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치 바이 매거진

Curry For Zerowaste Life
뾰족한 마음을 둥글게 만드는 커리 한 접시

제로웨이스트 생활을 실천하다 보면 현실의 장벽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이게 맞나?’란 생각이 들 때 만난 커리 한 접시는 모난 마음을 둥글게 만들어 주었다.

박진명
인터뷰이 이민송(지구커리 대표)

팝업 형태로 운영하고 있는 지구커리는 주로 제로웨이스트숍 한 편에서 다회용기에 담아가는 밀키트나 커리 페이스트를 판매하며 손님을 만난다. 봄바람이 겨우내 굳게 닫혀 있던 지구커리의 문을 두드린 날, 이민송 대표는 오랜만에 신선한 식자재가 많이 들어왔다며 매장 오픈 공지를 올렸다. 비건을 지향하고 제로웨이스트 생활을 하는 그의 실천기를 들어본다.
채식주의자도 여러 종류로 나뉘잖아요. 어떤 유형인지 궁금해요.
비건 지향이라고 해야 할까요. 가능하면 고기를 먹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농장 동물에 관한 다큐멘터리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본 게 결정적 계기였죠. 시작은 단순했어요. 단순하면서도 복잡했다고 해야 하나. 원래 동물을 좋아했거든요. 종종 술자리에서 '그렇게 좋아하는 동물을 먹는 게 좀 이상하지 않냐'는 말을 하면서 웃곤 했어요. 결론은 늘 ‘어떻게 안 먹어’라는 말로 이어졌죠. 다큐멘터리를 보고  ‘그런 말은 웃으면서 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비건을 지향하게 됐어요.

요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이전에 아동청소년 사회복지사로 일했어요. 아이들에게 저녁 식사를 만들어주다 보니 요리하는 게 즐거워지더라고요. 사회복지사를 그만두게 되면서 요리를 전업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도 제대로 요리를 하는 것 같진 않아요. 그냥 밥을 차려 먹는 느낌이 크죠.

인도 요리를 택한 이유는?
일단 인도 음식이 낯설었어요. 이탈리아나 미국 음식은 메뉴를 보면 식자재가 떠오르는데, 인도 음식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전혀 상상이 안 되는 거예요. 호기심이 생겼죠. 인도 요리는 닭고기를 많이 사용하는데, 인도 요리 수업을 듣고 혼자 복습할 때 고기 없이 맛을 내는 방법을 연구하면서 저만의 레시피를 만들었죠.
 
향신료나 채수로 맛을 내는 건가요?
채수로 만드는 커리는 일본 스타일이고요. 저는 주로 향신료로 맛을 내요. 처음 인도 요리를 시작했을 때는 온갖 향신료를 모았는데, 요즘 느낀 점은 향신료는 최소한의 양만 사용해도 충분하다는 거예요. 인도 음식 중에서도 고기 요리에 향신료를 많이 써요. 소화를 돕는 역할을 하거든요. 채소 요리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향을 낼 정도의 향신료만 있어도 괜찮겠다 싶더라고요.

카레를 만들 때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향신료는 무엇인가요?
코리앤더(고수씨), 터머릭, 레드 칠리, 커민. 다른 향신료를 더하면 좀 더 풍미 깊은 카레를 만들 수 있죠.

레시피를 연구하는 과정이 궁금해요.
예전엔 인터넷 검색이 유일한 방법이었는데, 점점 머릿속에 쌓인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저만의 레시피를 만들고 있어요. 국내에선 인도 식자재를 구하기 어려우니까 현지의 맛을 완벽하게 구현하기 힘들죠. 그래서 우리나라 식자재를 활용하기 시작했어요. 예를 들어, ‘요즘엔 양배추가 되게 맛있는데, 어떤 향신료와 잘 어울릴까’ 하는 식으로 접근해요. 제철 채소로 인도식 샐러드나 채소 볶음, 스프 등을 만들고 있어요.

