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관광객은 다(Dah) 마을과 하누(Hanu) 마을까지 가지 않는다. 레(Leh)에서 다 마을과 하누 마을로 버스가 운행하긴 하지만 워낙 오지였고, 두 마을 간에는 어떠한 교통 수단도 운행되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일행은 페스티벌 이름에 적힌 순서대로 다 마을을 먼저 방문했고 히치하이킹으로 하누 마을까지 이동했다. 이 오지 마을들을 방문하려면 별도의 허가서가 필요하다. 레에서 서쪽으로 160킬로미터가량 떨어진 다 하누 일대는 지도상으로는 분명 인도에 포함되지만, 수십 년째 이어지는 인도와 파키스탄 간 국경 분쟁 때문에 ‘분쟁 지역’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민간인이 들어갈 수 있는 마지막 마을 중 하나가 바로 다 하누인 셈이다.
ⓒ 장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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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인도 라다크(Ladakh)에 머무르던 때다. 3,800미터 고산지대에 자리한 고대왕국의 주민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때쯤, 라다크는 각종 축제로 들썩였다. 라다크 페스티벌에서 선보이는 수도승의 가면극, 폴로 경기, 길거리 사진전 등, 이 시기에 그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었다. 화려한 축제 분위기 속 마을 게시판에 또 다른 페스티벌 소식이 걸렸다. 다 하누 페스티벌(Dah Hanu festival). 머리에 꽃 장식을 한 사람들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곳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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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하누에는 인도의 바탈릭(Batalik), 다칙스(Darchicks), 가큰(Garkon) 등에서 만날 수 있는 브록파(Brokpa)족이 거주한다. 그들은 ‘다드(Dards)’라고도 불리는데, 목초지를 찾아 소와 함께 이곳 저곳 떠도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브록파의 역사는 아직 미스테리다. ‘파키스탄에서 왔다’ ‘칠라(Chila)족의 일원이다’ ‘오래전 알렉산더의 마지막 후손이다’ 등의 가설이 있다. 과연 그들은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을까? 브록파의 언어는 존재하지만 고유 문자가 없어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브록파의 전통의상은 도무지 평범하지가 않다. 특히 여성은 화려한 꽃과 은장식, 양가죽 등으로 치장해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하고 다닐 수가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그들이 부르는 민요는 오늘날의 거주지에 정착하기까지의 역사를 담고 있다. 새해 혹은 보노나(Bononah)라고 하는 수확 대축제 때 이 민요를 부르며 축제를 즐긴다고 한다. 통칭 아리안 페스티벌(Aryan Festival)이라고 부르는 축제 역시 새해의 봄을 알리는 것이다.
ⓒ 장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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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누에서 열리는 축제에서 민요를 들으며 현지 주민을 사진 속에 담았다. 이제는 마을 어른만 전통의상을 착용하지만, 축제 때는 대부분의 주민이 전통의상을 갖추어 입는다. 마을의 축제 속에서 나는 비로소 외지에서 찾아온 관광객이 된 듯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다들 즐거워 보였다. 그들과 어울릴 때에 나도 그랬다. 축제를 즐기는 내내 참 아름답고 순수한 공동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축제에 참가한 현지인이 주섬주섬 삼성 휴대폰을 꺼내는 걸 보고는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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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페스티벌이 열리는 다 하누에서는 관광객에게 꽤 높은 비용으로 숙박을 제공했다. 이 오지까지 관광지로 변해가는 과정 속에 있다는 사실이 기분 좋지만은 않았다. 나는 홈스테이를 위해 한 할머니를 따라 나섰는데, 축제가 열린 마을을 뒤로하고 협곡을 오르기 시작했다. 정말 척박한 땅 너머에도 마을이 존재했다. 브록파 여성의 전통의상을 예쁘게 장식했던 꽃을 비롯해 다양한 꽃들이 곳곳에서 보였고, 양배추 같은 채소도 기르고 있었다. 자급자족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홈스테이에서는 이미 지나온 여행자들이 남긴 사진을 보며 밤을 지새웠다. 마을을 산책하며 살구도 따먹고 흐르는 강물에 빨래도 할 수 있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었다. 노래로 역사를 남기는 브록파 사람들과 그들의 터전이 환경이 잘 보존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