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치 바이 매거진

Upcycled Ceramic
다시 빚은 도자기

땅에서 비롯된 도자기는 쓸모를 다하면 다시 땅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업사이클링 도자기 브랜드아누(ANU)는 버려진 도자기를 향한 세심한 관찰과 애정으로 빚어졌다.

박진명
인터뷰이 안용우(아누 대표), 나원호(아누 CPO)

버려진 도자기를 분쇄한 다음 채에 친다. 아주 고운 것부터 거칠어서 다시 사용할수 없는 것까지 단계별로 구분한다. 곱게 갈린 분말은 점성이 없어 흙을 배합해야 한다. 굵은 파편은 다시 모아뒀다가 또다른 활용 방안을 연구한다. 아누(ANU)가 폐도자기를 재가공해 다시 제품화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완성한 화분은 선인장, 아몬드페페, 미리오클라두스 등 잘 어울리는 식물을 직접 식재해 판매하기도 한다. 편안한 집(安宇)이라는 뜻에서 이름을 따온 아누는 공간과 지구를 편하고 아늑하게 만드는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다. 동시에 일단 가마에 구우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흙, 영영 썩지 않는 폐도자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아누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안용우(이하 안) 저희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디자인 학부 동기예요. 엄밀히 말하면 졸업 동기죠.(웃음) 저와 CTO 김정엽은 도예과를, CPO 나원호는 산업 디자인과를 나왔어요. 학부 시절 함께 작업한 적이 있었는데, 합이 꽤 잘 맞더라고요. 졸업을 앞두고 친구들에게 ‘나 이런 거 하려고 하는데, 같이 해볼래?’하니 선뜻 응해줬어요.
나원호(이하 나) 취업 준비를 하면서도 고민이 많았어요. 새로운 일을 하고 싶던 차에 안용우 대표의 제안은 매력적이었죠.

어떻게 제안했나요?
처음에 저희에게 주어진 미션은 ‘폐도자기 업사이클링’이었어요. 산업 디자인을 전공한 저는 모크업(Mock-up)만 제작해봐서 실제 판매용 제품을 만들어 본 적이 없었어요. 반면, 도예과를 나온 친구들은 학부 때부터 실물 제작 경험이 많았죠. 그 덕분에 제품을 처음 시장에 선보였을 때 좋은 반응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오픈 후 1년 동안은 컬러 라인업이나 형태 등을 수요에 맞게 빠르게 반영하면서 소비자의 반응을 계속 테스트할 수 있었어요. 학교에서 경험한 제작 실습이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친구들끼리 일하는 건 어떤가요?
역할 분담을 명확히 했더니 좋은 점이 더 많은 것 같아요. 각자 맡은 업무에서 주도적으로 의사 결정을 하니까 크게 트러블이 생길 일도 없고. 저는 전체적인 디자인이나 기획 방향을 디렉팅하고 있어요. 제품을 생산하고 완성하는 일은 생산팀의 몫이고요.
처음부터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제품 제작 이외에도 할 일이 굉장히 많아요. 저는 주로 회계나 유통, 판매, 대외 커뮤니케이션, 투자를 위한 사업 계획서 작성 등 운영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어요.
 
폐도자기 업사이클링에 관심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학교에 다니면서 작업하다 망치거나 바자회 행사에서 팔지 못하고 남은 도자기를 수없이 봐왔어요. 버려진 도자기는 한데 모아 깨부순 뒤 폐기하죠. 그런 일을 반복해서 접하다 보니 죄책감이 들더라고요. 흙은 일정 온도 이상에서 구우면 타거나 썩지 않고 오히려 단단해지거든요. 동기들끼리 우스갯소리로 ‘도예는 영원히 안 썩는 쓰레기를 계속 만드는 작업’이라고 얘기하곤 했어요. 한해 학부에서 소비하는 흙이 7~8톤 정도 되는데, 그게 다 제품이 되지는 않거든요. 버리는 비율을 최소 10~20퍼센트로 잡아도 매년 1톤은 무조건 쓰레기가 되는 거잖아요. 문득 버리는 도자기도 좋은 재료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첫 주문이 들어왔을 때, 기분은 어땠나요?
처음엔 크리스마스 테마의 식재 화분 패키지를 크라우드 펀딩으로 진행했어요. 목표 금액의 1000퍼센트를 달성했죠. 물론 지인 찬스도 있었지만, 50퍼센트 이상은 새로운 고객이었어요. 저희도 많이 놀랐어요.
펀딩 종료 후 배송 기간을 일주일로 안내했거든요.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하루 안에 다 보내고 싶은 거예요. 하필 또 겨울이라 식물이 얼지 않도록 보내야 했죠. 포장재를 잘못 주문해 고속버스 퀵도 이용해보고. 첩보 영화 한 편 찍었죠.(웃음)

