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놀룰루 마라톤에 참가한 김울프

My Marathon Race Report
김울프의 2025 마라톤 출전기

돌이켜보면 지난 몇 년간 나는 달리기를 하루도 잊은 적이 없다. 달리기 위해 하루의 일정을 조정하고, 남아 있는 모든 힘을 모아 달리기를 마무리한다. 한 달에 300킬로미터 넘게 달려야 마음이 편하고, 하루에 두 번 달리는 날은 더없이 기쁘다. 별다른 이유와 목적이 없더라도 나는 달리고 있다. 언젠가부터 해외에 갈 때도 꼭 신발을 챙겨 가서 틈을 내어 잠시라도 달렸고, 그중에서도 마라톤은 내 최고의 관심사로 자리 잡아 일 년에도 몇 번씩 해외의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한마디로 나는 달리기에 푹 빠져 있다. 작년 말, 3주 동안 연속으로 3개국에 달리러 다녀온 이야기를 여기에 풀어놓는다.

상하이국제마라톤
上海國際馬拉松

 since 1996 
개최일 2025년 11월 30일

‘아, 맞다. 나도 신청했었지!’ 인스타그램 스토리와 지인들을 통해 상하이국제마라 톤 참가자 발표 소식을 접했다. 일단 먼저 신청하고 추첨을 통해 참가 여부가 정해 지는 방식이라 부담 없이 신청했다. 당첨 되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니까. 결과는 당첨. ‘가야 하나?’
우선 가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아봤다. 하루하루 만족스러 운 시간을 보내는 시기였고, 정신적·정서적으로 풍요로운 상태라 딱히 휴가가 필요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는 풍족한 한 해가 아니었다. 가지 말아야 할 이유는 그것이 전부 였다. 항공편을 검색해 보니 직항편이 하루에 여러 편 있고, 평소와 비교해 비싸지는 않았다. 심지어 마일리지 좌석도 많이 남아 있었다. 숙소 또한 합리적 가격대의 선택지가 여럿 있었고, 대회 참가 비용도 다른 주요 마라톤에 비해 비싸지 않았다. ‘마일리지 티켓+저렴한 숙소라면?’ 기적의 논리 싹이 텄다. 마라톤에서 원하는 기록을 얻으려면 대회 3주 전에 장거리 훈련과 스피드 훈련이 모두 완료되어야 한다. 한 달 전에 JTBC 마라톤 풀코스를 페이스메이커로 부담 없이 소화했고, 2주 전에 제주에서 감귤마라톤 하프 코스도 잘 달렸다. 여름에도 매달 300킬로미터 이상 꾸준히 달렸고, 가을이 되면서 기량이 조금씩 오르는 느낌이었다. 체력적으로도 마라톤에 나갈 준비가 잘 되어 있었다. 세계 9대 마라톤 후보로 거론되는 상하이국제마라톤,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대회 이틀 전에 상하이에 도착했다. 세계 주요 마라톤 대회는 전 세계에서 참가하기 때문에 다양한 교류 행사가 열린다. 세계 각지에서 온 참가자들은 함께 달리며 친구가 된다. 상하이에서 이름을 따온 ‘런하이(RUNHAI)’라는 행사가 열렸고, 이 도시를 기반으로 한 러닝 크루 다크러너스(Darkrunners)가 주최한 이틀간의 교류 행사에 1PRRC1936의 멤버로 참여했다. 달리면서 도시를 감상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카푸치노의 거품을 스푼으로 부드럽게 스으윽 떠 올리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신호등과 자동차가 없는 달리기 좋은 길에서는 그 느낌이 배가된다. 황푸 강변을 따라 와이탄(The Bund) 지역을 함께 달렸다. 멋진 건물이 정말 많았다. 상하이는 청나라 시기만 해도 작은 어촌이었다. 1842년 아편전쟁 이후 체결된 난징조약으로 중국에서 제일 먼저 개항되면서 조계지(租界地)가 생겼고, 여러 열강이 상업적 이익을 위해 경쟁 하면서 국제적 무역도시로 성장했다. 와이탄을 중심으로 들어선 다양한 양식의 유럽풍 건축물은 그 흔적이다. 최근 마라톤의 세계적 인기로, 교류 행사 또한 초대형 모임으로 진화했는데, 상하이 마라톤은 아직 덜 알려진 덕분에 교류 프로그램이 타이베이, 도쿄, 서울, 베이징, 광저우 등 아시아의 주요 도시에서 초대된 크루의 멤버들과 통성명을 할 수 있을 만큼 규모가 적당하고 친근한 분위기였다. 다음 날 아침에 참여한 런하이의 교류 프로그램에선 한인 러닝 커뮤니티 ‘농호 시티런’ 크루들을 만나기도 했다. 매주 수요일 아침에 도시를 달린다고 한다. 다음에 상하이에 올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생각지도 못한 만남은 마라톤 여행의 묘미.
