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미식 공간 오데트

The Art of Dining in Singapore
싱가포르의 미식은 예술이 된다

법원 건물 안에서 펼쳐지는 환상적인 파인 다이닝부터 현지인의 아침을 책임지는 코피티암의 단정한 카야 토스트, 화려한 아르데코 진 타워 아래에서 완성되는 칵테일 그리고 축복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거북 모양의 찹쌀떡까지. 싱가포르의 미식을 누리는 일은 일종의 예술적 경험에 가깝다.

  • 고현
  • 사진 오충석

Odette

미술관 속 파인 다이닝, 오데트
과거 대법원 건물이던 내셔널 갤러리 싱가포르는 높은 층고와 대칭 구조, 자연광이 스미는 긴 복도 덕분에 우아한 분위기를 풍긴다. 미술관 1층에 자리한 오데트는 그 연장선에서 예술적 경험을 끌어올리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다. 5년 연속 획득한 미쉐린 3스타, 월드 및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 리스트에서 가장 높은 순위에 오른 싱가포르의 레스토랑이라는 대외적인 평가는 오데트가 쌓아온 시간을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2025년 연말, 개관 10주년을 맞아 3개월여의 리노베이션을 거친 오데트는 새로운 챕터의 시작을 알렸다. 프랑스 요리를 중심에 두면서 아시아의 미각을 밀도 있게 펼치는 것이 그 핵심. 셰프 줄리앙 루아예(Julien Royer)가 다이닝의 본질로 강조하는 ‘함께 식사를 나누는 기쁨’은 그가 할머니에게 배운 환대의 철학이자 오데트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현재 오데트에서는 테이스팅 메뉴만 제공한다. 점심에는 이름처럼 땅과 바다의 조화를 보여주는 5코스(Terre & Mer)와 좀 더 풍부한 미식 경험을 선사하는 7코스(Épicure) 중 선택할 수 있고, 저녁에는 낮과 동일한 이름의 7코스만 선보인다. 채식 메뉴를 원한다면 ‘자연과 탐험(Nature & Découverte)’이라는 테마의 7코스 메뉴를 선택하면 된다. 어느 메뉴를 선택하든 웰컴 샴페인을 시작으로 세계 각지의 제철 식자재를 활용해 계절과 테루아를 감각적으로 담아낸 요리가 차례로 식탁에 오를 것이다. 리뉴얼과 함께 내부 공간을 따스한 버터 색감과 목재, 황동 조명으로 단장한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Brasserie Astoria

극장의 유럽식 살롱, 브라세리 아스토리아
싱가포르 도심 한복판에서 20세기 초 유럽 브라세리 문화의 낭만을 경험하고 싶다면 빅토리아 극장(Victoria Theatre)으로 향하자. 스톡홀름의 본점에 이어 2023년 싱가포르 빅토리아 극장 안에 문을 연 브라세리 아스토리아는 예술 공간에 다이닝을 더한 콘셉트로 예술 애호가와 미식가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공연 전후로 관객이 모이는 사교 공간이라는 점에서 브라세리의 본질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내부는 아르데코 양식을 모던하게 풀어낸 인테리어가 특징인데, 황동 디테일과 어두운 월넛톤 가구, 기하학적 패턴의 바닥 타일, 부드러운 벨벳 소파가 만들어내는 미감이 유럽의 고전적인 살롱을 연상시킨다. 빅토리아 아스토리아의 대표 메뉴는 해산물 플래터. 은색 트레이 위에 굴과 랍스터, 타이거 새우, 홍합이 층층이 쌓여 나온다. 서빙 카트에 담아 즉석에서 플레이팅을 해주는 시저 샐러드는 24개월 숙성한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와 훈제 삼겹살, 그릴 닭가슴살의 조화가 인상적이다. 클래식한 바 테이블에 자리를 잡으면 아시아 식자재를 응용한 북유럽풍 칵테일을 즐길 수 있다.

