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ure Friendly Life
김민지의 자연 친화적 활동 방식

트레일 러너, 클라이머, 라크로스 국가대표, 유튜버, 스타트업 창업가, 투자 애널리스트…. 한때 실험실을 지키던 그녀는 이제 스스로를 자연 친화적 활동의 실험체로 삼는 듯하다. 다양한 궤적의 활동을 능란하게 소화하며 탄소 배출 제로를 고민하고, 매일 수 킬로미터를 달리며 산에 오르는 플레이어, 김민지를 만났다.

허태우
사진 박재홍
인터뷰이 김민지

파타고니아의 브랜드 애슬릿(athlete)으로 활동하고 있죠?
한국에서 저를 포함한 트레일 러너 4명, 클라이머 3명, 서퍼 4명이 활동해요. 보통 액티비티 브랜드의 경우 앰버서더나 애슬릿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정말 다 선수예요. 대회에 출전하면 늘 상위권에 입상하는 분들이죠. 그런데 저를 왜 뽑았을까요? (하하) 파타고니아는 모험과 어드벤처를 좋아하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태도를 중요시 여기는 것 같아요. 글로벌 앰버서더를 보면 인스타그램 계정도 없고, 자기가 파타고니아 입는다고 광고도 안 해요. 브랜드 애슬릿으로 활동한다고 제가 더 유명해지는 것은 아니죠. 팔로워가 막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요. 원래 그냥 딱 살던 대로 생활하는 저를 뽑은 게 아닐까. 아웃도어 의류를 계속 제공받아도 좋아하는 옷만 계속 입어요. 옷도 항상 고쳐서 입죠. 오늘 입고 온 바지는 다섯 번인가 수선했어요. 여기 찢어지고 저기 찢어지고.
 
운동에는 언제부터 관심이 있었나요?
초등학교 때부터 잘했어요. 뜀틀로 1등도 하고 그랬는데, 본격적으로 한 종목은 라크로스가 처음이에요.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체육 종목을 한 가지 고르라고 했어요. 검도, 수영, 축구, 스포츠 댄스 등…. 선생님이 라크로스를 소개해주는데 너무 멋있는 거예요. 나중에 유학을 가게 되면 도움도 된다고 하고. 그래서 시작했고, 그 후에 국가대표팀이 생겨서 주장까지 맡게 됐죠.
 
학창시절의 꿈은 뭐였나요?
과학자요. (유학을 준비하면서) 생물학이랑 라크로스를 함께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존스홉킨스 대학교(The Johns Hopkins University)에 입학했어요. 그런데 대학교에서는 펜싱팀에 들어갔어요. 학교 라크로스팀이 너무 잘해서 저는 명함도 못 내밀겠더라고요. (하하) 그때 정말 체계적으로 운동했죠. 하루에 2~3시간씩 펜싱하고 달리기하고, 버스를 타고 10시간씩 이동해서 시합하고 그랬죠. 러닝도 원래 (기록에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뛰기만 하다가, ‘5킬로미터를 몇 분내에 들어와야 한다’라는 개념을 그때 알게 된 거예요. 처음에는 30분을 넘겼는데, 그 다음 30분 안으로 들어오고, 25분 안으로 들어오고…. 몇 년 동안 꾸준히 뛰면서 실력도 점점 좋아졌죠. 그러면서 달리기에 재미를 많이 붙였고, 산을 좋아했기 때문에 러닝도 그냥 로드 러닝보다는 트레일 러닝을 많이 하고, 등산도 자주 하고, 하와이에 여행 가서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백패킹을 해보고, 미국 서부에서 밴을 빌려서 여행하고….
 
김민지
ⓒ박재홍
삶의 목표가 바뀌었네요?
어떤 일을 할 때 내 앞에 결과물이 나와야 적성에 맞아요. 과학자가 되고 싶어서 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하면서 실험실에서 세포를 배양하는 일을 주로 했어요. 자다가 깨서 세포 확인하고, 졸다가 깨서 세포 확인하고. 그러다가 어느 날 이유도 모르게 세포가 죽어요. 내가 어느 정도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으면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생물학은 제가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적죠. 등반만 해도 열심히 하는 만큼 결과가 딱 눈에 보이잖아요. 과학자를 계속하기에는 그런 게 조금 힘들었던 것 같아요.
 
요즘에는 운동을 얼마나 해요?
클라이밍은 5.12 그레이드를 목표로 연습해요. 화.·.목요일에는 암장에서 지구력 운동을 하고, 외벽에 나가거나 볼더링을 하고요. 일주일에 세 번은 아침에 달려요. 5킬로미터에서 10킬로미터 정도.
 
부상 위험이 있잖아요?
마라톤 할 때 제일 많이 다쳤죠. 장거리를 오래 뛰니까. 그때 무릎과 허리를 좀 다쳤어요. 트레일 러닝을 하면서는 다친 적이 없는 듯해요. 실수해서 발목을 삐는 정도.

