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바스크 요리 중 유명한 토르티야 데 파타타스의 일러스트레이션.

 

© 김은빈

Culinary Journey in Spain's Basque Country
마하키친 신소영 셰프의 스페인 바스크 미식 여행

피레네산맥을 사이에 두고 스페인 북부와 프랑스 남서부에 걸쳐 있는 바스크 지역은 고유한 언어와 역사를 바탕으로 독자적 문화와 풍요로운 미식을 자랑한다. 세계적인 미식의 도시이자,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바스크 음식의 중심지로 불리는 스페인 산세바스티안(San Sebastián). 마하키친 * 신소영 셰프가 이 도시에서 보낸 여름을 떠올리며 바스크의 미식 다섯 가지를 소개한다. 

신소영
일러스트레이션 김은빈
* 예술경영학을 공부하다 요리의 길에 뛰어들었다. 스페인 산세바스티안의 요리 학교 루이스 이리사르(Luis Irizar)를 졸업한 뒤 우리나라 제철 식자재로 창작한 스페인 요리를 소개하는 마하키친을 10년째 운영하고 있다. 바스크 요리 탐험기와 창작 레시피가 담긴 책 〈나를 만드는 바스크 요리〉를 썼다.

바스크의 여름
19세기에는 귀족들의 여름 휴양지로, 지금은 수많은 미쉐린 가이드 레스토랑으로 유명한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산세바스티안은 벨 에포크 시대의 여유로운 느낌이 남아 있는 도시입니다. 한때는 화려한 카지노였던 황금색 시청 건물은 맑은 날이면 푸른 하늘과 대조를 이루지요. 작은 꽃으로 꾸민 시청 앞 광장을 지나면 라콘차 (La Concha) 해변에 당도합니다. 산세바스티안의 상징인 해변의 하얀 펜스 너머로 파란 줄무늬의 파라솔과 그 아래 자리 잡은 여유로운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요리학교 졸업을 앞두고 바스크 전통 식당에서 일하던 여름의 풍경입니다. 정신없이 바쁜 점심과 저녁 시간 사이에는 바닷가의 모래밭에 잠시 드러눕곤 했습니다. 볕으로 달구어진 따끈한 모래에 잔뜩 긴장한 어깨죽지가 녹아내리는 듯 했지요. 그 해 여름을 떠올리며 바스크를 대표하는 음식 다섯 가지를 골라봤어요.

 
안초아(Anchoa)
이른 여름을 알리는 바스크 지역의 제철 생선은 안초아입니다. 우리네 멸치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크기는 살짝 큰 듯합니다. 여름에 잡은 안초아는 겨울을 지낸 녀석들이라 그런지 가을에 수확한 것보다 더욱 크고 살이 많습니다. 갓 잡았을 때는 푸른빛을 띠다가 점점 파란색으로 변하고, 상할 때쯤엔 검은색이 짙어집니다. 식초와 올리브유에 재워 생으로 먹고, 튀겨도 먹고, 구워도 먹고, 소스에 끓여서도 먹는 등 다양한 조리법이 있지만, 연중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염장입니다. 할머니들이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발라낸 안초아의 살은 소금에 절여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단단해지고 감칠맛을 얻습니다. 이것을 소금에 절인 올리브와 발효한 바스크 전통 고추인 긴디야(Guindilla)와 함께 꼬치에 꿰어 먹으면 아주 강렬한 한 방의 애피타이저가 됩니다. 짜고 시고 감칠맛 가득한 세 가지 재료가 한 입에 들어가니까요. 이 요리는 1946년 개봉한 미국의 느와르 영화 〈힐다〉에서 영화배우 리타 헤이워스(Rita Hayworth)가 연기한 마성의 여주인공 이름을 따서  힐다(Gilda)라고 부릅니다.

[추천 장소]
레스토란테 카사 887(Restaurante Casa 887)

바스크 요리를 공부한 브라질 셰프의 열정 넘치는 식당.  안초아 엔 마리포사(마리포사는 나비라는 뜻으로, 양쪽으로 펼쳐 절이는 특별한 섬세함을 요하는 멸치를 가리킨다, Anchoa en Mariposa)가 올라간 바삭한 토마토소스의 토스트를 꼭 맛보길. 화이트 와인이 한없이 들어가는 맛이다. Gran Vía 9 entrada por calle Zabaleta, San Sebastian
 
[힐다 레시피]
재료 

앤초비 1병, 올리브 절임 1병, 긴디야 고추 절임 1병, 올리브유, 꼬치
과정
1.    고추 절임을 반으로 자른다.
2.    꼬치에 올리브, 반으로 접은 앤초비, 반으로 자른 고추 2개, 반으로 접은 앤초비, 올리브 순으로 꿴다.
3.    올리브유를 듬뿍 뿌린다. 