대회 당일, 공권력의 나라답게 길에 차가 한 대도 없을 만 큼 다 정리가 되어 있었다. 보스턴마라톤처럼 큰 도로 주 위 골목에 짐 보관 차량이 정렬해 있고, 참가자는 자신의 배번에 적힌 짐 보관 번호에 맞는 차량을 찾아가도록 되어 있어 편리했다. 이외에도 대회 코스 통제, 급수대 등 대회 운영면에서는 전반적으로 세계 최고의 수준을 느낄 수 있었다. 출발 그룹 이슈만 빼면.
주요 마라톤에서 참가자들은 공인 기록을 제출하고, 기록에 따라 A-E순으로 그룹을 배정받는다. 여행사를 통해 참가한 이들은 보통 제일 마지막 그룹에 배정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여행사 프로그램 참가자들을 B그룹에 배정하고, 공인 기록증을 제출한 외국인은 D그룹에 몰아 놓았다(중국에서 대회 참가 경험이 있는 일부 외국인은 B그룹에 배정 받았다고 한다). 너무하다고 생각했지만, 받아들이는 수밖에. 대회 직전, D그룹 제일 뒷부분에 50여 미터를 달리며 워밍업 하는 그룹이 형성되었다. 지인들과 함께 20번 정도 반복해서 돌고 출발선으로 갔다. 날씨는 좋았지만, 컨디션이 영 별로인 느낌이었다. 영상 편집을 하느라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이다. 그렇다고 목표를 수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 하는 거 아닌가. 출발선에 서면 매번 설렌다. 마라톤은 누구나 겁쟁이로 출발선에 서지만 결승선에 도착 하면 누구나 영웅이 되는 스포츠다. 병목 현상이 걱정되었기에 거의 제일 앞에서 출발했다. 출발하고 나서 2킬로미터 정도까지는 괜찮았으나, 병목이 시작되고 나서부터는 너무 힘든 여정이었다. 갑자기 멈춰버리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고, 소리치며 그 무리를 통과해 앞지르는 사람들,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속에서 달려야 했다.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가속과 감속을 반복하며 에너지를 낭비했다. 하프 까지 1시간 29분.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속도는 얼추 맞췄다. 예상보다 기온도 높아지고 있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자.’ 도시의 명소를 빠짐없이 도는 코스도 멋있었다.
23킬로미터 지점에서 추월하는 한국인 일행을 만나 인사를 건네다 갑자기 통증이 생겼다.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햄스트링의 통증. 오른쪽 다리에 굵은 쇠심이 하나 박힌 듯한 느낌이었다. 부상의 징조가 없어서 믿기지 않았는데, 얼마 못 가 더 이상 달릴 수 없었다. 멈춰선 채 근육을 풀어보려고 했지만, 뭔가 큰 문제가 생긴 듯했다.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고 말았다. 의료진에게 가서 앰뷸런스를 타고 싶다고 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자요우(加油), 자요우!” 할 수 있다고 부추기는 의료진에게 등을 떠밀려 터벅터벅 걸었다. 햄스트링이 6센티미터나 찢어졌다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더 이상 가지 않았을 텐데. 남은 19킬로미터를 다시 달리려고 애썼다. 힘을 줄수록 아파서 눈물이 났다. 바보처럼 휴대폰도, 교통카드도 챙겨가지 않았기 때문에 내 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코스를 따라 걷는 것이었다. 결국 완주했다.

