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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day in Huam-Union
건축가가 제안하는 후암동 하루 여행법

서울 남산 아래에 자리한 작은 동네 후암동엔 영화관도, 책방도, 휴양지도, 제빵실도 있다. 후암동 프로젝트로 시작해 ‘후암연립’이라는 어엿한 브랜드로의 성장을 일궈낸 도시공감협동조합 건축사사무소의 이준형 소장을 만났다.

박진명
인터뷰이 이준형 건축가 (도시공감협동조합 건축사사무소)

후암동의 한 골목으로 들어서자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도로의 폭이 좁아진다.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주택, 군데군데 자리한 요즘 감성의 카페가 보이고 학교 종소리와 생활 소음, 동네 주민의 대화 소리가 들린다. 얼기설기 흩어진 길을 따라 후암연립 앞에 이른다. 후암동의 ‘카페 우리다’와 함께하는 카페가 1층에서 방문객을 반기고, 좁은 계단을 올라가면 3층에 후암거실(작은 영화관)이 있다. 후암연립을 중심으로 주변에 후암동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탄생한 공간들이 자리를 잡았다. 후암주방(공유주방), 후암서재(공유서재), 후암별채(프라이빗 욕실), 후암노트(전시 공간), 홈베이킹을 할 수 있는 후암주방 제빵실, 그리고 후암동의 오래된 집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는 후암가록까지. 모두 도시공간협동조합 건축사사무소에서 기획한 일이다.

메모 1. 도시재생은 착한 말?

‘후암동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후암동에 처음 왔을 때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저와 팀원들은 건축을 전공하면서 마을과 재생, 두 가지 키워드를 공부하고 경험해왔어요. 창업을 한 이유도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고 싶었기 때문이고요. 저층 주거지 마을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다가 도시공감협동조합 건축사사무소를 세우고 우연히 알게 된 후암동을 우리만의 동네로 정했어요. 저는 서울 사람이 아니라 서울에서 선뜻 ‘우리 동네’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없었는데,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후암동을 ‘나의 동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죠. 저에게 후암동은 일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특별한 동네예요.

도시공감협동조합 건축사사무소에서는 또 어떤 일을 하나요?
어쨌든 회사니까 돈을 벌어야 하잖아요(웃음). 사실 이 동네에서 하는 일은 회사 전체 수익의 20퍼센트 정도밖에 안 돼요. 보통 다른 건축사사무소처럼 작은 공간을 인테리어하거나 설계합니다. 또 지자체에서 작은 골목, 마을 단위의 계획을 진행할 때 전문가로 참여하고 있어요.

도시재생에서 건축가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사실 ‘도시재생’이라는 표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어요. 흔히 도시재생은 행정에서 주도하는 사업으로 생각하곤 하죠. 기존에 있는 도시 안에서 건축가의 역할을 찾았을 땐 조금 다른 의미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건축가는 기본적으로 물리적 공간을 다루는데, 이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간에 담는 역할도 포함해요. 즉 건축물이 자리한 동네를 잘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죠. 게다가 도시는 변하게 마련이잖아요. 그 지역이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또한 건축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후암동에 처음 왔을 때 변화를 주고 싶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후암동을 변화시키고 싶어서 이곳에 온 건 아니에요. 후암동에 본격적으로 주거지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 1930년대니까 오래된 동네이긴 하죠. 하지만 변화를 바랬다기보다 이렇게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동네에 살면서 건축가로서 동네에 긍정적 역할을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어떤 점이 사랑스럽고 매력적이었나요?
어디를 가도 서울의 상징인 남산과 서울 타워가 보여서 좋았어요. 골목을 다니다 보면 일제강점기 전후에 지어진 적산 가옥부터 최근 젊은 건축가가 지은 단독 주택까지 두루 볼 수 있거든요. 근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집의 형태가 한 동네에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후암동에는 아주 오래되고 낡은 집도 있고 고급 빌라도 있고 새로 지은 단독 주택도 있어요. 굉장히 돈이 많은 사람도 살지만 2030 청년들, 아이 키우는 부부, 혼자 사는 어르신도 거주하고 있어요. 그런 모습이 후암동을 ‘후암동스럽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메모 2. 뜨고 지는 동네들. 동네에도 유행이 있는데…

회사를 후암동에 설립한지 5년이 넘었는데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요?
후암동은 다른 동네에 비해 변화의 속도가 빠르지 않더라고요. 처음 왔을 때에 비하면 2030 소비층을 겨냥한 카페나 상점이 늘었고 신축 빌라가 계속 들어서고 있긴 해요. 하지만 지난 5년간 을지로나 성수동처럼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뜨는 동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요.