 
핀쵸스(Pintxos)
한 번쯤 들어보셨죠? 스페인에는 타파스(Tapas)라는 음식이 있습니다. 스페인어로 ‘뚜껑’이라는 뜻으로, 주로 바에서 음료와 함께 즐기는 적은 양의 안주이자 간식을 가리킵니다. 기원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더운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음료를 낼 때 벌레가 꼬이지 않도록 빵으로 입구를 덮었다는 설, 중세 스페인 아라곤 왕국의 왕 알폰소 3세가 병을 고치기 위해 소량의 식사를 자주 먹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 아랍의 지배 기간 동안 적은 양의 다양한 음식을 한 상에 차려 손님을 대접하던 그들의 풍습에서 배웠다는 설 등 정말 다양합니다.
핀쵸스는 타파스의 바스크어 표현입니다. 핀쵸(Pintxo)에 꼬챙이라는 뜻이 있기에 여러 재료를 높게 쌓아 꼬치로 고정한 음식의 모양새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꼬치를 끼웠든 안 끼웠든, 바스크 지역의 여느 바에서 어느 때나 즐길 수 있는 적은 양의 음식을 핀쵸스라고 통칭합니다. 때로는 재료나 조리법에 공이 더 많이 들어가는 고급 타파스를 핀쵸스라 부르기도 하고, 바스크 지역의 특색이 있는 타파스(염장 대구, 안초아, 절인 고추 등 바스크 고유의 식자재를 사용)를 핀쵸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 바에서 저 바로 옮겨 다니며 타파스와 핀쵸스를 즐기고 수다를 떠는 행위가 바스크를 비롯한 스페인 전역의 전형적인 식문화이자, 스페인 사람들의 일상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매일 오후 대여섯 시만 되면 구시가의 좁은 거리에 늘어선 스탠드 테이블에서 삼삼오오 핀쵸스와 와인을 즐기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추천 식당]
보데가 도노스티아라(Bodega Donostiarra)
모양보다 맛을 따지는 현지인이 자주 찾는 실속 맛집. 모든 메뉴가 다 맛있지만, 바스크 특산물인 절인 보니토(Bonito, 가다랑어)와 긴디야 고추 샌드위치와 캐러멜라이즈드한 양파와 녹진한 감자가 쏟아지는 즉석 미니 오믈렛은 꼭 맛보시길. Calle matia 36, San Sebastian
[핀쵸 데 감바스 레시피]
재료
새우 12마리, 베이컨 2줄, 양파 1/4개, 피망 1/4개, 파프리카 1/4개, 토마토 1/4개, 마늘 1톨, 올리브 절임 6알, 셰리 식초 1큰술, 올리브유 3큰술, 소금, 후추, 바게트 슬라이스 4장
과정
1.    바게트는 슬라이스 해서 오븐이나 토스터기에 바싹 굽는다.
2.    양파, 피망, 파프리카, 토마토, 마늘, 올리브를 잘게 다진다. 소금을 살짝 뿌려두었다가 물기를 제거하고 식초, 올리브유, 후추를 넣고 잘 섞는다.
3.    베이컨은 3mm로 자른다.
4.    꼬치에 새우, 베이컨, 새우, 베이컨, 새우 순으로 꿰고 소금, 후추로 간 한다.
5.    프라이팬에 꼬치를 구워낸 후 바게트 위에 올리고, 비네그레트소스를 끼얹어 완성한다.

