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 문구 편집숍 스물트론스텔레

A Place for Paper Lovers, Smultronställe
종이와 기록을 사랑한다면, 스물트론스텔레

서촌에 자리한 스물트론스텔레는 단순한 문구숍이라기보다 종이를 경험하는 공간에 가깝다. 벽 한 편을 가득 채운 종이와 LP로 흘러나오는 음악, 여행 스크랩북 그리고 빈티지 연필 상자와 지우개 등의 수집품이 이 공간을 만든 사람의 취향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문구 브랜드인 썸무드 디자인을 운영한 지 8년 차에 오프라인 숍을 연 김설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다.

스물트론스텔레를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썸무드 디자인의 제품을 직접 살펴볼 수 있는 쇼룸 공간이에요. 종이에 대한 경험을 선물해 드리는 공간이기도 하고요.

이름에 담긴 뜻과 의미가 궁금해요.
야생딸기밭을 뜻하는 스웨덴어예요. ‘나만 아는 행복한 아지트’와 같은 낭만적인 의미도 갖고 있죠. 이 공간에서 각자의 야생딸기밭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라며 지었어요.

문구에 대한 관심은 언제 시작되었나요?
엄청 어릴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유치원 때부터 문방구에 들려서 물건을 사고 엄마 이름으로 외상을 걸어 놓곤 했거든요. (웃음) 학창 시절 내내 다이어리 쓰는 게 유행이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였나, 제가 다이어리를 꾸미고 있는 걸 보고 친구가 “너 나중에 이런 쪽에서 일해봐도 되겠다.”고 말해줬는데, 그때 처음으로 내가 문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자각했던 것 같아요.

문구 브랜드를 직접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나요?
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졸업하고 편집 디자인을 비롯한 여러 회사에서 제안을 받았는데, 디자인 문구 업계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어요. 이 분야에 대해 더 알고 싶은데 자료가 많지 않더라고요. 관련 책도 거의 없었고, 인터넷에 정보도 너무 적었죠. 그래서 몇몇 브랜드의 대표 메일로 직접 연락했어요. “디자인 문구를 공부하는 학생인데, 궁금한 게 많아서 메일 드린다” 이런 식으로 질문을 정리해서 보냈죠. 지금 생각하면 젊은 패기였던 것 같아요. (웃음) 7곳 정도에 보냈고, 그중 몇 곳에서 답장을 주셨어요.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지금까지도 연락하는 대표님도 있어요. 그 이후에 디자인 문구 회사에서 6년 정도 일하다가 썸무드 디자인을 창업하게 됐고요.
 
브랜드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어땠는지 궁금해요.
요즘은 시작부터 멋진 브랜드가 많잖아요. 마케터가 붙어서 완성도 있게 출발하는 경우도 있고요. 저는 주머니에 있던 8만 원으로 메모지를 만들어서 망원동 플리마켓에 나간 게 시작이었어요. 다이어리 꾸미기 카페에 가입해서 홍보글을 올리거나 블로그나 인스타에 사진을 올리면서 하나하나 만들어온 거죠. 종종 워크숍을 열면 수강생들에게 가장 먼저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시작을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아도 괜찮거든요. 저는 작은 시작으로 여기까지 왔어요.

브랜드 8년 차에 비로소 오프라인 공간을 열었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오프라인 공간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요. 특히나 저희는 말이 많은 브랜드가 아니거든요.(웃음) 인스타그램 포스팅도 한 달에 한 번 올릴까 말까 한 정도니까요. 홍보를 잘하는 스타일이 아닌지라, 직접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더라고요. 처음에는 브랜드의 쇼룸을 만들까 했는데, 여타 소품숍과 차별화하기 위해선 썸무드 디자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감각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방향을 틀었어요. 종이나 재질을 워낙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종이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면 좋을 것 같았죠. 다양한 브랜드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게 일본이나 해외 문구 브랜드도 함께 소개하고 있어요. 스물트론스텔레가 문구를 깊게 좋아하는 분, 처음 접하는 분에게도 재미있는 공간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종이에 깊이 빠져들게 된 건 언제부터였나요?
처음부터 깊게 파고든 건 아니었어요. 어느날 일본에서 구입한 노트에 글씨를 써봤는데, 필기감이 다른 거예요. 같은 필기구여도 어떤 종이에는 부드럽게 써지지만 어떤 종이에서는 번지고요. 그때부터 종이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모조지 계열에서도 질감이나 성질이 다른 여러 종이를 계속 테스트했죠. 고급 서적의 내지에 많이 쓰는 인쇄용지도 써보고, 만년필에 잘 맞는 종이를 찾아다니기도 하고요. 국내 제지사의 쇼룸을 방문해 70여 종의 종이를 테스트해봤어죠. 그렇게 찾은 종이를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디지털로 기록할 수 있게 된 시대에도 여전히 문구를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요?
저는 손으로 직접 써야 내 것이 되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신기하게 디지털 세상에 기록한 건 기억에 잘 안 남아요. 일정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업무 일지 같은 건 아직도 종이 노트에 써요. 꼭 기억해야 하는 것들은 손으로 쓰는 게 훨씬 오래 남더라고요. 예를 들어 수첩에 적어두고 형광펜으로 표시해 놓았다가 나중에 찾아보면, “아 그때 저 페이지쯤에 형광펜을 쳐 놨지.” 하면서 그 순간이 떠올라요. 아무래도 손으로 적는 행위가 여러 감각을 같이 사용하니까 그런 게 아닐까요. 물론 사진과 함께 기록하거나 빠르게 정리하는 건 디지털이 훨씬 편하죠. 그래도 결국에 내 것으로 오래 남는 건 손으로 쓴 기록인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대부분 디지털화되니까 오히려 손으로 쓰는 행위 자체가 더 새롭고 힙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해요. 최근 문구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도 그런 흐름 아닐까 싶거든요.

