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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ey Store in my town
우리 동네 꿀 가게

머나먼 나라까지 꽃을 찾아 거칠고 험한 산을 날아 다니는 꿀벌의 이야기를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아뻬 서울에서 발견했다.

박진명
인터뷰이 이재훈(아뻬 서울 허니 소믈리에)

도시 양봉은 꿀벌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위기 의식이 감돌던 2000년대 초반부터 런던, 파리, 홍콩, 뉴욕 등 세계 주요 대도시를 중심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도시 농업의 일환으로, 사라져가는 꿀벌을 지키기 위한 시도였다. 자급자족을 꿈꾸는 이들의 취미 활동으로도 인기를 끌었다. 2010년 무렵 마침내 국내에서도 도시 양봉을 시도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4년 안에 멸망한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꿀벌의 생존은 곧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 것일까? 그렇다면 도시 양봉은 식량 위기에서 우리를 구할 수 있을까?

복잡하게 얽혀있는 큰 도로를 뒤로한 채 한양 도성 둘레길로 가는 샛길로 빠졌다. 혜화동 주택가 사이에 자리 잡은 아뻬 서울은 직접 채밀한 꿀을 파는 가게다. 꿀로 만든 음료 메뉴와 디저트가 있고, 앞 건물 옥상에는 양봉장이 있다. ‘아뻬(Ape)’는 이탈리아어로 벌을 뜻하는 단어로, 이름 그대로 벌로 할 수 있는 모든 콘텐츠를 만드는 공간이다.

📝 메모 1. 단순한 흥미로 시작한 일은 어디까지 확장이 가능할까?

자전거 커피 노점 ‘비씨커피'를 운영하다 옥상에 벌을 키우기 시작했다고요.
미니벨로 뒤에 나무로 만든 상자형 트레일러를 싣고 서울 곳곳을 찾아다니며 커피를 팔았어요. 뉴욕의 젊은 바리스타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커피를 만들어 파는 이동식 커피 바에서 영감을 받았죠. 순전히 호기심과 흥미로 시작했던 일이에요. 양봉도 마찬가지로 도시 양봉업자에 관한 비디오 클립을 보고 시작했어요. 신선했고 재미 있을 것 같았죠.

아뻬 서울은 어떤 곳인가요?
사실 아뻬 서울은 카페이자 꿀 가게예요. 꿀뿐만 아니라 꿀을 넣어 만든 음료와 디저트를 만날 수 있죠. 가끔은 ‘잇츠허니! 테이스팅 클래스'를 열어 다양한 맛을 내는 꿀을 소개하기도 해요. 아뻬 서울은 벌을 매력적으로 소개하기 위해 만든 하나의 콘텐츠인 셈이죠. 저희가 채밀한 꿀로 다양한 실험을 통해 만든 제품을 선보이는 ‘잇츠허니!’나 벌들의 카페 ‘아뻬 서울' 등은 모회사 인그리디언츠컴퍼니에서 함께 운영하는 브랜드이고요.

올해 초 ‘꿀벌 실종 사건'이 세간에 주목을 받았어요. 벌이 사라지는 게 기후위기의 증거라고 하죠.
저도 ‘옥상 위 꿀벌은 안녕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제가 2012년부터 양봉을 시작했는데, 사실 벌을 직접 키우기 전까지는 이 현상에 대해 잘 몰랐어요. 꿀벌이 사라지는 군집 붕괴 현상(CCD, Colony Collapse Disorder)은 2006~2007년 즈음 미국 양봉 농장에서 시작되었고, 이 현상의 원인은 새로 출현한 병원체, 꿀벌 기생충, 스트레스, 살충제 등으로 추정되었고, 그 원인을 여전히 연구하고 있어요. 꿀을 만들다 보니 이런 이슈에도 점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무언가에 관심을 두게 되면, 그 안에서 의미도 하나둘씩 발견하게 마련이잖아요. 도시에서도 꿀벌을 관리하며 지속 가능한 삶을 실천하고 나아가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하나의 열쇠가 될 수 있다면 모두에게 좋은 일 아니겠어요?

📝 메모 2. 도시 한복판에서 벌을 키운다는 것

도시에서 벌을 키우는 건 시골과 많이 다른가요?
유럽이나 미국 내 도시에는 숲이나 공원 등 녹지가 많아 도시 양봉이 그리 어색하지 않은 데 반해, 서울은 빌딩숲과 아파트에 둘러싸인 대도시의 이미지가 강해 도시 양봉을 한다는 게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그런데 알고 보면 서울에도 산이 많아 녹지 비중이 38퍼센트 정도 된대요. 뉴욕 맨하튼과 비슷한 수치죠. 오히려 밀원이 충분하고 벌이 살기 좋은 환경이에요. 벌은 2~3킬로미터 반경 내에 있는 꽃가루와 화밀을 먹으러 돌아다녀요. 시골의 경우 주변 논이나 밭에 살충제나 농약 등을 뿌려 벌에게 좋지 않은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데, 도시에선 그럴 가능성이 낮죠.

