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아프

Journey of Germs
변화하고 움직이는 균의 여행

청국장, 낫또와 함께 3대 발효 식품으로 꼽히는 템페. 그 매력에 푹 빠진 파아프(PaAp)의 장홍석 대표와 나눈 발효라는 환상적인 세계에 대하여.

박진명
인터뷰이 장홍석(파아프 대표)

흰색의 단단한 표면은 치즈를 연상하기도 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콩의 형태가 그대로 표면에 울퉁불퉁 드러나 있다. 발효 식품이 맞나 의문이 들 정도로 아무 냄새도 나지 않지만, 튀기거나 구우면 콩의 고소한 맛이 그대로 올라온다. 템페는 1,000년 동안 인도네시아인들의 지혜와 땅의 역사가 집약된 발효 음식이다. 단백질 함량이 높아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채식 요리에 많이 활용되는 반해, 국내에서는 여전히 생소한 편. ‘전체가 부분이 되고, 부분이 전체가 된다(Part is all, All is Part)’는 뜻의 ‘파아프(PaAp)’는 현재 템페를 만들고, 한 발 나아가 발효 식문화를 알리고 연구하고 있다. 2018년 농부시장 마르쉐@에서 처음 템페를 선보인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방법을 통해 파아프가 쫓는 발효의 가치와 실천의 미덕을 보여주고 있다.

메모 1. 무용수가 템페를 만들게 된 사연

리필스테이션 *‘알맹상점’과 함께 한 ‘템페 정육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제품 포장에 대한 이슈를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었어요. 식품, 그 중에서도 냉동 식품은 아직도 비닐 포장지를 대체할 만한 소재를 찾지 못한 상태예요. 저희 직원과 인연이 있던 알맹상점 대표님에게 비닐의 대체재에 관한 조언을 받기 위해서 만남을 요청했고, 논의 끝에 알맹상점에서 포장지 없이 벌크 형태로 판매를 해보기로 했어요. 단 하루, ‘템페 정육점’이라는 콘셉트로 원하는 중량만큼 가져온 용기에 담아 판매했죠. 저도 하면서 너무 기분이 좋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소비자가 가져온 용기에 직접 담는 행위 자체가 재미있었고, 소비자 입장에선 큰 덩어리의 템페를 원하는 만큼 잘라주는 장면이 생소하고 흥미로운 볼거리였을 테고요.

농부시장 마르쉐@를 시작으로 템페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템페에 대한 국내 소비자의 인식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해요.
처음에는 구글 시트에 주문 내역을 적어가며 판매를 했어요. 직접 포장해 2주에 한 번씩 배송을 했죠. 그러다 스마트스토어에서 판매하기 시작했고 일주일에 한 번씩, 또 몇 달 후에는 일주일에 두 번씩 발송을 했어요. 지금은 대형 식품 플랫폼을 활용해 당일 배송으로 소비자를 만납니다. 그리고 기업에서 협업 제안도 많이 들어오고 있죠. 이런 변화는 템페의 인지도가 올라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무용수를 하다가 템페 사업을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제가 원래 식품영양학을 전공했어요. 군대에 다녀와서 연극으로 진로를 바꾸게 되었죠. 그러다 독일 연출가의 작업에 참여하면서 무용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무용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이후 공연을 하면서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는데, 인도네시아에서 템페를 접하고 다시 한 번 삶이 바뀌었죠. 자카르타에서 현지 코디네이터의 권유로 템페 튀김을 처음 맛보게 되었어요. 이 콩 덩어리가 발효 식품이라고 하니 너무 궁금한 거예요. 시장에 가면 템페를 하얀 벽돌처럼 쌓아 놓고 파는 것도 신기한 광경이었고요. 공부할수록 흥미로워서 무작정 미국과 유럽 등지에 있는 템페 제조 회사에 메일을 보냈어요. 템페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고. 답장이 없는 회사가 대부분이었고, 그나마 받은 회신은 거절의 의미가 담긴 메일 뿐이었죠. 그러다가 일본의 한 회사에서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어요. 그래서 그 길로 템페 유학을 떠났죠. 5개월 정도 일본에서 지내며 인도네시아 출신 장인에게 템페 발효 방식을 배웠어요.

완전히 다른 직종에 뛰어들기까지 엄청난 용기와 힘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요.
저는 미리 정답을 정해놓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딱 두 가지를 생각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느냐, 없느냐. 이 판단에 따라 결정해요. 해보지 않는 이상 머리로는 전혀 알 수 없거든요.

