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s a Traveler
여행가라는 직업

□ 눈을 감고 지구본을 돌린 후 한 곳을 짚어 그곳으로 무작정 떠나는 여행을 꿈꾼 적이 있다.
□ 여행을 무한정 긍정하기보다 그림자 같은 이면도 알고 싶다.
□ 짐 쌀 때 배낭 속에 공간이 항상 모자란다.
□ 동물을 좋아한다.

이 체크리스트 중 하나라도 해당한다면? 여행을 업으로 삼은 박성호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여행 전문가의 내공이 담긴 여행 비법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 인터뷰이 * 박성호
  • 인터뷰어 유선우
  • 사진 김윤경
  • * 박성호는 카이스트 산업디자인 학과를 졸업한 뒤, 여행가이자 여행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바나나 그 다음,〉을 포함해 세 권의 책을 썼고, 세계테마기행, 한국기행 등 다수의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강연을 이어가고 있다.
진지한 첫 번째 질문입니다. 비행기 창가 vs. 복도, 작가님의 선택은? 
너무 진지한데요. (웃음) 창가죠. 여행에서 제일 중요한 게 떠나왔다고 느끼는 거예요. 몸은 떠났는데 마음이 못 따라올 때가 있잖아요.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낯선 풍경은 여행의 시발점으로 삼기 좋죠. 비행 중엔 창문 덮개를 삼분의 일 정도만 열어두고 그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으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도 하고요.

신간  1〈여행가의 동물수첩〉이 발간되었어요.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나요?
라디오에 출연하고, 강연도 많이 나가는데 저만의 루틴을 만들어 둬서 힘들진 않아요. 무조건 아침 6시에 일어나고 밤 10시쯤에 자는 건데요, 어떤 일을 하든 오전 6시 이전에 일어나야 하는 경우는 흔치 않더라고요. 강연이 없으면 아침에 도시락을 싸서 작업실로 출근하고요. 저녁엔 언제나 파스타를 먹습니다. 항상 같은 걸 먹고, 같은 생활을 반복해야 에너지를 다른 데에 쓸 수 있어서요.

여행지에서도 루틴이 있는지?
있죠. 무조건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는 거예요. 사람 많은 걸 안 좋아해서 웬만하면 해 뜨기 전에 일어나려고 해요. 아무리 유명한 여행지도 해 뜰 무렵에는 사람이 없거든요. 그래서 이른 오전이나 밤에 주로 돌아다니고 낮에는 숙소에서 쉬는 편이에요. 경비 지출에도 저만의 리듬이 있어요. 일주일치의 예산이 정해져 있다면 6일은 아주 싼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다가 하루는 5성급 호텔에서 묵는 거예요. 먹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값싼 길거리 음식을 먹다가 한 번은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에 가요. 평범한 숙소에서 자고, 평범한 식당에서만 먹는 것보다 훨씬 기억에 남는 여행이 돼죠.

1 : 전 세계 여러 지역을 여행하면서 마주친 동물들과의 경험을 중심으로 쓴 여행 에세이이자 동물 관찰 기록.

동물을 테마로 여행을 기록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저는 혼자 방에 콕 박혀서 책 읽는 걸 가장 좋아하고 일주일에 약속이 하나만 있어도 힘든 사람이에요. MBTI 유형 중 INFP거든요. 그런데 동물에겐 불편함이 안 느껴지잖아요. 동물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영향도 받았고요. 어릴 적부터 집 마당에서 강아지가 대여섯 마리씩 뛰어노는 걸 보며 자랐어요. 지금까지 기른 강아지만 20마리가 넘고요. 그래서인지 여행할 때도 항상 동물이 주였어요. 혼자서 야생동물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온두라스와 니카라과, 엘살바도르에선 정글 속 야생 앵무새를 찾아다니는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4, 5년 전부터 이런 경험을 책으로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여행가의 동물수첩〉에 야생동물이 16종 소개되었어요. 우연히 만나기도 하고 일부러 찾아다니기도 한거네요.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평소에 볼 수 없는 걸 보는 거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동물을 만나면, ‘아, 내가 정말 이 나라에 와 있구나!’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요. 생명체가 갖는 힘이 어마어마해요. 안데스에서 콘도르 한 마리가 하늘을 가로지르면 수백 명의 시선이 단숨에 그에게로 향해요. 단 한 마리의 새가 세상의 공기를 완전히 바꿔놓는 것 같은 순간이죠.