후암동도 핫플레이스가 될 수 있까요? 
5년 전에도 후암동이 뜰 거란 말이 있었어요. 그런데 유독 변화의 속도가 더딘 이유는 상가와 주거 비율의 균형이 잘 맞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동네에 거주 인구가 적은데 상업 시설이 늘어나면 트렌드가 바뀌어 유입 인구가 줄었을 때 급격하게 망할 수 밖에 없어요. 후암동에 있는 상업공간이 잘 유지되고 동네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건 실제로 동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반증이죠. 그런 면에서 후암동은 지속 가능하고 건강하게 살아 남을 수 있는 동네라고 생각해요.

후암동 프로젝트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개인적으로 후암서재를 가장 좋아해요. 워낙 책을 좋아하는지라 어렸을 때부터 책을 모아 놓은 공간을 만드는 게 꿈이었거든요. 이용자의 리뷰를 보면, 후암서재는 기본 이용 시간이 8시간이에요. 아침 일찍 방문해 책을 보거나 작업을 하다 동네에서 밥을 먹고 커피 한잔 사서 산책을 하다 다시 들어와서 서재를 이용하는 거죠. 후암서재가 후암동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게 해주는 아지트인 셈이에요.

기획한 의도와 딱 맞아 떨어지는 사용 후기네요.
후암동에서 하루 여행을 한다고 가정해볼게요. 오전에 후암거실에서 영화 한 편 보고 시장에 가서 장을 봐요. 그리고 후암주방에서 음식을 해 먹고 후암서재로 이동해 책을 보거나 후암별채에서 목욕을 하면서 휴식을 취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 동네를 더 좋아하게 되고 또 찾아오게 되는 거예요. 사실 저는 후암동 프로젝트를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길 바랍니다. 주민들의 일상과 함께하는 ‘우리 동네 공유공간’을 만드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 중 하나였거든요. 이처럼 주민과 외지인이 함께 향유하며 마을을 좀 더 지속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공간이 다른 지역에도 많아지면 좋을 것 같아요.

메모 3. 건축가의 여행

후암동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예요?
남산 중턱에 백범광장이 있어요. 반려견과 자주 산책하러 가는 곳이죠. 김구 선생 동상이 있고 잔디밭이 넓게 펼쳐져 있는데, 힐튼 호텔과 동네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어요. 뛰어 노는 아이들부터 피크닉하는 사람들까지,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게 이국적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후암동 주민이라면 대부분 좋아하는 장소일 거예요. 후암연립 바로 앞에 있는 작은 공원은 하루에도 수차례 왔다 갔다 하는 곳인데, 볼 때마다 사랑스러워요. 앞서 말한 후암동 사람들의 다양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거든요. 아침엔 등교하는 아이들, 오후엔 게이트볼 치는 어르신들, 저녁엔 산책하는 사람들, 밤엔 무서운 청소년들. 어느 동네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공원이지만 모든 연령대의 다채로운 사람들이 공유하는 장소라는 게 매력인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마을을 꼽는다면?
딱 한 곳을 떠올리기 쉽지는 않은데, 사심을 담아 제 고향인 강원도 춘천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춘천을 꼽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첫 번째로, 트렌드의 중심인 서울과 수도권에서 가깝고 교통도 편리해요. 아무리 비대면이 활성화된다고 해도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게 더 중요하잖아요. 다음으로는 대학교가 여럿 있기 때문에 젊은 층이 많고 외부 청년 유입도 꽤 있는 편이에요. 마을에 지속 가능한 활기를 주는 건 결국 사람이죠. 호수나 산 등 자연과 어우러진 도시라는 건 다 아는 사실이고요. 나아가 사람이 걸어 다니면서 보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을 수록 좋은 마을이라고 생각하는데, 춘천의 도심에선 그런 경험이 가능해요.

지속 가능한 여행을 실천하는 여행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가 있다면요?
가끔 공간 컨설팅을 진행할 때가 있는데요. 재작년에 전남 곡성에 있는 ‘그리 곡성’이라는 여행자 플랫폼에 컨설턴트로 참여한 적이 있어요. 그리 곡성은 지역 주민이 만든 협동조합이에요. 여행자를 위한 안내소가 있고 카페도 운영하죠. 지속 가능한 삶과 여행을 위해 애쓰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한 번쯤 방문해보길 추천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정교하게 계획해서 여기까지 온 건 아니에요. 5년 동안 후암동에서 8개의 공간을 만들었는데, 규모는 크지 않지만 보고 있으면 문득 벅찬 순간이 있어요. 당장은 공간의 개수를 늘리거나 확장할 계획은 없어요. 다만 공간 내부를 좀 더 풍부한 콘텐츠로 채우고 싶어요. 후암연립 1층에 제로웨이스트숍 지구샵을 들인 것도 지속 가능한 삶을 말하는 제품을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후암연립을 통해 후암동에서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를 한층 풍성하게 만들고 싶어요.

메모 4. 사실 로컬 브랜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그렇게 견고하지 않았던 나로썬 후암동 프로젝트의 사용법이 굉장히 신선하고 강렬했다. 지역과 상생하는 로컬 여행의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 아닐런지. 좀 더 많은 지역에 제2의, 제3의 후암동 프로젝트가 생기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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