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아트 디자인 호텔 21 카펜터

Stay in Art @ Design
싱가포르의 아트 & 디자인 호텔

100년 된 콜로니얼 건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부티크 호텔부터 스토리텔링과 지속 가능성을 전면에 내세운 디자인 호텔까지, ‘머무는 장소’를 넘어 하나의 작품처럼 존재하는 싱가포르의 아트 & 디자인 호텔 여섯 곳. 

  • 표영소, 유선우

더 웨어하우스 호텔
The Warehouse Hotel

19세기 싱가포르가 자유무역항으로 떠오르면서 강변을 따라 고다운(godown)이라 불리는 무역 창고가 들어섰다. 높은 박공지붕과 덧문 달린 창, 널찍한 내부 공간이 특징인 이 건물은 이민자 공동체의 거점이자 주류 증류소 등으로 활용되며 당시 싱가포르 상업 중심지의 풍경을 형성했다. 1980년대 도시 재개발과 함께 대부분의 고다운이 철거되었지만, 일부는 보존 작업을 거쳐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았다. 로버트슨 키의 고다운 3채를 개조해 문을 연 더 웨어하우스 호텔은 그 대표 사례다. 싱가포르 강을 마주한 채 나란히 이어진 새하얀 건물은 1895년으로 거슬러 오르는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삼각 지붕을 올린 대칭적인 파사드를 비롯해 주요 건축 요소를 세심하게 복원한 덕분이다. 내부 역시 기존 구조를 최대한 살리는 한편, 모던한 감각을 더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부티크 호텔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절제된 디자인의 37개 객실에서는 로컬 브랜드 및 장인들과의 협업으로 구성한 어메니티를 경험할 수 있고, 싱가포르 전통 가정식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레스토랑 포(Po)와 19세기 후반 이 일대의 증류 문화를 재해석한 로비 바가 이곳만의 차별화된 로컬리티를 완성한다.

아트 & 디자인적 요소 : 과거의 유산 위에 현대적 미감을 얹은 공간부터 맞춤 제작한 가구, 로컬 아티스트의 사진과 작품으로 꾸민 로비 라운지 등에서 호텔의 정체성과 예술적 감각을 확인할 수 있다. 2026년 싱가포르 아트 위크 기간에는 호텔 로비가 현대미술 프로젝트를 위한 무대로 변신하며 새로운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www.thewarehousehotel.com

맥스웰 리저브 싱가포르, 오토그라프 컬렉션
Maxwell Reserve Singapore, Autograph Collection

차이나타운 남쪽, 탄종 파가에 자리한 100년 역사의 건축물을 이보다 더 잘 활용할 수 있을까? 싱가포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호텔 기업가 사틴더 가르차(Satinder Garcha)와 프랑스 출신의 인테리어 디자이너 자크 가르시아(Jacques Garcia). 이 두 사람이 만나 영국 통치기 시절의 전형적인 상업 건축물 머레이 테라스(Murray Terrace)를 과거와 현재는 물론, 동양과 서양이 교차하는 독보적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외관은 단정하고 절제된 건축적 특징을 그대로 유지하고, 내부는 강렬한 색과 다채로운 소재를 과감하게 활용해 극적인 대비를 이루도록 연출한 것이 여느 부티크 호텔과 차별화되는 포인트. 벨벳, 실크 등의 유럽풍 패브릭과 레드, 블루, 골드 등 아시아적 색감이 조화를 이뤄 시각적으로 한층 관능적이고 드라마틱한 인상을 남긴다. 각기 다른 디자인으로 꾸민 총 132개의 객실과 스위트를 비롯해 비건 옵션을 제공하는 컬티베이트 카페(Cultivate Café), 핑크빛의 거대한 오닉스 바 카운터가 시선을 사로잡는 이자벨 바(Isabel Bar), 정통 인도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 시카르(Shikar)까지, 각각의 화려한 공간이 하나의 리듬을 만들어내며 조화를 이루는 것도 인상적이다.