여태까지 만난 동물 중 대화해보고 싶은 동물이 있나요?

그런 적은 없어요. 일 단 제게 관심을 보이는 동물 자체가 흔치 않죠. 동물은 사람한테 무관심하거든요. 반려동물과 하듯이 교감하기는 어려워요. 인식하는 세계가 달라서 오히려 더 재 미있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바다 한가운데서 프리다이빙이나 스쿠버다이빙을 하 면서 매너티 같은 생명체를 보면 제 눈앞에 있지만 다른 행성에 사는 존재처럼 느 껴지거든요. 완전히 다른 세계랑 접촉하는 거죠.

동물과 교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인간 중심적 인 사고네요.
맞아요. 길들여진 동물에게만 가능 한 거죠. 야생의 동물에겐 신비함이 있어요. 그 신비함이 매력이고요.
 
90개국 이상 여행하면서 언어 장벽이 늘 따라붙었을 것 같아요. 낯선 언어 환경에서 잘 소통하는 비법이 있다면요?
일단 기본적으로 소통을 잘 안 하고요. (웃음) 먼저 다가가서 말 거는 성격이 아니라서요. 그리고 요즘에는 언어 때문에 불편한 상황이 줄었어요. 어디를 가든 현지인이 오히려 번역기를 먼저 내밀어요. 여행을 시작하고 10년 사이에 아날로그 시대에 머물고 있는 나라가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 오지에 사는 마사이족의 족장들도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거든요.

그런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여행가에게 매력적인 일은 아니죠. 어디나 점점 비슷해지는 거니까요.

여행하면서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지만, 때로는 고립되는 기분도 들지 않나요?
그럴 때도 있죠. 조지아 산속에서 몇 달씩 혼자 지내다 보면 모든 생각 을 내 중심으로 할 수밖에 없는 때가 있어요. 그렇지만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오는 순간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 같아요.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고 열심히 노력해요. 여행가로 살다 보면 한국 사회가 일반적으 로 생각하는 삶의 방식이나 인생에 대한 가치관을 이해하기 어려워지는 건 아 닐까 싶을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직장 다니는 친구들을 많이 만나고 그들의 고충이나 고민도 듣고요.

작가님의 고민은 주로 어떤 건가요?

‘한국인 이 가볼 만한 곳은 대부분 다녀왔는데 다음에는 어디를 가야 될까?’ 같은 거예요. 남극을 가야 될 까 북극을 가야 될까, 같은 고민이죠. 그런 고민은 의무감에서 오는 건가요? 아니면 개인적 호기심인가요? 둘 다 인 것 같아요. 직업 여행가로서의 의무감도 분명히 있죠. 여행은 원래 의무를 많이 던져주잖아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가면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를 봐야 한다는 생각처럼요. 여기선 뭘 먹어야 하고 저기선 뭘 봐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죠. 피곤하다고 느끼는 순간도 분명 있어요. 그래도 새로운 세계를 여행하고 탐 험하고 싶고, 다녀와서 그런 세계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2대학 졸업 직전에 했던 강연으로 여행 작가의 길이 열렸잖아요. 강연을 꾸준히 이어가는 이유가 궁금해요.
대학교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 하면서 읽은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라는 책에 “현실을 힘들게 하는 어떤 문제를 갖고 있다면 더 넓은 세계를 탐험하는 것이 그것을 이겨내는 좋은 방법일 수 있다.”라는 문장이 나와요. 당시에 대학생으로서 느끼는 불안이 컸거든요. 반복되는 일상에 갇히면 그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나 스트레스가 내 인생의 전부라고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세상이 넓다고 느끼면 안고 있던 문제는 작아 보이죠. 제가 여행하면서 발견한 넓은 세상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위안을 전해주고 싶어요. 그게 여행가로서 갖는 사명감이자 이 직업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에요. 여행은 결국 돈 써서 노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노는 일이면 직업이 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스스로 의미를 찾는 중이에요.

