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ravel Report on Tokyo Local Journeys
도쿄 로컬 여행 보고서 Part.2

화려하고 거대한 마천루와 혼잡한 도심의 교차로가 일본 도쿄의 전부는 아니다. 우에노에서 여정을 시작해 진정한 로컬리티가 숨 쉬는 도쿄를 만난다.

야나카

전통과 삶이 어우러진 동네의 숨은 매력
도쿄의 북동쪽, 야나카가 속한 야네센(야나카(谷中), 네즈(根津), 센다기(千駄木) 세 지역의 앞 글자를 따서 부르는 이름.)은 관동대지진과 제2차 세계대전 폭격의 피해를 덜 받은 지역이다. 그 때문에 도쿄 옛 거리의 모습이 비교적 잘 남아 있고, 지역 주민의 끈끈한 유대도 남다른 것으로 꼽힌다. 야나카의 골목에서는 과거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 숨 쉬는지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 오래된 가게와 장인의 공방이 자리를 지키고, 시끌벅적한 야나카 긴자(谷中銀座)와 동네 술집에는 정겨운 활기가 새어 나온다. 그 활력 너머, 고즈넉하게 들어서 있는 작은 사찰과 묘지도 야나카의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일조한다. 야나카에만 70여 개의 사찰이 자리하고, 야나카 묘지는 도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공공 묘지다. 동네 주민들은 묘지를 조용히 산책하다가 해 질 녘에 울리는 사찰의 범종 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가늠한다. 한번 이곳에 찾아오면 도쿄 한복판에 이렇게 시간이 멈춘 듯한 동네가 있다는 게 믿기 어려울 정도다.
하기소와 하나레, 낡은 목조 가옥에서 마을 허브로
야나카의 한 골목에 자리 잡은 하기소(HAGISO)는 유달리 눈에 띈다. 담장을 포함해 온통 검정색으로 칠한 외관 때문이다. 1955년에 지은 2층 목조 다가구 주택을 리노베이션한 이곳은 야나카 마을 호텔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다. 원래는 하기소 바로 옆의 사찰인 소린지(宗林寺)가 휴게 시설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것인데, 어찌하다 보니 한동안 인근의 도쿄 예술대학 학생들이 주로 세 들어 살았다고 한다. 그후 안전 문제로 인해 2011년 철거하려고 했으나, 예술대학 학생들과 지역 주민이 준비한 마지막 전시회가 큰 호응을 얻으면서 2년 후에는 하기소로 되살아날 수 있었다.
하기소의 1층은 카페이자 갤러리, 2층은 마을 호텔인 하나레의 투숙객을 위한 리셉션 라운지이자 이벤트 공간 역할을 한다. 건물에는 원래 14개의 방이 있었다고 하는데, 1층은 전체를 한 공간으로 텄고 2층은 옛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투숙객은 2층 리셉션에서 체크인을 할 때부터 동네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재밋거리를 들을 수 있다. 매니저가 동네 지도를 펼쳐 야나카의 매력을 알려주며, 궁금한 점은 즉석에서 대답해준다. 환영이 마무리되면, 약 30미터 떨어진 하나레로 안내받는다.

Interview

하기소 오우라 모모코(大浦百子) 매니저

하나레는 체크인 과정부터 남다르네요.
요즘 호텔 체크인 과정은 점점 빨라지고, 대화 없이도 가능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하나레는 정반대입니다. 손님과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며 체크인을 합니다. 가끔은 1시간 넘게 얘기하기도 합니다. 숙박동인 하나레는 지은 지 60년이 넘은 목조 아파트라 소리가 잘 울립니다. 불편하게 느껴질 수 수도 있지만, 반대로 마을의 소리가 잘 들린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아침에 새소리를 들으며 깬다든가, 밖에서 인사하는 소리가 들린다든가, 스타일리시한 호텔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마치 이곳에 사는 사람처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하나레의 방은 아주 심플합니다. TV도 없고, 조금 불편할 수도 있어요. 대신 밖으로 나가면 식당도 있고 목욕탕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마을 전체를 호텔처럼 즐기는 거죠.