어릴 때부터 작은 것들을 모으고 수집하는 걸 즐겼던 것 같아요. 그 취향은 어디서 왔을까요?
큰돈 들이지 않고도 손에 쥘 수 있는 것이 많아서가 아닐까요? 디자인이 오밀조밀 들어가 있는 작은 물건을 좋아하거든요. 여행을 가도 티백 태그나 우표를 모으고, 카페나 호텔에 놓인 설탕 스틱이나 성냥 같은 것도 챙겨와서 전부 스크랩해요. 아빠도 우표 수집을 좋아하셔서 어릴 때 아빠 우표책, 제 우표책이 따로 있었거든요. 그때부터 손에 쥘 수 있는 자그마한 것들을 모으는 게 좋았던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어린 시절부터 아빠랑 같이 모아온 성냥들로 4년 전쯤 연희동에서 작은 전시를 열었어요. 그때 세대별로 반응이 완전히 달라서 재미있었어요. 어린 친구들은 성냥 자체를 거의 처음 보고, 제 세대는 ‘어릴 때 봤던 것’ 정도로 기억하고, 윗세대분들은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받아들이시더라고요. 전화번호가 세 자리인 60년대 성냥도 있었거든요. (웃음) 특히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한테 옛날에는 이런 걸 썼다면서 설명해주는 모습이 너무 재밌었어요. “이걸 직접 모은 거냐.”부터 시작해서 질문도 엄청 많이 해주시고요. 작은 성냥를 통해 대화가 시작되고 기억이 이어지는 게 신기했어요.
평소에도 여행을 좋아하나요?
기본적으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요. 2~3년 전만 해도 매년 ‘인풋의 달’을 꼭 가졌어요. 본격적으로 하반기 준비를 시작하기 전인 5월쯤에 영화나 전시를 보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많이 사기도 하고요. 머릿속에 재료를 잔뜩 쌓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한 달 정도 충분히 보고 듣고 돌아다녀야 다음 작업이 나오더라고요. 요즘은 공간을 운영하다 보니 예전처럼 시간을 내기 어려워졌지만 여전히 직접 돌아다니면서 경험하는 걸 정말 좋아해요.

직접 발로 뛰며 수집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는지요?
제품을 직접 경험하면서 배우는 게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온라인으로 보는 거랑 실제 제품을 만져보는 건 달라요. 마감이나 패키지, 재질은 실물로 볼 때 훨씬 잘 느껴져요. 손으로 만져보면 이 브랜드가 어디에 신경을 썼는지가 손으로 훨씬 명확하게 보이죠.

문구를 큐레이션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 있나요?
일단 제 마음에 드는 게 중요해요. (웃음) 단순히 예쁘기보다 신경을 많이 쓴 제품을 좋아해요. 제 취향의 미감을 담고 있으면서 품질도 좋은 걸 선택하려고 해요. 문구숍이나 소품숍을 많이 가본 분들이 와도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쉽게 보기 어려운 제품을 많이 들여오려고 하고요. 해외 행사에서 알게 돼서 국내에 처음 소개한 브랜드도 있어요. 문구를 정말 좋아하는 이들이 “이걸 여기서 본다고!”하면서 즐거워하는 걸 보는 게 재밌죠. 결국은 발견의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문구 여행도 자주 다니는 편인가요?
일본에 자주 가요. 대만이나 독일도 문구 문화가 발달한 나라들이라 좋아하고요. 특히 독일은 만년필이나 필기구 브랜드가 워낙 유명하잖아요. 일본과는 다른 결로 문구 문화가 깊은 나라예요. 신혼여행도 문구 여행을 겸해 스위스랑 독일로 다녀왔어요. (웃음) 베를린에서 문구 투어를 엄청나게 했죠. 방문을 계획한 날에 문구숍들이 단체로 휴무를 하는 바람에 수수료를 물고 비행기 표를 바꿔가면서까지 다 돌아보고 왔어요.

직접 다녀보면서 느낀 한국과 해외 문구 시장의 차이가 있나요?
한국 문구 디자인의 수준도 꽤 높아졌다고 생각해요. 세련된 느낌만 놓고 보면 일본이랑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고, 오히려 더 감각적이라는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품질이나 문화적인 깊이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일본의 문구 문화는 워낙 역사가 깊고, 제품 하나를 만들더라도 완성도를 위해 집요하게 파고드는 느낌이에요. 문구를 소비하는 연령층도 굉장히 넓고요. 일본에서 할머니와 손자가 같이 문구를 구경하는 장면이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소비층이 워낙 넓다 보니 제조사 입장에서도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고요. 반면 한국은 문구 문화가 빠르게 성장하긴 했지만, 그 층이 상대적으로 얇아요. 디자인적인 하드웨어에 비해 디테일한 품질이나 사용성을 계속 다듬어가는 소프트웨어는 부족한거죠. 앞으로 그런 부분도 점점 좋아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앞으로 스물트론스텔레를 통해 이루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요?
문구와 종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높이는 게 궁극적인 목표예요. 썸무드 디자인이라는 브랜드의 인지도만큼 종이를 다루는 이 공간 자체의 매력이 높아졌으면 해요. 최근 진행한 신발 브랜드와의 협업처럼 앞으로도 다양한 브랜드와 흥미로운 방식으로 협업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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