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청리단길에 자리한 프랑스어 그림책 서점 책방 리브레리

 

ⓒ 피치 바이 매거진

French Picture Bookstore in Incheon
인천 청리단길에서 만나는 작은 프랑스, 책방 리브레리

빨간 벽돌로 지은 오래된 건물에 자리한 작은 책방. 이곳에 들어서면 샹송이 흘러나오고 프랑스 관련 소품과 프랑스어 그림책이 가득하다. 국내 최초의 프랑스어 그림책 전문 서점, 책방 리브레리의 책방지기를 만났다.

인터뷰어 박진명
인터뷰이 이슬아, 김미연(책방 리브레리 책방지기)

지난해 11월, 두 분이 함께 책방을 열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이슬아(이하 슬아) 통∙번역, 교육 등 프랑스어와 관련된 다양한 활동하고 있는데요. 직접 번역에 참여할 만큼 워낙 그림책을 좋아해 언젠가 프랑스 그림책 전문 서점을 운영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갖고 있었어요.
김미연(이하 미연) 제 큰 딸과 언니(슬아)의 둘째 딸이 친구라 저희도 친해졌는데,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향이 잘 맞더라고요. 저 역시 책을 좋아하고 동네 서점에 대한 로망이 있었거든요. 프랑스어는 할 줄 모르지만 오랫동안 항공사에서 승무원으로 일하며 프랑스를 자주 간 덕분에 프랑스 문화에 대한 내적 친밀감도 있었고요. 프랑스어 그림책 전문 서점을 열고 싶다는 언니의 말에 귀가 솔깃했죠.

각자의 역할은 어떻게 나뉘나요?
슬아 저는 주로 책을 큐레이팅하고 서가를 관리해요. 대부분 그림책이고 프랑스 작가의 책, 프랑스어 원서, 중고 책도 조금 있어요. 그림책은 보통 현지 출판사에 연락해 직수입하고, 중고 원서는 손님이 갖고 있던 책을 가져오면 다른 책으로 교환해주는 방식으로 모으고 있어요.
미연 공간 구성, 디스플레이 등 인테리어에 신경을 쓰고 있어요. 본업으로 자리를 비울 땐 틈틈이 그림책 소개나 책방 홍보 영상을 만들곤 해요. 아직 더 배워야 하지만(웃음). 각자 본업이 있기 때문에 책방은 금, 토, 일 딱 3일만 운영해요. 어쩌다 책방 문 여는 날과 비행 스케줄이 겹칠 때가 있는데, 밤새 비행하고 와서 책방에 출근해도 지치지가 않더라고요. 책방에서는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어요. 언니가 배려를 많이 해주기도 하고, 책방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재미있죠.
 
원어민 선생님을 섭외해 프랑스어 클래스도 진행하죠?
미연 마리(Marie) 선생님은 책방 행사 때마다 항상 찾아오던 손님이었어요. 언제부턴가 책방에 오면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읽어주더라고요.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니까 클래스를 진행할 수 있는지 제안했는데, 흔쾌히 수락해줬어요. 한 달에 한 번씩 서점에서 책을 읽어주고 함께 놀기도 하며 아이들에게 특별한 순간을 선물하고 있죠.
슬아 온라인 수업은 제가 진행해요. 매달 그림책 몇 권(권수는 매번 달라요)을 선정해 수강생에게 택배로 보내주고 수업 시간에는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요. 딱딱한 프랑스어 교재 대신 그림책으로 수업 하니 다들 재미있어 하더라고요. 대부분의 수업은 초급자 이상부터 들을 수 있는데, 며칠 전 옆 가게 사장님이 참여해보고 싶다고 해서 다음 달엔 기초반 수업을 개설할 예정이에요(웃음).

