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밥은 눈이 펄펄 내리는 날 먹어야 맛이 나니라.”
어릴 때 듣곤 하던 마법 같은 아버지의 말씀이다. 함박눈이 온 세상에 내리는 날 먹는 무밥이라. 나는 가을무로 지은 한겨울 무밥을 꽤나 좋아하는 편이지만 아직까지 아버지가 말씀하신 이 무밥의 맛은 보지 못했다. 사실 더 궁금한 것은 그 궁극의 맛보다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상 속 정경이다. 따뜻한 방 아랫목,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상 앞에 앉아 여닫이문을 활짝 열어 둔 채 하얀 눈이 펄펄 내리는 바깥 풍경을 보며 천천히 먹는 밥 한 끼. 이게 내가 생각하는 미식의 최고 경지다.
올겨울, 15년 만에 겨울 캠핑을 다시 시작했다. 예전의 겨울 캠핑은 흡사 군대의 혹한기 훈련과도 같아 갈 때마다 진저리를 치곤 했지만 이젠 장비도 좋아지고 캠핑장 여건도 훌륭해졌다. 삼사 일 정도야 지지리 궁상 떨지 않고 갖은 폼을 잡으며 즐겁게 지내다 올 수 있다. 게다가 겨울은 사람 많은 봄·여름·가을보다 훨씬 고적해서 캠핑하기 가장 좋은 시기가 혹시 겨울이 아닐까 하는 살짝 정신 나간 생각까지 하게 된다.
무밥 이야기에서 캠핑 이야기로 이어지니, 혹시 무밥 해먹으러 캠핑 가는 거 아닌지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물론 무밥을 해먹긴 하지만 그런 거 말고도 캠핑의 매력은 아주 많다. 여기에 일일이 늘어놓을 수 없을 만큼. 입만 아프니 한 가지만 얘기하고 싶다. 음악이다.
캠핑장에서의 음악은 확실히 뭔가 다르다. 집, 작업실, 뮤직 바 등의 장소에서 듣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자연에서는 잘 갖춰진 고급 오디오 시스템이나 감상을 위해 면밀히 설계된 공간 따위는 소용없다. 때로는 스마트 폰이나 싸구려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더 큰 감흥을 주기도 한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바람 부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새 우는 소리, 장작 타는 소리, 비 내리는 소리, 낙엽 떨어지는 소리…. 이런 소리들이 섞여서일까. 그럴 때 음악은 한층 더 풍부하면서도 오히려 여백 있게 느껴진다. 경험상 아침 저녁을 가리지 않고 그러하다.
이제 캠핑장에서 들을 음악 몇 곡을 추천하려 한다. 캠핑장의 매너를 염두에 두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조용한 곡들이 대부분이다. 각 추천곡에는 짧은 설명을 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