Labyrinth

혁신적인 요리 실험실, 래비린스
2014년 에스플러네이드- 베이 극장에 개장한 이후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해온 래비린스. 이곳의 주방을 책임지는 셰프 한리광(Han Li Guang)은 초기부터 ‘새로운 싱가포르(Neo-Sin)’라는 개념을 내세워 싱가포르의 미식 유산을 푸드 사이언스, 아방가르드 등으로 재해석하며 실험적인 메뉴를 선보여 왔다. 유년 시절의 기억과 현지 문화에 기반한 스토리텔링,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접시 위에 담아낸 것. 2017년 이래 미쉐린 1스타를 유지하는 한편,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과 지속 가능성 어워드 수상 등으로 맛과 실력 모두 인정받고 있다. 호커 센터에서 흔하게 마주하는 싱가포르의 대중적인 메뉴를 기발하게 재해석하는 것은 래비린스만의 장기다. 시즌마다 바뀌는 테이스팅 코스 메뉴를 통해 이를 제대로 실감할 수 있다. 국수의 재료를 해체해 재구성한 프론 미(prawn mee)부터 사테처럼 구운 비둘기 요리, 패스트푸드에서 영감을 받은 칠리 크랩 파이까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다이닝 내내 이어진다. 이외에도 락사, 카야 토스트 등 익숙한 스트리트 푸드를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해 싱가포르 로컬 음식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게 해준다. 점심과 저녁 모두 테이스팅 메뉴만 제공하며, 유서 깊은 호커 센터 중 하나인 라우 파 삿(Lau Pa Sat)을 테마로 한 미디어 아트를 포함해 레스토랑 곳곳에 걸려 있는 싱가포르 로컬 아티스트의 작품이 래비린스가 전달하고자 하는 미식 경험의 몰입감을 한층 높인다.

Chin Mee Chin Confectionery

카야 토스트의 정석, 친미친
1925년 문을 연 친미친은 싱가포르 동부 카통(Katong) 지역에서 오랜 시간을 버텨온 코피티암이다. 초기 중국계 이민자 커뮤니티에서 형성된 커피 문화의 상징 같은 장소로, 2021년 리노베이션을 거친 이후에도 여전히 현지인들의 아침을 책임지고 있다. 외벽을 하늘색 페인트로 칠한 건물 안쪽으로 빈티지 타일 바닥과 대리석 상판 테이블, 나무 창틀을 살린 레트로한 인테리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친미친을 찾은 이들은 하나 같이 카야 토스트부터 주문한다. 일반적인 토스트보다 두툼하게 구운 번 사이에 코코넛 밀크와 달걀, 판단 잎으로 만든 카야 잼을 넉넉하게 바르고 차가운 버터를 얹은 이곳의 대표 메뉴. 반숙 계란에 간장과 후추를 섞어 찍어 먹으면 싱가포르식 아침 식사의 정석이 완성된다. 커피는 진하게 볶은 원두를 면포로 거르는 전통 방식으로 추출하는데 쌉쌀한 맛과 농축된 풍미가 일품이다.

Sinpopo Brand Restaurant @ TANGS

모던 페라나칸 미식, 신포포
카통 지역을 기반으로 페라나칸 미식 문화를 선보여 온 신포포가 2022년 말 오차드 로드의 쇼핑몰 탕스(TANGS)에 플래그십 레스토랑을 열었다. 복고적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세련된 모던 다이닝을 콘셉트로 내세운 덕분에 페라나칸 미식을 좀 더 캐주얼하게 경험할 수 있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페라나칸 요리를 다양하게 선보이는데, 그중 나시 레막(Nasi Lemak)은 꼭 맛봐야 할 대표 메뉴다. 부드럽게 지은 코코넛 라이스에 매콤한 삼발 소스, 달걀, 달콤 짭짤한 양파 렐리시, 바삭한 멸치와 전통 프라이드 치킨 등 여러 요소가 한 접시 안에 층층이 어우러져 싱가포르 고유의 다채로운 풍미를 전달한다. 병어 생선 국수 폼프렛 피시 비 훈(Pomfret Fish Bee Hoon), 매콤한 쌀국수 미 시암(Mee Siam), 신선한 허브로 만든 볶음밥 나시 울람 고렝(Nasi Ulam Goreng) 같은 클래식한 메뉴도 인기 만점. 현지인에게는 진한 노스탤지어를 자극하고, 여행자에게는 페라나칸 요리의 장벽을 낮췄다는 면에서 10여 년간 주 치앗 로드에서의 영업을 마무리하고 오차드 로드로 진출한 신포포의 선택은 분명 긍정적이다.