좌절했던 적도 있어요?
저는 기록에 목숨을 거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괜찮아요. 만약에 제가 정말 빠른 사람이고 너무 잘 뛰는 선수라면, 순위권에 못 들 때마다 좌절했겠죠.
 
한 달간의 밴 라이프 여행은 왜 도전했나요?
2015년도에 한국 여성 3명, 미국 여성 3명과 함께 울릉도에서 촬영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저도 트레일 러너로 참가했는데, 거기에서 만난 6명 중 4명이나 밴에서 생활한다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듣고 나니 너무 재미있겠더라고요. 도대체 밴에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잖아요. 나도 언젠간 해보겠다고 마음먹었는데, 2016년에 회사를 이직하면서 한 달 정도의 시간이 비었어요. 이때다 싶어서 떠났죠. 미국 서부의 국립공원을 찾아다녔어요.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해서, 요세미티(Yosemite), 글래시어(Glacier), 그랜드 티턴(Grand Teton), 자이언(Zion)…. 지금 다시 떠난다면 여행 코스를 좀 더 짧게 잡을 것 같아요. 하루 종일 운전만 했던 날도 몇 번 있었거든요.
 
여행비는 얼마 정도 들었나요?
차량 빌리는 게 가장 비싸고요. 하루에 거의 10만 원꼴이었으니까요. 한 달로 치면 밴 대여비만 300만 원 정도. 기름값도 많이 나왔고. 가스레인지와 냉장고는 밴에 있으니까 밥은 최대한 직접 해서 먹고, 가끔씩 너무 힘든 날에는 사 먹었죠.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차에 쥐가 들어왔어요. 두 번이나! 차에 쥐가 들어올 수 있다는 생각을 아예 못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캠핑장에서 제가 문을 조금 열어놓은 사이에 쥐가 침입한 거예요. 침낭을 덮고 자고 있는데, 뭔가 쓱 지나가요. 잠결에 그냥 ‘뭐야’ 이러면서 계속 잤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견과류를 먹으려는데, 다 파헤쳐져 있는 거예요. ‘아 쥐가 들어왔구나!’ 그날 밴을 다 뒤집고,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서 모텔에서 잘 수밖에 없었죠. 그 후로 먹거리는 무조건 다 보관함에 넣어서 보관했어요. 견과류 같은 건 절대 밖에다 꺼내 놓으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박재홍
그때 가장 좋았던 장소를 듣고 싶어요.
기억에 가장 남는 곳은 요세미티. 엘캡(El-Cap)이랑 하프돔(Half Dome)이 딱 바라보이는 그 장면이 너무 멋있어요. 자이언도 매우 멋있고. 음, 옐로스톤은 기대만큼은 아니었어요. 바이슨이 무척 많았는데, 그냥 동물 보러 간 느낌이었고. 실망한 곳은 브라이스 캐년(Bryce Canyon)이요. 다른 국립공원에 비해 풍경은 신비로운데, 다소 아기자기하다고 해야 하나? 거기에서는 트레킹만 했던 것 같아요.
 
혼자 떠나는 여행을 좋아하나요?
그냥 혼자서 다니는 게 좋았어요. 여행도 혼자 잘 다녔고. 혼밥도 안 하는데 무슨 혼자서 여행을 다니냐, 이런 친구들도 있죠.
 
외롭지는 않아요?
물론 힘들기도 해요. 제가 했던 최장거리 백패킹이 9일 동안 원더랜드 트레일(Wonderland Trail) 스루 하이킹(thru hiking)이었어요. 6일 째쯤 되니까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이런 생각이 들면서 정말 힘들었어요. 하루 하루 버티면서 겨우 완주했죠. 등반에 빠져들기 전에는 나름의 목표가 PTC(Pacific Crest Trail) 완주였는데, 지금은 별로 관심 없어요. (하하)
 
어떻게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내가 하는 활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니까 더 신경 쓰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야외활동을 하다 보면 날씨를 더 살피게 되잖아요. 작년 여름에는 계속 비가 내려서 등반도 못 갔죠. 스키도 매우 좋아하는데 눈도 점점 덜 내리고요. 사실 저는 천식 때문에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달리기도 할 수 없어요. 어떤 사람들은 기후 변화가 지구온난화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기온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그들이 하고 싶은 얘기일 뿐이죠.
 
ⓒ박재홍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요?

