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연희동에 자리한 비건 브런치 식당 베지스

Our Local Greenery Pasta Shop
초록빛이 완연한 우리 동네 파스타 가게, 베지스

온갖 생명이 만개하는 봄이면 서울 연희동 골목에 자리한 브런치 식당 베지스의 일상은 더욱 분주해진다. 겨우내 땅속에 움츠리고 있던 파릇파릇한 새싹이 무럭무럭 자라 이내 베지스의 테이블에 오른다. 파스타와 토스트, 뇨끼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이 되어.

베지스를 오픈한 계기가 궁금해요.
2021년 서울 가양동에서 최나용 셰프가 먼저 베지스를 열었어요. 2023년 이곳 연희동으로 공간을 옮기면서 때마침 퇴사를 한 제가 합류하게 됐죠. 저희는 지인의 생일 파티에서 만났는데요, 당시 저는 비건 문화를 알리는 데 관심이 있었고 최 셰프는 외국에서 일하다 한국에서 브런치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어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뜻이 잘 맞아, 팝업 식당을 열고 페스토 제품과 굿즈를 만드는 등 채식 관련 프로젝트를 함께하다 여기까지 왔네요.

채식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대학생 때 1년간 세계 일주를 다녀왔어요. 인도, 태국 등 채식 문화가 발달한 나라를 여행하며 비건 옵션을 인지하기 시작했고요. 그러면서 채식에 대한 궁금증이 쌓인 것 같아요. 결정적으로 엄격한 채식주의자가 된 가까운 친구의 영향이 컸죠. 그 친구와 약속을 잡을 때마다 식당을 정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친구와 함께할 수 있는 일들이 줄어들면서 속상한 마음에 비건식 집밥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자연식을 주변에 나눠주거나 소량으로 판매하며 자연스레 비건 문화를 소개하게 됐죠.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준 친구는 현재 무슨 일을 하나요?
절에서 명상가로 일하고 있어요. (웃음) 저도 제가 식당을 할 줄은 몰랐어요. 우리나라에서 비건을 실천하기 어렵더라도 그 선택과 의도는 존중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같은 채식주의자라고 해도 실천 정도에 따라 다양하게 나뉘잖아요. 비건에 관심이 있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도 많고요. 그런 부분을 함께 나누면 좋겠다는 마음에 식당에 도전하게 됐어요. 
대표 메뉴를 소개해주세요.
메뉴는 최나용 셰프가 담당하고 있어요. 최 셰프는 뉴욕과 호주 레스토랑에서 셰프로 활동하다 귀국해 정관 스님 밑에서 일을 한 경력이 있어요. 채소를 기반으로 한식과 양식을 결합한 퓨전 요리를 잘만들죠. 부추 페스토 파스타와 두부 크림과 곁들인 고사리 나물, 고기 대신 버섯과 렌틸콩으로 만든 멕시코 타코 라이스가 현재 가장 인기 있는 메뉴예요. 봄에는 냉이 달래 파스타, 겨울에는 감태 비건 버터 파스타 같이 제철 식자재를 많이 활용하기 때문에 메뉴가 자주 바뀌죠.

채식 식당에서 찾기 쉽지 않은 주류도 있네요.
저희가 술을 좋아해서요. (웃음) 맥주, 와인은 물론, 두유와 위스키, 메이플 시럽이 들어가는 두유 하이볼도 준비돼 있어요.

식자재는 어디서 수급하는지 궁금해요.
재료마다 다르긴 한데, 가까운 마트를 가장 많이 이용해요. 과일은 시부모님이 운영하는 사과와 딸기 농장에서 가져오죠. 채소만 다루다 보니 대용량으로 구입∙보관할 수 있는 식자재가 별로 없더라고요. 푸드 마일리지도 줄일 겸 가장 가까운 데서 소량으로 자주 구입하는 편이에요.
 
메뉴를 개발할 때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는 편인가요?
새로운 메뉴를 고민할 때 최나용 셰프가 뉴욕, 호주 레스토랑에서 경험한 요리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아요. 육류를 대체할 수 있는 식자재를 찾아 비건 요리로 변형하곤 하죠. 예를 들어, 애플 프렌치 토스트와 가지구이는 쌀 식빵을 초콜릿맛 귀리 우유에 적셔 구운 다음, 두유 크림과 베이컨 대신 훈연 간장을 발라 구운 가지를 올린 메뉴예요. 가지 라구 파스타 역시 소고기 대신 렌틸콩을 갈아 식감과 맛을 살리고요. 독특한 방식으로 만드는 소스가 최 셰프의 강점이에요. 그 소스를 활용해 보편적인 레시피를 저희만의 스타일로 재구성하고 있어요.

채식이 아닌 음식을 만들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일단 재료를 손질할 때의 기분이 달라요. 채소는 만지는 것만으로도 계절의 변화와 생동감을 느끼게 해주거든요. 회사를 나온 후 어떤 일을 해야할지 고민할 때 동물과 환경 보호에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공간을 구성할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가장 중요했던 과제는 건너편 큼지막한 정육점 간판을 가리는 일이었어요. (웃음) 가끔은 의도적으로 이 자리를 택한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도 하는데요, 정육점 사장님과는 정말 잘 지내요. (웃음) 또 계절마다 제철 채소를 그린 포스터를 직접 만들어 곳곳에 걸었어요. 인터넷에 제철 음식 포스터를 검색하면 주로 해산물, 생선이 나오더라고요. 채소, 과일 위주로 직접 만들 수밖에 없었어요. ‘건강한 음식을 만드는 곳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우드와 초록, 베이지색 등 눈이 편안해지는 색감과 소재의 가구를 들였고요.

베지스를 준비하면서 참고한 여행지나 공간이 있다면?
4~5년 전 미국 포틀랜드에 다녀왔는데요, 아이스크림 가게부터 쌀국수 음식점까지 대부분의 레스토랑에 비건 옵션이 있더라고요. 사실 비건식을 만드는 일이 쉬운 게 아니거든요. 각각의 식자재를 다 따로 끓이고 볶아야 하기 때문에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어요. 포틀랜드는 이를 잘 이해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더라고요. 완전한 채식주의자가 아니더라도 비건 옵션을 선택할 만큼 수요도 많고요. 저희 가게 손님 중 99퍼센트는 채식주의자가 아니에요. 건강한 음식이 먹고 싶어서,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고 싶어서, 예쁜 음식을 SNS에 올리고 싶어서 등 다양한 이유로 베지스를 찾는 분들이 많죠. 하루 한 끼, 아니 일주일에 한 끼 정도는 사람들이 채식하는 데 도움을 주자는 의도가 어느 정도 통한 것 같긴 해요.
앞으로 어떤 공간이 되고 싶은지 궁금해요.
‘동네 파스타 가게’ ‘파스타와 덮밥 같은 음식을 파는 곳’. 이렇게 인식됐으면 해요. 단골 손님 중에 건강이 좋지 않은 분도 많거든요.  ‘건강한 음식을 먹고 싶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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