My Awesome Café

숍하우스에서 즐기는 여유, 마이 어썸 카페
차이나타운 남단의 텔록 에이어는 19세기 후반 중국계 이민자들이 처음 발을 디딘 해안가와 가까운 지역이다. 상점과 주거가 혼합된 숍하우스가 이 일대에 줄지어 들어섰는데, 일부는 오늘날까지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중화의원(中華醫院)’이라는 한자 간판이 달린 숍하우스도 그중 하나다. 1952년 가난한 이들에게 진료와 약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한 자선 의료 기관으로, 2014년 프랭크 하디(Franck Hardy)는 이곳에 카페를 열면서 의료원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남겨 두었다. 병원에서 사용하던 빈티지 약재 서랍장과 집기들을 인테리어 요소로 활용하고, 내벽은 콘크리트와 벽돌을 노출시켜 방문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과거 약재가 놓였을 법한 목재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스페셜티 커피나 칵테일을 주문해보자. 와인, 위스키, 크래프트 비어를 비롯해 논알코올 목테일까지 폭넓게 갖추고 있으며 마이 어썸 샐러드, 샌드위치 같은 브런치 메뉴와 나시 울람 고렝 같은 전통 요리도 맛볼 수 있다.

JI Xiang Ang Ku Kueh

복을 전하는 거북 떡, 지샹 앙쿠쿠에
에버튼 파크 공공 주택 단지 1층에서 시작한 지샹은 싱가포르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은 앙쿠쿠에(Ang Ku Kueh) 전문점 중 하나다. 1988년 문을 연 이래 매일 손으로 직접 앙쿠쿠에를 빚고 있는 곳. 붉은 거북 모양의 찹쌀떡인 앙쿠쿠에는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다. 복과 장수, 번영의 상징으로, 화교 커뮤니티에서 생일이나 아이의 만월(생후 한 달), 사업 개업 등 축하 의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음식이다. 지샹의 앙쿠쿠에는 얇은 찹쌀 피가 핵심. 손으로 눌러 빚어 쫀득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 매력적이다. 속에는 달콤하게 졸인 녹두 앙금이 들어가며 코코넛 오일의 은은한 향이 뒤따른다. 에버튼 파크 본점 외에 관광객과 현지인들로 분주한 부기스에도 분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 덕분에 지샹의 앙쿠쿠에는 화교 커뮤니티의 의례적 선물을 넘어 일상 디저트로 사랑받는다. 특유의 컬러풀한 색감이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도 인기에 한몫한다. 최근에는 땅콩, 참깨, 코코넛, 자색 고구마, 두리안 등 다양한 맛의 앙쿠쿠에를 선보이고 있다.

Atlas

아르데코 로비 바, 아틀라스 싱가포르
아르데코 건축의 정수로 꼽히는 파크뷰 스퀘어. 이 건물 1층에 싱가포르에서 가장 스펙터클한 장면을 연출하는 아틀라스가 자리한다. 황동과 대리석, 기하학적 패턴이 조화를 이룬 내부 인테리어가 1920년대 뉴욕의 로비 바를 연상시키며, 중앙에 15미터 높이로 솟아 있는 진 타워는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1,000종이 넘는 진이 보관돼 있어 사다리를 타고 진을 꺼내곤 하는 바텐더의 모습이 마치 무대 공연처럼 다가온다. 고전적인 극장의 객석 같은 소파에 자리를 잡은 뒤, 시그너처 칵테일인 아틀라스 마티니를 주문해보자. 독자적인 레시피로 만든 드라이 진과 베르무트, 샴페인을 정교한 비율로 블렌딩해 강렬하면서도 화사한 풍미가 감탄을 불러 일으킨다. 샴페인과 스카치 위스키, 숙성 럼을 배합한 앰버 클럽도 인기 칵테일 메뉴. 워낙 인기가 많은 곳이라 최소 2주 전 예약이 필수이며, 오후 시간대에는 애프터눈 티 메뉴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