하기소의 역사가 궁금해요.
조금 긴 이야기인데, 먼저 하기소 건물은 목조 아파트였고, 근처에 있는 도쿄 예술대학 학생들이 셰어하우스로 사용했어요. 그 전에는 사찰의 신자를 위한 아파트였는데, 오랫동안 빈집 상태였다가 나중에 학생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사람이 다시 모이게 되었습니다. 10여 년 전 동일본 대지진 이후, 건물의 주인인 주지 스님은 철거 후 주차장으로 만들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냥 허물기 아쉽다고 생각해, 마지막으로 건물의 ‘장례식’을 하고 싶다고 요청했어요. 예술대학 출신이라 건축이나 DIY에 능숙했으니까 건물을 아트 공간으로 바꾸고, 사람들을 초대해 장례식 겸 전시를 열었습니다. 1,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죠. 생각만 바꾸면 오래된 것에도 새로운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였습니다. 그때 전시를 주도한 중심 인물이 지금 저희 회사의 대표입니다. 그가 하기소를 시작한 것이죠. 처음에는 카페였고, 위층은 미용실이 된 적도 있으며, 옆에는 살롱도 있었습니다. 당시 대표는 이 건물을 위해 돈을 다 쏟아부어서 뒤쪽의 방에서 살아야 했어요. 당연히 샤워실도, 욕실도, 제대로 된 주방도 없었기에 매일 센토에 가고, 마을의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했습니다. 불편한 생활이었지만 그 속에서 오히려 잊고 있던 것들을 다시 발견했어요. 불편함이 지금 시대에는 오히려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고 느끼게 된 거죠. 그런 흐름 속에서 이 경험을 비즈니스로 풀어내면 공감하는 손님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하나레가 시작되었습니다. 마침 주변에 아파트 건물이 있어서 집주인을 찾아내 호텔로 만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레’가 만들어진 배경입니다.
하기소를 중심으로 연관된 가게들이 또 있나요?
많이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젤라토 가게, 베이커리, 일본 정식집이 있습니다. 또 근처 빌딩 안에 3개의 점포가 있는데, 크레프 가게, 서점, 그리고 밤에는 바가 되는 곳도 있습니다.

전부 빈집을 활용한 건가요?
네, 가게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대부분은 처음에 빈집이었습니다. 보통 식당을 낼 때는 먼저 ‘무엇을 할까’를 정하고 그 다음에 장소를 찾는데, 저희는 먼저 장소를 보고, 이 장소에 맞는 사업은 뭘까를 고민하는 게 특징입니다. 즉, 이미 가치가 사라진 건물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크레프 가게가 들어선 건물은 사실 역 소유 건물인데, 철거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철거 전까지 뭔가 해달라고 의뢰를 받아 운영했는데, 철거가 미뤄지면서 몇 년 정도는 더 사용할 수 있게 됐죠.

빈집에 새로운 가치를 찾아주는 것이군요?
습니다. 일상의 평범한 것처럼 보이는 곳에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죠. 그것이 식당일 수도, 숙박업일 수도 있습니다. 또 건축팀이 있어서 건물을 직접 짓기도 하고, 그래픽팀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마을을 재편집한다’는 것이 콘셉트입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이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저희의 철학과 회사 운영을 위한 수익성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어떤 분들이 머무시나요?
현재 약 90퍼센트가 외국인이고, 10퍼센트가 일본인입니다. 압도적으로 유럽 여행객이 많습니다. 아시아에선 한국과 대만 손님이 많고요. 하나레에 오는 분들은 화려한 것보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본의 와비사비 같은 감각을 좋아하는 분들, 작은 고택이나 아담한 곳을 선호하는 여행자죠.