사람들의 인식이죠. 예를 들어 어떤 회사의 대표가 ‘우리는 탄소 배출 제로를 할거야!’라고 해도 직원 입장에서는 당장 매출을 올리고 월급을 받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할 수 있죠. 구성원의 인식, 시민의 인식이 바뀌는 게 어려워요.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그건 자본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고, 인식은 돈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봅니다. 사람들이 실천하지 않더라도 ‘고기 먹지 않는 날’을 정해서 하루는 육류를 먹지 않는 활동도 있다는 걸 의식하는 것 자체가 중요해요. 사람들에게 ‘저는 이런 이런 일을 합니다’라고 말하면 보통 긍정적인 반응을 받아요. 탄소 배출을 어떻게 줄이는지 알려줘야 할 때에는, 절수기를 설치하거나 전력 사용을 줄이는 식으로 심플한 내용을 말해주는 게 좋죠. 저는 자가용이 없어요. 필요할 때만 빌려서 타고, 가능하면 걷거나 따릉이를 타고 다녀요. 사람들에게 권하면 기겁하는데….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만이라도 몸에 습관화가 돼 있으면 좋겠어요.
 
아웃도어 활동에서 환경 보호를 어떻게 실천하나요?
가능하면 비화식으로 해결하는 편이에요. 친구들과 캠핑을 가더라도 그날 먹을 식사는 도시락으로 싸 가서 먹어요. 무언가 조리를 해서 먹으려면 불도 있어야 하고 쓰레기도 생길 수밖에 없죠. 육류도 최소한으로 먹으려고 해요. 환경을 생각한다면서 고기를 많이 먹는 것도 아이러니해요. 우리가 이동하면서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고 그 다음으로 식자재 때문에 발생하니까요. 사실 저는 옷 등의 제품을 잘 사지 않는 편이에요. 뭐 하나 살 때도 한참 고민하고, 그러다가 잊으면 그냥 지내고…. 트레일 러닝 신발이 잘 찢어지는 편인데요, 새 신발을 구입하려면, 먼저 신던 신발을 무조건 버려야 한다는 철칙을 지켜요.
 
지금은 환경 관련 일을 한다고 들었는데요.
작년 초에는 북유럽에 있었어요. 바로 그전에는 소프트뱅크벤처스에서 투자 업무를 했는데, 어차피 투자 업무를 할 거라면 저와 맞는 쪽으로 해보자고 생각했죠. 찾아보니 지속 가능성이나 기후 변화 대응과 관련해서 북유럽, 그중 스웨덴에서 가장 투자가 활성화됐더라고요. 그래서 스톡홀름에 있는 몇몇 회사에 인터뷰를 하기 위해 갔는데, 코로나 19 때문에 인터뷰가 다 취소되고 한국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어요. 귀국해서 다시 일을 하기 위해 알아본 회사가 ‘이노마드’에요. 파타고니아 매장에서 판매하는 휴대용 수력 발전기를 만드는 회사였죠. 무작정 그 회사 대표님에게 연락해서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더니, 운 좋게도 마침 6개월 단기 프로젝트가 있으니 한번 같이 해보자고 하더군요. 하동 구제봉 휴양림에 탄소 배출 제로 캠핑을 구현하는 프로젝트였어요. 캠핑을 할 때 언제 어떻게 탄소가 배출되는지 대략 알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곳까지 가는 교통, 사용하는 전기, 음식물 쓰레기 이 정도인데, 이걸 다 수치화해서 계산한 거예요. ‘하룻밤 잘 때마다, 나무를 두 그루 심으면 탄소 배출을 제로로 만들 수 있다’. 아쉽게도 프로젝트를 마무리 짓지는 못했어요.
 
ⓒ박재홍
벤처 캐피탈 심사역이 된다면 투자하고 싶은 서비스는?
최근에 괜찮다고 생각했던 서비스로는, 카드 내역과 연동되는 앱이에요. 예를 들어서 내가 만약 A브랜드의 숍에서 30달러어치를 구매해요. 그러면 그 상품을 구매했기 때문에 얼마만큼의 탄소를 배출했는지 계산해서 알려주는 거죠. 또 다른 서비스로는 구매 영수증을 사진 찍으면 탄소 배출량을 비교해서 보여주는 게 있어요. 아보카도가 닭고기보다 탄소 배출이 높다고 알려주는 식이죠. 실제로 내가 소비한 것과 연관해서 알려주면 문제점이 더 와 닿으니까요. 또 한편으로는 빌게이츠 펀드처럼 탄소 배출을 줄이는 신기술에 수백 수천 억을 투자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매거진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여행이 있다면?
첫 직장에 들어가기 한 달 전에 하와이를 여행했어요. 특히 하와이에서도 카우아이섬(Kaua‘i)이 무척 평화로웠죠. 홀로 하와이의 칼랄라우 트레일(Kalalau Trail)에서 백패킹을 하고, 친구들도 사귀었어요. 섬 계곡의 위로 올라가면 아직도 자급자족으로 생활하는 히피 커뮤니티가 있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죠. 밖에서는 모두 아둥바둥 살고 있는데, 하와이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다니…. 많은 걸 소유하면서 살 필요는 없구나, 싶었어요. 단순한 삶 속에서도 사람들은 행복해 보였거든요. 물론 저는 그렇게 평생을 살 수 없지만, 일상에 돌아오고 난 후에도 그런 기억이 생활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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