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 김윤경

Tavelogue in Bongsugol
통영 봉수골 2박 3일 여행기

직접 살아보지 않고 한 여행지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는 없을까? 관광지에서 한 발자국 떨어진 통영 봉수골에서는 삶의 현장을 느긋한 마음으로 둘러볼 수 있다.

박진명
사진 김윤경

통영 사람들에게 벚꽃 명소 혹은 생선찜 골목으로 통하는 봉수골은 미륵산 아래 자리한 작은 마을이다. 낮고 아기자기한 주택, 그 틈으로 비죽 솟아 있는 목욕탕 굴뚝, 오랜 세월 한자리에서 마을의 안녕을 굳건히 지켜온 당산나무 등 옛 모습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미륵불이 강림했다는 미륵산, 신라시대에 지은 용화사, 봉수골에 거주한 추상화가 전혁림의 미술관 등 통영의 역사가 담긴 명소부터 책을 통해 통영을 소개하는 출판사와 책방, 이곳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운영하는 카페와 음식점, 게스트하우스 등 통영의 오늘을 소개하는 여러 공간까지. 그저 미륵산을 오르기 위해 거쳐가는 곳이었던 봉수골은 오늘날 통영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동네로 사랑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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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봉수골 스테이 3박 4일
356,000원~
Tip. 봉수골을 더욱 깊이 있게 여행하고 싶다면, 마을 내 공간을 자유롭게 이용하고 마을 커뮤니티 모임에 참여하며 로컬 문화를 즐기는 트래블링 위치의 여행 프로그램 ‘봉수골 3박 4일 스테이’에 참여해보자. 현금처럼 이용할 수 있는 포인트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DAY 1
14:00 카페 부엔

봉수골 중심부에는 예나 지금이나 너른 그늘을 선사하는 마을의 휴식처인 당산나무가 자리한다. 카페 부엔은 당산나무를 눈에 담으며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옛 테라조 바닥을 그대로 살리고 레트로한 가구와 소품으로 채워 할머니 댁에 방문한 듯한 편안한 분위기를 풍긴다. 대표 메뉴는 네모난 에그타르트, 파이, 쿠키, 머핀 등 쌀가루와 아몬드가루로 만든 글루텐 프리 디저트. 커피, 에이드, 차 등 다양한 음료 메뉴도 준비돼 있다. 운영자의 할머니가 직접 키운 곡물로 만든 미숫가루는 꼭 맛보길. 고소하고 달콤한 맛이 갈증을 해소하기에 제격이다.

16:00 트래블링위치 라운지

미륵산 방향으로 완만한 오르막길을 걷는 동안 봉수골 어르신들이 벚나무 그늘 아래서 바둑을 두거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정겨운 풍경을 마주한다. 마을 여행사 트래블링위치는 이런 소박한 모습에 반해 통영으로 이주한 정은숙 대표가 운영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여행 계획을 세우거나 차를 마시며 휴식하고, 통영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티백과 큐레이션한 통영 굿즈 등 여행을 추억할 기념품도 구입할 수 있다.

18:00 백서냉면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봉수골의 유일한 냉면 전문점 백서냉면 앞에는 긴 대기줄이 이어진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냉면 한 그릇을 위해 줄을 서는 진귀한 풍경이다. 이곳 물냉면은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그 사이 어디쯤의 맛을 지녔다. 얇은 메밀면을 사용해 평양냉면과 식감은 유사하지만 육수의 감칠맛은 함흥냉면처럼 강렬하다. 비빔냉면은 새콤달콤한 소스와 쫄깃한 면이 잘 어우러져 부산의 밀면이 연상되기도 한다. 3대째 이어온 냉면집에서 냉면 기술을 배웠다는 이야기를 접해서일까. 장인의 깊은 맛이 느껴지는 것도 같다. 냉면 외에 온면, 갈비탕, 만두 등의 메뉴도 맛볼 수 있다. 삽화가였던 남편 백성현 씨가 직접 그린 메뉴판도 인상적이다.

통영시 봉수돌샘길 23

20:00 카페 내성적싸롱호심

봉수골 골목을 거닐다 보면 담벼락에 유성펜으로 그린 일러스트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동글동글 귀여운 그림체로 봉수골의 아름다움을 유쾌하게 표현한 그림에 피식 웃음이 터진다. 할아버지의 고향인 통영에 이주한 일러스트레이터 밥장의 작품. 카페 내성적싸롱호심은 그가 운영하는 공간이다. 마음에 쏙 드는 이 건물을 만나기까지 1년이 걸렸다고. 1976년 건축된 집을 복원한 카페 겸 작업실로, 밥장의 일러스트는 물론 그가 수집한 다양한 아티스트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카페 안쪽 또 하나의 방에서는 빛 바랜 사진 속 할아버지의 젊은 날과 통영의 지난 풍경을 확인해보자.
카페의 운영 시간은 오후 7시까지인데, 봉수골 스테이 프로그램 ‘올빼미 세계 여행’을 진행할 때면 늦은 저녁에도 불이 켜진다. 높은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가 환하게 불을 밝힌 내성적싸롱호심은 낮과 다른 밤의 정취를 자랑한다. 4인용 테이블에 자리를 잡으면 밥장의 소개와 함께 세계 여행이 시작된다. 저마다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며 추억 여행을 떠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DAY 2
10:00 요가다반사

