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의 대형 쉐보레 밴을 타고 재스퍼를 출발해 93번 고속도로를 달린다. 여기는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악 도로로 꼽히는 1 아이스필즈 파크웨이다. 이 길은 2 대륙 분수령(continental divide)을 따라 로키산맥의 웅장하고 거친 산봉우리를 스치듯 지나 쭉 이어진다. 1800년대부터 원주민과 모피 상인이 거래를 트면서 이 루트의 원형을 개척했고, 이후 고속도로는 1960년대 초에 완성됐다.
겨울로 접어드는 로키산맥은 목도리처럼 두른 황금색 단풍의 물결을 발치로 내려놓고 머리 위 꼭지점부터 순백의 눈을 뒤집어 쓰려 한다. 가끔은 무안한지 낮은 구름으로 등성이를 가릴 때도 있다. 간간이 솟은 침엽수는 음영을 그려내며 겨울을 대비한다. 한겨울이 되면 이 도로는 얼음장을 방불케 한다. 한겨울 아이스필즈 파크웨이 주변의 기온은 영하 50도까지 떨어지니 말이다. 그 직전까지 수많은 여행자가 최후의 풍경을 목도하려는 듯 아이스필즈 파크웨이를 찾아올 게 분명하다. 날렵한 소형 전기차부터 기우뚱거리는 대형 캠핑카까지, 온갖 차들이 꼬리를 물고 로키의 드라마틱한 산세와 불쑥 나타난 야생동물이 어우러진 풍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수시로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말이다. 물론 어떤 이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돌변하는 날씨에 불평하면서 입을 비죽 내밀겠지만.
재스퍼 인근 피라미드 레이크(Pyramid Lake)의 아침은 스산하고 흐렸다. 수면 위로 낮게 깔린 안개는 서스펜스 영화의 도입부처럼 음습한 분위기를 풍겼다. 하지만 햇살이 쨍쨍한 날에는 피라미드를 닮았다는 넓적한 암봉인 피라미드산이 호수에 그림같이 반사되고, 반짝이는 피라미드섬에서는 야외 결혼식이 열린다, 라고 가이드 3 A. V. 웨이크필드(A. V. Wakefield)가 알려준다. 달리 말하면 그곳이 재스퍼에 온 여행객은 한 번쯤 꼭 들르는 유명 출사지라는 뜻. 호수 변을 30분 정도 산책하는 동안 200밀리리터짜리 망원 줌렌즈를 조작하는 수십 명의 여행객을 보았으니 그 말은 사실일 것이다. 다만 그들도 어느 흐린 날 병풍처럼 시무룩하게 서 있는 피라미드산과 그 앞의 회색빛 호수에 다소 실망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로키산맥에서는 태양 아래 빛나는 빙하호수가 언제든지 떠오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