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Okay to Do Nothing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은 낫토 가게, 낫투두 낫토앤바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 낫투두 낫토앤바에 들어서면 장기하가 부른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눈과 귀를 막아도 사방에 노출된 성공 공식은 피하기 어렵고, 그걸 따르면서도 불안을 느끼는 시대. 낫투두 낫토앤바 제준혁 대표는 낫토를 통해 덜어내는 삶에 관해 말한다. 오직 콩과 낫토균, 알맞은 온도, 습도만 있으면 되는 낫토 만들기가 나다움을 찾아가는 과정과 닮았다고 말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지난주에 마르쉐 농부시장이랑 충남 홍성군에서 하는 유기농페스타에 출점해서 바쁘게 지냈어요. 이번 주부터는 다시 가게 영업만 하니까 이제 막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에요.  

교토식 낫토를 만든다고 알고 있어요. 다른 지역의 낫토와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지역보다는 제조사별 차이가 더 커요. 굳이 지역별 차이를 찾자면, 낫토는 홋카이도부터 도쿄까지 일본 동부가 본고장인 음식이에요. 유명한 낫토 회사도 대부분 이바라키현(도쿄에서 북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일본 혼슈 동쪽의 평야 지대로, 낫토 대표 산지로 유명)에 있죠. 처음에 낫토를 배우고 싶어서 이바라키현에 있는 낫토 제조사 중 한 곳에 연락했는데, 규모가 크고 역사도 오래된 기업이다 보니 아무래도 보수적이었어요. 이후 지인을 통해 교토의 후지와라 식품(藤原食品)이라는 낫토 제조소를 소개받았어요. 소규모이긴 하나, 역사가 깊고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한다고 하더라고요.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대표님은 록과 밴드 음악에 관심 많고 한국 아티스트들도 좋아하는 분이에요. 제조소를 물려받고 나서 낫토만 만들면 재미없다고 서점, 어패럴 브랜드 등과 다양한 협업을 했더라고요. 이곳에서 낫토를 어떻게 만드는지 기초를 배웠죠.  

낫토 제조를 배우는 일은 어땠나요?
후지와라 식품에서 두 달간 인턴식으로 일했어요. 오사카에 살 때 종종 가던 교토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방을 저렴하게 빌려주셔서 거기서 지냈죠. 재밌긴 재밌었어요. 대표님 어머니한테 일을 배우면서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혼나기도 많이 혼났고요. 방언 때문에 알아듣기가 어려웠거든요. (웃음) 힘들기도 했어요. 한겨울에 해도 안 뜬 새벽부터 일어나 출근을 했는데, 숙소가 고택을 개조한 곳이라 걸을 때마다 삐걱거리고 단열이 잘 안돼 히터를 틀어도 엄청 추웠죠. 그래도 ‘하기로 했으니까’라는 생각으로 임했어요. 소규모 낫토 가게의 운영 방식을 배우기 위해서 후지와라의 대표님이 소개해주신 오사카의 라쿠다자카낫토공방(らくだ坂納豆工房)을 몇 차례 방문해서 도움도 받았죠.
 
가게에 낫토 매거진이 있네요? 
낫토 인플루언서 친구가 만든 매거진이에요. 원래 오사카 로컬 패션지의 에디터로 일을 하던 친구예요. 취미로 인스타그램에 낫토 콘텐츠를 올리다가 본격적으로 낫토 매거진을 출간하고 <낫토도감>이라는 책도 냈어요. 제 가게에서 같이 낫토 테이스팅 세미나도 열었고요. 무슨 생각으로 낫토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지를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예요.

무슨 생각으로 낫토 가게를 운영하나요?
쓸데없는 거 많이 안 하기 위해서요. 가게 이름도 낫투두잖아요. 낫투두라는 이름에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첫 번째는 영어 그대로 낫투두(not to do). 뭘 안 해도 되는 거. SNS를 포함해 어디에든 성공 공식을 말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걸 따라하려다 보면 분명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 캐피탈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그 업계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세상이 말하는 성공에 가까이 다가간 이들을 많이 만나게 돼요. 그런데 사람마다 잘하는 게 다르잖아요. 그들이 잘하는 걸 나 역시 잘하려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번째는 낫토에 ‘콩 두(豆)’자를 합쳐서 지은 건데요. 낫토를 만드는 데 필요한 요소는 좋은 콩과 균 말고 없으니까요. 이것저것 하지 말고 본질에 가까운 중요한 것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담았어요. 낫토 만드는 일도 그런 생각으로 하고 있고요.

낫토를 발효할 때 중요한 것은?
낫토균은 생각보다 소량으로 많은 양의 콩을 발효할 수 있어요. 낫토균이 좋아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제일 중요해요. 40도 이상을 잘 유지하는 거죠. 낫토 완제품을 보면 위에 비닐이 덮여 있잖아요. 습기를 보존하되 구멍을 뚫어서 공기를 통하게 해주는 거예요. 낫토를 발효할 때 소금 같은 다른 식자재를 넣으면 오히려 낫토균에 방해가 돼요. 오롯이 콩을 잘 불리고, 잘 찌고, 적절하게 온도를 유지해서 잘 발효되게끔 하는 데에만 집중해요.
 
