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파인의 외부 전경

 

ⓒ 슈퍼파인

The Future of Grocery Market
슈퍼마켓의 미래

식자재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와 사람을 생각하는 삶. 슈퍼파인이 제시하는 지속 가능한 미래다.

인터뷰어 박진명
인터뷰이 조석현(슈퍼파인 대표)

‘힙하다(hip)’는 쿨하고 트렌디한 것을 칭찬하는 의미로 자주 사용하는 표현 중 하나다. 하지만 가끔은 그 의미가 모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최신 유행하는 옷을 입고 핫한 카페에 앉아 있어도 내 자신이 전혀 힙하다고 느껴지지 않을 때, 오히려 누군가를 따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이 단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트렌드한 게 아니라, 나만의 고유한 취향을 당당하게 내세우는 태도가 진짜 ‘힙’한 게 아닐까 하고. 
가치 소비의 유행도 이러한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치 소비는 브랜드의 철학이 자신의 신념과 가치에 맞는지 꼼꼼히 따지는 소비 트렌드를 말한다. 이를테면, 여느 세대보다 환경에 관심이 많은 2030세대는 구입하려는 제품이나 브랜드가 친환경적인지 혹은 ESG를 실천하는 기업인지 등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반대로 비윤리적 기업에는 가차없이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한다.
식자재 큐레이션 플랫폼 슈퍼파인도 이런 흐름 속에서 탄생했다. 가치 소비 커뮤니티에서 출발한 슈퍼파인은 최근 서울 성수동에 식료품 매장을 오픈했다. 도시 생활자는 이곳에서 신선한 식자재를 발견하고 생산자와 관계를 맺으며 가치 소비를 경험할 수 있다. 
슈퍼파인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슈퍼파인은 대안적인 삶, 지속 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슈퍼마켓이에요. 슈퍼마켓의 ‘슈퍼(Super)’에 안부 인사에 사용하는 ‘파인(Fine)’을 붙여 경험적 의미를 함께 담았죠. 상품 큐레이션부터 제철 베이커리 메뉴, 다양한 이벤트와 워크숍까지, 색다른 식자재 경험을 제공합니다.

브랜딩 에이전시 와이어즈에서 전개하는 플랫폼이라고 들었어요. 어떤 계기로 슈퍼파인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브랜딩을 하면서 로컬의 본질과 자신만의 철학을 담은 지역 브랜드를 많이 알게 됐어요. 속초에 있는 ‘완벽한 날들(북스테이)’ ‘칠성조선소의 북살롱(독립서점)’ 등이 특히나 인상적이었는데요. 지역 상생 또는 지속 가능성을 중심 가치로 삼고 있는 대표적인 로컬 브랜드죠. 때마침 가치 있는 소비를 추구하는 MZ세대의 새로운 소비 트렌드가 등장했고요. 로컬 브랜드의 상생 그리고 가치 소비에 대한 니즈를 모두 충족시키기 위해 슈퍼파인을 만들게 된 거죠.

MZ세대의 소비 문화가 이전 세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요즘 2030세대는 소비를 통해 자신이 추가하는 가치를 표현해요. 소비는 결국 라이프스타일과 이어지는데, MZ세대는 삶의 모든 방향에서 대안적이고 지속 가능한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죠.
여러 분야 중에서도 식자재 플랫폼을 기획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슈퍼파인 이전에 먼저 가치 소비자를 위한 커뮤니티로 시작했어요. 막상 만들고 나니, 커뮤니티만으로는 가치 소비와 저희가 추구하는 본질을 널리 알리기에 역부족인 거예요. 식자재라면 좀 더 대중적인 영향력이 있지 않을까생각했죠. 식자재는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품목이니까요. 여러 지역과도 훨씬 자연스럽고 다양하게 협업할 수 있고요.

슈퍼파인을 대중에 처음 공개할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해요.
가치 소비 커뮤니티에서는 비건이나 환경보호에 앞장서는 사람들을 만났거든요. 보다 대중화된 슈퍼파인에는 어떤 이들이 모일까 가장 궁금했어요. 아무래도 성수동에는 20대 초중반의 소비자가 많은데, 이들이 슈퍼파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경험할지도 궁금했고요.

이미 이커머스 플랫폼이 있는데, 굳이 오프라인 매장을 오픈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온라인에선 불가능한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슈퍼파인을 그저 물건만 사고 나가는 슈퍼마켓이 아니라, 대안적 삶을 가꾸는 커뮤니티로 발전시키는 게 목표거든요. 당연한 말이지만, 이커머스 플랫폼에서는 식자재 구입, 그 이상의 경험으로 확장되기 어렵잖아요. 새로운 제품에 대해 알려면 상세 정보를 살펴보는 방법밖에 없죠.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단순히 식자재를 구매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경남 함양에서 재배한 파와 칼솟타다(Calçotada, 파로 만든 스페인 음식)를 테마로 한 행사에서는 생산자를 직접 만나고, 칼솟타다라는 음식을 통해 새로운 파 요리법도 배울 수 있죠. 이러한 이벤트는 특정한 식자재를 매개로 생산자를 비롯해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장이기도 해요.

