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탈리아와 프랑스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문화에 대한 호감인지, 맛에 대한 호감인지 궁금합니다.
J 저는 별 생각이 없었어요. (웃음) IMF 이후 아버지가 벨기에로 발령이 나서 온 가족이 따라가게 됐죠. 그곳 대학에서 현대 문학을 전공했는데, 중간에 그만뒀어요. 회사 생활을 하면서 용돈 벌이로 잡지사 통신원, 통역, 한국기업 주재원 등을 전전하다가 갑자기 파리로 요리 유학을 간 거예요. 벨기에에서 제가 살던 곳이 프랑스어권이었고, 영어나 스페인어를 새로 배우긴 어려우니 프랑스로 가자, 기왕 가는 거 수도인 파리로 가자. 그렇게 1년을 재미있게 놀다 왔어요. 벨기에에 8년 살았고, 파리에 1년 살았어요.
C 그런데 프랑스 사람은 벨기에 사람을 아주 우습게 보지 않아? 촌놈의 상징으로 여기잖아요. 벨기에 사람도 프랑스를 싫어하긴 마찬가지고. “잘난 것도 없으면서 잘난 척이야” 하면서.
요리 쪽은 어떤가요?
J 벨기에 사람도 프랑스랑 똑같이 ‘우리 음식은 맛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그러면서 프랑스 요리를 괜히 음식에 쓸데없는 짓하고 비싸게 팔고, 정작 본질이 뭔지 모른다고 비판하죠. 이탈리아 사람이 프랑스인을 무시할 때 하는 말이랑 비슷해요. 반면 프랑스 사람은 기본적으로 벨기에 음식이 촌스럽다고 생각하죠.
벨기에에서 파리로 요리를 배우러 갔을 때는 순수하게 요리가 좋아서 가신 거예요?
J 아뇨. 직장에 다니면서 돈을 벌고 생활인으로 살수록 다시 학교로 돌아갈 확률이 줄어드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회사 일이 전문적인 것도 아니고 미래도 불확실하고요. 뭔가 먹고 살 게 필요할 것 같은데, 벨기에 직업 전문 학교에서 요리 수업을 1년 동안 청강한 적이 있어요. 기왕 발 담근 거, 미식의 중심은 파리라고 하니 한 번 가보자, 그런 마음이었던 거죠.
C 저는 좀 달라요. 처음부터 요리를 업으로 삼겠다고 결심한 것도 아니고, 취미로 배운 것도 아니었어요. 먹고 살려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요리사라는 게 있더라고요. 당시 요리사는 사회적으로 거의 바닥에 해당하는 직종이었죠. 발전 가능성이 없으니까. 그런데 딱 한 가지 생각한 건 있었어요. ‘먹는 장사를 하면 굶어 죽지는 않겠다.’ 흔히 ‘요리 기술이 있으면 굶어 죽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그게 참 코믹한 건데, 빵 공장에 다닌다고 안 굶겠어요? 해고 당하면 똑같죠. 그런 관습적인 생각에 스스로 속은 셈이에요. 먹고 살 게 중요했으면 차라리 타일공이나 설비공이 훨씬 유리했을 지도 몰라요. 물론 일은 힘들죠. 그런데 요리사는 안 힘든가? 요리를 먹고 살 방편으로 하겠다는 생각이라면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열심히 노력해서 15년차쯤 되면 그만한 보상을 받아야 할 텐데, 요리사는 그런 경우가 아주 드물어요.
J 아, 그러고 보니까 저도 파리 유학 고민할 때 선택지가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인테리어 학교였고 또 하나가 요리 학교였는데, 인테리어는 최단기 코스가 2년, 요리는 1년인 거예요. 그래서 요리를 선택한 것도 있었죠. (웃음)
C 요리사가 되기 전부터 <일포스티노> <시네마 천국> <자전거 도둑> 같은 영화를 보면서 이탈리아를 좋아했어요. 여행으로 가보니 음식도 정말 맛있어요. 양식에 대한 고정 관념을 다 무너뜨리더라고요. 가격도 저렴하고, 탄수화물 위주에, 여러 식자재를 사용해서 만들고, 간결한데 맛있어. 내가 술을 좋아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술과 함께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음식인 거예요. 다른 얘기지만, 그때 먹었던 이탈리아 가정식, 우리나라로 치면 비빔밥 같은 거겠죠? 나중에 그 맛을 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그 맛이 안 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