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를 감각적으로 재해석하는 후추 브랜드 오페퍼

Oh, Pepper! Ö PEPPER!
후추의 감탄사, 오페퍼!

향신료의 왕이라 불리는 후추는 음식에 알싸한 맛을 더하고 고기나 생선의 잡내를 잡아주며 음식의 유통기한까지 늘려주는 놀라운 효능을 지녔다. 요리 속 조연 역할을 하던 후추가 우리의 일상에 즐거움을 더해주는 주연이 될 수 있을까? 후추를 창의적으로 해석하는 후추 전문 브랜드 오페퍼의 정록윤 디렉터가 후추의 매력을 전해왔다.

오페퍼를 간단히 소개한다면?
신선한 후추에 집중하는 후추 전문 브랜드입니다. 후추 산지에서 생산된 제철 후추를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후추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다양한 블렌딩 제품을 개발하고 있어요. 나아가 후추를 통해 일상에 소소하고 의외의 즐거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후추 가게를 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모든 시작은 결핍에서 비롯되게 마련이죠. 한국에서는 제가 만족할 만한 후추를 구하기 어려워서, 다시 말하면 순전히 제가 후추를 즐기기 위해서 직접 좋은 후추를 찾아 국내에 들여오기 시작했어요. 제 전공이나 커리어는 F&B나 브랜딩과 거리가 먼데요, 운이 좋게도 어릴 때부터 신선한 식자재에 익숙한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자연스럽게 좋은 재료를 알아보는 감각을 기르게 됐죠.

캄보디아 캄폿 지역과 마다가스카르의 화산 지대에서 생산되는 단품종의 후추를 수입한다고 들었어요. 이 지역을 선택한 이유는요?
후추 역시 하나의 농산물이에요. 누가, 어떤 땅에서, 어떤 방식으로 재배했는지가 고스란히 그 맛에 담겨 있죠. 두 지역을 특별히 뽑은 건 아니에요. 여러 농장의 후추 샘플을 비교해보니 제 입맛에 가장 잘 맞았던 곳이 캄보디아와 마다가스카르에 있던 거죠.
캄폿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 큰 일교차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기후와 토양을 갖추고 있어, 깔끔하고 강한 향이 나는 후추가 생산돼요. 한편 마다가스카르산 후추는 화산 지형 특유의 부드럽고 온화한 맛이 특징이죠. 같은 화이트 페퍼라고 해도, 두 지역의 제품은 완전히 달라요. 결국 후추의 맛을 결정하는 건 테루아*인 셈이에요.

* 프랑스어 테루아(Terroir)는 어떤 농산물이 자란 자연 환경의 총체적 영향을 뜻하는 용어로, 본래 와인을 설명할 때 많이 사용하지만 요즘은 커피, 후추, 초콜릿 등 다양한 농산물에도 널리 쓰인다.
다양한 식자재와의 블렌딩도 오페퍼만의 차별점이라고 할 수 있죠. 블렌딩 상품을 개발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다섯 가지 후추를 블렌딩한 시그너처 블렌드부터 화이트와 핑크 페퍼콘*을 혼합한 로제 블렌드 등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는데요, 신선하고 다양한 후추를 많은 분이 즐겁게 활용해주길 바랐지만, 제 바람과 달리 후추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경우는 드물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먼저 재미있게 놀아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죠. 실제로 매달 새로운 블렌드를 개발하는 일은 하나의 놀이가 되었어요.

* 페퍼콘(peppercorns)이란 후추 열매를 지칭하며, 화이트 페퍼콘은 흑후추를 수확하기 전 껍질을 벗겨 햇볕에 말린 후추를, 핑크 페퍼콘은 페루 후추 나무, 브라질 후추 나무에서 나오는 분홍빛 후추 열매를 뜻한다.

상품을 개발하며 시행착오도 많았을 것 같은데.
시행착오에서 ‘착오’인지는 결국 각자의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저는 크고 작은 문제를 장애물이라기보다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편이라 새로운 시도 중에 생기는 어려움을 크게 힘들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페퍼는 늘 ‘시행’에 집중해 왔어요.

마르쉐 시장, 봄마켓 등 시장에서 소비자와 만나고 있어요.
오페퍼가 지향하는 가치와 맞닿아 있는 마켓에만 출점해요. 때론 일정상 참여하지 못하는 훌륭한 마켓도 있지만요. 오프라인에서 직접 후추를 시향하고 테이스팅하는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평소 궁금했던 후추를 실제로 접하고 맛볼 수 있는 기회야말로 모험심을 자극하는 특별한 경험이죠. 후추를 직접 맛보고 나면 갖고 있던 고정관념이 와장창 무너지기도 하니까요. 마켓은 바로 그 경험을 선사하기 위한 자리예요.
농장, 로컬 브랜드와 다양한 협업도 진행하고 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었다면?
마르쉐에서 장이 끝나면, 판매되지 못한 잎채소나 허브들은 그날로 생명을 다하곤 합니다. 어느 날, 그렇게 남은 허브들을 모아 ‘뿌추’를 만든 것이 ‘이달의 뿌추’의 출발점이 됐어요. 달래, 로즈마리, 장미잎, 유자 등 매달 제철 식자재와 후추를 블렌딩한 한정 제품이에요. 익숙한 식자재의 색다른 조합을 통해 즐거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후추와 관련해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며 타협하지 않는 원칙이 있다면?
오페퍼의 생명이 신선함인만큼 대량 생산은 지양하고 있습니다. 공장식 과잉 생산이 불러올 불필요한 비용과 환경 부담을 줄이고자 하는 마음도 함께 담겨 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와 그 이유는?
백야를 보기 위해 노르웨이에 간 적이 있어요. 많은 사람이 노르웨이를 오로라의 나라로 생각하지만, 노르웨이에 오로라가 빛나는 계절이 있다면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의 시간도 존재한다는 것을 꼭 알고 계셨으면 해요. 삶에는 늘 이면이 존재한다는 걸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 그게 삶의 균형을 지키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믿거든요. 노르웨이에서 백야를 경험한 이후로, 시커먼 밤하늘을 볼 때면 해가 지지 않는 하늘을 종종 떠올리곤 해요. 새벽 2시, 북위 70도 바다 한가운데에서 해가 수평선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다시 떠오르는 장면은 영영 잊지 못할 거예요.

후추 혹은 미식과 관련해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있다면?
모로코 마라케시. 제게 중동은 신비로운 곳인데, 마라케시의 독특한 미감, 향신료로 가득한 시장은 언젠가 꼭 경험해보고 싶어요.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를 귀뜸해준다면? 매장을 오픈할 계획은 없나요?
올해는 후추 외에 오페퍼 블렌드 제품에 사용되는 필수 향신료를 함께 소개할 계획이에요. 오프라인 공간은 모든 준비가 완벽히 갖춰졌을 때 선보일 예정입니다. 그때까지 잘 지켜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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