쇼난국제마라톤
湘南国際マラソン

since 2006
개최일 2025년 12월 7일

상하이마라톤에서 생긴 부상으로 이후의 계획이 꼬였다. 바로 다음 주에 쇼난국제마라톤에 참가해 카메라를 달고 10킬로미터를 달려야 하는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주일간 받을 수 있는 치료를 모두 받았지만, 부상은 심각했다. 달리기는 커녕 제대로 걸을 수도 없었다. 허벅지에 피멍이 올라왔다. 카메라를 들고 대신 달려줄 지인을 섭외해 함께 쇼난에 갔다.
‘계속은 힘이다.’ 포기하지 않고 참가한 이유는 쇼난마라톤의 모토 때문이다. 쇼난국제마라톤은 일본 가나가와현 쇼난 지역, 사가미만(相模湾) 근처의 아름다운 해안도로를 달리는 국제 마라톤 대회다. 친환경을 지향하고(개인 컵과 물병 지참이 의무), 비교적 평탄하고 바다 경치를 즐길 수 있는 코스가 특징이다. 올해로 20년 째 열리고 있는데, 해외 참가자 수도 꾸준히 늘고 있다. 출발지는 오이소 프린스 호텔(Oiso Prince Hotel). 이곳에서 투숙한다면 대회 당일 이동 없이 바로 출발할 수 있다. 호텔 객실에서는 창밖으로 망망대해가 펼쳐져 그 풍경을 보기 위해서라도 한 번쯤 머물 만하다. 바다 반대쪽으로는 저 멀리 후지산이 보인다. 비록 이번엔 절뚝거리며 걷는 것도 힘들었지만, 언젠가 이곳에 다시 와서 신나게 달려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귀국 후 이틀 만에 다시 하와이로 향했다.

