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of Local Brewery
우리 동네 맥주 양조장, 정릉맥주도가

화려한 기교보다 탄탄한 기본, 어려운 맛보다는 손님들이 좋아하는 맛, 누구나 베낄 수 있는 쉬운 양조를 표방하며 자신을 ‘도가 일꾼’으로 소개하는 박찬수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맥주 양조장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맥주를 좋아해서 수제 맥주가 우리나라에서 유행하기 전부터 맥주 양조가 취미였어요. 취미가 업이 된 거죠.  처음에는 소매업을 할 생각이 아니었어요. 원래는 지금의 양조장 공간에서 만든 맥주를 20리터 *케그에 담아서 전문점에 납품하려 했거든요. 그러다 식약처에 샘플을 보내려고 작은 페트병에 담은 걸 앞집, 옆집, 동네 어른들한테 선물했는데, 그 다음부터 맥주를 사겠다는 분들이 하나둘 생겼죠. 코로나가 막 시작됐을 때라 잠깐만 해볼 생각으로 부랴부랴 판매를 시작했는데 웬걸. (웃음) 이제 도매는 거의 못 하고요. 매장 앞에도 처마만 하나 달려 있었는데, 여름에 손님들이 기다리시는 동안 비 피할 곳이 없어서 그 아래서 다 기다리시는 거예요. 그래서 가을에 바로 공사를 해서 대기 공간을 만들었고요. 
*생맥주를 담아 두는 금속 용기

정릉에 자리 잡은 이유가 궁금해요.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서울을 다 돌아다녀봤어요. 정릉을 선택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보통 상업적으로 좋은 위치, 예를 들면 트렌드나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 적합한 분위기와 장소를 선호하는데요, 저는 그보다 오래 갈 수 있는 느낌을 원했던 것 같아요. 두 번째로, 느낌이 되게 좋았어요. 정릉이라는 이름 자체도 매력적이고요. 저희 상호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정릉과 맥주도가라는 단어 조합만으로도 이곳이 무얼 하는 곳인지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거예요.   

맥주 양조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인가요?
대개 편하게 맥주 한잔하고 싶은데 큰 돈을 들이고 싶진 않죠. 흔히 ‘수제 맥주’라고 하면 홉을 더 많이 쓰고 맛이 진하고 가격도 비싸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특유의 맛이랑 향이 강해서 별로라고 하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하거든요. 저희는 동네 어르신들, 맥주에 대해 깊이 있게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부담 없이 들러서 맛볼 수 있는 맥주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양조 방향은 어떻게 잡나요?
맥주가 유럽에서 발전했기 때문에 유럽 맥주를 기준으로 잡되, 한국 사람이 먹어도 맛있는 맛과 밸런스를 추구하고 있고요. 한국적인 맛을 살리기 위해서 쑥에일 같은 맥주를 시도했어요. 쑥은 외국에선 잘 안 먹지만 한국에선 사랑받는 식재료이잖아요. 유럽에서도 과거에 ‘그루트 비어 (Gruit beer)’라고 약초나 풀뿌리를 홉 대신에 넣어 맥주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어요. 한 번 시도해볼 만하다고 판단해서 산 중턱에서 직접 뜯은 쑥을 넣어 쑥에일을 개발했죠. 지금은 없지만 수정과의 느낌을 살린 맥주도 있었어요. 수정과에 들어가는 곶감, 대추, 생강 등을 활용해서요. 안동식혜라고, 고춧가루랑 생강이 들어가서 시원하고 칼칼한 음료가 있는데요. 그 느낌으로 고춧가루를 넣은 맥주를 만들어 보기도 했고요. 

