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역에 자리한 전통주 보틀숍&바 우정

 

ⓒ 피치 바이 매거진

Drinking at the Barbershop
중곡동 주민들은 우정이발관에서 막걸리를 마신다

예로부터 동네 중앙에 자리한 우물은 마을에 생활 용수를 제공하는 한편, 주민들이 모여 교류하는 커뮤니티 공간의 기능을 했다. 서울 옛 동네의 정겨운 모습을 간직한 중곡동에는 우물을 자처하는 곳이 있다. 40년 된 건물에서 ‘우정이발관’이라는 간판을 떼지 않은 채 우리술을 소개하는 전통주 보틀숍&바 우정이다.

인터뷰어 박진명
인터뷰이 이예람(우정 우물지기)

중곡동에 자리 잡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우정을 오픈하기 전 이곳은 지인이 운영하는 작은 양조장이었어요. 양조장으로 사용하기엔 공간이 너무 크다며 함께 나눠 쓸 사람을 찾고 있더라고요. 마침 제가 디자이너로 일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쉬고 있었거든요. 처음에는 좋아하는 막걸리로 취미 생활이 해볼까 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전통주 보틀숍을 열었어요. 이후 양조장은 규모가 커져 이사했고 저 혼자 남게 됐죠. 막걸리에 곁들일 수 있는 요깃거리를 함께 판매하고, 팝업이나 재즈 공연 등의 이벤트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리뉴얼했어요.

‘우정이발관’이라 적힌 낡은 간판이 인상적이에요. 간판을 그대로 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금전적 문제가 가장 컸어요. 내부 인테리어도 양조장을 운영하던 지인이 처음 고친 그대로를 사용하고 있어요. 목재로 마감한 천장을 뜯어 층고를 높이고 그 마감재를 벽에 이어 붙여 레트로한 분위기를 살려놨더라고요. 우정은 그 분위기에 맞춰 브랜딩했고요. 눈치챘겠지만 우정이라는 이름도 이발관 상호명에서 따왔어요. 우물 정(井)을 글자 사이에 넣어 로고를 만들면서 ‘우물’이라는 콘셉트를 추가했죠.
처음엔 동네 주민들이 이 콘셉트를 이해할지 확신이 없었어요. 예상대로 어려워했죠. 이발관으로 생각하고 들어오는 어르신도 더러 있었으니까요. 자리 잡은 지 2년 정도 되니까 “이발소에 막걸리 마시러 왔다.”고 재미있게 받아주더라고요.

요즘 레트로 콘셉트의 가게가 많은데, 동네 주민을 가장 신경 쓴 이유는 무엇인가요?
앞서 얘기한 것처럼 사업성이나 유동성을 고려하고 이 동네에 자리 잡은 게 아니기 때문에 현지 주민들의 반응이 가장 신경 쓰였던 것 같아요. 취미로 시작해 공간을 키우는 중이니까요.
 
전통주 큐레이션의 기준이 있다면?
사심이 많이 담겨 있어요(웃음). 제가 워낙 막걸리를 좋아해서 쇼케이스 3개 중 2개가 막걸리 섹션이고요. 나머지는 탁주, 증류주, 수제 맥주 등으로 채워져 있죠. 모두 제가 직접 맛보고 손님에게 소개해도 좋겠다는 확신이 들면 들여오는 편이이에요.

술은 어떤 방식으로 들여오는지 궁금해요.
보통 주류 관련 박람회나 행사를 다니며 양조장과 직거래하고 전통주 전문 물류 업체에 발주를 넣기도 해요. 여름에만 판매하는 원주 치악산 찹쌀 동동주처럼 특별한 경우도 있어요. 저는 여행을 가면 항상 지역 막걸리를 구입하는데요, 원주에서 마신 동동주가 이온 음료처럼 청량하고 달달해 너무 맛있더라고요. 역시나 손님들 반응도 좋았고요. 더울 때 빛을 발하는 막걸리라고 생각해 여름에만 판매해요.

전통주에 곁들일 수 있는 음식도 판매하고 있는데.
우리 술을 꼭 한식과 페어링해야 한다는 편견을 깨겠다는 원칙으로 구성했어요. 타코, 치즈 플레이트, 크래커 등 와인바에 있을 법한 간단한 메뉴가 대부분이죠.
 
전통주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전통주는 쌀을 베이스로 부재료를 무궁무진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에요. 뭘 넣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죠. 제철 식자재를 넣으면 계절의 맛을 느낄 수 있고요.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술이에요.

냉털회(냉장고 터는 모임), 막재즈(막걸리와 재즈를 결합한 공연) 등 술과 관련한 다양한 모임과 행사도 열려요. 이런 행사는 어떻게 기획하는지 궁금해요.
냉털회는 참가비(3만 3,000원)를 내고 공 뽑기를 통해 나온 금액만큼 막걸리를 마시는 모임이에요. 막걸리 입문을 유도하기 위해 기획했죠. 막재즈는 우정에 손님으로 왔던 재즈 듀오 9&4와 함께 여는 공연인데요. 재즈와 막걸리는 다양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에 아이디어를 얻어 시작했어요. 우정에 동그랗게 둘러 앉아 1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아티스트의 목소리와 기타 연주를 감상할 수 있죠. 더 큰 공간과 다양한 지역에서도 시도해보고 싶어 지난 8월엔 부산에 자리한 양조장 꿀꺽하우스에서 공연을 열었어요. 다음 장소는 일본이고요.

일본 행사는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요?
시네마현에 운난시(雲南市)라는 작은 도시가 있어요. 문득 그곳에서 ‘어머나’라는 막걸리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는 지인이 떠올라 먼저 제안을 했죠. 동네에 역사가 100년이 넘은 아마노칸(天野館)이라는 료칸이 있는데, 거기서도 이런 행사를 하고 싶어한다고 기다렸다는 듯이 회답이 온 거예요. 그래서 바로 일정을 잡았죠. 재즈 공연을 포함해 요리사 출신인 아마노칸 운영자의 가이세키(会席)와 현지 쌀로 빚은 막걸리 페어링을 준비했어요. 저희도 처음 시도해 보는 거라 현지인이 막걸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기대돼요.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있다면?
우정을 시작한 이래로 막걸리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틈틈이 양조장 투어를 다녀요. 강원 강릉, 경북 문경, 전남 영암 등 물 좋고 토양이 비옥한 곳에 자리한 양조장에서 직접 술 빚는 것을 구경하고 신선한 제철 식자재도 먹곤 하죠.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세계를 구경하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우정을 더욱 알차게 즐길 수 있는 꿀팁을 알려주세요.
손님이 진열대 앞에서 어떤 술을 마실까 고민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뿌듯해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모험가 같달까. 익숙하지 않은 술을 고르고 선택하는 일은 일상 속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손님의 취향에 맞게 술을 추천하고 마시는 순서와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재미있고요. 마음을 열고 오면 훨씬 더 흥미로운 공간이 될 거예요.

앞으로 우정에서는 어떤 일이 펼쳐질까요?
우선 일본의 막재즈 글로벌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막걸리 관련 콘텐츠를 기획하는 일을 좀 더 확장하고 싶어요. 지금은 ‘우정’이라는 공간에 한정된 느낌이 있거든요. 행사를 열 때면 주변에서 ‘뭐가 남냐’고 묻곤 하는데, 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콘텐츠가 결국 공간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해요.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천천히 해나가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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