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디자인 스튜디오 피칸트

Extra Flavor For Stories
디자인 스튜디오 피칸트의 감칠맛 한 스푼 얹은 이야기들

‘매콤하고 톡 쏘는’이라는 뜻의 독일어 형용사 *피칸트(Pikant). 두 디자이너는 자신들이 매료된 이야기에 감칠맛을 더해 풍미 가득한 작업물을 만들어낸다. 이들의 마음을 이끄는 이야기의 끝은 어디일까? 

  • 인터뷰이 피칸트
  • 인터뷰어 유선우
  • 사진 김윤경
  • * 디자이너 송민선과 최중원이 이끄는 디자인 스튜디오. 독일 베를린과 함부르크에서 유학을 마치고 현재 서울에서 활동 중이다. 포스터와 책, 브랜딩, 애니메이션, 모션 그래픽 등 다양한 매체를 기반으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피치 바이 매거진>에서 ‘네 컷 만화 속 독일 생활’을 소개한 게 벌써 5년 전이네요. 독일에서 처음 저희 에디터의 연락을 받았을 때 어땠는지 궁금해요.
중원 잡지에서 연락을 받은 게 처음이라 어떻게 우리를 알았을까 놀라기도 했고, 가볍게 그린 만화였는데 이런 데 실려도 재미있을까 고민했던 것 같아요.
민선 <피치 바이 매거진>을 그때 처음 봤는데, 여행 잡지를 많이 보지 않지만 일반적인 매거진이랑은 확 다른 느낌이 있어서 저희가 보기에도 재미있었어요. ‘이런 데서 우리 만화를 실어준다고!’ 하는 생각이었어요. (웃음)

독일 유학을 마치고 서울에 돌아오신 지도 꽤 됐네요. 공부가 끝나고 자연스럽게 귀국하신 건가요? 독일에 남는 선택지는 없었는지 궁금해요.
중원 독일에서 공부하는 동안은 너무 즐거웠지만 석사가 끝날 때쯤 되니 이제는 돈을 벌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민선 공부하면서 재미있게 지내는 거랑 일하는 거랑은 또 다른 문제니까요. 저희는 한국에서 일을 하다가 유학을 갔기 때문에 아는 사람들이 모두 한국에 있었고, 독일에서 일 하려면 네트워크를 처음부터 만들어 나가야 했는데, 하필이면 저희가 졸업할 즈음에 코로나가 터졌거든요. 돌아오기로 결정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처음 부터 독일에서 뭔가를 하겠다는 대단한 목표를 가지고 간 게 아니기도 했고, 주변에 ‘한국보다 독일이 훨씬 좋아서 평생 살 거야.’ 하는 마음으로 독일에 오신 분들도 있는데 저희는 그런 것도 아니었거든요. 먼저 독일어에 관심이 생겨서 배우기 시작했고 독일에서 체류하는 방법 중 하나로 공부를 선택했던 거라, 어떻게 보면 좀 더 가벼운 마음이었죠.