낫토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요?
원래 직장 생활을 했어요. 편하긴 했지만 일을 하는 게 재미가 없고 스스로 가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정도 성과도 나왔고, 업무 난이도나 강도에 비해서 대우도 나쁘진 않았죠. 하지만 일이 잘 되면 잠깐 기쁘다가도, 안 되면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그래서 퇴사했고요. 그 이후에 사업 고문 역할로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출근이 자유로워서 이곳저곳 돌아다녔어요. 청년 마을을 중심으로 국내 여러 지역에 가봤어요. 충남 홍성, 군산, 거제, 영월, 영주 등을 방문하면서 몇 가지 테마에 관심이 생겼죠. 지역 활성화, 발효, 농업 등에 종사하는 다양한 사람을 만났거든요. 그중에 인도네시아 발효 음식인 템페를 하는 파아프 템페 대표님도 있었어요. 발효 음식을 만들면서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생활 방식 같은 게 많이 달라졌다는 그 분을 보면서 흥미가 생겼죠. 발효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 시장성 등을 고민하다가 일본에서 산 경험도 있고 시장 규모도 큰 편이니까 낫토가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사카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교토에서 지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래서 앞서 얘기한 것처럼 교토의 후지와라 식품에서 지내면서 오전에는 낫토를 만들고 저녁에는 외주나 회사 일을 했죠. 사실 낫토 만드는 법을 배우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고민이 많았어요.

어떤 지점에서요? 
이게 과연 맞나 싶어 서요. 원래 제 커리어의 100퍼센트가 일본과 한국 간 사업 개발이나 에듀테크, 스타트업 투자 쪽이었으니까요. 방향성이 전혀 다른 일을 해도 될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지금은 어떤가요?
막상 시작하고 나니까 괜찮아요. 맨 처음에는 낫토를 만들어서 오프라인과 온라인 숍에 입점을 하려고 했어요. 경기도 광주 외곽에 식품 가공 공장을 둘러보러 다니기도 했죠. 공장 같이 큰 공간에 무언가를 채워놓고 생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문득 무서워지더라고요. 결과적으로 지금과 같이 소규모로 낫토를 만들면서 데이터를 쌓고, 왜 낫토를 만드는지에 대해서 알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 ‘낫투두 일요 독서 클럽’ 같은 프로그램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운영 후기도 궁금해요.
평일 저녁에는 한가할 때가 좀 있거든요. 그 시간에 뭔가 재밌는 거 없을까 궁리를 하거나 읽고 싶은 책을 읽는데,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도 그때 읽었어요. 일종의 일대일 서비스에 관한 내용인데요, 예를 들어 집 청소를 하고 싶은데 엄두가 안 난다는 사람 집에 그냥 옆에 앉아 있거나, 마라톤 대회를 나가는데 몇 시부터 몇 시 사이에 골인 지점에 서 있어 달라라는 부탁을 받고 그냥 서 있는 거예요. 그 덕분에 누군가는 혼자였을 때는 안 하던 청소를 한다든가, 마라톤 완주를 한다든가 하게 되죠. 
저도 가게를 운영하니까 정해진 시간에는 늘 이곳에 나와 있잖아요. 이 공간에 모이는 것만으로 미뤄뒀던 일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어요. 제가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 역할을 하는 셈이에요.  
<일요독서클럽>은 올해 초까지 활발히 운영하다가 원년 멤버들이 이사를 가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하고 있어요. 일요독서클럽을 하면서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 매주 와줘서 혼자 시작한 가게 운영을 조금은 덜 무섭게 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난 10월에는 낫투두배 천하제일 낫토대회를 열었죠. 우승 팀은 누구였나요?
이름만 대회지, 경쟁을 한 건 아니예요. <드래곤볼>이라는 만화에 나오는 ‘천하제일 무술대회’를 본떠 이름을 정했는데, 대회라고 하니까 많은 분들이 와서 먹을 수 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사실 참가자 대부분 저희의 손님들이고, 낫토를 활용해 각자 음식을 선보이는 자리였어요. 숍인숍 형식으로요. 다행히 그날 날씨도 좋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성황리에 잘 끝났죠. 이런 이벤트를 통해 재미있는 사람들이랑 재미있는 일을 함께 해볼 수 있다는 게 제일 좋고요, 결이 맞는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자연스럽게 브랜딩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낫토앤바라는 콘셉트가 독특해요. **낮(Day)과 밤(Night)으로 나뉘는 낫투두 낫토앤바의 운영 방식을 설명해주세요.
점심 타임은 낫토를 좋아하거나 접해보고 싶은 이들을 위한 식사 공간으로, 저녁 타임에는 위스키, 맥주, 하이볼 또는 논알코올을 곁들임 음식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바로 운영 중이에요. 저녁 타임에는 알코올을 팔지만 시끌벅적한 포차 같은 느낌보다 혼자 와서 책을 읽거나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는 공간으로 사용해 달라고 해요. 너무 이상적인 공간을 추구하는 건 아닐까 고민도 많이 했어요. 그래도 잘 돌아가고 있으니까 다행이죠. 사실 이 공간은 큰 수익을 내는 것보다 브랜드를 만들어 간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아직은 가게 매출이 수익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앞으로 브랜드로서 다른 방향으로 수익을 낼 수도 있고요. 이 공간의 역할은 두 가지예요. 첫 번째는 제가 낫토를 무슨 생각으로 만들고 있는지, 낫투두라는 브랜드를 어떤 생각으로 운영하는지를 보여주고 알리는 것. 두 번째는 제가 가지고 있던 삶의 고민을 비슷하게 가진 사람들이 여기 모여서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는 거예요.