아트 & 디자인적 요소 : 감각적인 디자인과 스토리텔링이 조화를 이룬 호텔 인테리어는 투숙객의 오감을 자극하며 마치 연극 무대와 같은 극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호텔 곳곳을 장식한 가르차 가문의 17~18세기 예술 컬렉션도 눈여겨볼 것.

maxwellreserve.com

더 캐피톨 켐핀스키 호텔 싱가포르
The Capitol Kempinski Hotel Singapore

식민지 시대의 웅장한 건물이 늘어선 시빅 디스트릭트 한가운데, 고전적 파사드와 모던한 유리 구조가 절묘하게 맞물린 건축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20세기 초 아르데코 양식으로 지은 캐피톨 빌딩과 1904년 완공된 스탬퍼드 하우스(Stamford House)를 복원해 탄생한 더 캐피톨 켐핀스키 호텔 싱가포르다. 대규모 재생 프로젝트를 거쳐 2018년 문을 연 호텔은 역사적 외관을 유지하면서 내부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해 세월의 기품과 동시대의 세련미를 모두 담아냈다. 한때 극장과 상업 시설, 사교 공간으로 사용된 건물들은 오랜 세월 도시의 변화를 지켜본 증인과도 같다. 총 155개의 객실과 스위트는 높은 천장과 넉넉한 공간감을 바탕으로, 뉴트럴 톤과 고급 소재를 활용해 차분한 휴식을 제안한다. 미식 역시 더 캐피톨 켐핀스키 호텔 싱가포르의 중요한 축이다. 유서 깊은 캐피톨 극장(Capitol Theatre)과 연결된 다이닝 공간에서는 유럽풍 요리와 세련된 애프터눈 티를 즐길 수 있고, 바와 라운지는 클래식한 공간미를 배경으로 도심 속 여유를 선사한다. MRT 시청역과 바로 연결되는 뛰어난 접근성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 세인트 앤드루스 성당과 시청, 국립미술관이 모여 있는 문화 지구와도 맞닿아 있다. 이곳이 번화한 도심 한복판에서 역사와 현대, 예술와 일상이 교차하는 문화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이유다.

아트 & 디자인적 요소 : 우아한 아치와 섬세한 몰딩, 클래식한 기둥 장식이 특징인 외관과 절제된 컬러, 현대적 디자인의 가구로 꾸민 내부는 고전과 컨템퍼러리의 대비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호텔과 연결된 캐피톨 극장 역시 공간에 예술적 깊이를 더하는 요소. 1930년대 완공한 아르데코 극장은 보존·복원 작업을 거쳐 호텔 투숙객에게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www.kempinski.com/en/the-capitol-singapore

21 카펜터
21 Carpenter

1930년대 송금소 건물에 들어선 21 카펜터는 도시의 유산을 어떻게 지켜갈 수 있는지 하나의 해법을 제시한다. 도로에 접해 있는 4층짜리 숍하우스 건물과 그 뒤로 비죽 솟아 있는 현대식 건물. 이 둘은 언뜻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긴밀하게 얽혀 있다. 옛 건물을 복원하며 나온 목재는 내부 마감재로 활용하고, 싱가포르 1세대 이민자들이 송금과 함께 보낸 편지 속 문구를 증축 건물의 알루미늄 파사드에 새겨 넣은 식. 한마디로 옛 건물을 단순히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과거의 건축 자재를 재사용하고 나아가 공간의 역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이 프로젝트의 지휘자로 싱가포르의 건축사무소 WOHA 아키텍츠(WOHA Architects)만한 적임자는 없어 보였다. 파크로열 컬렉션 피커링(PARKROYAL COLLECTION Pickering)을 통해 수직 정원이라는 자연 친화적 도시 건축의 모델을 제시한 이들은 이번에도 과거의 기억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풀어냈다. 48개의 객실과 스위트룸은 예스러운 송금소 건물과 모던한 증축 건물에 사이좋게 나뉘어 자리한다. 바닥에는 재생 목재를 깔고 옛 건물의 창을 원형 그대로 살린 헤리티지 객실이나 통유리창을 통해 채광을 확보한 어반 객실 모두 맞춤 제작한 부드러운 곡선형 가구를 사용하고 따뜻하면서도 절제된 미감을 추구한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도심 스카이라인이 펼쳐지는 루프톱 인피니티 풀, WOHA 아키텍츠의 장기를 살린 가든 테라스 등의 부대시설도 특색 있다.