아내 분과 함께 운영하신다고요. 역할 분담은 어떻게 하나요?
아무래도 몸을 써야 하거나 기계 장비와 관련된 부분은 제가 하고요, 그 외에 여러 가지 결정해야 되는 부분은 두 사람이 같이 판단을 하죠. 아내는 뮌헨 공과대학교에서 양조공학 석사 과정까지 공부했어요. 기술이나 이론적인 부분에서 아내가 경험치가 훨씬 많아요. 저는 소비자로서 내가 좋아하는 걸 추구한다면 아내는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학술적으로 정리해 자료로 삼으니까 아무래도 서로의 시각에 차이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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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양조장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일도 하신다고요.
상업적으로 새로 시작하는 분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가 장비를 갖추는 일이거든요. 저는 이미 시행착오를 겪어봤으니 도움을 줄 수 있죠. 지금 사용하는 페트 용기도 소규모 양조장에서 쓰기 알맞게 개발한 건데요, 이런 걸 나중에 납품해드릴 수도 있죠. 결국 제가 좋아하는 것을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거예요. 저희와 같은 작은 양조장이 더 많이 생기면 좋은 맥주도 더 많이 만들어질 수 있는 거니까요.
*인스타그램 계정 spicypint를 통해 맥주 제조 장비에 관한 문의가 가능하다.  
 
한 동네에서 7년간 가게를 지키는 일은 어떤가요? 
어르신들이 찾아오실 때 특히 즐거움을 느껴요. 세대와 취향을 떠나서 찾아올 수 있는 곳이라는 게 가장 기쁘죠. 저희 인스타그램 계정에도 올린 적이 있는데, 할아버지들이 종종 거침없이 의견을 주세요. 양조 기술의 측면에서 보면 틀린 얘기도 있지만, 어쨌든 소비자의 입장에서 말씀해주시는 거잖아요. 그런 것들이 너무 좋은 거죠. 그 이야기에서 새로운 방향을 찾기도 하고요. 내가 맞다고 생각하고 ‘난 이게 맛있어.’ 라는 생각으로 만들었는데, 그 방향이 늘 손님들의 기호와 딱 맞진 않더라고요.

맥주를 테마로 여행해 보셨나요?
체코에서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 투어를 해봤고요. 벨기에와 미국도 방문했죠. 미국은 마트도 크잖아요. 비어 섹션의 규모를 보고 ‘와, 역시 크다!’ 했는데, 그 옆에 똑같은 규모로 유러피안 비어 섹션이 따로 있더라고요. 그 옆에 로컬 비어 코너가 또 있었고요. 체코나 러시아도 맥주 소비량이 엄청나요. 한국에서 생맥주를 유통하는 케그가 보통 20리터면, 체코에선 기본 단위가 50리터예요. 러시아 마트에서는 아예 양조장에서 사용하는 5,000리터 탱크를 가져다 놓고 팔기도 하고요. 
 
대표님의 맥주 취향도 궁금한데요.
벨기에 맥주를 좋아해요. 벨기에 맥주는 일반 맥주와 카테고리가 조금 다른데요, 와인과 맥주의 중간쯤이랄까요. 굉장히 맛있습니다. 신맛 나는 맥주도 흔하고요. 와인업계에서 흔히 흑연, 가죽, 담배 같은 향이라고 하죠? 그런 향을 가진 맥주도 많고요. 베리에이션이 너무 다양하고 알코올 도수도 정해진 범위가 없어요. 16도 이상의 맥주도 많죠. 벨기에 시골 마을을 여행했는데, 맥주를 대하는 자세 자체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더라고요. 아침에 식사도 할 수 있고, 와인도 마실 수 있고요. 아이가 있어도 위화감이 전혀 없어요.  

올해 이루고 싶은 일이 있나요?
지금 공간에는 앉을 자리가 없다는 게 가장 아쉬워요. 아까 얘기한 벨기에의 카페처럼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고, 맥주도 자유롭게 마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독일의 비어가든도 이상적이죠. 지금 이 자리는 아니겠지만 정릉의 다른 공간을 잘 찾아서, 손님들이 맥주를 편하게 마시고 근처에서 음식을 사와서 같이 즐길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