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상점 곰손의 내부 전경

 

ⓒ 피치 바이 매거진

Life of Repair
내 손으로 직접 고치는 삶에 대하여, 수리상점 곰손

양말 꿰매기부터 아이폰 고치기, 집수리까지. 수리상점 곰손에 가면 전문가 없이도 자신의 소유물은 스스로 고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인터뷰어 박진명
인터뷰이 유혜민(수리상점 곰손 곰손지기)

수리상점 곰손(이하 곰손)은 어떤 공간인가요?
의류부터 우산, 그릇, 전자제품까지 모든 물건을 수리할 수 있는 곳이에요.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운영*하는데, 다양한 수리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각 물건에 대한 워크숍이나 수리 모임, 리페어 카페 등을 진행하죠. 매월 달라지는 워크숍 시간표는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이미 수리 기술이 있는 사람은 이용권을 구입해 수리 공간과 도구만 사용하는 것도 가능해요.
* 목~금요일은 오후 2시부터 9시까지, 주말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진은 몇 명인가요?
30대부터 50대까지 총 6명의 여성으로 이뤄진 팀인데요. 환경문제 해결에 적극적이라는 공통점으로 모였어요. 곰손  서비스로는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에 각자 본업도 있답니다. 팀의 막내이자 곰손지기인 저는 영상 제작자이고, 환경단체 활동가, 리필스테이션 알맹상점 직원도 있어요.

요즘 ‘수리할 권리’*에 관심이 많아진 것 같아요.
곰손을 이용하는 고객 대부분이 기본적으로 물건 하나를 오래오래 사용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특히 스마트폰 수리에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개인 정보의 집합체인 휴대폰을 AS센터나 사설 업체에 맡기는 것을 꺼리는 거죠.
* 소비자가 자신의 제품을 스스로 수리하고 원하는 방식으로 개조할 권리를 뜻한다.
 
주로 어떤 사람들이 워크숍에 참여하는지 궁금해요.
사람들이 곰손에 모이는 이유는 정말 다양해요.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어서, 생활에 유용한 기술을 배우고 싶어서, 아끼던 물건을 고치기 위해서일 수도 있죠. 바탕에는 내 손에 들어온 물건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요. 물건과 함께한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고 오래 쓰는 라이프 스타일을 사랑하는 이들이 주로 곰손을 찾아오죠.

각 워크숍마다 전문가를 섭외한다고 들었어요.
아이폰 수리는 현재 저희 멤버들이 진행하고 있어요. 곰손이 올해 2월에 문을 열었는데요. 초기엔 서강잡스*의 김학민 대표를 초빙하곤 했어요. 김 대표와는 중고거래 앱으로 만난 사이예요. 영상 제작에 사용하는 기기를 처분하기 위해 종종 중고거래 플랫폼을 이용하거든요. 당시 제가 판매자였고 김 대표가 구매자였는데, 여러 매체를 통해 김 대표의 이야기를 접한 터라 제가 먼저 그를 알아봤어요. 이후 아이폰 수리에 관심이 생겼고 제가 다시 연락해 김 대표와 만나게 됐죠. 스마트폰은 스스로 고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잘 맞아 워크숍을 열게 됐고, 저는 서강잡스에서 진행하는 초보 엔지니어 과정을 수료했어요. 아이폰이 어떤 매커니즘으로 작동하는지 이해하고 마이크, 스피커, 카메라, 액정, 배터리 등의 부품이 파손됐을 때 교체할 수 있는 정도의 기술을 배워 모임을 열고 직접 강의를 하고 있어요.
* 애플 제품 수리 전문기업으로, 수리, 판매, 엔지니어 교육을 진행한다.

IT 기기에 아무 지식이 없어도 아이폰 자가 수리가 가능한가요?
일단 배치도를 잘 외우는 것이 중요해요. 모델 시리즈마다 배치도가 다르거든요. 스티브 잡스 생전에 출시된 마지막 모델 아이폰4 시리즈를 분해한 적이 있는데요. 부품 조립이 비교적 간단하더라고요. 배터리도 AA 건전지처럼 넣고 뺄 수 있어 1초면 교체가 가능하고요. 반면 아이폰12 미니의 배터리를 교체하려면 불에 달구는 등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죠. 나사 종류가 굉장히 많고 그 길이도 다 제각각이라 부품에 맞는 나사를 잘 파악하는 것도 중요해요.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액정이 파손되는 등 치명적 문제가 발생하거든요.
아무래도 영상 제작을 하다 보니 전자기기를 많이 다룰 텐데, 문제가 생길 때마다 답답한 마음도 있었을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수리에 꽂힌 것가 바로 그 이유 때문인 것 같아요. 주변 친구들이 제로 웨이스트 숍을 열 때 단 한 번도 부럽거나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제로 웨이스트는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대신 IT 기기를 가까이하며 늘 신제품 출시를 주시하고 수시로 제품을 교체하는 것이 제 일상이니 자연스레 수리에 꽂힌 것 같아요.

