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탭룸 흐흐흐

Beer Makes Us High
경주 대릉원 옆 탭룸, 흐흐흐

신라시대 고분을 정면으로 마주한 채 크래프트 비어를 즐길 수 있는 탭룸이 있다. 음악 기획사를 운영하는 주인장이 음악과 맥주에 대한 애정을 공간 곳곳에 녹여낸 이곳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경주시 노서동 대릉원 근처에 자리한 흐흐흐의 대표와 대화를 나눴다.

이름이 독특해요. 무슨 뜻을 담고 있나요?
저희 와이프의 웃음소리가 호탕한데요. 주위를 기분 좋게 해줘요. 매장명을 고민하다가 웃음소리가 그려지는 ‘ㅎㅎㅎ’로 지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업자등록증에 기재되는 상호명은 초성으로 등록이 불가해서 ‘흐흐흐’로 지었습니다. 하하하, 호호호, 후후후 같은 다양한 웃음으로 이름을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흐흐흐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판교에서 펍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시절, 주말마다 경주를 찾곤 했어요. 오면 올수록 경주가 너무 좋더라고요. 주말에만 문을 여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죠. 2018년에 ‘위켄드커먼’이라는 보틀숍을 구 경주역 인근에 열었고,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건상 보틀과 캔 제품만 판매를 했어요. 그러다 평일에도 문을 열고 크래프트 맥주를 즐길 수 있는 탭룸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흐흐흐를 시작했고요. 황리단길처럼 사람이 많은 곳보다는 조용하고 한적한 장소를 찾다가 노서동에 자리를 잡았어요. 매장 바로 앞에 자리한 거대한 고분을 보고 이곳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계약을 했답니다.

경주로 이주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특별한 계기가 있던 건 아니었어요. 경주에 지인이나 연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요. 저와 아내  둘 다 고향이 서울 신촌이고 2~30대를 줄곧 홍대에서 보내온 터라 경주에서 살게 된 것이 신기하긴 합니다. 막연하게나마 중년이 되면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고 사는 건 어떨까 생각해본 적은 있지만요. 경주를 여행했을 때 너무 좋았기 때문에 매장을 열고 삶의 터전까지 옮기게 된 것 같아요.
직접 양조를 하지 않지만, 여러 양조장과 협업해 원하는 스타일의 맥주를 선보이고 있죠. 협업할 양조장은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나요? 새로운 맥주를 만들어가는 과정도 궁금합니다.
이런 방식을 ‘집시 양조’라고도 불러요. 양조장을 소유하고 있진 않지만 저희가 원하는 재료와 스타일의 맥주를 외부 양조장의 시설을 빌려서 만들고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직원들과 회의를 하는데요. 직원들 중에는 양조사로 오래 일한 경력을 가진 사람도 있어요. 덕분에 어떤 스타일의 맥주를 무슨 재료를 사용해서 만들어 보면 좋을까 라는 큰 틀에서 시작해 실행 가능한 방법을 이야기하면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곤 합니다. 그렇게 의견을 모은 후, 그 스타일과 장르에 강점이 있는 양조장을 찾아 컨택합니다.

지금까지 선보인 흐흐흐만의 맥주는 어떤 게 있나요?
현재 경주와 부산 매장에서 상시 만날 수 있는 맥주는 총 네 종류입니다. Beer Make Me High(호피라거), 체흐흐흐리, 포옹, 호잇이에요. 생맥주뿐 아니라 캔과 보틀로도 판매 중이에요.
처음 선보인 맥주이자 탭라인의 1번을 맡은 시그니처 맥주는 'Beer Make Me High'예요. 라거지만 시트러스한 홉을 더해 페일 에일 같은 느낌을 줬어요. 1세대 서브컬처를 대표하는 옥근남 그래픽 아티스트가 라벨 디자인을 해줬죠. 체리를 사용한 사워 에일인 '체흐흐흐리(C-HHH-ERRY)'는 사워 에일이나 *와일드 에일을 처음 맛보는 초심자 분들도 좋아할 만한 맥주예요. 바닐라빈과 코코아를 사용한 흑맥주인 '포옹'은 일러스트 작가인 키미가 라벨을 디자인했어요. 포옹이 판매될 때마다 1,000원씩 **기부금이 적립돼요. 마지막으로 '호잇(HHH-O-WHEAT)'은 밀맥주예요. 경주의 밀과 특산물인 신라봉을 사용해 만들었어요. 경북 문경의 태평양조와 협업해 더욱 로컬스러운 맥주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이 맥주가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주관한 올해의 '로컬체인지업' 사업에 선정됐어요. 내년에는 더욱 많은 분들께 선보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공 효모 대신 야생 효모와 박테리아를 이용해 발효한 맥주
** 3,000잔이 판매될 때까지 기부금을 모은다. 첫 기부금은 경주시에 이웃돕기 성금으로 기탁했다.

앞으로 꼭 만들어보고 싶은 맥주 스타일이나 협업하고 싶은 양조장이 있다면?
백록다방이라고 경주 노서동에서 50여 년 가까이 영업 중인 다방이 있어요. 어르신들의 아지트로 유명한 곳인데, 여름에 파는 아이스 미숫가루가 정말 맛있답니다. 이곳에서 파는 미숫가루의 질감을 담아낸 ***스무디 에일을 만들어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내년 여름에 시도해보고자 합니다. 로컬의 오래된 다방 스토리를 접목하면 더욱 근사한 콘텐츠가 될 것 같아서 꼭 만들어보고 싶답니다.