꿀벌을 키우면서 배우는 점도 많을 것 같아요.
일벌은 약 한 달을 살다 죽고, 여왕별의 수명은 4년 정도 돼요. 여왕벌이 점점 산란 능력이 떨어지거나 페로몬의 향이 옅어지면 일벌끼리 커뮤니케이션해서 어떻게 할지 결정을 해요(이를 꿀벌의 민주주의라 불러요). 또다른 여왕벌을 중심으로 군집을 형성해 번식을 하는 거죠. 이런 꿀벌의 생태가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의 관점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양봉도 인위적인 행위죠. 그런데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것과 다른 점은 그들의 습성을 이해하고 그대로 따르는 거예요. 인간의 세계에 적응시키려는 노력 없이.

영국 런던에서 취득한 허니 소믈리에 자격증이 보이네요. 허니 소믈리에는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나요?
저는 2주 교육 과정을 이수했는데요. 2주 동안 꿀을 맛보면서 센서리(감각, Sensory)를 키우는 과정이에요. 과학 이론부터 방법론, 꿀의 플레이버 휠(Flavor Wheel) 등을 배우죠. 꿀도 와인이나 치즈처럼 생산지마다 각기 다른 맛과 특징, 스토리를 가지고 있거든요. 우리나라는 전 지역의 기후나 식생이 비슷하기 때문에 꿀의 맛 또한 대체로 비슷한데, 다양한 기후에서 자란 식물로 부터 기원한 꿀들을 맛보며 유럽에서 매우 특별한 경험을 했죠. 꿀이 마냥 달지만은 않거든요. 치즈처럼 꼬릿하고 시큼한 맛부터 짠맛, 쓴맛, 신맛도 나는 꿀이 있어요.

아뻬 서울이 트러플이나 바닐라빈, 라벤더 등의 식자재를 이용해 다양한 꿀의 맛을 선보이는 이유는 ‘꿀은 무조건 달다’는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건가요?
라벤더 꿀은 실제로 있어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역처럼 라벤더 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곳에서도 소량만을 생산할 수 있는데요. 유럽이나 북미와 달리 라벤더가 잘 자랄 수 있는 기후가 아닌 우리나라에서는 라벤더 꿀이 나올 리 만무하죠. 그 맛을 내기 위해 직접 채밀한 꿀에 라벤더를 넣었어요. 그 다음은 스파이시, 트러플, 바닐라빈을 넣었죠. 아뻬 서울의 시그너처 디저트인 카눌레는 틀에 밀랍을 발라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구워 만들었어요. 꿀과 벌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메뉴라면 뭐든 개발하고 있죠. 꿀이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는 걸 친근하고 재미있게 보여주고 싶어요.
사명을 인그리디언츠컴퍼니로 정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에요. 꿀처럼 각자의 역사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음식 재료(ingredient)를 디깅해 제품을 개발한다는 확장성을 담았어요.

📝 메모 3. 동네 꿀가게의 성장 일기

아뻬 서울이 동네에서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선택의 문제인 것 같아요.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예상할 순 없지만 사업적으로는 제주도, 강원도, 가로수길에도 아뻬 서울이 생기면 좋겠어요. 각 지점마다 특색이 있고, 그런 면이 아뻬 서울을 찾는 사람들에게 매력으로 느껴지면 좋겠다는 상상도 해봐요. 예를 들어, 본점에선 가끔 양봉하는 주인도 만날 수 있다는 게 특별한 재미 요소가 되는 거죠. 다만 아뻬 서울만이 가진 고유의 특성과 진정성, 초심을 잘 유지하는 게 관건이죠.
또 다른 선택지도 있어요. 사랑방처럼 동네 안에서 오랫동안 지속 가능하게 유지하는 것. 아뻬 서울이 혜화동에 자리 잡은 지 5년차가 되었는데 아직 채우고 싶은 콘텐츠가 많이 남아 있어요.

자전거를 타고 커피를 내리던 시절부터 허니 소믈리에에 이르기까지 모든 커리어를 지속 가능하게 해준 가장 큰 원동력은?
재미요. 그런데 재미는 지속 가능하기 힘들잖아요. 흥미가 떨어지면 새로운 것을 계속해서 찾아야 해요. 제 경우는 자전거와 커피에서 양봉까지 이어진 것 같아요. 지금은 꿀이라는 테마 안에서 지속 가능한 것을 계속 찾고 있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카눌레로 만든 NFT를 출시할 예정이에요. 제목은 ‘카눌레 유니버스’. 카눌레에 세계관과 캐릭터를 부여하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뤄요. 밀랍으로 바삭함을 유지해야 하는 카눌레를 위한 밀랍 스테이션도 있고, 밀랍을 제공하는 양봉업자 클럽, 꿀벌들도 있죠. 이 유니버스에서 소비자는 3D로 제작된 꿀단지를 얻게 되고, 그 꿀단지 안을 채우는 벌을 실제로 아뻬 서울에서 대신 키워주는 거예요. 기술 문제만 조금 보완하면 곧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메모 4. 3D로 만든 꿀단지를 NFT로 구입해 간접적으로 도시 양봉에 참여할 수 있다니. 벌을 테마로 꿀 관련 제품 외에 이렇게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니. 귀엽고 재미 있는 일러스트가 가득한 카눌레 유니버스를 살짝 엿보고 왔는데, 정식 출시를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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