호놀룰루 마라톤
Honolulu Marathon

since 1973
개최일 2025년 12월 14일

하와이를 처음 가 본 이래로 그곳의 기온 과 습도, 햇살을 잊을 수가 없었다. 하와 이이(Hawaiʻi)라는 이름은 옛 폴리네시아 어로 ‘고향’을 뜻하는 사와이키(Sawaiki) 에서 유래했다. 포근한 햇살과 시원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있는 곳, 7개의 크고 작 은 섬으로 이루어진 하와이의 주도는 호놀룰루다. 하와이 오아후섬의 남쪽 도시, 제주도로 따지자면 서귀포시 같은 곳이다. ‘고요한 항구’라는 뜻의 이름처럼 거친 파도가 있는 북쪽 해안가에 비해 호놀 롤루는 파도가 작은 편이다. 배가 정박하기에 유리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 진주만 해군기지와 무역항이 자리해 있고, 오래 전부터 경제·문화·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마라톤 대회는 호놀룰루의 중요한 연례 행사 중 하나다. 많은 사람이 참가하는 대규모 이벤트로, 대회가 열리는 날은 도시의 축제날이나 다름없다. 코스는 도심을 가로지르거나, 주요 랜드마크를 포함한다. 매년 12월 둘째 주 일요일에 열리는 호놀룰루 마라톤. 이번에는 포기해야 마땅한데, 가지 말아야 할 수많은 이유 속에서 가고 싶은 마음의 조각들을 찾고 있었다. 햄스트링 부상으로 인해 오래 걸을 수 도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출발선에 서고 싶다. 어느 마라톤보다 비싼 참가비(350달러)를 지급해 둔 상태였고, 환불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환불 보험은 어차피 하나의 미끼상품일 뿐 환불에 성공했다는 사람은 아무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참가비를 환불받을 수 없다면?
호놀룰루 마라톤에는 컷오프가 없다. 컷오프란 장거리 달리기 대회에서 주로 교통 통제를 이유로 공지된 제한 시간이 지난 후미 그룹 주자들을 탈락 시키는 제도인데, 호놀룰루 마라톤은 컷오프가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대회의 창립자인 심장전문의 잭 스카프(Jack Scaff)는 ‘마라톤은 위험하다’는 시대의 편견을 깨고 싶었다고 한다. ‘느리게 오래 달리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심장마비 생존자들을 훈련시켜 1973년 호놀룰루 마라톤 대회에 출전시키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첫 대회부터 지금까지 시간 제한 없이 진행 된다. 세계에서 가장 문턱이 낮은 마라톤으로, 7세 이상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온화한 날씨 덕분에 비가 오더라도, 달리다 멈추거나 쉴 때도 춥지 않다. 이런 조건에 더해 마음만 편하게 먹으면 하루를 꽉 채우는 소풍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부상당한 나를 위한 대회이지 않을까? 다친 지 4주. 내 햄스트링은 아직 찢어진 상태였다. 의사 선생님은 다시 찢어지면 한동안 혹은 영영 달리기하는 데 문제가 생길 것이라 했다. 조금씩 걷는 것은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 덧붙이면서. 생각할수록 마음이 선명해졌다. 좋은 추억이 될 것이 분명했다. 대신 달리고 싶은 마음의 싹을 자르자. 끈을 묶는 달리기 신발을 한국에서 챙겨가지 말자. 예상치 못한 부상으로 치료에 많은 돈을 쓰고 있었기에 최대한 아껴서 다녀오자. 카본화도, 대회용 얇은 옷들도 모두 두고, 읽을 책 몇 권과 물놀이용품을 주섬주섬 챙겼다. 높아진 환율을 감안해 가방 안에 컵라면과 햇반, 참치캔, 김자반 등 먹을거리를 가득 채워 출발했다.
이제껏 마라톤이라는 것은 내게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나’의 영역이었다. 완주를 의심해 본 적은 없었지만, 이번 여정은 달랐다. 도전하자, 그리고 너무 무리하지는 말자. 내 계획은 출발선에 서서 처음부터 끝까지 걷는 것이었다. 만약 통증이 심해져 걸을 수 없게 되면 와이키키 해변의 끝, 10킬로미터 지점인 카피올라니 공원 (Kapiolani Park) 근처에서 중도 이탈하고, 숙소로 돌아가면 된다. 만약 괜찮다면 갈 수 있는 만큼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대회 시작 전부터 비가 많이 내렸다. 새벽엔 심지어 홍수 주의보 경고 알람이 왔다. 그래도 다행히 이곳은 하와이다. 해가 뜨면 금방 더워지기 때문에 새벽 5시에 대회가 시작된다. 출발점 근처 알라모아나 쇼핑센터 주차장에서 비를 피하는 많은 이들의 표정에는 웃음이 넘친다. 마라톤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고통이지만, 실제 경험을 해본 많은 사람에게는 기쁨 그 자체다. 많은 돈을 주고 먼 곳까지 와서 고생길을 앞두고 즐거워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 라는 것에 묘한 동질감과 힘을 얻는다.