* : 렌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지음, 김수현 번역, 미메시스 

** : Day는 11:30am~2:00pm(토, 일, 공휴일 12:00pm~2:30pm), Night는 7:00pm~12:00am으로 운영 중이다. 

위스키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어요. 
2019년부터 위스키 모임을 짬짬이 했어요. 지금에 비하면 지식은 부족했지만 몇 차례 하다 보니 오히려 전문 지식과 정보를 많이 배울 수 있었죠. 처음으로 관심 가지게 된 건 일본에서 취업하고 난 후예요. 당시 살던 집에서 가까운 곳에 바가 있었어요. 사회초년생으로 보이는 사람이 혼자 가서 그랬는지, 바의 단골들이 한 잔씩 사주기도 했고 사장님도 위스키에 대해 많이 알려주셨어요. 그렇게 관심을 두기 시작하고 나선 ‘위스키 검정’이라는 일본의 민간 자격 시험을 준비하면서 기초 공부를 했죠. 

계절마다 바뀌는 메뉴 개발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제철 식재료를 사용하는 게 가장 먼저이고요, 주변에서 아이디어를 주는 경우도 많아요. 간판 메뉴가 된 감태낫토콜드파스타도 작년 여름에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다루는 인플루언서 하페테리아(hafeteria)와 팝업 형식으로 한 달 정도 함께 영업하면서 받은 레시피예요. 올해 여름에 처음 선보인 콘부간장절임가지 역시 당시 채식 다이닝을 운영하던 셰프님께 물려 받은 레시피고요. 다가오는 겨울에는 천하제일 낫토대회에서 카레 요리를 선보인 분과 협업해서 낫토 카레를 팔 것 같아요. 

낫토를 한 번도 안 먹어 본 사람에게 추천하는 낫토 활용법?
냉털 요리에 낫토를 추가해 보면 부담 없이 시도해 볼 수 있어요. 낫토는 밥에 곁들이는 반찬이라 김, 달걀, 김치와 가장 잘 어울리고, 간장달걀밥에 올려도 맛있거든요. 그 이상으로 활용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낫투두 낫토앤바에 오시는 게 좋고요. (웃음) 
 
하루 중에 가장 좋아하는 시간대는 언제인가요?
브레이크 타임이요. (웃음) 5시간이라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다녀올 수 있어서 좋아요. 가고 싶은 전시를 보고 오기도 하고 1711번 버스를 타고 부암동에 가서 산책을 하고 오기도 해요. 여름을 싫어하는데, 여름철에는 낮 영업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가서 샤워하고 에어컨 쐬면서 낮잠을 자다가 저녁에 다시 일하러 나오곤 하죠.

요즘 떠나고 싶은 여행지가 있나요?
북스톤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내일을 예고합니다>라는 책을 기획・번역했어요. 베트남, 일본, 한국, 대만, 인도 등 아시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기획자들에 관한 책이에요. 책 속에 대만의 타이동(Taitung)이라는 산악 동네에서 지역 원주민 문화를 알리기 위해 슬로푸드 페스티벌을 기획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와요. 그 동네가 재밌어 보이더라고요. 마이너리티잖아요. 특이하거나 사람들이 모를 것 같은 걸 발견하는 데서 재미를 찾는 편인 것 같아요. 그리스나 이집트같이 신전이 많은 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정말 말 그대로 먹고 살기 힘들던 시기에 절대 신을 숭배하는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었다는 게 이해하기 어렵지만 궁금한 영역이라서요. 

낫투두 낫토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쓸데없는 소리 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을 힘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하고 싶은 게 명확해도 여유로운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지는 못하니까요. 그래서 내년에는 우선 정량적인 성장을 이루는 게 목표예요. 규모도 키우고 더 안정적으로 운영을 해나가면서 하고 싶은 걸 더 많이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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