많은 외부인이 찾아오면, 마을 분위기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요?
맞아요. 저희의 역할은 손님과 마을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평소에도 마을 식당에 자주 가고, 관계를 맺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가게의 철학을 이해하고 손님과 잘 매칭되도록 안내합니다. 다만, 주민 중에 보수적인 분들이 많아 외국인은 좀 힘들겠다고 하시는 경우도 있고, 손님이 규칙을 몰라 실수하면 곤란하다는 피드백을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타요리, 농가 식탁을 불러오다
하기소의 멤버들은 지속 가능한 지역 사회를 만들기 위해 먹거리 분야에서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야나카 골목에 문을 연 타요리(TAYORI)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일본 각지의 농가와 어부에게서 직접 들여온 제철 식자재로 만든 가정식을 선보이는 식당 겸 식료품점. 일본어로 편지를 뜻하는 가게 이름처럼 생산자와 소비자를 편지로 잇겠다는 독특한 콘셉트를 내세운다. 실제로 가게 한쪽에 ‘식(食)의 우체국’ 코너가 마련되어 있는데, 농부들이 보내온 편지를 전시하고 손님들이 생산자에게 감사 엽서를 보낼 수도 있다. 소소한 응원도 지역 생산자에게는 든든한 힘이 될 거라는 믿음에서 출발한 시도라고. 매일 아침 신선한 반찬을 손 편지 모양의 도시락에 정성껏 담아 판매하는 덕분에 시간에 쫓기는 방문객도 타요리의 건강한 한 끼를 충분히 맛볼 수 있다.
아삿테 노 젤라토, 이 동네의 젤라테리아
야나카의 좁은 골목에 자리한 아삿테 노 젤라토(Asatteのジェラート)는 하기소가 운영하는 젤라테리아다. 50년 된 낡은 단층 민가를 개조했는데, 워낙 앙증맞은 탓에 똑바로 살펴보지 않으면 자칫 지나쳐버리기 십상이다. 가게 크기는 협소하나 젤라토만큼은 일품이다. 전국 각지에서 엄선해온 재료로 만든 수제 젤라토가 특기. 과일이나 고소한 참깨, 향긋한 차 등 식자재 본연의 풍미를 살린 다양한 맛의 젤라토를 계절마다 새롭게 선보인다. 아삿테의 취지는 ‘특별한 날의 별미’가 아닌 동네 사람들이 ‘매일 찾는 일상 디저트 가게’가 되는 것. 동네 어린아이부터 할머니까지 부담 없이 들러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즐기고, 여행자는 동네의 별미를 맛볼 수 있는 색다른 장소다.

조후

도쿄 소도시의 매력
도쿄도 서쪽에 자리한 조후시는 신주쿠에서 전철로 약 20분 떨어진 곳. 도쿄 다운타운의 번잡함과는 완연히 다른 소도시의 은근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오래된 사찰과 신사가 풍기는 향수 어린 분위기 그리고 로컬 문화가 그것. 특히 조후시의 진다이지(深大寺)는 서기 733년에 창건된 도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불교 사찰로, 울창한 숲과 맑은 샘물이 어우러진 경치 속에서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사찰 주변에는 소바 가게들이 줄지어 있고, 해마다 열리는 소바 축제도 유명하다. 일본의 인기 만화가 미즈키 시게루(水木しげる)가 오랫동안 거주했기 때문에 그를 기념하는 시설들도 흥미를 끈다. 만화 속 요괴 캐릭터들이 상점가를 장식하고, 요괴를 테마로한 기타로의 찻집도 영업 중이다. 도쿄의 베드타운 정도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조후만의 독특한 감성은 여행자를 끌어들이기에 충분하다
데가미샤, 조후의 크리에이티브 허브
데가미샤(手紙舎)는 조후의 또 다른 로컬 문화를 개척하는 주인공이다. 2008년 독립 잡지사로 출발하여 이제는 카페, 편집숍, 서점, 브루어리까지 다양한 공간을 운영하며 지역 예술 문화를 주도한다. 본점 카페는 50년이 넘은 오래된 공공 주택단지의 상가에 들어서 있는데, 소공원의 고즈넉한 운치를 느끼며 시간을 보내기에 제격인 곳. 여기까지 누가 찾아오나 싶겠지만, 평일 점심에도 방문객들이 줄을 서서 대기할 만큼 인기다.
일본어로 ‘편지의 집’을 뜻하는 이름에 걸맞게, 수공의 가치를 믿는 데가미샤가 펼치는 활동은 다채롭다. 문구와 종이, 일러스트를 테마로 한 잡지 〈Letters〉를 발행하고, 여러 크리에이터와 협업하여 전시회를 열거나 굿즈를 제작하기도 한다. 본점과 차로 약 10분 정도 떨어진 데가미샤 2nd Story 매장은 그런 활약이 집약된 카페 겸 편집숍이다. 편집팀이 까다로운 기준으로 큐레이션한 문구부터 공예품, 도자기, 패브릭까지 아기자기하게 진열되어 있어 작은 박물관에 들어온 느낌이다. 카페 코너에서는 직접 블렌딩한 커피, 제철 음료와 디저트, 파스타와 카레 등의 점심 메뉴도 판매한다. 개성 넘치는 현지 작가의 작업에 둘러싸여 즐기는 디저트와 식사는 그 자체로 색다른 경험이다.
조후의 물리적 공간을 너머, 노미노이치(蚤の市) 같은 대규모 행사는 요즘 데가미샤가 주력하는 활동이다. 수공예와 빈티지 문화의 난장 같은 노미노이치에서는 누구나 일본의 공예 문화와 크리에이티브 신(scene)을 공유할 수 있다. 도쿄는 물론 지방의 주요 도시에서도 개최되며, 해외로도 영향력을 확장 중이다. 이렇게 도쿄의 변방에서 탄생한 데가미샤는 단순히 상점이 아니라, 각 지역의 예술가와 대중이 소통하는 전천후 아지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Interview