가장 앞줄, 가장 빠른 사람들이 속한 그린(Green) 그룹에서 출발을 기다린다. 엘리트 선수는 열 명 남짓. 일본에서 초청받고 온 선수 출신의 인플루언서 몇 명과 하와이 대학 육상부 선수들이 맨 앞에 섰다. 비교적 간단한 의례를 마치고 정시에 불꽃놀이와 함께 출발. 뒤에서 밀치고 나가는 사람들 속 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걸었다. 대략 500여 미터 지 나온 지점에서 머리가 하얘졌다. 핸드폰을 떨어트린 것이다. 버스카드와 핸드폰, 현금 40불이 함께 들어 있는 지퍼백이 통째로 사라졌다. 발걸음 소리와 불꽃이 터지는 소리가 뒤섞인 혼잡한 분위기 속에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달려오는 수만 명의 사람과 반대 방향으로 걷는 경험은 오싹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바닥만 바라보며 걸었고, 출발지 근처에서 지퍼백을 찾았다. 핸드폰 액정이 깨지고 지퍼백엔 구멍이 뚫렸지만, 누군가 가져가지 않아 다행이었다.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차이나타운, 구도심, 알로하타워를 돌아 다시 알라모아나 비치 파크(Ala Moana Regional Park) 앞(6km 지점)으로 돌아왔다. 출발지로 돌아와 다시 한 번 사람들의 응원을 받을 수 있게 만든 코스 설계가 좋았다. 걷는 것이 민망해서 자꾸 고개를 숙였는데, 많은 사람이 소리쳐 응원해 줘서 기뻤다. 빨리 걸으면 1킬로미터당 9분 50초 정도의 페이스가 나왔다. 10분 5초~10초를 기준으로 잡고, 페이스를 일관되게 유지하며 후반에 빠르게 가는 ‘네거티브 스플릿’ 전략으로 가보기로 했다. 이 방법은 대부분의 주자에게 완주를 위한 가장 이상적인 전략이다. 출발한 지 두 시간쯤 후 와이키키 해변(8km 지점)을 지났다. 흐린 날이라 해는 보이지 않았지만, 하늘이 밝아질 무렵의 바닷가 풍경에 기분이 좋았다. 근대 서핑의 창시자 듀크 카하나모쿠(Duke Kahanamoku) 동상을 지날 땐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더해져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할 수 있다고 응원해주 는 것 같았다.
해변이 끝나고 칼라카우아 애비뉴(Kalakaua Avenue)에서 다이아몬드헤드 로드 (Diamond Head Road)로 이어지는 오르 막 구간(12km 지점). 맞은편 도로에서 호송 오토바이와 중계 차량이 지나가고 여자 1위가 달려왔다. ‘남자 선두권은 이미 지나갔구나.’ 그 뒤로 점점 사람은 늘어났다.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면 나도 저기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다. 아직 29킬로미터를 더 가야 한다니,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불편한 신발과 젖은 양말 때문에 발바닥에 큰 물집이 생겼고, 햄스트링은 갈수록 굳어져 가는 느낌이었다. 여기서 속도를 줄이거나 멈춘다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만큼 느려질 것이다. 예상했던 순간이 왔다. 포기와 억지의 사이.
선택은 나의 몫이다. 주눅 들거나 고민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한 걸음씩 줄여 나가면 될 일이다. 묵묵히 자신의 거리를 채워 나가고 있는 대부분의 러너처럼 말이다. 언젠가부터 지름길을 믿지 않는다. 먼 길을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다. 그 과정을 건너뛰고 목적지에 다다를 방법을 찾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임을 안다. 그래서 나는 마라톤이 좋다. 누구 하나 그 규칙을 어기는 사람이 없으니까. 포기라는 대안이 매 발자국 사이에 있지만 누구도 쉽게 멈추지 않는다. 빠르고 느린 것은 나중의 문제다. 출발선에서 도착 지점까지 나아가는 것, 그것이 마라톤의 본질이고 모두의 목표다. 도착지에서 받게 되는 같은 모양의 반짝이는 완주 메달에는 각자의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 하고’ 이루어 낸 마음과 정신이 담겨 있다. 달리기를 후회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부상을 당하거나 몸살이 날 때조차 그 고통의 이유를 찾아내고 받아들이는 과정 또한 달리기의 일부다.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해 나가면 된다. 나는 여전히 달리기가 좋고 모든 여정을 감사히 여기고 있다.
7시간 8분 15초, 내 생애 가장 느린 마라톤 기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발선에 서서, 그럼에도 불구 하고 해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달리지 않았지만, 잠시도 멈추지 않았던 여정. 포기하지 않고 완주했다. 그걸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나 밖에 모를 뻔한 이야기를 글로 쓰게 되다니. 아직은 부상에서 다 회복되지 않아 재활 치료를 받으며 이 글을 썼다. 다시 그 순간의 기분과 기쁨을 기억 할 수 있게 기회를 주신 <피치 바이 매거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