독일어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민선 제가 숨도라는 문화공간에서 일할 때 독일에서 공부한 작가분의 전시를 했어요. 전시에 쓰인 영상에서 나오는 독일어 발음이 되게 좋게 느껴지는 거예요. 한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학교에서 교양 수업을 들었어요. 그리고 나서 더 배우고 싶은데 기왕이면 독일에 가서 써보면 좋겠다 싶었죠. 그때부터 독일어 어학원을 다녔는데, 당시 중원 님은 미래를 모른 채… (웃음)
중원 많은 사람들이 ‘왜 독일을 갔냐’고 물어보는데, 그럼 저는 언제나 이쪽(민선)에 마이크를 넘겨요. 저는 약간 따라 간 느낌이어서. 저도 막연하게 외국에서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그게 독일일 거라고는 상상을 못했죠. 당시에는 저희가 결혼하기 전이었는데 갑자기 민선 님이 독일로 유학을 가고 싶다고 얘기를 해서 롱디는 내키지 않았고, 그러면 나도 독일어를 한번 해볼까 하고 시작을 하게 된 거예요.
독일에서의 삶이 지금의 일상이나 생각하는 방식에도 남아 있나요?
중원 독일과 한국의 속도가 다르잖아요. 독일은 느리고 한국은 정말 빠르고. 처음 한국에 돌아오기로 했을 땐 다시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또 금방 빠른 속도로 살게 됐죠. (웃음) 저희는 한국을 선택해서 이렇게 바쁘게 살고 있기는 하지만, 어딘가에 다른 속도로 사는 사람들이 있고 (아마도 당분간은 그럴 일이 없겠지만) 만약 원한다면 그런 선택지도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돼요.
민선 한편으로는 독일에서의 삶의 방식을 통해 한국에만 있었으면 몰랐을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노약자나 장애인, 유모차 등을 배려하는 문화처럼요. 독일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휠체어나 유모차를 굉장히 많이 볼 수 있거든요. 독일의 파티 문화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친구의 친구 혹은 모르는 사람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하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한국에 돌아와서도 독일에서처럼 파티를 열기도 했죠.
여러모로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의도한 건 아니 었는데, 그 동안 저희가 만든 책들을 보면 독일 관련된 것들이 많이 들어가 있어요. <아인말 슈톨렌, 비테>(독일어로 ‘슈톨렌 하나 주세요’라는 뜻.)도 독일 베를린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이야기이고, 저희가 최근에 만든 <철도와 나> 도 그렇고요. 독일의 철도가 엄청 자주 연착이 되거든요. 독일에 살고 있는 지인 중에서 미대를 졸업하고 예술가의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는 분이 있는데, 평소 기차를 자주 이용하면서 연착 관련 피드를 인스타그램에 계속 올리셨어요. 3년치의 연착 스토리를 책으로 엮었죠.

책을 내보자고 먼저 제안하신 거예요?
민선 네, 그 동안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피드를 계속 보다가 책으로 만들면 재미있겠다 싶어서 얘기했고, 흔쾌히 동의해주셨어요.
중원 이런 책 작업을 하는 게 ‘피칸트가 이런 것도 할 수 있습니다’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희의 욕심이기도 해요. 자아 실현의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것도 있죠.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건 좋아서 하는 일이긴 하지만 동시에 밥벌이이기도 하잖아요. 일을 하면서 개인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보면서 늘 놀라웠거든요. ‘대체 어떻게 하시는 거지?’ 하고요.
중원 다른 걸 많이 포기하면서…. (웃음)
민선 클라이언트 작업을 하다 보면 그중에 물론 재미있는 것도 있지만, 뭔가 더 재미있는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저희가 먼저 그런 작업을 보여줘야 ‘아, 피칸트는 이런 쪽에 관심이 있구나’ 혹은 ‘이런 작업도 같이 할 수 있겠구나’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니까 절반은 밥벌이를 이어가기 위한 작업이기도 해요. 그래서 어떻게든 하려고 하죠. 오히려 시간이 너무 없어서 무언가 하고 싶은데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있어요.
중원 본업만 하면 더 힘들 것 같기도 해요. 재미없는 일을 해야 할 때 어떻게든 짬을 내서 재미있는 일을 벌이는 거죠. 그런 걸 해야 저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스튜디오의 모습에 가까워질 것 같아요.
디자이너로서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는 작업이나 분야가 있을까요?
중원 저희는 일단 책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디자인의 매력이라까, 일의 재미 중의 하나가 제약이 있는 상태에서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는 과정에 있다고 본다면, 책을 만드는 과정도 제약의 연속이잖아요. 시간과 돈의 문제일수도 있고, 능력의 문제일수도 있고. 그런 것들 안에서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가는 작업이 재미있어서 책을 만들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관심을 가질 만한 책을 만들 수 있을 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언리미티드 에디션도 그런 측면에서 참가한 거죠. 우리가 만든 책을 보여줄 수 있는 자리가 되니까.
작년에 탄핵 관련해서 시위가 있었을 때 시위 깃발을 아카이빙한 웹사이트(Flaaags.com)를 만들었는데, 개인적으로 꽤 재미있고 의미도 있는 작업이었어요. 디자인보다는 현장에 나가서 연락을 돌리고 여기저기서 받은 자료를 분류하고 데이터 정리해서 올리는데 더 많은 시간이 들었던 것 같아요. 전체 작업 시간을 10이라고 본다면 그중 디자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1정도? 시간과 노동의 측면에서 보면 디자인의 비중은 오히려 아주 작았지만, 사이트를 기획하고 내용을 만들고 디자인하는 프로젝트 전체로 보면 제가 디자이너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뭐랄까요. 멋진 디자인이 전면으로 나오지 않아도 저희가 가진 능력을 활용해서 뭔가를 만들 수 있다면 뭐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민선 디자인을 엄청 잘해서 시각적으로 멋진 결과물을 만드는 것보다는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의 소재나 주제에 조금 더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저희가 디자인을 할 줄 아니까 그걸 어떻게 보여주느냐 하는 부분을 조금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거고요.