데가미샤 키타지마 이사오(北島勲), 와타나베 료코(渡辺洋子) 대표

데가미샤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저희 부부는 원래 잡지 편집자 출신이에요. 서로 다른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결혼 후 2008년에 독립해 데가미샤를 창업했죠. 2009년에 여기 본점을 오픈했고, 본격적으로 편집 일과 카페를 시작했어요. 그때는 편집 일을 하다가 손님이 오면 카레를 날라주곤 했죠. 사실 독립했을 때는 오래된 허름한 아파트에서 시작했는데, 나와야 하는 상황이라 새로운 곳을 찾다가 이 장소를 발견했어요. 광장과 오래된 단지 풍경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과감히 선택했죠. 언젠가 카페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이벤트 등의 여러 비즈니스를 진행하고 계시죠?
네, 이벤트 사업은 처음에는 비즈니스라기보다 취미에 가까웠습니다. 저희가 잡지에서 다양한 크리에이터를 취재하니까, 그들을 모아 이벤트를 열면 어떨까 싶어 반쯤 재미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어느새 가게와 이벤트가 사업의 중심이 되었어요. 그래서 출판은 거의 못 했습니다. 일본 출판업계도 상황이 안 좋았고요. 가게와 이벤트가 바빠져 출판은 못 했지만, 결국 본래의 뿌리인 편집 일을 다시 하고 싶어서 3년 전부터 책과 잡지 출간을 재개했습니다. 지금은 크게 나누면 가게, 이벤트, 출판이고, 최근엔 부동산도 시작했죠. 그중 도쿄 노미노이치 (東京蚤の市)라는 플리마켓 이벤트가 가장 큰 규모입니다. 도쿄 타치카와시의 쇼와기념공원에서 여는데, 도쿄에서 가장 큰 공원이죠. 노미노이치는 3일간 열리고, 약 250개 점포가 참가해요. 방문객만 5만 명이 넘죠. 쇼핑과 음악 공연이 함께 열려서 마르셰와 음악 페스티벌을 합친 형식이에요. 주로 오래된 잡화, 헌책, 빈티지 의류를 많이 찾아볼 수 있어요. 작가들의 작품, 꽃집, 빵집 등도 참가합니다.

노미노이치는 언제 시작됐나요?
2012년에 시작했습니다. 모미지이치 (もみじ市)라는 이벤트를 2006년에 재미로 먼저 시작했는데, 인기가 많아지고 사람들이 몰리면서 일이 됐죠. 그 다음에 시작한 것이 도쿄 노미노이치였고, 이때는 제대로 수익 사업으로 생각해 입장료 300엔을 받았습니다. 당시에 그런 행사에서 입장료를 받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반대도 있었지만, 그 덕분에 지금의 데가미샤가 있다고 할 정도로 큰 전환점이 됐습니다. 독립 후 4년간은 급여가 0원이었고, 저축을 깨서 직원 월급을 줬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 이벤트가 사업으로 이어진 겁니다. 다만, 저희는 지금도 스스로를 편집자라고 생각합니다. 잡지를 만드는 것과 이벤트를 만드는 건 똑같다고 봐요.
다른 곳에서도 데가미샤를 만나볼 수 있죠?
도쿄 조후시에만 6개 점포가 있고, 그 외에 마에바시, 마쓰모토에도 있습니다. 손님층은 주로 30~50대 여성이에요. 가게들은 조금씩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따뜻한 분위기를 공유합니다. 문구, 공예 등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손님들이죠. 매장에서 데가미샤 오리지널 굿즈도 팔고, 이벤트 출점 작가들의 물건을 들여와 판매하기도 합니다.

성공의 요인이 무엇이었을까요?

간단히 말해 ‘최고 수준의 사람’들과 함께했기에 성공했다고 봐요. 저희는 작가, 가게 모두 일류만 모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