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나희

Time Travel to Malta
필름 사진으로 떠나는 몰타로의 시간 여행

빛에 태운 필름 조각 속 몰타의 풍경이 불러낸 잊힌 시간.  

글・사진 * 박나희
* 이쪽도 저쪽도 아닌 존재와 현상, 관계에 관심을 갖고 있다. 형제가 불분명한 이미지, 원래의 색을 알 수 없는 흑백사진처럼 상상과 해석의 여지를 주는 이미지에 매료되며 예상하지 못한 순간을 포착하거나 그 장면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창조해낼 때 즐거움을 느낀다.

6년 전, 나는 독일의 한 시골 마을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했다. 1년여의 그 기간 동안 베를린은 물론 파리, 바르셀로나, 런던, 암스테르담 등 유럽 각국의 도시를 여행하며 필름 사진을 남겼다. 한 번은 새해맞이 나홀로 여행에 도전했는데, 목적지는 몰타라는 작은 섬이었다. 당시만해도 잘 알려지지 않은 꽤 낯선 여행지였다.
페리를 타고 고조섬(Gozo Island)에 내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타피누(Ta’Pino) 성당이었다. 새파란 하늘 아래, 바닐라 크림 같은 들판이 작은 마을을 둘러싸고 있었다. 사막도 초원도 아닌 장면이 이국적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유럽의 비슷비슷한 풍경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마치 새로운 대륙을 발견한 콜롬버스라도 된 듯 오랜 시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시간 여행을 온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충격은 꽤 오래갔다. 길바닥에 앉아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홀린 듯 외딴 길로 들어섰다가 거짓말 같은 장소를 발견하기도 했다. 부드러운 풀과 나무로 가득한 숲에는 대나무로 만든 전망대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망설임 없이 사다리에 오르니 온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30분 넘게 경치를 바라보았다. 그날부터 쉬지 않고 높은 언덕 위에서 몰아치는 파도와 거센 바람을 온몸으로 맞은 나는 결국 심한 독감에 걸렸다.
그 탓에 남은 일주일을 약 기운에 취해 떠돌았다. 그래서일까. 그때 남긴 사진들도 죄다 꿈처럼 흐릿하다. 당시 카메라를 제대로 다룰 줄 몰랐던 나는 필름을 태우기 일쑤였고, 덕분에 현실과는 동떨어진 독특한 느낌의 사진이 여럿 탄생했다. 새파랗고 새하얗고 뿌연 사진들을 뒤적이다 보면 그 기억이 그저 꿈같다.
그중에서도 또렷이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다. 고조의 마을을 떠돌던 중 골목 사이 숨어 있는 작은 화실에서 그를 발견했다. 검은 뿔테 안경, 빵모자를 쓴 백발의 그는 붓질에 몰두해 있었다. 창을 통해 대놓고 그를 구경하던 나에게 그가 환한 미소와 함께 들어오라 손짓했다. 나는 이끌리듯 들어섰고 그곳에서 우리는 꽤 긴 대화를 나누었다.
영국에서 35년간 디자이너로 일했다는 그는 은퇴 후 이곳으로 왔다. 자유로운 그의 일상이 내가 꿈꾸는 미래 같기도 했다. 당신처럼 살고 싶다며 당돌한 고백을 던진 내게 그는 담백한 조언을 건넸다. “지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림을 그려. 상업 예술을 하게 되면, 자기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거야. 넌 아직 어리니까 지금부터 차근차근 나아가다 보면 꼭 꿈을 이룰 거야.”
지금처럼 사진으로 밥벌이를 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던 그때는 그가 건넨 단어들이 그저 별 뜻 없이 흘러가는 듯했다. 이제서야 그 말의 의미가 와닿기 시작한다. 이 글을 정리하며 내가 만든 몰타 여행 브이로그를 다시 찾아보았다. 영상 속 나는 꿈 하나를 이루었다고 고백한다. 그 꿈이 무엇이었을까. 솔직히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서른을 앞둔 나에게 ‘스물셋의 나’는 낯설다.
‘가끔 과거의 나는 지금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하고 있다.’

우연히 발견한 당시의 메모를 보며 지금의 나도 고개를 끄덕인다. 다만 되고 싶었던 그 모습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릴 수 없을 뿐. 빛에 태운 무수한 필름 조각들처럼 기억도 점점 옅어지고 부서진다. 과거의 나를 이해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될 만큼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지기도 한다. 사진 속 초점이 날아간 내 얼굴을 보며 다짐해본다. 지금의 내 모습을 오랫동안 기억하겠다고. * 치타델라(Cittadella) 의 전경을 하염없이 내려다본 6년 전의 내가 그러했듯이, 지금 내가 사랑하는 풍경,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오래도록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서 가능한 한 아주 느리게 잊어가야만 한다.

고조섬의 수도 빅토리아(Victoria)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는 유서 깊은 요새. 청동기 때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지역으로, 고대 로마부터 18~19세기 나폴레옹 전쟁에 이르기까지 군사적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9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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