이야기를 듣고 보니 피칸트가 그 동안 작업해온 것들이 좀 더 이해가 되네요. 그러면 특별히 관심 있는 이야기의 주제가 있을까요?
중원 그게 정말 널을 뛰어가지고….
민선 크게는 둘 다 소설이나 문학을 좋아해요. 그래서 책을 만들거나 <여행 하는 이야기들>이라는 전시(남해의 카페 프로시니엄과 서울 서촌의 분재 스튜디오 서간에서 열린 전시. 여러 책 속에서 발췌한 단어와 문장을 엮어 7권의 책으로 만들어 전시했다.)도 열었고요. 그 외에는 작은 관심사들이 정말 많은데, 여행도 그중 하나예요.
중원 강의도 하고, 스튜디오도 운영하고 있어서 예전처럼 편하게 여행을 갈 수 없다 보니까, 욕심이라면 공적으로 여행을 갈 수 있는…
민선 구실이 있으면 좋겠다. (웃음)
중원 여행 반, 일 반으로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일할 때 각자 맡은 역할이 다른가요?
민선 일에 따라서 누군가 조금 더 많이 할 때도 있고, 하나의 프로젝트를 한 사람이 온전히 맡아서 할 때도 있어요. 일의 규모가 더 클 때는 그 안에서 배분해가면서 하게 되죠.
중원 보통 프로젝트 초반에 제안한 시안 중 선택된 것을 작업한 사람이 메인 역할을 맡게 되는 것 같아요. 그와 별개로, 민선 님이 저보다 그림을 훨씬 더 잘 그리고 제가 영상을 할 수 있으니까, 그런 것은 나뉘어서 하고요. 예를 들어서, 애니메이션에 모션 작업을 하게 되면 민선 님이 그림을 주로 그리고, 제가 그걸 움직이게 만드는 식으로요.

독일 유학 이전에 함께 운영한 디자인 스튜디오 토스티드 페이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함께해 왔는데, 부부이자 업무 파트너로서 함께 일하는 것의 장단점은?
중원 장점은 극한의 효율성.
민선 그렇죠. 계속 같이 있으니까 의사 결정을 회의 테이블에 앉아서 하는 게 아니라, 버스 타고 가다가 또는 걸어 다니다가…
중원 저녁 먹다가, 술 먹다가,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있다가 일의 방향이나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민선 그런 방식으로 워낙 오래 일하다 보니 커뮤니케이션에 비용이 거의 안 들어요. 그 점이 좋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는 정리가 필요해지죠.
중원 그 동안 둘이 나눈 애기를 풀어서 정리하고 문서화하는 작업은 많이 안 해봐서,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지금이 과도기에 있는 시점인 것 같아요. 단점이라면 아무래도 조금 더 부딪힐 일이 많다는 거? 그래도 오래 같이 일하다 보니까 경험이 쌓여서 ‘또 저러는 군.’ 하고 넘길 수 있고요. 결국 각자의 방법을 찾아가게 되니까요, 만족하면서 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장점 이자 단점이라면 저희가 학교 선후배이기도 하고 지인도 겹치니까 많은 것을 공유하거든요. 음, 이건 단점이라 기보다는…
민선 특징이죠. 바운더리가 거의 똑같은 상태.
중원 그래서 “좀 재미있는 얘기 없어?”라고 물어도 서로에게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기 힘들죠. (웃음)

