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유진

Seoul, Where the Familiar Meets the Unexpected
서울 여행에서 찾은 오래되고 낯선 장소들

사진가 이유진이 X-E4 카메라를 들고 서울의 익숙한 길에서 새로움을 발견했다. 한강 위로 낮게 걸쳐 있는 잠수교부터 서울의 오래된 동네들을 내려다보는 한양도성까지, 그 짧은 여정을 따라가본다.

글 · 사진 이유진
협찬 후지필름일렉트로닉이미징코리아

누군가를 오랜 기간 알고 지냈다는 사실이 필연적으로 관계의 깊이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도시와의 관계도 그렇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 서울은 내게 여전히 익숙하지만 낯선 곳이다. 겨울의 차가움을 좋아하지 않은 나는, 겨울이 오면 주로 집에 머물거나 추위를 피해 따뜻한 곳으로 떠나버렸기에, 겨울 속 서울의 모습은 더욱 낯설게 다가온다.
여행을 떠나면 목적지 없이 거리를 걷곤 한다. 낯선 곳의 골목골목을 천천히 살피다 보면 그 도시와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하지만 막상 한국에 돌아와서는 익숙한 곳만 찾게 되는 건 왜일까? 물론 익숙한 공간 속에서 새로운 장면을 발견하는 것도 무척 좋아하지만 말이다. 이번 겨울은 나의 오랜 낯선 도시, 서울을 걸어본다.
X-E4를 들고 떠난 이번 서울 여행의 여정은 익숙한 곳에서 시작했다. 늘 걷던 길이라도 시간 따라 그곳에 드리우는 그림자가 매일 달라지고, 무심히 지나쳤던 것이 새삼스레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평소 반려견 페퍼와 성북동을 산책하다가 마주치는 순간을 사진에 담는데, 이때는 가볍고 직관적인 카메라가 필수다. 얼핏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늘 달라지는 순간 속에서 원하는 장면을 포착하려면, 언제나 카메라를 지니고 있어야 하니까.
나는 여행 중에는 보통 가볍고 조작이 편리한 P&S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가장 자주 쓰는 필름 카메라는 손바닥 정도의 크기의 아주 작고 가벼운 후지필름 Klasse W다. 여기에 길이가 넉넉한 넥 스트랩을 연결해 어깨에 대각선으로 메고 다니면서 원하는 순간에 카메라를 바로 집어 들어 촬영한다. X-E4는 Klasse W와 비교해 폭이나 가로 길이가 거의 같을 정도로 작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을 큰 축복으로 여기는 나에게, 기존에 쓰던 필름 카메라와 비슷하면서도 원하는 장면을 더욱 섬세하게 담을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가 생긴 것이다.

P&S 필름카메라 : Point and Shoot. 자동 초점과 자동 노출 기능 등을 탑재해 사용하기 편리한 카메라.

‘팬케이크 렌즈’라고 불리는 XF27mm II를 장착한 X-E4는 반려견과 산책을 하면서 가볍게 들고 다니기에 편하다. 렌즈를 포함해 500그램이 채 되지 않는 가벼운 무게와 직관적인 조작법 덕분에 빠르게 원하는 순간을 담기에도 적합하다. 깔끔한 디자인 또한 매력적인데, 엄지 그립 TR-XE4를 핫슈 부분에 함께 끼워 사용하면 촬영 시에는 물론 미관상으로도 안정감을 더해준다.

특히 X-E4와 가볍게 들어맞는 새로운 버전의 XF27mm II 렌즈는 조리개 링이 장착되어 더욱 활용도가 높다. 이번 서울 여행에서 이 렌즈가 빛을 발한 순간은 종로구 창신동의 한 골목에서였다. 낙산공원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가면 닿는 창신동의 언덕길을 지나다 작은 골목이 눈에 띄었다. 두 벽돌 건물 사이에 놓인 가로등과 전선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절벽 아래의 주택과 나무. 익숙함과 낯섦이 공존하는 모습이었다. 한 프레임 안에 이 모든 모습을 담고 싶었고, 조리개를 13으로 조여 원하는 사진을 촬영했다.
서울의 구석구석을 다양한 앵글과 시선으로 담고 싶을 땐 XF16-55mm, XF55-200mm, XF50-140mm 같은 줌 렌즈를 선택했다. 작은 크기의 보디 덕분에 렌즈를 추가해도 전체 장비 무게가 줄어 부담 없이 걸으며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만약 줌 렌즈가 부담스러울 때에는 센서의 능력을 십분 활용하면 된다. 최대 해상도 6,240×4,160픽셀을 지원하는 센서 덕분에 이미지 크롭도 그만큼 자유롭다. 단렌즈로 촬영하고 이미지를 크롭하는 방식으로 크리에이티브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것. X-E4는 후반 작업의 부담감도 줄여준다. 이번 촬영에는 필름 시뮬레이션의 클래식 네거티브를 주로 사용했고, 색 농도와 톤 곡선 등의 설정을 촬영 전 미리 세팅해 적용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촬영 장소는 성북동에서 낙산공원으로 이어지는 한양도성 순성길과 서울로 7017이었다. 한양도성 순성길은 페퍼와도 자주 걸었지만, ‘우리 동네’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평소 그냥 지나쳤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페퍼와 산책할 때는 XF27mm II 렌즈를 장착해 순성길에 올랐는데, 가벼운 무게 덕분에 재빠르게 혜화문과 그 아래로 지나가는 버스를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었다. 혼자 다시 순성길을 찾을 때는 망원 줌 렌즈를 장착해 천천히 순성길을 둘러보며 형형색색의 지붕이 모여 있는 마을과 재개발이 진행 중인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서울역 앞의 서울로 7017도 인상 깊었다. 고가도로 아래로 지나가는 열차, 고층 건물 사이에 자리 잡은 숭례문, 수많은 차선 위를 달리는 차량. 서울의 이 모든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장소가 또 있을까? 다양한 조망뿐 아니라 서울로 7017 곳곳에 자리한 의외의 모습이 흥미를 더해주었다. 잠시나마 겨울을 잊게 해주려는 듯 주황색 아크릴 화분에 담긴 소철나무와 파란 타일의 ‘공중자연쉼터’ 족욕탕이 특히 그랬다. 이곳은 얼마전 새로 개장한 서울역 옥상정원과도 연결된다. 정원에서는 독특하게 나선형으로 진입로가 이어지는 서울역 야외 주차장도 바라보인다. 다시 한번 서울 여행을 떠나게 된다면, 이처럼 도시의 다양한 숨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서울로 7017을 먼저 찾을 것 같다.
스쳐가는 장면에 눈길을 주다 보면 우리는 익숙한 길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낯선 길 위에서도 반가운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이번 나의 짧은 서울 여행처럼 말이다. 그러한 발견과 만남을 기록할 도구와 함께할 때 여행은 더욱 즐겁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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