 
시드라(Sidra)
바스크를 대표하는 전통술 중 하나가 사과주 시드라입니다. 시드라 시즌인 1월과 4월 사이에 바스크를 방문하면 밤나무로 만든 거대한 발효통에서 시드라를 바로 따라 마실 수 있지만(바닥에 마구 흘리면서) 이 시기를 놓쳤다고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어요. 병에 담긴 시드라는 연중 어느 때나 마실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가을에 수확한 사과를 겨우내 발효해 만든 첫 번째 시드라 통을 열 때 전통악기를 연주하며 온 마을에 이 소식을 알리고 사람들을 불러 모아 축제를 벌였다고 합니다. 바스크 사람들은 시드라를 참 좋아해서 해마다 사가르도테기(Sagardotegui)라고 불리는 시드라 양조장을 찾아가 한 해 동안 마실 시드라를 박스째로 사오곤 합니다. 여기서 잠깐, 바스크어로 사가르(Sagar)가 사과인데, 우리말과 너무 비슷하지 않나요?
로마 시대부터 포도주 산지로 유명한 스페인이지만, 바스크를 비롯한 스페인 북서부를 대표하는 ‘모두를 위한 술’은 시드라라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리스 에서 기독교로 이어지는 포도주의 전통 이전에, 그 땅에 살아온 켈트인들이 즐기던 술이 시드라이기 때문입니다. 도수가 4~6도 밖에 되지 않고, 감미료나 에탄올 등 첨가물을 넣지 않는 천연 발효주임에도 가격이 저렴해서(750ml 용량 한 병이 보통 3유로 미만, 한화로 5,000원 내외) 언제든 부담없이 마실 수 있습니다. 자연 발효 중에 생긴 기포가 상당해서 청량감이 좋으며, 과즙을 충분히 발효시키기 때문에 전혀 달지 않습니다. 신맛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약간의 짠 맛이 느껴지고 발효취가 꽤 있는데 거슬리지 않는 희한한 술입니다.

[추천 시드라 양조장]
사피아인 사가르도아(Zapiain Sagardoa)
16세기부터 사과를 재배해온 사피아인(Zapiain) 가문의 유서 깊은 양조장. 첨가물이나 방부제를 전혀 넣지 않은 바스크 전통 시드라를 맛볼 수 있다. 가이드 투어에 참여해 양조장을 둘러보고 이곳에서 생산된 시드라를 시음해볼 것. www.zapiain.eus/en/
 
[치스토라 알라 시드라 레시피]
재료
치스토라(생 소시지) 350g, 올리브유 2큰술, 월계수잎 1장, 시드라 400ml
과정
1.    달군 프라이팬에 올리브유, 한 입 크기로 자른 치스토라, 월계수잎을 넣고 3분 정도 굽는다.
2.    시드라를 붓고 20분 정도 보글보글 끓인다.
Tip) 빵을 준비해서 초리소와 시드라가 우러난 국물을 찍어드시라.

 
토르티야(Tortilla)
바스크를 포함해 스페인 사람들이 늘 먹는 음식을 꼽는다면 파에야(스페인의 전통 쌀 요리)가 아니라 토르티야일 거예요. 아침, 점심, 저녁으로 먹고, 간식이나 야식으로도 먹고, 도시락으로도 싸 가고, 집이나 카페, 바에서도 언제든 먹을 수 있고, 고급 식당에서도 이를 재해석한 메뉴를 내고, 누가 토르티야를 잘 만드나 작은 마을부터 대도시까지 수도 없이 많은 대회가 열리니 말입니다. 제가 현지 식당에 실습 나가서 가장 먼저 배운 요리도 달걀 16개로 만드는 대형 토르티야였습니다(제일 좋아하는 스페인 요리도 토르티야입니다).
토르티야는 ‘케이크’를 뜻하는 토르타(torta)의 줄임말로, 동그랗다는 뜻입니다. 수녀원에서 만드는 동그란 빵이나 둥근 치즈, 멕시코의 둥글넓적한 샌드위치도 모두 토르티야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중남미에서 먹는 밀이나 옥수수로 만든 전병도 마찬가지지요. 라틴아메리카 대륙에서 유럽으로 전해져 스페인에서는 17세기가 되어서야 널리 먹기 시작한 감자는 가난하고 힘든 시절 배를 채워주는 식자재였어요. 이 감자를 넣은 스페인식 오믈렛 토르티야 데 파타타스는 오늘날 스페인의 국민 음식으로 꼽힙니다.