본업 외에 출판, 전시, 글쓰기 모임 등 다양한 활동 을 하고 있는데요, 두 분 다 글쓰기에 관심이 많나요?
민선
중원 님이 조금 더 관심이 있는데….
중원 제가 어렸을 때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했어요. <상실의 시대> 작가 후기에 “이 소설의 전반부는 그리스에서, 중반부 는 시실리에서, 후반부는 로마에서 쓰여졌다.”라는 문장이 나와요. 그걸 보고 ‘와, 진짜 간지…’ (웃음) 그게 워낙 임팩트가 있어서 글을 쓰는 게 어릴 적 막연한 꿈이었어요. 나이 먹고 나서 생각해보니 굳이 글을 쓰기 위해 등단을 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더라고요. 저희 돈으로 저희 책을 만드는 건 아무도 뭐라고 안 할 거고, 디자인을 할 수 있으니까 디자인 비용은 0원이잖아요. (웃음) <아인말 슈톨렌, 비테>에 대해 좀 더 덧붙이자면, 독일의 크리스마스는 선물을 많이 주고 받는 분위기라 서점에 크리스마스 시즌 책이 엄청 많이 나와요. 한국에는 크리스마스 관련 책이 별로 없으니까, ‘이거다, 이걸로 돈을 벌어보자!’ 해서 만든 책이에요. 작업할 때 프로젝트 폴더 이름이 ‘크리스마스 한탕주의’였거든요.
민선 저희가 독일 가기 전만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돌아오니까 슈톨렌이 엄청 인기인 거예요.
중원 그걸 보고 무조건 슈톨렌이 들어가는 이야기가 하나 있어야겠다 했고, 제목에도 넣었죠.
민선 아주 야무진 꿈을 갖고 만들었던… (웃음) 그래도 얼마 전에 확인해보니까 재고가 거의 없더라고요, 정말 다행히.
중원 재작년 크리스마스에는 빵집과 컬 래버레이션해서 팔기도 했는데, 작년에는 아무것도 못 했고요.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다 팔아버리자, 생각하고 있어요.

안 그래도 <아인말 슈톨렌, 비테>를 재미있게 읽었어요. 단편 소설집이잖아요. 두 분이 각자 쓴 걸 모은 건가요?
민선시작은 그랬는데, 둘 다 전업 작가가 아니다 보니 각자 노션에 쓰고 다른 사람의 글을 고쳐주고 이어서 쓰기도 했어요.
중원 한 사람이 쓰다가 막히면 ‘좀 써볼래?’ 하는 거죠. 누가 먼저 시작했다거나, 조금 더 많이 썼다거나 하는 식으로 각자의 색깔이 강한 글들이 있긴 해요. ‘구덩이의 비밀’을 포함해 앞의 세 단편은 주로 제가 썼고요.
민선 후반부에 실린 ‘무임승차자’와 ‘티타임’은 거 의 제가 썼는데, 다들 ‘구덩이의 비밀’을 되게 좋아하시더라고요.
중원 귀여운 동물 이야기라서 그런 것 같아요. 전반적으로 민선 님이 글을 훨씬 드라이하게 쓰는 편이라 결과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고쳐준 것도 많아요.