여행이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돈 써서 노는 일이라고 하니 의외네요.
파스칼 메르시어(Pascal Mercier)의 <리스본행 야간 열차>에  “삶은 내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내가 상상하는 그것이다.”라는 문장이 나와요. 경험 하는 순간보다 경험이 끝난 후에 내가 편집한 기억이 비로소 인생이 되는거죠. 여행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하는 동안에는 불편하고 피곤하고, 때로는 험난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면 부정적인 기억은 다 사라지니까요. 벗어날 수 없다는 압박감이 삶의 큰 부담이라면, 여행에서 힘들땐 그 장소를 떠나기만 하면 되잖아요.

아니면 돌아오거나요.
돌아올 곳이 있기 때문에 여행을 계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나중에 어디에서 살고 싶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요, 제가 태어난 동네에서 쭉 살고 싶어요. 오히려 여행을 다닐수록 그런 생각이 강해져요. 이방인으로 사는 것도 쉽지 않잖아요. 처음엔 너무 재미있고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지만 결국엔 그들 삶에 깊이 속할 수 없다는 걸 느끼면 외로워질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김치찌개 먹고 사는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죠. (웃음)

2 : 대학교 졸업 전 직접 학교 공간을 섭외해 6대륙 세계일주를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이후 여러 매체에 기사와 인터뷰가 소개되며 여행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여행의 설렘을 잃지 않기 위한 나만의 노하우나 장치가 있나요?
공부하는 거죠. 호기심을 잃는 이유는 아는 세계가 작아서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를 들면, 이집트에서 신전을 처음 보면 신기하고 재밌지만 계속 보면 금세 식상해지잖아요. 만약 이집트 역사학자처럼 공부를 많이 했다면 같은 걸 봐도 봐도 더 흥미로울 거예요. 인문학, 역사, 문화, 종교를 주제로 공부를 하면 모르는 세계가 끝없이 펼쳐지고, 그 세계와 관련된 여행지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져요.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하는 공부뿐만 아니라 다녀온 후에 하는 것도 재밌어요. 그저 예쁘다고 생각한 풍경에 담긴 이야기를 깊이 알게 되는 게 꽤 흥미롭거든요.

현장에서의 즉각적 경험과 돌아와 기록하며 곱씹는 과정 중 어느 쪽을 더 즐기나요?
둘 다 너무 필요한 과정이라서 고를 수가 없어요. 알베르 카뮈는 “삶에는 사는 시간이 필요하고 삶을 증언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행동하면서 새로운 이벤트를 만드는 시간도 필요하고, 다시 되짚고 곱씹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말이죠. 여행을 많이 하다 보면 몸으로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다 안다고 착각하기 쉬워요. 그래서 이후에 되새기는 시간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짐을 쌀 때 꼭 챙기는 물건이 있나요?
MP3 플레이어가 가장 중요한 동반자예요. 음악은 여행지와 어울리는 걸 듣는 편이에요. 나중에 다시 들었을 때 그 순간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거든요. 세렝게티 평원을 달리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노래가 마룬 파이브(Maroon 5)의 예요. 가사는 전혀 다른 내용이지만. (웃음) 지금도 그 노래를 들으면 평원을 달리던 그때 그 순간이 떠오르죠.
 
여행할 때 들고 다니는 것 중에 특별한 물건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음악을 들으면서 수집한 단어집이에요. 단어의 중요성을 크게 느끼거든요. 여행하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잖아요. 부유하는 생각을 논리화, 구체화해서 형태를 만들어내는 건 결국 단어라고 생각해요.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는 한정적이라 멋있는 걸 봐도 ‘멋있다’ ‘굉장하다’ ‘끝내준다’ 라는 말로밖에 표현을 못 하죠. 음악을 들으면서 느낌이 좋았던 단어들을 모아 놓고 자꾸 들여다 보면 생각도 훨씬 풍부하게 할 수 있어요. 동시에 느끼는 것도, 기록한 결과물도 훨씬 다채로워지고요.