아트 & 디자인적 요소 : 싱가포르에서 시작된 글로벌 아트 플랫폼 디 아틀링(The Artling)과 협업해 세심하게 큐레이션한 작품을 호텔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공간의 역사와 밀접하게 연결된 동시대 아시아 미술 작품 위주로 셀렉한 것이 특징. 한마디로 예술 작품 역시 오브제가 아니라 건축, 인테리어와 함께 호텔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요소로 작용한다.

www.21carpenter.com.sg

래플스 싱가포르
Raffles Singapore

번화한 도심 사이에서 19세기 호텔의 원형을 간직한 래플스 싱가포르는 1887년 문을 연 이후, 14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도시가 겪어온 변화를 온몸으로 통과해 온 장소다. 싱가포르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항해의 관문이던 시절, 이곳은 유럽에서 건너온 고위 인사와 문호들이 드나들던 사교와 비즈니스의 중심지이자, 동양 여행의 상징적인 거점이었다. 순백색 외관과 긴 회랑, 넓은 베란다와 아치형 창이 돋보이는 건축은 열대 기후에 대응해 발전한 영국 콜로니얼 건축 양식의 특징을 보여이다. 전체 부지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열대 정원에서는 번잡한 도심 한가운데서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버틀러 서비스는 이곳에서의 시간을 한층 럭셔리하게 만들어주는 래플스 호텔의 전통 중 하나다. 호텔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떠날 때까지 완벽한 개인 맞춤형 케어를 제공한다. 1892년부터 운영해 온 북인도 레스토랑 티핀 룸(Tiffin Room)을 비롯해 프렌치와 중식을 아우르는 다이닝 공간에서는 전통과 현대 미식 신이 조화롭게 공존한다. 싱가포르 슬링이 탄생한 롱 바(Long Bar)와 윌리엄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 조지프 콘래드(Joseph Conrad) 등 이곳을 거쳐 간 작가들에게서 영감을 받은 라이터스 바(Writers Bar)는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지는 싱가포르의 밤을 만끽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아트 & 디자인적 요소 : 래플스 호텔 싱가포르는 싱가포르의 역사와 예술적 유산이 집약된 국가 기념물이다. 빅토리아 시대 양식의 기둥과 대리석 바닥, 목재 들보 등 당대 미감을 간직한 건축만으로도 충분히 둘러볼 가치가 있다. 개관 초기부터 사용한 괘종시계를 비롯해 로비와 스위트 객실 곳곳에 놓인 헤리티지 골동품 역시 볼거리다.