원래 두 분 다 재미있는 일을 벌이는 걸 좋아하는지 궁금해지네요. 아니면 함께여서 가능한 걸까요?
중원 역할 분담으로? 민선 님이 계획을 좋아하시고요.
민선 ‘이거 하자’를 처음에 말하는 사람은 저고요. 그런데 저는 시도를 안 하고…
중원 제가 지르는. (웃음) 그러면 나중에 민선 님이 뒤처리를 많이 해주죠.
작년과 재작년에는 남해와 서울에서 여행을 주제로 한 전시를 열었죠. 어떻게 시작하게 된 프로젝트인지 궁금해요.
민선 남해로 이주한 지인 중 한 분이 카페를 열게 되어서 전시를 해보면 어떻겠냐 제안을 주셨어요. 처음엔 ‘우리가 갑자기 남해에서 어떤 전시를 할 수 있을까?’ 했는데, 저희 둘 다 이야기나 책에 관심이 많고 저희에게는 남해에 가는 게 일종의 여행 같기도 해서 이런 요소를 연결 지어보자 했죠. ‘이야기들이 여행을 할 수 있 는 걸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로 시작했어요.
중원 많은 후보가 있었는데, 뽑아놓고 보니까 다 텍스트에 대한 것이었어요. 때마침 한 달 정도 일이 별로 없어서 시간을 많이 썼죠. 남해가 가깝진 않다 보니, 저희도 전시 설치할 때 한 번 가서 오프닝하고, 철수할 때 한 번 갔어요. 저희 지인들이 보러 가기는 힘든 전시라 아쉬움이 조금 있었죠. 그러다가 우연히 서촌의 서간이라는 공간을 알 게 돼서 작년 초에 서울에서 전시를 한 번 더 열었고요.
민선 덕분에 지난 언리미티드 에디션 때 전시한 것을 가지고 책을 만들었죠.

여행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야기를 이어가 볼게요. 가장 최근에 다녀온 여행지는 어딘가요?
민선 도쿄 아트북 페어에 맞춰 일본에 갔다가 도쿄 근교의 후지요시다(富士吉田)라는 마을을 여행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어요. 후지요시다에서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친구가 있거든요. 지역 특산품을 테마로 마을 페스티벌도 진행하고 있고요.
중원 지금은 쇠락했지만 후지요시다가 원래 고급 직물 생산지였다고 해요. 마을과 연계해서 ‘후지 텍스타일 위크(Fuji Textile Week)’라는 행사를 4회째 하고 있죠.
민선 이곳 마을에서 보이는 후지산 뷰가 워낙 유명하거든요. 넷플릭스 드라마 <핫스팟>을 촬영한 곳이기도 한데, 다들 놀러 와서 후지산 사진만 딱 찍고 가는 곳이 되어 버린 거예요. 그게 아쉬워서 이런 행사를 하게 되었다고 해요. 마을 사람들이 직접 도슨트도 하고요. 아쉽게도 페스티벌 기간에 방문하지는 못했지만 친구가 거의 마을의 유지라서 덕분에 마을에 대한 스토리도 듣고 맛집도 많이 갔어요.

나이가 들면서 혹은 여행 경험이 쌓이면서 선호하는 여행 스타일과 취향이 바뀌기도 하는데요, 요즘 두 분의 여행 스타일은 어떤가요?
민선 이번 도쿄 여행은 가기 전에 워낙 바빴다 보니 아무것도 안 정하고 갔거든요. 그냥 ‘이자카야를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챗 GPT한테 “이자카야를 많이 갈 건데, 어느 동네로 갈까?” 물어보니까 몬젠 나카초(門前仲町)를 추천해줘서 숙소를 거기에 잡았어 요.
중원 알고 보니까 정말 현지인이 많이 가는 이자카야 거리가 있는 동네더라고요.
민선 아무런 정보 없이 모르는 동네에 머문 게 처음이었는데, 길거리를 헤매다가 아무 이자카야나 들어가보면서 계획 없이 여행하는 것도 생각보다 재미있었어요.
중원 정말 마음에 드는 이자카야를 찾아서 두 번이나 가기도 했고요. 골목 끝자락에 있는, 인기도 없어 보이고 젊은 사람들이 잘 안 갈 것 같은 오래된 곳이었어요. 손으로 쓴 일본어 메뉴판 밖에 없어서 읽기도 힘들고.
민선 잘 못하는 일본어로 “따뜻한 거 있나요?” 하니까 안에 있는 손님들이 다같이 고민해 주고.
중원 자기가 먹던 거 ‘이게 맛있다’ ‘이거 먹어봐라’ 해서 시키면 너무 맛있고. 그 다음 날에 또 가니까 주인분도 알아봐 주셨고요. (웃음)