*** 과일 스무디처럼 걸쭉한 질감을 가진 맥주.
대릉원을 바라보면서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에요. 공간을 만들 때 중요하게 생각한 요소가 있었나요?
매장 바로 앞의 고분군은 그 어느 지역에서도 만날 수 없는 초현실적이고 매력적인 장면이긴 합니다. 항상 조상님 덕을 본다고 생각하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웃음) 손님들이 맥주와 함께하는 순간을 즐거워하면 좋겠다는 일념으로 공간을 차근차근 채웠어요. 평소에 수집해 온 빈티지 조명과 가구를 매장의 톤에 맞게 골라 배치하고 집기와 컵의 종류나 모양 하나까지도 고심해서 정했죠.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외부 디제이와 협업해 공간 분위기에 어울릴 음악을 골라 'COMMON STRAY MIX'라는 타이틀의 믹스셋을 분기별로 공개하고 있습니다. 보사노바, 가요, 재즈, 레어 그루브 등 다양한 음악을 선보이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음악 기획사 ‘커먼’도 운영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커먼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2012년부터 운영하고 있는데요. 서울에 있을 때에는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음원·음반 유통, 공연 기획 등 음악과 관련된 일들을 했는데, 경주에 온 뒤부터는 하는 일이 많이 달라졌어요. 아무래도 대부분의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보니, 경주에서는 지자체 혹은 기업과의 협업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폐목욕탕에서 열리는 DJ파티인 ‘BATH ROOM’이나 황오동 상권과 연계한 페스티벌인 ‘황오동카니발(@hnd_carnival)’을 직접 기획해 2022년부터 꾸준히 열고 있고요.

커먼을 운영하며 쌓은 경험은 흐흐흐에 어떻게 녹아 있나요?
커먼을 통해서 오랜 시간 쌓은 경험이 매장 준비부터 운영까지 큰 도움이 돼요. 뮤지션의 굿즈를 제작했던 경험이 특히 유용했어요. 흐흐흐의 로고나 슬로건뿐 아니라 굿즈를 제작할 때에도 한 뮤지션을 매니지먼트한다는 생각으로 임하니 더 다양한 생각을 풀어낼 수 있어요.

흐흐흐를 찾는 사람들이 이 공간을 한층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팁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MBTI가 I(내향형)인 분에게는 여행길에 혼자 들러 책을 읽으면서 능의 푸릇한 정취와 함께 맥주를 즐겨보는 걸 추천하고요. E(외향형)인 분들은 종종 열리는 DJ파티나 맥주 빨리 마시기 대회 같은 이벤트가 열릴 때 방문하면 더 많은 추억을 쌓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경주의 공간이나 풍경이 있다면? 그 이유도 궁금합니다.
경주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참 좋아하는데요. 그중에서도 차분하게 산책할 수 있는 삼릉, 바라보기만 해도 신라 시대와 연결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감은사지, 문무대왕릉과 주상절리 덕에 역사와 자연의 절경을 한자리에서 느낄 수 있는 양남의 해변가는 꼭 한 번쯤 가 보길 추천합니다.

부산에서도 탭룸을 운영 중이에요. 앞으로 다른 도시에도 문을 열 계획을 갖고 있나요?
당장은 아니지만 2~3년 안에 서울에 크래프트 맥주, 음악과 공연이 어우러지는 공간을 마련하려고 해요. 처음으로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던 게 2010년이었는데요. 홍대 카페 거리에 자리한 라이브 카페였죠. 매일 공연이 열렸고, 아티스트가 모이는 아지트 같은 곳으로 입소문이 났었죠. 음악 신을 중심으로 커뮤니티가 형성돼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고, 매장 운영에도 큰 힘이 됐어요. 지역에 내려와보니 그런 문화적 기반을 만드는 게 참 힘들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대부분의 문화 콘텐츠가 서울에서 만들어지고 소비되다 보니 그럴 텐데요. 흐흐흐를 운영하면서 맥주만 파는 게 아니라 공연과 페스티벌을 직접 기획하고 진행하는 것도 그런 갈증에서 시작된 것 같습니다. 이런 문화적 격차를 메우려면 아무래도 서울에 매장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를 기반으로 경주와 부산으로 확장 시킬 수 있는 콘텐츠를 기획해도 멋질 것 같고요.

그 외에 계획 혹은 준비 중인 프로젝트가 있다면 귀띔해주세요.
올 가을에 오픈할 새로운 공간을 준비 중이에요. 경주의 재래시장 중 하나인 성동시장 안에 브런치 카페를 오픈할 예정인데요. 흐흐흐에서 만날 수 있는 소시지와 잠봉, 안심 햄 등을 판매하고, 이 소시지와 햄을 사용한 샌드위치가 메인 메뉴가 될 것 같습니다. 2층에선 굿즈뿐 아니라 바이닐과 의류를 판매하는 공간도 같이 선보일 예정입니다. 경주에 여행을 와서 찾고 싶은 또 하나의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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