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우

Demilitarized Zone
비무장지대

한없이 아름다운 풍경을 감춘 분단의 현장, 비무장지대를 기록하다

글∙사진 박종우 park-jongwoo.com

다큐멘터리 사진가 박종우는 세계 각지를 탐사하며 문화와 자연을 기록한다. 국내 사진가 최초로 독일의 사진 전문 출판사 슈타이들(Steidl)에서 사진집 〈DMZ〉를 펴냈고, 2020년에는 부산의 고은사진미술관에서 〈비무장지대-DMZ〉 전시를 열었다.

2009년 가을, 나는 대한민국 국방부로부터 1953년 한국전쟁 휴전 이후 최초의 민간인 사진가로 비무장지대 내부에 들어가 그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 달라는 프로젝트를 제의받았다. 이때부터 3년 동안 이어진 나의 DMZ 작업은 비무장지대에서 내가 마주친 사실과 풍경에 대한 사진 르포르타쥬다. 나는 이 보고서 작업을 통해 남북 대치의 숨막히는 풍경에 내재되어 있는 가슴 아픈 현실을 주관적으로 재해석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그저 눈에 띄는 대로 기록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비무장지대에 대한 사진 작업이 과거에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에 대한 즉물적 기록이야말로 어설픈 작가적 해석보다 훨씬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방부가 휴전 후 최초로 민간인에게 DMZ 내부를 공개한 이유는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비무장지대의 현재’를 기록해두자는 취지였다. 60년간 민간인 출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에 DMZ 기록물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당연했지만 놀라운 것은 군에서도 그때까지 비무장지대에 대한 정기 또는 비정기적 사진 기록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비무장지대 작업은 쉽지 않았다. 매번 DMZ 안으로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육군본부, 해당 지역 사단의 허가를 동시에 받아야 했다. 방문 일정은 몇 달 전부터 분 단위로 계획이 수립되 었고, 갑작스런 기상 변화 등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 미리 정해진 스케줄이 바뀌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어렵게 진입한 비무장지대 안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나. DMZ와 바깥세상 사이에는 남방한계선의 3중 철책만이 서 있을 뿐 경계의 안과 밖은 그 모습에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카메라를 들이댈 마땅한 대상 또한 없었다.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살벌하다고 느끼는 것은, 또 그 풍경에 서려 있는 긴장감을 떨쳐내지 못하는 것은, 다만 나의 선입견 때문이었다. 밤새 경계근무를 선 병사들은 모두 취침 중이었고 가끔 인기척에 놀라 뛰어오르는 고라니를 제외하면 움직이는 생명체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주로 평야지역인 비무장지대의 서측에는 원래 사람이 살던 곳이 많았다. 6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면서 비무장지대에서 인간의 흔적은 지워지고 땅은 서서히 다시 자연으로 되돌아갔다. 이 세상 어디서도 이처럼 시간이 거꾸로 흐른 곳은 많지 않을 것이다. 비무장지대 수색로를 다니다 보면 주변엔 여전히 사람이 살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만들어진 수리시설, 금강산을 오가던 전기철도의 잔해가 옛 모습 거의 그대로였고 숲속에선 무너진 대문 기둥, 깨진 항아리가 눈에 띄는가 하면 전쟁 전 어느 집 마당을 장식했을 작은 정원 연못의 흔적도 있었다.

땅에서 제대로 느끼지 못한 비무장지대를 진정 가슴으로 느낀 것은 하늘에서다. 헬기를 타고 서부전선의 평원지대와 동부전선의 산악지대를 교차로 오가면서 내려다본 비무장지대에는 찢기고 할퀴어진 자국이 선명했다. 그런 자국은 남북이 설치한 철조망과 그 주변의 수풀을 제거한 시계청소 작전에 기인한 것이었다. ‘국토의 배를 갈랐다’라는 표현이 정말 딱 들어맞았다. 비로소 이곳이 ‘분단의 현장’이라는 실감이 났다.

