼 프라이스(Rachael Price)가 부른 것도 좋다.

The Sound of Silence

폴 사이먼 Paul Simon

오리지널 버전 말고 2012년 런던 하이드 파크(Hyde Park) 공연에서 부른 버전을 추천한다. 나는 눈물을 찔끔 흘렸다. 노래의 깊이감이 이전과 다르다. 가펑클(Garfunkel)과 오랜만에 다시 만나 2009년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Madison Square Garden) 공연에서 함께 부른 ‘The Sound Of Silence’도 좋다. 나이가 들어도 음성은 가장 늦게 변한다더니 과연 그러하다.

The Book of Love

피터 가브리엘 Peter Gabriel

마그네틱 필즈(Magnetic Fields)의 원곡이 가볍고 담백한 것에 비해 이 버전은 뭔가 더 굵고 묵직하다. 무거워서 축축 늘어지는 음악은 아주 질색인데 이 곡은 좀 다르다.

Un Vestido y un Amor

카에타노 벨로주 Caetano Veloso

우아하고 감미롭다. 야외 음악당의 로열석 부럽지 않을 것이다. 이 곡에 이어서 영화 〈그녀에게(Talk To Her)〉의 정원 신을 떠올리며 카에타노 벨로주의 잘 알려진 곡 ‘Cucurucucu Paloma’를 듣는 것도 좋겠다. 내친 걸음에 1963년 뉴욕 카네기 홀(Carnegie Hall)에서 해리 벨라폰테(Harry Belafonte)가 부른 Cucurucucu Paloma’도 듣자. 흥겨운 곡이다.

쓰다 보니 한도 끝도 없다. 이 정도로 추천곡을 마무리하려 한다. 지면이 부족하여 가요를 소개하지 못했다. 너무 아쉽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다시 한 번 주르륵 펼쳐 보이겠다.
이제 시래기로 자작하게 된장찌개를 끓이고 푸성귀 김치와 토하젓을 곁들여 또 무밥을 해먹을 생각이다. 눈이 오려나? 셸터 문을 활짝 열고 눈으로는 온 세상이 하얗게 되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입으로는 뜨거운 무밥을 훌훌 불어가며 아주 천천히 점심을 먹고 싶다. 양개형 전통 여닫이 문이면 더욱 폼 날 텐데…. 그런 텐트는 세상 어디에도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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