밀키트나 커리 페이스트를 구입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보통 팝업 행사에서 40~50세트 정도 준비하는데, 전량 판매하는 편이니 반응이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에요.(웃음)
 
팝업으로 커리를 판매하다 단독 매장을 오픈했는데,  운영을 중단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숍인숍 형태로 운영할 때는 공간이 그리 크지 않았고, 팝업 행사도 보통 일주일에 한 번 진행하니까 그렇게 힘들진 않았거든요. 막상 가게를 열고 나니 공간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면서 부담감이 커지더라고요. 저에게 맞는 효율적인 운영 방식을 고민하려고 가게 문을 잠시 닫았는데, 여전히 방법을 찾는 중이에요. 요즘엔 비건 요리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여기서 같이 공부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어요. 사실 이 공간에서 향신료를 소분해 판매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식품법에 위반되는 일이더라고요. 아쉬워요.

이곳을 운영하는 것도 사업이라기 보다 결국 추구하는 삶의 일부인 거네요.
맞아요. 그래서 공간을 비워도 불안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정말 제가 하고 싶은 콘텐츠나 운영 방식에 맞게 활용하고 싶어요. 거창해 보일 수 있는데, 제가 돈을 많이 벌면 어딘가는 망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아무래도 자연과 사람이 연결된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지나치면 사람이나 자연, 동물을 착취하게 될 수 있으니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려 하지 말자는 생각도 있고. 느슨하게 살다 보니 돈이나 물건을 덜 쓸 수 있고, 필요한 것도 많이 없더라고요. 각자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사는 게 아니겠어요?

다른 인터뷰에서 하루에 30그릇 이상은 만들지 않겠다고 얘기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겠죠?
요즘은 팝업을 가끔 여니까 한 번에 50그릇 정도 만들어요(웃음).  
식자재도 시장에서 생산자를 직접 만나 구입한다고 들었어요. 현실적으로 제로웨이스트 장보기가 가능하던가요?
팝업 일정에 맞게 마르쉐 같은 농부시장이 열리면 가능하죠. 그게 아니라면 쉽지 않은 게 사실이에요. 요즘엔 유기농에 관심을 갖다 보니 종종 선택의 기로에 놓이곤 해요.(웃음) 제가 좋아하는 유기농 식자재는 대부분 포장 택배로 판매하는 경우가 많아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긴 힘들거든요.

텃밭도 직접 가꿔본 경험이 있다고요.  
이제 안 해요.(웃음) 서울엔 가진 땅이 없으니 텃밭을 가꾸려면 적어도 왕복 1시간씩은 이동해야 하더라고요. 언젠가는 땅 옆에서 사는 게 꿈이긴 해요. 자급자족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제로웨이스트 생활을 하고 싶어서요. 사실 도시에서 지속 가능성을 논하는 건 모순인 것 같아요. 도시의 편리함을 누리면서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자연스럽고 느리게 지속 가능한 삶을 찾는 다는 게 욕심처럼 보이는 거예요. 언젠가는 죄책감없이 자연스럽고 느리게 살 수 있는 곳으로 이사하고 싶어요.

제로웨이스트나 비건을 지향하다 보면 힘든 점도 많을 것 같아요.
동물권에 관심이 많고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주변 친구들과 대화하다 보면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대다수인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러다 강남 같은 장소라도 가게 되면 우리 같은 사람은 아주 소수라는 걸 깨닫곤 하죠.

삶의 방식이 다른 이들과 어울릴 때, 난감한 순간도 있지 않나요?
예를 들면, 가족 모임에서 누군가 사람 수대로 일회용 접시를 세팅해요. 그럼 제가 설거지는 내가 할 테니 그릇을 사용하자고 하죠. 제가 나서서 몇 번 설거지를 하다 보면, 나중엔 돌아가면서 하게 되더라고요. 친구들과 여행갈 때도 마찬가지예요. 개인용 식기를 챙겨 가서 저만이라도 일회용품을 쓰지 않으려고 해요. 설득하기보다는 그냥 제 삶을 사는 거죠. 그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에요. 영향을 받는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성공한 거고요.