남과 북의 경계는 매우 뚜렷했다. 숲이 우거진 남쪽과 헐벗은 북쪽의 산은 자연스레 서로의 경계를 드러냈고 그 사이에 세워진 철책선이 끊이지 않고 동서로 내달렸다. 지상에서의 철책은 무척 견고하고 통과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으나 하늘에서 내려다본 철책은 그저 보잘 것 없는 장애물에 지나지 않았다.

동부전선 험준한 산악지대에서는 산이 높고 골이 깊어 헬기가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남방한계선에 거의 스치듯 날았고, 아득한 계곡 밑으로 한없이 뻗어 내려간 계단을 오르내리는 병사들이 마치 개미처럼 보였다. 수직 절벽에 가까운 산비탈에 위험스럽게 세워진 남방한계선의 철책은 “우리 국토에도 저런 곳이 있었나”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험준한 산악지대, 울창한 수풀과 늪지를 대표 이미지로 갖고 있는 비무장지대를 말할 때 가장 흔히 쓰는 표현이 ‘자연생태계의 보고’라는 수식어다. 하지만 실제 DMZ는 동식물의 낙원, 자연생태계의 보고가 아니었다. 원시림이 가득 들어차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수시로 일어나는 산불로 인해 나무들은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정전협정상 비무장지대의 너비는 4킬로미터이지만 양측에서 철책선 앞에 또 따른 전진 철책을 설치해 점점 공간이 좁아진 곳이 많았고 그 너비가 2킬로미터에 채 미치지 못하는 곳도 있었다. 우리 GP 옥상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면 불과 수백 미터 앞에 북한 초소가 있는 곳들도 있었다. 크게 소리 지르면 대화가 가능할 정도였다. 그런 너비는 야생동물들에겐 너무나 비좁은 공간이다. 그러다 보니 동물들도 생각만큼 많지 않았고 가끔 마주치는 고라니와 산양, 멧돼지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나 비무장지대는 한없이 아름다웠다. 늪지에서 아침 안개가 피어나면 한반도 어디 서도 만나지 못했던 선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남북 대치의 시설물과 철책이 있음에도 DMZ의 산하는 그 모든 것을 표시나지 않게 품에 안을 만큼 넉넉했다.

또 비무장지대는 고요했다. 때론 남방한계선 외곽에서 군인들이 연습 사격을 하는 총소리나 포 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그밖에는 언제나 무거운 정적 속에 침잠해 있었다. 가끔씩 그 정적을 깨는 고라니의 울음소리는 그래서 더더욱 크게 들렸다.

DMZ를 벗어나면 곧바로 크고 작은 소음이 귀를 파고들었다. 개발의 손길은 DMZ 턱밑까지 뻗어 있다. 민간인출입통제선(CCL)과 남방한계선(SLL) 사이의 민통선구역(CCZ)은 이미 개발의 여파로 신음 소리가 드높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과 단체, 지자체들이 ‘평화’와 ‘친환경’ 구호로 포장된 DMZ 개발 이슈를 끊임없이 꺼낸다. 한반도에서 그나마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자연환경을 오롯이 간직한 이 특이한 공간마저 훼손되고 사라진다면 우리 환경의 미래는 밝지 않을 것이다. 비무장지대는 건드리지 말고 그대로 두어야 한다. 언젠가 다가올 통일의 시대에 그 오랜 시간 동안 민족의 한을 담고서 지켜온 그 모습 그대로를 후손들이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서 살고 있는 사람으로, DMZ 사진 작업을 진행해 오면서 나는 침묵의 땅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구역을 사유하는 여러 가지의 코드를 읽었다. 지뢰로 뒤덮인 채 인간의 접근을 거부하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지니게 된 숲, 국토의 다른 곳에선 마주치기 어려운 낯설고 어색한 분단의 풍경들, 현실적으로 남과 북을 가로막고 있음은 물론 모든 한국인의 사고에까지 분단을 강요하는 철책, 위험을 경고하고 위협하는 각종 경고표지판,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대전차방벽인 용치 등이 그것이다. 전쟁은 이미 지나간 역사가 되었지만 분단은 현재진행형이다.

DMZ에서 나의 지각에 영향을 미친 여러 코드는 앞으로 계속 이어질 분단현실에 대한 나의 작업에서 중요한 모티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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