곰손을 운영하며 가장 보람된 순간이 있다면?
매주 일요일마다 우산을 수리해주는 선생님이 계신데, 80세에 가까운 노장이시거든요. 저희가 함께 매거진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요. 평소엔 말수가 적고 수리에만 몰두하시는 분이 인터뷰 지면을 오래된 프린터로 복사해서 가져다 주신 거예요. 상점 안에 붙여 놓으라고. 그때 정말 뭉클했어요. 가끔 5,000원짜리 우산을 가지고 씨름할 때 이게 뭐가 그렇게 특별한 일인가, 나는 이걸 왜 하고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수리라는 게 성공과 실패가 극명하게 나뉘는 일이다 보니 2시간 동안 붙잡고 있었는데 고치지 못해 속상할 때도 여러 번 있었어요. 그런데 함께 일하는 동료가 이 일을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아, 이건 사소한 일이 아니지. 우리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게 되더라고요.
물건을 스스로 고치다 보면 소유에 대한 생각도 달라질 것 같은데.
무언가를 많이 가질수록 불행해지는 것 같아요. 현대 사회에선 나를 위한 소비의 대부분이 결국 스스로를 착취하는 구조로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소비를 하면 할수록 잔고는 비어가고 그걸 채우기 위해 투잡, 쓰리잡도 불사하잖아요. 20대까지만 해도 소비 지향적 삶을 살았거든요. 이렇게 돈을 쓰다가는 결국 제가 망할 것 같았죠. 어떻게 하면 소비를 멈출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다 보니 결국 소유하지 않는 것 혹은 내가 가진 것 안에서 해결하는 삶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물건을 오랫동안 계속 사용하면 새 제품 사는 일이 줄고 카드값 때문에 노동의 시간을 늘리지 않아도 되죠. 조금 더 거창하게 생각해보면, 소비자가 전자제품을 오래 사용하면 광물도 덜 캘 것이고 자연을 파괴하는 일도 줄어들고 채굴 과정에서 발생하는 노동 착취를 막을 수도 있겠죠.

수리하는 삶을 살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자기 효능감이나 자존감이 엄청 높아진 것 같아요. 이전에는 일단 고장 나면 번거로워지니까 물건을 애지중지했는데, 요즘에는 ‘고치면 되지, 뭐’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건과의 관계가 달라졌달까. 저는 손바느질에 취약한데요. 잘 못하기도 하지만, 어리석게도 그 기술을 얕잡아보던 때가 있었거든요. 걸음걸이 때문에 신발 뒷축이 잘 닳곤 했는데 신발 밑창을 꼬매는 방법을 배운 뒤 새 신발을 살 필요가 없게 됐죠. 옷을 살 때 오래 입을 수 있나 수선이 편리한가를 중점적으로 보는 것도 달라진 점 중 하나예요.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있다면?
20대 후반에 취재 차 해외의 쓰레기장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어요. 주로 동남아시아 지역을 여행했는데 쓰레기장을 통해 각기 다른 삶의 방식을 들여다 볼 수 있었죠. 특히 인도에서 제 또래 쓰레기 줍는 노동자와 이들을 지원하는 활동가를 만나면서 미처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됐고 시야가 넓어졌어요. 사실 이전까지만 해도 여행을 별로 즐기지 않았어요. 프랑스가 궁금하면 프랑스 영화를, 이탈리아가 궁금하면 이탈리아 영화를 보면 된다고 여겼거든요. 그런데 현장에서 볼 수 있는 것,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분명 다르다는 걸 알게 됐죠.

7월에 곰손 전파사 오픈을 앞두고 있어요. 어떤 공간이 되길 바라는지 궁금해요.
곰손 전파사는 1970~80년대 동네마다 자리했던 전파사에서 콘셉트를 가져왔어요. 동네 전파사가 사라지고 기업에서 AS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면 수리할 공간이 없다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고 곰손의 정체성을 부각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죠. 수리상점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공간이 될 것 같아요. 사실 곰손에 오면 우산부터 그릇까지 뭐든 수리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정체성이 모호해지는 것 같기도 했거든요. 곰손의 시작이 전자제품 폐기물을 줄이고 전자기기를 오래오래 사용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서였듯 곰손 전파사를 통해 전자기기를 내 손으로 고치고 자원순환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 알아가는 시간을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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