평소에는 계획을 다 세우고 가세요?
민선
네, 꽤 하고 가는 스타일이에요.
중원 원래는 민선 님이 계획을 담당하고 있는데, 이번 여행은 제가 짠다고 하고…
민선 전혀  짜지 않았죠. (웃음)
여행 계획을 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나요?
중원 저희는 보통 음식. 숙소는 조금 저렴해도 괜찮다.
민선 그 지역에 특이한 음식이 있으면 먹어보려고 해요. 독일에 있을 때도 그런 편이었고요.
중원 저희가 거의 모든 걸 잘 먹을 수 있는 사람이더라고요. (웃음)

귀국하고 나서 다시 독일에 간 적 있나요?
중원
두 번이나 갔었죠.
민선 한 번은 비행기가 정말 싸서 갔었고, 또 한 번은 지인 가족이 빌린 에어비앤비가 갑자기 비게 돼서 갔어요.
중원 웃겼어요, 그때도. 왜냐하면 저희가 당시 일이 많았거든요.
민선 가서 시차 적응을 안 하고 일을 했죠.
중원 깜깜할 때 일어나서 아침 먹고 낮에 술 마시고 자고, 그런 느낌으로. 아주 천천히 일주일 동안 시차 적응을 했던 기억이 있네요. 일을 많이 하고 <강철의 연금 술사>를 봤습니다. (웃음)

살았던 곳에 다시 가면 어떤 가요?
중원 이상하더라고요. 함부르크 집을 정말 좋아하고 거기 살 때 참 좋았어서 살 던 집 앞까지 다시 가봤거든요. 맨날 다니던 산책길도 다시 가보고 했는데, 묘했죠. 아쉬움이 있는 건 아니지만 약간 센티멘탈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아까 말한 ‘구덩이의 비밀’도 함부르크 집을 생각하면서 쓴 작품이에요.

작년 한 해 동안 가장 잘한 일을 자랑해주세요.
민선 열심히 책을 만들어서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참가한 게 기억에 많이 남고요. 엄청 힘들었지만 덕분에 만들어야지 생각만 하던 책들을 다 마무리했어요.
중원 저도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나간 게 제일 잘한 일이었던 것 같아요. 계획하던 책 두 권이 다 나와서 뿌듯하고요. 또 자랑할 만 한 게 뭐가 있지? 글쓰기 모임이 되게 즐거웠고요. 스튜디오를 잘 운영하고 있는 것도 나름 뿌듯한 일입니다.
올해 계획 중인 비장의 프로젝트가 있다면 살짝 귀띔해 주세요.
민선 예전에 만든 엽서 속 유령 고양이와 해골새라는 캐릭터로 연하장을 준비하고 있어요. 사실 1월 1일에 했어야 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설날에 맞춰서 만들고 있습니다.
중원 연하장이 비장의 프로젝트이긴 합니다. 디자이너들이 보통 그 해의 동물을 테마로 연하장을 만드는데요.
민선 이미 예쁜 게 많으니까 저희는 다른 재미있는 걸 해보자 했죠. 두 번 정도 웹으로 연하장을 만들었는데 작년엔 바빠서 못 만들었어요. 이번에 잘 해보려고요.
중원 더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도록 온라인 인터랙티브로 만들고 있어요. 저희가 잘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해서요.
민선 그 외에는 올해 언리미티드에 신간을 갖고 나가야겠다는 목표가 있고요.

마지막으로, 인스타그램 would it be okay 계정에 네 컷 만화를 다시 연재할 생각은 없나요?
중원 사실 그것도 고민이 많았어요. 제대로 마무리 인사를 하고 완전히 끝을 낼까 생각도 해봤고요.
민선 오래 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서 여행 이야기나 한국 얘기 올릴까 생각도 했는데, 막상 돌아오니 거의 일하는 게 일상이고 일과 관련된 이야기가 들어가게 될 것 같아서 조금 망설여지더라고요.
중원 중간에 실제 저희랑 거리를 좀 두고 싶어서 동물 캐릭터로 바꿔 보기도 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고요. 그래서 고민을 해보다가…
민선 방치. (웃음) 혹시 모르죠. 저희가 갑자기 독일로 가버리면 다시 이어질 수 있는 열린 결말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