나지막한 언덕에 자리한 요가다반사에서는 봉수골 전경을 내려다보며 몸과 마음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요가원을 이끄는 정다은 원장은 한 가지 동작을 오래 유지하며 근력과 유연성을 키우는 하타 요가와 정해진 시퀀스로 호흡과 동작을 연결하는 아쉬탕가 요가를 전문으로 한다. 오늘의 수업은 아쉬탕가. 정 원장의 단단하고  명료한 음성에 따라 각자의 호흡으로 몸을 움직인다. 밤새 굳은 온몸의 근육이 깨어나며 정신이 뚜렷해지고  잡념으로 분주했던 마음이 차분해진다. 

12:00 지저트

대전 성심당의 인기에 힘입어 로컬 빵집 찾기가 새로운 여행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봉수골에서도 예외는 없다. 이국적 외관을 뽐내는 지저트는 통영의 빵지순례지 중 한 곳. 당산나무 옆에 위치한 지저트에선 프랑스산 유기농 밀가루와 버터로 다양한 디저트를 만든다. 소금빵, 대파명란바게트, 크로와상 등이 시그너처 메뉴. 두바이 초콜릿, 크루키 등 트렌디한 소재에 지저트만의 개성을 더한 디저트도 준비돼있다. 오로지 빵에만 집중하기 위해 음료를 제공하지 않으니 참고할 것.

15:00 김선생충무김밥

봉수골 내 자리한 식당 대부분은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브레이크 타임을 갖는다. 애매한 시간에 배가 고플  땐 봉수골 초입에 자리한 김선생충무김밥으로 향하자. 조미하지 않은 생김으로 돌돌만 흰밥에 섞박지, 어묵,  오징어무침을 곁들여 먹는 충무김밥 전문점. 충무김밥은 바다로 나간 뱃사람이 끼니를 챙길 수 있도록 쉽게  상하지 않는 재료와 방식으로 만든 통영의 향토 음식이다. 매콤 새콤한 김밥으로 허기를 달래던 옛 선원처럼  순식간에 접시를 비우게 될 것이다. 

통영시 봉수로 49

16:00 전혁림미술관

봉수골에선 바다가 보이진 않지만 바다를 그린 작품은 만날 수 있다. 색채의 마술사, 바다의 화가, 한국 추상화의  개척자 등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 붙는 통영 출신 화가 전혁림의 삶과 작품을 모아 놓은 전혁림미술관이 있기  때문이다. 봉수골은 전혁림 선생이 30년 가까이 거주한 동네다. 세상을 떠나기 전 아들 전영근 화백과 함께 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미술관을 지었다.  
봉수골 스테이에 참여하면 전혁림미술관 관장이기도 한 전영근 화백이 진행하는  프라이빗 도슨트 투어로 미술관을 둘러볼 수 있다. 시인 김춘수, 화가 이중섭과 함께한 선생의 학창 시절 부터 작품의 비하인드 스토리, 연필과 붓, 흙을 놓지 않으며 예술에 열정을 불태운 노년의 일상까지, 전혁림 작가의 생애와 예술 철학을 심도 있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 〈통영항〉과 〈새 만다라〉 등 대표 작품이 자리한 1층을 지나  고인이 생전에 사용하던 미술 도구, 즐겨 입던 셔츠 등이 전시된 2층을 둘러본 후 전영근 화백의 작품이  전시된 3층에 다다른다. 거대한 캔버스에 유년 시절의 경험을 그린 〈곡마단〉 앞에 선 전 화백이 말한다.  “초기까지만 해도 아버지 화풍과 비슷하단 평가에서 벗어날 수 없었어요.” 바로 옆에 걸린 작품 〈피어오르다〉를  나란히 두고 보면 아버지와는 또 다른 작품세계를 구축하고자 했던 그의 고뇌가 느껴진다. 봉수골에는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예술적 영감이 살아 숨 쉬는 중이다. 