양구백자연구소와 함께한 프로젝트도 인상 깊었어요. 양구에서 만든 모래 토분을 패키지로 만들어 다시 판매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4년 전, 양구백자연구소 소속 공예가들이 양구의 모래로 화분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한시적으로 판매해서 그런지 재고가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내내 마음에 걸렸어요. 양구의 모래와 좋은 흙이 만나 만들어진 표면이 참 특색 있거든요. 최근 수제 토분이 각광을 받기 시작하면서 양구 모래 토분을 보여줄 타이밍이라고 생각했어요. 양구백자연구소에 연락했더니 흔쾌히 응해주더라고요. 양구 모래와 공예가의 열정을 알릴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양구에 백자가 왜 유명한가요?
양구에 백자를 만들기 좋은 고운 흙이 있거든요. 옛날엔 주로 전라남도나 경상남도에서 흙을 공수했는데, 가마터가 있는 경기 이천이나 여주까지 운반하기가 수월하지 않았겠죠. 대신 북한강을 따라 운반해온 양구의 백자용 흙을 사용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면서 양구 백자가 유명해졌어요. 요즘에는 양구에도 흙이 얼마 안 남았다고 하더라고요.
자연 소재로 제품을 만드는 건 인간에게나 좋은 거지, 환경에는 별 도움이 안되는 것 같네요.
어떻게 보면 도자기도 오래 쓰는 일회용품이나 다름없죠.(웃음) 학교에서 교수님도 항상 ‘스스로 생각해도 망할 것 같은 건 가마에 넣지 말라’고 가르치세요. 한 번 가마에 구워내면 처치 곤란한 쓰레기가 되다 보니, 시행착오로 성장하는 학생 입장에선 난감한 일이죠.
저희는 제품을 사용하다 깨지거나 하자가 발생하면 다시 수거하는 시스템을 마련했어요. 웹사이트 내 ‘리포세린 프로젝트(Reporcelain project)’를 통해 가정이나 학교, 공장에서 발생하는 폐도자기 회수를 신청할 수 있어요.

리필스테이션 알맹상점과 함께 폐도자기 수거하는 캠페인도 운영하고 있죠.
알맹상점 대표님이 먼저 연락을 주셨어요. 브랜드 론칭 당시엔 ‘친환경’을 내세우려고 하지 않았어요. 제품이 예뻐서 사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죠. 폐도자기 리사이클링은 저희만 할 수 있고 잘 하는 분야니까 좀 더 강조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커지더라고요. 저희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지 정리해서 SNS에 포스팅을 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알맹상점 대표님도 그 포스팅으로 연결되었고요.
저희도 가정에서 발생하는 폐도자기를 수거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해왔거든요. 각 지역에 있는 제로웨이스트 숍을 거점으로 활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해 협약을 맺었죠. 웹사이트에서 직접 회수  신청을 할 수 있고(배송비만 부담하면 됩니다), 제로웨이스트 숍에 직접 가져가도 됩니다. 이 시스템을 최대한 자동화하는 것이 저희 목표예요.

첫 제품으로 화분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폐도자기를 재활용했을 때 가장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제품이라고 생각했어요. 화분은 몸에 직접 닿지 않는 리빙 소품이다 보니 소비자가 무리없이 수용할 것 같더라고요. 디자이너 관점에선 미적 재미와 디테일을 더할 수 있는 제품이기도 했고요.
이번 여름에는 테이블 웨어를 출시할 예정이에요. 컵부터 접시까지 다양하게 준비 중이니 기대해주세요.
 
가장 최근 다녀온 여행지는 어디인가요?
친구들과 경북 안동으로 여행을 갔어요. 하회 마을에서 하룻밤 묵었는데, 모니터 화면과 소란스러운 건물에서 벗어나 제대로 힐링하고 왔죠.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아 좋았는데, 마을 주민들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만나는 사람마다 ‘여기 가봤냐, 저기 가봤냐’하며 가볼 만한 곳을 나서서 추천해주더라고요. 소박한 분위기와 정겨운 주민들이 기억에 남아요.

여행을 할 때 실천하는 나만의 지속 가능한 방법이 있다면?
물을 사지 않아요. 물병을 가지고 다니거나, 부득이하게 사더라도 쓰던 물통을 재사용하죠. 여행지에서 무심코 사는 것 중 하나가 물이라는 걸 인식한 후에는 물을 사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도라에몽처럼 짐을 많이 챙기는 편이에요. 평소 사용하던 제품을 챙겨 사용하고 다시 그대로 가져오곤 해요.

앞으로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있나요?
이케아와 프리츠한센의 고장인 스웨덴! 생활 소품이 워낙 발달한 곳이니 일상에서 어떤 제품을 사용하는지 직접 보고 싶어요. 아누를 준비하면서 북유럽 브랜드를 가장 많이 리서치했거든요. 국내 도자기 브랜드가 대부분 동양적인 무드를 추구하는 반면, 저희는 도자기에 단순하고 소박한 북유럽 디자인을 접목하길 원했어요. 그런데 얼마 전 대만의 식물 숍 운영자가 아누 제품이 되게 한국적이라고 하더라고요. 외국인의 시선은 또 다르다는 걸 느끼면서 우리는 한국인이니 한국적 요소가 묻어날 수 밖에 없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누가 제안하는 지속 가능한 삶의 관점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뻔하지만, 물건을 오래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누도 그런 부분에 초점을 맞춘 제품 사용 가이드를 제공하려고 준비했어요. 물이 든 화분을 세척하는 방법처럼 오래 쓸 수 있는 팁을 알려주려고요.
폐도자기를 수거해보면 이가 나가거나 흠집 있는 제품보다 단순히 오래된 도자기, 브랜드 굿즈, 싫증이 난 제품 등 멀쩡한 것들이 더 많아요. 제로웨이스트 숍에선 분쇄할 이유가 전혀 없는 제품을 선별해 무료로 나눠주기도 한대요. 취향에 잘 맞고,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을 신중하게 소비했으면 해요. 그런 제품을 만드는 게 아누의 목표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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