[추천 식당]

바 틴티리(Bar Txintxirri)
빌바오 구겐하임 근처의 아담한 핀쵸 바. 현지에서 토르티야 맛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포크를 대면 달걀물이 주르륵 흘러나오는 토르티야가 정말 맛있다. 규모가 정말 작아서 바의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자연스레 와인 한 잔을 나누며 수다를 떨게 되는 다정한 곳이다. Juan Ajuriaguerra, Bilbao
 
[토르티야 데 파타타스 레시피]
재료
감자 500g, 양파 150g, 달걀 5개, 식용유(유전자 변형 원재료 사용의 우려가 없는 현미유나 올리브유) 100ml, 소금
도구
지름 20~25cm의 코팅 프라이팬
과정
1. 양파는 채 썰고, 감자는 나박 썬다. 감자는 물에 잠시 담가 전분기를 제거한다.
2. 프라이팬에 식용유 100ml와 양파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하며 볶는다.
3. 양파가 투명해지면 감자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하며 볶는다.
4. 감자가 노릇하게 익으면 생수를 50ml 정도 붓고 뚜껑을 닫아 증기로 익힌다. 감자는 주걱으로 눌렀을 때 부스러질 정도로 푹 익힌다. 다 익으면 팬에 담은 기름은 그대로 두고 감자만 덜어둔다.
5. 볼에 달걀을 풀고 감자와 양파 볶음을 넣은 뒤 소금으로 간을 한다.
6. 4의 프라이팬을 뜨겁게 달군 후, 달걀 물을 부어서 저어가며 익힌다.
7. 접시를 대고 뒤집어서 양면을 고루 익힌다.

 
살사 틴타 데 칼라마르(Salsa tinta de calamar)
미식의 성지 바스크에는 네 가지 색의 독특한 전통 소스가 있습니다. 파슬리와 생선 육수로 만드는 초록색의 살사 베르데(Verde), 대구 껍질의 젤라틴을 사용해 끈적한 질감이 특징인 하얀 소스 필필(Pilpil), 바스크 전통 고추와 붉은 양파로 만드는 빨간색 소스 비스카이나(Bizkaina), 마지막으로 오징어 먹물로 만드는 검은 소스입니다. 그 중 오징어 먹물 소스는 전혀 식욕을 자극할 것 같지 않은 색이지만 한번 맛보고 나면 볼 때마다 바로 군침을 흘리게 될지도 몰라요. 이 검은색 소스에 퐁당 빠진 어린 오징어 요리가 치피로네스 엔 수 틴타입니다. 오래 볶은 달콤한 양파와 새콤한 화이트 와인, 토마토와 먹물의 감칠맛이 녹아든 소스 또한 별미죠. 몸통을 다리로 채워 더욱 통통해진 오징어는 한입 베어 물면 쫄깃하기보다는 한없이 부드럽습니다. 심지어 흰밥을 곁들여 먹으면 더 맛있는데, 한국 사람에겐 자연스레 짜장밥이 연상되지요. 지금 이 글을 쓰는 깊은 밤에도 생각나는 맛이네요.

[추천 식당]
레스토란테 레콘도(Restaurante Rekondo)

산세바스티안 구시가를 벗어난 전원에서 바스크 전통 요리를 섬세하고 우아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아름다운 테라스에서 핀쵸와 차콜리(Txakoli, 바스크 전통 탄산 화이트 와인)로 입맛을 돋군 후, 실내로 자리를 옮겨 식사를 이어가면 더욱 좋다. 그릴 요리와 디저트 또한 훌륭하며, 전세계 레스토랑을 대상으로 와인 리스트를 평가해 최고의 레스토랑을 선정하는 미국 와인 전문 매거진<와인 스펙테이터> 에서 선정하는 레스토랑 어워즈에 선정될 정도로 와인 저장고가 매우 훌륭하니 마시지 않더라도 보물 창고 구경을 꼭 요청할 것! Paseo de Igueldo 57, Donostia 
 
[치피로네스 엔 수 틴타 레시피]
재료
오징어 500g, 양파 2개, 토마토 2개, 마늘 1쪽, 오징어 먹물 1작은술 ,생선 육수 500ml, 화이트 와인 100ml, 바게트 4조각, 올리브유, 소금, 꼬치
과정
1.    냄비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다진 마늘과 양파를 천천히 볶는다.
2.    노릇하게 구운 바게트를 양파볶음에 넣고 같이 볶는다. 
3.    양파볶음에 다진 토마토와 화이트 와인에 갠 오징어 먹물을 넣고 졸인다.
4.    생선 육수를 넣고 약불에 30분 정도 끓인다. 갈아서 체에 거른다.
5.    오징어의 몸통에 다리를 넣고 꼬치로 여민 뒤,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노릇하게 굽는다.
6.    냄비에 4의 소스를 붓고 구운 오징어를 넣은 다음, 30분 정도 보글보글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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