굴포천이라는 동네를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슬아 이 자리에는 원래 닭 도소매점이 있었어요. 이 공간 맞은편에 있는 나무가 되게 멋진 거예요. 수령이 오래된 나무인데, 오랫동안 한 자리에서 큰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가 책방이 나아가야할 길 같았달까. 제가 책방을 운영하는 동안 저희 아이들이 이곳에 와서 시간을 보내길 바랬는데 바로 앞에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원이 있으니 이만한 공간이 없겠다고 생각했죠.
미연 책방을 찾는 가족 단위의 손님들도 그런 식으로 책방을 이용하곤 해요. 엄마, 아빠가 책을 살피는 동안 옆에서 책을 읽기도 하고 서점 앞 공원에서 놀기도 하죠. 서점 위치가 접근성이 좋은 편은 아니라 걱정했는데, 공원과 놀이터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빨간 벽돌 건물에 ‘서점’이라는 심플한 상호를 흰색 페인트로 칠한 것도 인상적이에요. 외진 골목에서 “이런 공간이 있어?”하며 발견하는 재미도 있을 것 같아요.
미연 지금은 일부러 찾아오는 분들이 더 많지만, 사실 접근성보다는 골목 여행의 매력을 내세우고 싶었어요.
슬아 간혹 지나가다 카페나 와인바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어요(웃음).

공간을 꾸밀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미연 외국의 대학 도서관이나 동네 서점을 많이 참고했어요. 책장이 천장까지 쌓여 있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할만큼 책에 압도 당하는 분위기를 내고 싶었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더라고요. 대신 동화책에 나올 법한 장면을 연출하려고 했어요. 책장을 옮기면 등장하는 숨은 공간, 보물 상자가 있는 다락방 등등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의 동심을 자극할 만한 디테일을 설정했죠.
 
책방과 관련해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있나요?
슬아 서점을 열기 전부터 그림책에 관심이 많아 프랑스 내 여러 서점의 SNS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는데요. 코로나가 한창 성행할 때 서점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책방지기들이 SNS 라이브로 새로운 책을 소개하곤 했어요. 덕분에 다양한 작가의 재미있는 책을 많이 알게 됐죠. 그중에서도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300킬로미터 떨어진 라발(Laval)이라는 소도시에 있는 리브레리 엠 리흐(Librairie M'lire)에서 소개한 <아빠, 아빠, 아빠(Papa, Papa, Papa>라는 책이 인상 깊어 한국어 번역을 제안했고, 2021년 한글판을 출간했어요. 언젠가 꼭 그 서점을 방문하고 싶어요.

여행할 때 현지 서점을 더 재미있게 즐기는 나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슬아 책방지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면 그 서점을 이해하는 깊이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책방지기와 꼭 대화를 나누지 않더라도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죠. 서점에 다녀간 사람들이 남긴 방명록을 살펴본다든지, 책방의 SNS 계정을 팔로우한다든지. 얼마 전 제주 세화에 있는 작은 책방에 들렸는데 젊은 청년 혼자 운영을 하고 있더라고요. 수줍음 많고 말수가 적은 책방지기가 궁금해 책방 SNS 계정에 들어가보니 말하기엔 부끄러운, 일종의 고백 같은 글을 짤막하게 적어놨더라고요. 책방지기의 캐릭터나 이야기를 알고 그 공간을 방문하면 느껴지는 공기의 분위기가 이전과는 묘하게 달라지는 것 같아요.
책방을 직접 운영해보니 어떤가요?
미연 지인이 이런 얘기를 한 적 있어요. 아이가 없는 삶은 기쁨도 작고 슬픔도 작다고. 책방을 운영하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 삶에 책방이 없었다면 지금보다 덜 힘들었겠지만 그만큼 즐거움도 줄었을 거예요.
슬아 자식은 잘나고 예뻐서 키우는 게 아니잖아요. 그냥 이 아이를 온전히 잘 지켜주고 싶은 것처럼 책방도 그래요. 책방을 지속 가능하게 운영하기 위해 본업도 더 열심히 하게 되고요. 제게 책방은 더 부지런하고 용감하게 살 수 있게 도와주는 마법의 묘약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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