통영시 봉수1길 10

18:00 니지텐

전혁림미술관 골목 어귀, 평일에도 줄을 서는 맛집이 있다. 바다를 좋아한다는 단순한 이유로 바닷마을을 찾아다닌 일식 전문 요리사 문현준 씨의 튀김덮밥 전문점 니지텐이다. 서울에서 제주로, 다시 통영으로 이주한 지 6년째, 봉수골의 아기자기한 매력에 반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장어, 새우, 꽈리고추, 가지 등에 고소한 튀김 옷을 얇게 입힌 덮밥에는 일본어로 무지개라는 뜻을 가진 상호명처럼 통영에서 난 자연의 총천연색 맛이 깃들어 있다. 

DAY 3
7:00 미륵산 편백나무 숲길

대한민국 100대 명산 중 하나인 미륵산 초입에는 아침을 여는 사람들이 많다. ‘통영고’라고 적힌 축구 유니폼을  입고 미래의 김민재를 꿈꾸는 축구부가 체력 훈련에 한창이다. 숲길산책 차담에 참여하기 위해 이른 아침 길을  나선다.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천년고찰 용화사를 지나 산중턱에 자리한 드넓은 잔디밭이 바로 차담 장소. “쑥, 도라지 등을 블렌딩한 ‘숲길산책’은 아무도 없는 새벽, 혼자 이곳을 거닐었던 경험에서 영감을 받았어요.”라며  정은숙 대표가 차를 건넨다. 맑고 노란 빛깔을 띄는 차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쑥과 도라지의 향이 숲에서 실려온  흙내음과 어우러진다. 

통영시 봉수로 107-82

11:00 용두부

아침 산책 후 용두부로 향한다. 생선찜 식당만 즐비한 봉수골에 들어선 최초의 두부 전문점이다. 국산콩으로 직접 만든 두부와 버섯을 잔뜩 넣은 두부 전골과 멸치볶음, 파김치, 가지나물 등 정갈하고 건강한 반찬이 한 상 가득  차려진다. 표고버섯, 목이버섯, 송이버섯, 이름 모를 다양한 종류의 버섯이 들어 있는 두부 전골은 깊은 풍미가  일품. 두부김치, 두부보쌈 등 막걸리와 어울리는 메뉴도 있다. 

경남 통영시 봉수3길 1

13:00 돌샘길

탱자나무 울타리와 실개울 정원이 아름다운 카페 돌샘길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통영 출신 건축가가 건축 현장에서 모은 고재에 노하우를 더해 오픈한 티하우스다. 3면의 통유리로 이뤄진 이 공간에서는 100년이 넘은 서까래, 의자로 변신한 대들보, 테이블이 된 툇마루 등 다양한 업사이클링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다. 시그너처 메뉴는 당고를 올린 흑임자 밀크티. 매일 아침 직접 만드는 깨강정, 카페 정원에서 공수한 아름다운 꽃 장식 등으로 구성한 플레이팅 또한 인상적이다. 

15:00 봄날의 책방

전혁림미술관 옆 자리한 봄날의 책방은 출판사 남해의봄날이 운영하는 동네 서점.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이 공간에는 남해의봄날에서 출판한 책을 포함해 통영 출신 작가의 작품, 인문, 소설, 에세이, 동화 등의 책이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입구 쪽 책장을 옆으로 밀면 비밀의 공간이 나타난다. 어둡고 좁은 계단 끝에 자리한 다락방 안에는 나전 장인의 문패와 거울, 소반, 두석장(구리와 주석을 합금한 황동 장식을 만드는 장인을 일컫는다.)의 손길이 더해진 전통 가구 등 통영 전통예술을 엿볼 수 있는 소품이 가득하다. 공간 대여 서비스 ‘책 읽는 다락방’을 예약하거나 봉수골 3박 4일 스테이에 참여하면 이곳에서 책과 함께 통영의 예술적 감각에 흠뻑 취할 수 있다. 

20:00 사사로운 덕담

중앙시장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자리한 위스키 바 사사로운덕담은 봉수골 주민인 김호진 대표가 운영하는  공간이다. 사사로운덕담에 이르자 ‘삼락 표구사’ ‘철학관’ ‘위스키’ 등 창문에 붙은 스티커가 눈에 들어온다. 건물의  용도가 몇 번 바뀌는 동안 다른 목적을 갖고 이곳을 드나들었을 수많은 이들을 상상하며 오래된 미닫이 문을  연다. 서까래, 나무 판자로 이어진 천장과 잘 어울리는 적갈색의 톤의 내부가 인상적이다. 공연 기획자인 김호진  대표는 고향인 통영에 바 문화 전파를 위해 사사로운 덕담을 오픈했다. 그가 소개하는 위스키 샘플러 3종과 음악을  음미하며 나만의 취향을 알아가보자. 기타리스트, DJ 등 다양한 뮤지션의 공연, 음감회, 책모임 등 술과 음악을  주제로 다양한 행사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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