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정빈

 

ⓒ 윤정빈

Princess of Inle Lake
미얀마 인레 호수를 지키는 프린세스

고요한 물 위로 떠오르는 해는 자연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빛을 내린다. 지속 가능한 머무름에 대답하는 리조트. 미얀마 인레 호수에서 미시적이고도 시적인 휴가를 경험한다.

이기선
사진 윤정빈

미얀마 인레 호수(Inle Lake)를 품은 도시 냐웅쉐(Nyaung Shwe). 이곳 최고의 레스토랑 중 하나는 인레 프린세스 리조트(Inle Princess Resort)내에 있다. 샨(Shan)족 전통 종이 랜턴의 은은한 불빛 아래에서 손님들은 칠기 표지에 수제 종이를 아코디언 형태로 엮은 전통 책 메뉴판을 넘겨본다.

연꽃잎 쌈으로 시작해 칠기 공예품 위 새알에 담긴 셔벗으로 마무리되는 저녁 식사 내내, 잔에는 지역 와인이 채워진다. 요리는 모두 호텔 소유 농장과 인레 호수 지역에서 난 식자재로 만들었다. 레스토랑 창밖에 펼쳐진 호수가 어둠에 잠긴 지 한참 지난 뒤에야 긴 식사가 끝난다. “내일 새벽에 인레 호수 위로 해 뜨는 것 보러 갈까요?

인 묘 수(Yin Myo Su)가 장난스레 묻는다. 그는 이 호텔의 창립자이자, 인레 호수 지역의 자연과 문화를 보호하는 비영리 기관 인레 헤리티지(Inle Heritage)의 대표다. 매력적인 제안이지만, 모두 농담으로 웃어넘긴다. 미얀마에 오는 이는 (바로 오늘을 포함해) 매일 일출을 보았으니까. 미얀마에서 가장 유명한 슈웨다곤 파고다(Shwedagon Pagoda)에서도, 사원을 흩뿌려놓은 바간(Bagan)의 평원에서도 말이다. 어쨌거나 다음날 오전에 호수 보트 투어가 예정돼 있다. 산맥 쪽을 향해 있는 독채 방갈로는 조명이 어두워 책을 볼 수도 없을 정도라 나는 곧바로 잠들어버렸다.
1998년에 오픈한 인레 프린세스 리조트는 인레 호수 지역의 현대식 숙소다. 다리로 노를 젓는 어부는 인레 호수의 만화경 속 같은 측면 중 하나일 뿐이다. 135개의 소수민족이 모여 이룬 나라인 만큼, 인레 호수의 무수한 곶과 만 또한 오랜 세월 다양한 민족 집단의 터전이 되어왔다. 이곳 샨주의 인구 다수를 차지하는 샨족은 미얀마 내에서도 이국적 민족으로 꼽힌다. 역사와 혈통 면에서 태국 쪽에 가까우며, 미얀마와 태국 사이에서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오랫동안 지켜왔다. “인레 호수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지역입니다. 이 지역에선 이곳만의 생활 양식과 문화가 이어져왔어요. 다리 노 젓기, 연꽃 섬유 공예, 수상 텃밭 같은 것을 어디에서 또 볼 수 있겠어요?” 인레 호수에서 나고 자란 인 묘 수 대표가 설명한다.
인레 프린세스 리조트의 설립 취지는 지역의 독특한 자연과 문화를 보호하는 것이다. 때문에 지속 가능성을 단지 액세서리가 아니라 운영 원칙으로 삼는다. 운영 수익의 일부를 다리 건설이나 병원 후원 등 지역 사회를 위한 사업에 투자하며, 인레 헤리티지를 후원하고, 말 그대로 호텔을 이루는 모든 요소를 지역에서 자체 생산한다. 샨족 전통 건축부터 패브릭, 도자기, 가구, 종이, 오가닉 어메니티 그리고 친절한 직원까지(인 묘 수는 지역 학생을 위한 호스피탤리티 전문 학교도 운영한다). 호텔에서는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식수를 포함한 모든 물을 자급자족하며, 전통 통풍 기법, 야자잎을 이용한 단열 방식 등으로 에너지를 절약한다. 널찍한 부지에 들어선 36채의 방갈로마다 분리수거 쓰레기통과 조류 관찰 키트가 딸려 있다. 욕실에 비치하는 위생 봉투를 비닐 대신 재생 종이로 만들 정도다. 지역 장인의 공예품을 엄선한 편집 매장, 사원 분위기가 감도는 스파는 세간에 채 알려지지 않은 지역 전통이 이토록 트렌디하며 심지어 스타일리시하게 개발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인레 프린세스 리조트에 머문 매 순간은 시적 차원으로 부상했다. 어둑한 리셉션 데스크에서 내주는 곡물 차가 담긴 도자기 잔의 질감, 새하얀 비치 베드가 늘어선 야외 풀장의 수정빛 물에 이는 파문, 방갈로 창에 액자처럼 걸리는 한낮의 전원 풍경, 아득한 들판과 산맥을 마주하는 방갈로 테라스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전혀 예상하지 못한, 미얀마다운 미학이었다. 그 미시적 세계에 가능한 오래 머물고 싶어졌다. 그러는 내내 인 묘 수 대표와 나눴던 대화가 머릿속에 떠돌았다. 자신의 뿌리인 인레 호수와 이곳 사람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며, 이 일을 지속하는 유일한 동기는 다음 세대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려는 것뿐이라는 말이.
이튿날 아침, 리조트 선착장에서 보트가 출발한다. 수상 사원과 연꽃 섬유 공예 마을에 이어 마지막으로 방문한 인따 헤리티지 하우스(Inthar Heritage House)는 인레 헤리티지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재생 목재로 지은 수상 가옥에 지속 가능 레스토랑과 갤러리, 버마 고양이 보호 시설 등이 들어서 있다. 인 묘 수 대표를 다시 만난다. 그녀는 스마트폰을 꺼내 오늘 새벽에 조각배 위에서 찍은 일출 사진을 보여준다. 연꽃과 다리 노 젓기 하는 어부 너머로 떠오르는 찬란한 일출. 그러니까 어젯밤의 제안은 100퍼센트 진담이었다.

인레 프린세스 리조트 : www.inle-princ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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