www.raffles.com/ko/singapore

나우미 호텔 싱가포르
Naumi Hotel Singapore

래플스 호텔을 포함해 콜로니얼 스타일이 주를 이루는 싱가포르 도심의 호스피털리티 신에서 현대적 디자인 감각이 돋보이는 부티크 호텔을 찾는다면 나우미 호텔 싱가포르가 답이다. 싱가포르 기반의 독립 부티크 호텔 그룹이 운영하는 곳으로, 덩굴식물로 장식된 강철 메시 패널의 외관이 숍하우스가 늘어선 일대 거리에서 단연 존재감을 드러낸다. 내부는 차분한 색감 위에 조형미가 돋보이는 조명과 가구로 포인트를 주어 세련된 무드로 완성했다. 객실 수는 73개로 많지 않지만, 디자이너 가구와 현대미술 작품으로 각기 다르게 꾸며 어느 객실에 머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으로 기억된다. 체크인 시 모든 투숙객에게 배정되는 ‘나오미 에이드(Naumi Aide)’는 컨시어지이자 버틀러, 개인 어시스턴트의 역할을 겸하는 존재로, 나우미 호텔이 내세우는 차별화된 전략 중 하나다. 이외에도 여성 전용 층, 3개의 피트니스 공간 등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고, 멋진 도심 전망을 즐길 수 있는 루프톱 인피니티 풀은 이곳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이를 바탕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권위 있는 여행 어워즈 중 하나인 TTT 트래블 어워즈 2025에서 ‘베스트 부티크 호텔’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트 & 디자인적 요소 : 싱가포르 출신의 스트리트 아티스트 TR853-1의 대형 그래피티로 건물 외벽을 장식하고, 로비에는 지역 예술가 에이맨(Aiman)의 영상 작품을 설치하는 등 나우미 호텔 싱가포르는 예술을 공간 디자인의 일부로 적극 끌어들인다. 톰 딕슨(Tom Dixon), 아르테미테(Artemide) 등 호텔 구석구석에 배치된 유명 디자인 브랜드의 가구와 조명을 찾아보고 앤디 워홀과 코코 샤넬에게 각각 영감을 받아 꾸민 디자이너 룸에 머물러봐도 좋겠다.

www.naumihotels.com/naumi-hotel-singapore

The St. Regis Singapore
더 세인트 레지스 싱가포르

오차드 로드에서 조금 벗어난 탕린(Tanglin)은 싱가포르 도심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주거 지역으로 손꼽힌다. 대사관과 고급 레지던스가 모여 있는 이 조용한 동네에 2008년 둥지를 튼 더 세인트 레지스 싱가포르는 차분하면서도 예술적 감성이 느껴지는 럭셔리 스테이다. 최근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거치며 공간 전반을 새롭게 단장했는데, 299개의 객실과 스위트룸은 인근의 싱가포르 보타닉 가든(Singapore Botanic Gardens)에서 영감을 받아 자연 친화적 소재와 색감을 활용했으며, 지속 가능한 요소를 적용해 친환경 럭셔리를 강조했다. 이와 함께 정원 콘셉트로 꾸민 더 티 룸(The Tea Room)을 포함해 총 3개의 다이닝 공간이 추가된 것도 눈길을 끈다. 기존의 광둥식 파인 다이닝과 일식 레스토랑에 더해 이탈리안 레스토랑, 뉴욕 스타일의 칵테일 바까지 한층 다채로운 미식 경험을 즐길 수 있게 됐다. 모든 투숙객에게 제공되는 24시간 세인트 레지스 버틀러 서비스는 이곳의 시그니처 서비스로, 세심한 개인 맞춤형 케어를 통해 한층 여유롭고 편안한 여행을 완성한다. 핀란드식 사우나와 스팀룸을 갖춘 스파는 싱가포르 최고의 웰니스 시설로 꼽기에 손색이 없으며, 열대 식물에 둘러싸인 야외 수영장은 마치 도심 속 숨은 정원 같은 분위기다.

아트 & 디자인적 요소 : 회화와 조각, 설치 미술 등을 폭넓게 아우르는 세계적 수준의 프라이빗 아트 컬렉션은 더 세인트 레지스 싱가포르의 자랑. 피카소와 샤갈부터 조르제트 첸(Georgette Chen), 앤서니 푼(Anthony Poon) 등 국내외 예술가들의 작품 70여 점이 호텔 곳곳에 전시돼 있어 머무는 동안 자연스럽게 예술적 영감을 얻을 수 있으며, 버틀러와 함께하는 호텔 아트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다 진지한 감상을 즐길 수도 있다.

stregissingapo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