채소 요리를 하면서 생긴 삶의 변화가 있다면?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면서 산다는 것. 채소 요리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거예요. 봄나물이 눈에 보이면, 이 계절이 다시 왔구나 느끼게 되죠. 살면서 이 채소를 몇 번이나 더 먹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하고. 식자재의 본래 형태도 떠올리게 돼요. 요즘엔 다 손질된 식자재를 판매하잖아요. 원물을 볼 일이 자주 없죠. 저도 당근 잎을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채소 요리를 하면서 처음 접했어요.  
인도 음식을 배우고 나서 인도 여행을 다녀왔다고 들었어요.
인도 남쪽에서 출발해 델리를 거쳐 북쪽 리시케시(Rishikesh)까지 한 달 정도 여행했어요. 남인도는 우리가 으레 떠올리는 인도가 아니더라고요. 유럽이 연상되기도 하고. 일주일 정도 지내다가 델리로 올라갔는데, 정말 난리도 아니었어요.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땐 그곳의 규칙이 읽히거든요. 인도에도 분명 규칙이 있는데, 그걸 못 읽겠더라고요. 그래서 재미있고 신비로워요. 1년에 한 번씩 가고 싶을 정도로 좋았어요.

재미있는 일은 없었나요?  
인도에선 아무 데서나 쓰레기를 태워요. 비가 내린 날에는 가방에 흙이 잔뜩 묻어 있더라고요. 흙비가 내린 거예요. 정말 여기는 카오스다, 혼돈이다 싶었죠.(웃음) 그래도 다시 가고 싶어요. 아쉬웠던 것도 있어요. 다른 여행지에서는 이렇게까지 경계하지 않았는데, 인도에서는 너무 조심해서 오히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거예요.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거나 현지인만 할 수 있는 경험도 해야 했는데. 다음엔 조금 경계를 풀고 여행하고 싶어요.

인도 여행에서 발견한 지속 가능한 포인트가 있다면?
채식 요리에는 한계가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인도는 모든 다양성을 포용하는 곳이다 보니, 저도 존중 받은 경험이 있어요. 채식 클래스에 참여했는데, 차이(Chai)를 주더라고요. 저는 우유를 안 먹으니까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차이는 없냐고 조심스레 물었죠. 수업을 마친 후에 강사가 묻더라고요. 인도에선 베지테리언도 우유는 먹는데, 제가 먹지 않는 이유가 너무 궁금하다고요. 그래서 이야기했어요. 우리나라 소들은 대부분 착취 당하며 우유를 생산하고 있고, 그래서 우유를 먹지 않게 되었다고요. 제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해주더라고요.
의외였던 점도 있어요. 요즘 인도에는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종자 문제가 심각해요. 향신료 천국에서 좋은 씨앗을 찾는 게 어렵다니 슬펐죠. 농장이나 밭을 둘러보는 것도 엄두가 안 났던 것 같아요. 태국에선 지나가다가 농장이나 밭을 쉽게 발견할 수 있거든요. 가도 가도 황무지인 인도에서는 도대체 농장이 어디에 있을까, 인도인들이 먹는 채소는 어떻게 자랄까 궁금했죠. 다음 인도 여행에서는 농장도 가보고 싶어요.

지속 가능한 여행을 위해 실천하는 방법을 공유해주세요.
용기와 커틀러리, 텀블러는 기본적으로 챙겨요. 요즘엔 접이식 다회용기도 나오더라고요. 인도 갈 때는 본죽 테이크아웃 박스 2개를 갖고 다녔어요. 그리고 간이 정수기 브랜드 브리타(Brita)의 휴대용 제품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어요.

지속 가능한 지구커리를 위해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 궁금해요.
지금 숙제는 이 공간의 활용 목적을 정하는 거예요. 사실 저는 카레가 지속 가능한 요리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어쨌든 물 건너 온 향신료에 의존하는 요리니까. 향신료를 최소화해서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자라는 생각으로 요리를 해요. 앞으로는 제철 식자재를 활용한 채소 요리와 간단하게 먹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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