템페 사업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든 순간은 언제였나요?
템페를 사업 아이템으로 접근한 건 아니예요. 템페를 만들면서 발효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에 뿌리 깊은 식문화인 동시에 자연과 우주의 일부라는 걸 깨달았어요. 우리의 몸을 이루고 있는 것도 결국 균인데, 내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균을 통해 발견하고 몸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직접 만든 템페를 맛본 주위 사람들의 반응이 좋으니 만드는 게 점점 재미있더라고요. ‘그럼 한 번 팔아보자’는 마음으로 파아프를 론칭하게 됐어요.

메모 2. 발효는 곧 자연이자 우주

우리나라에도 고유한 발효 문화가 있잖아요. 환경 혹은 문화적으로 인도네시아보다 템페를 만들기에 더 나은 점이 있다면?
템페를 만드는 환경은 인도네시아에 비할 데가 없긴 하죠. 인도네시아에서는 특별한 발효실이 없어도 집에서 삶은 콩을 바나나 잎으로 감싸면 잎에서 나온 균으로 자연 발효가 되거든요. 한마디로 템페는 인도네시아의 특정 기후와 바나나 잎 덕분에 탄생한 식품이죠.
그런데 콩의 원산지가 어디인 줄 아세요? 우리나라 토종 콩을 연구하는 분들의 말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보나 콩의 품질로 보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나왔다고 해요. 두만강은 콩을 실어 나르는 강이라 한자로 ‘콩 두(豆)’를 썼다고 하고요. 이를 공식적으로 인증받기 위해서 토종 콩 연구원들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좋은 콩을 국내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분명 이점이죠. 저희는 전통적이고 자연적인 방법을 적용하기 위해 2차 발효까지 진행합니다. 파아프의 템페가 맛있는 이유를 꼽자면 그 차이 때문이 아닐까 해요. 대량으로 생산하는 기업의 경우, 식초를 넣어 균의 반응 속도를 빠르게 조정하거든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순 없지만, 저희가 사용하는 방법이 자연에 훨씬 가깝고 발효 결과도 단단하며 강하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한국-인도네시아 정상 회담 때 파아프 템페가 만찬 식탁에 오르게 됐는데, 그때 인도네시아 대통령 전담 셰프가 템페를 먹어보더니 현지보다 맛있다고 칭찬을 해주기도 했죠.

발효 식품과 관련해서 가보고 싶은 여행지는 어디인가요?
동남아시아의 발효 문화를 좀 더 알아가고 싶어요. 인도네시아에도 템페 말고 다양한 발효 식품이 있거든요. 우리나라 고추장과 비슷한 삼발 소스도 있고, 생선으로 만든 발효 음식도 있고요. 발효 식품을 바탕으로 아시아 퀴진을 깊이 이해하고 싶습니다.

발효를 접하면서 생긴 삶의 변화가 있다면?
이전에는 환경이나 자연에 딱히 관심이 있진 않았거든요. 발효와 부패는 한 끗 차이라는 걸 알고 난 뒤로 달라졌죠. 나무나 꽃 등의 생명체는 생을 다하면 땅으로 떨어져 썩기 시작해요. 이 과정에서 미생물과 만나 다시 땅에 양분이 되고 새 생명을 틔웁니다. 이게 바로 자연의 순환이죠. 이를 깊이 이해하다 보니 환경과 지구, 그리고 재료, 농업에까지 관심을 갖게 됐어요. 모든 게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 그럼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할까…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됐죠.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한 고민을 하는 계기가 된 거네요.
회사도 마찬가지예요. 시스템도 순환이 되어야 지속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앞으로 농사를 직접 짓고 싶은데,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판단해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행동하기 시작했어요. 이를 테면, 환경과 인간에게 좋은 방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들의 일손을 돕는 거죠. 그런 작은 활동 하나하나가 돌고 돌아 결국에는 농업으로 가는 발걸음이 될 거라 믿어요.

앞으로의 계획이나 꿈이 있다면?
일단 템페 외에 다양한 발효 식품을 선보일 예정이고, 템페로 만든 요리를 소개할 레스토랑도 계획 중에 있습니다. 연구실인 이곳, 파아프 랩을 쇼룸으로 재단장해보려고요. 궁극적으로는 공장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고 친환경적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등 자연의 순환을 토대로 회사를 운영할 계획입니다. 실천하지 않으면 지속은 불가능하니까요.

메모 3. 취재 때 여행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인터뷰의 흐름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아 편집했다. 답변을 다 적지 못한 게 아쉬워 장홍석 대표의 여행 이야기를 짤막하게 전하며 마무리하려고 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는 이탈리아 남부. 지중해와 신선한 음식,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풍경을 상상만 하던 중, 공연 덕에 드디어 이탈리아를 방문하게 됐다고. 일정이 끝난 후 한 달 동안 낡고 각진 ‘스틱’ 자동차를 운전하며 남부를 떠돌았다.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세수는 했는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전혀 상관없이. 여행은 모든 익명성이 보장되기에 자유로움을 느낀다고, 장홍석 대표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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