이벤트나 워크숍은 어떻게 기획하는지 궁금해요.
매달 슈퍼파인에서 한 가지 원물을 선정하면, 이미 익숙한 식자재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는 데 중점을 두고 프로그램을 기획합니다. 제철 채소나 과일을 다른 음식과 조합하거나 색다른 레시피로 요리하는 식으로요. 색다른 방식으로 원물을 소개하는 것부터 이를 활용한 음식을 맛보는 것까지 전 과정이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설계하려고 하죠. 앞으로는 제철 채소와 과일로 베이커리와 카페 메뉴를 만들어 볼 예정이에요. 
생산자를 소개하는 콘텐츠도 만들고 있어요. 생산자와 소비자가 관계를 맺을 때 생기는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대형 슈퍼마켓에서 구매한 식자재는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죠.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상품 포장지에 적힌 대형 브랜드의 이름뿐이죠. 반면 소비자가 지역 생산자와 관계를 맺게 되면 식자재를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가 생겨요. 본인이 먹는 음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내 식탁에 오르게 되는지 생각하게 되는 거죠.
예를 들어, 재배 과정에서 작은 흠이 생겨 상품성이 떨어지는 흠과의 비율이 전체 사과 생산량의 30퍼센트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쳐요. 이런 이야기를 알고 난 후 대형마트에서 흠이 난 사과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할 수도 있겠죠. 이처럼 식자재의 생산 과정 혹은 생산자를 좀 더 깊이 알게 되면 보다 합리적이고 의식 있는 소비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소비자가 생산자의 관점에서 만든 저희의 콘텐츠를 보고 지속 가능한 미래까지 그리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변화가 아닐까요?

요즘 고민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1인 가구에 제철 채소와 과일을 어필할 수 있을지 고민이에요. 1인 가구는 원물을 소량으로 구매해야 하니까 시기에 맞게 제철 식자재를 구매하는 것도 쉽지 않요. 그래서 매달 원물을 선정할 때도 1인 가구 또는 2030세대가 쉽게 요리할 수 있고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식자재를 선택하려고 해요. 해외 레시피를 활용하거나 다른 식자재와 함께 조리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등의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있어요.

‘지속 가능성’ ‘친환경’ ‘업사이클링’ 등을 콘셉트로 한 브랜드가 쏟아져 나오고 있어요. 소비자가 지속 가능성을 내세운 브랜드를 선택할 때, 참고해야 할 점이 있다면요?
구매하기 전 얼마나 자주 그리고 오랫동안 사용할 제품인지 따져보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아무리 친환경 소재로 만들더라도 꾸준히 사용해야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니까요. 지속 가능한 소재의 제품을 여러 개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한 제품을 얼마나 오래 사용할지 생각해봐야 해요. 친환경적인 대신 내구성이나 사용성이 떨어질 수 있는데, 그런 부분을 감수할 수 있을지도 고려해야 하고요.
슈퍼파인을 브랜딩할 때 참고한 장소나 여행지가 있다면?
미국의 폭스트롯(Foxtrot) 마켓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폭스트롯은 미국 시카고에서 20대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가벼운 안주나 와인 등을 파는 편의점으로 시작한 브랜드예요. 현재 시카고를 비롯해 달라스, 워싱턴 D.C., 버지니아, 오스틴, 베데스다 등 여러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어요. 소규모 로컬 브랜드부터 지속 가능성이나 비건을 추구하는 브랜드, 지역 농수산물까지 판매하고요. 모든 매장이 점심에는 편의점 겸 카페로, 저녁에는 와인바로 변신해요. 각 동네의 맛집 음식, 유명 셰프와 공동 개발한 메뉴 등 특색 있는 구성으로 미국 내에서는 ‘편의점의 미래’라고 평가받고 있어요. 폭스트롯은 캐주얼하고 친근한 느낌의 커뮤니티에 가까워요. 그런 의미에서 저희가 닮고 싶은 부분이 많죠.

가치 소비나 농산물과 관련해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있다면?
이탈리아 볼로냐는 협동조합의 천국이라고 불려요. 협동조합의 매출이 도시 GDP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죠. 치즈, 와인 등 1차 생산자와 연관된 산업이 발달했고 소상공인이 활발히 활동하는 나라여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소규모 브랜드와 생산자가 모여 있는 이 도시의 생태계를 경험해 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와인과 치즈를 좋아해 와이너리 투어를 해도 재미있을 것 같고요.
지속 가능한 삶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단기적 욕구를 충족시키기보다 당장 불편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지켜야 할 가치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 그로 인해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요는 지속 가능하게 이어져야 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생활 속 소소한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아요. 특히 텀블러, 플라스틱프리 제품을 사용하는 건 누구나 당장 시도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미래의 자신이 자연스럽고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게 지속 가능한 삶이 아닐까요.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는?
지역 생산자와 연계된 행사, 워크숍 등을 기획해 다양한 식자재를 소개할 예정이에요.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슈퍼파인의 팬덤을 키우고 싶어요. 경남 함양 파로 칼솟타다를 구워 먹는 행사에 참여했다가 슈퍼파인에서 소개하는 비건 제품을 구입하고 흠과로 만든 베이커리 메뉴를 맛보는 행위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으면 하죠. 새롭고 건강한 경험을 제안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가꾸는 삶에 한 발 더 다가가도록 도와주는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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