단어집 중에서 소개하고 싶은 재밌는 단어가 있나요?
기분 좋은 단어들이 몇 개 있죠. ‘불량 서클’. 이 단어를 보면 이집트에서 아침마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던 강아지 무리가 떠올라요. 평소에는 안 떠오르는 단어도 많죠. ‘최초의 삼라만상’ ‘양자역학의 쿼크 이론’ 이런 것들요. 그래도 여행하다가 이해할 수 없고 복잡한 무언가를 봤을 때 ‘그들의 삶의 양식은 양자역학의 쿼크 이론만큼이나 난해했다.’ 같은 문장을 쓰면 딱 맞아떨어질 때가 있어요.

짐 싸는 데는 얼마나 걸리나요?
오래 안 걸려요. 배낭에 옷만 넣으면 바로 갈 수 있죠. 1년치 짐도 똑같이 배낭 하나만 챙겨요. 짐을 많이 들고 다니면 피곤해요.

짐 잘 싸는 팁을 알려주세요.
잘 싸는 게 아니라 잘 버리는 게 노하우예요. 필요 없는 물건은 안 챙기고, 현지에서 구할 수 있다면 안 가져가요. 여행할 때 맨투맨을 제일 많이 입는데도 챙겨간 기억은 없어요. 어느 나라를 가도 맨투맨은 팔거든요.
 
여행 중에 즐겨 듣는 플레이 리스트가 있는지 궁금해요.
올드팝 많이 들어요. 어쩔 수 없이 점점 아날로그 사람이 되어 가는 중이죠. (웃음) 별이 많은 밤에는 <Vincent> 를 듣고, 장거리 운전을 할 때는 <Take me home, Country Roads>같은 곡을 듣고요. 이외에 샹송, 팝, 케이팝, 힙합 등 모든 장르의 음악을 다 들어요.

항상 MP3 플레이어로 노래를 듣나요?
네, 스마트폰을 충전하기 힘든 곳도 있고요, 스마트폰을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나라들도 많거든요.

두려움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도 많겠어요.
항상 두렵죠. 저는 용감한 사람은 아니에요. 겁이 많아서 영화관에서 공포 영화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예요. 공포 영화 광고만 나와도 바로 채널을 돌려버리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무섭다고 느낄 때가 많죠. 다만 젊을 때 아니면 언제 하냐는 생각으로 계속하는 거예요. 아직은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기는 상태인 거죠.
 
다음 여행은 어디로 가나요?
일단은 책이 나와서 떠나면 큰일 납니다. 한국에서도 강연을 다니면서 새로운 지역에 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역시 여행이니까요. 내년에는 이국적인 곳으로 가보려고 생각 중이에요.

이국적인 곳이 여전히 남아 있나요?
오만이라든지 아프리카에 가면 이국적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죠. 아프리카의 카보베르데(República de Cabo Verde)라는 섬나라에 가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행지를 고를 때 세계 지도를 보면서 정하는데, 아프리카 서쪽 끝부분을 확대해 보다가 발견했어요. 저는 확대해야 나오는 곳들을 좋아하거든요. (웃음)

특별히 좋아하는 풍경이 있나요?
아무것도 없이 지평선만 일자로 이어진 풍경을 좋아해요. 아무도 없고 나 혼자 있는 곳. 그래서 사막을 좋아해요. 나미브 사막(Namib Desert) 같은 곳엔 정말 아무것도 없거든요. 사륜 지프를 빌려서 캠핑 식량과 물을 채우고 기름통을 싣고 나면 두려울 게 없어요. <매드맥스> 찍는 기분도 나고요.

마지막으로 여행을 통해 말하고 싶은 바가 있다면?

생텍쥐페리의 명언을 인용할게요. “배를 만들어야 할 때 사람들한테 나무를 쥐어주고, 도구를 쥐어주는 대신 그들에게 바다 건너의 더 넓은 세계를 보여줘라.” 항공권 끊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더 넓은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사람들을 떠날 수 있게 만드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