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켄드랩

The Adventure of Sustainable Art
지속 가능한 예술의 모험

코로나가 시작되고 두 명의 디자이너가 줌 미팅으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색했다. 얼마 뒤 이를 계기로 디자인 스튜디오를 오픈했다. 그것도 가장 핫하고 어렵다는 ‘폐기물’을 콘셉트로.

박진명
인터뷰이 위켄드랩 이하린, 전은지 디자이너

서울 이태원 우사단로 골목에 들어서니 ‘Craft’라고 쓰인 간판이 줄을 잇는다. 간판이라기 보단 문패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모두 비슷한 상가 건물에 들어선 공방이지만 저마다 조용하게 각자만의 색을 띈다. 여느 이태원 골목처럼 요란하지도 복닥거리지도 않는 길을 따라 안쪽으로 걷다 보니 ‘위켄드랩’ 작업실에 이른다. 위켄드랩은 폐기물을 소재화해 작품을 만드는 디자인 스튜디오다. 근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버린 달걀 껍질, 통영 바다에서 굴러 다니던 굴 껍질 등 주변에서 ‘쓰레기’로 인식하는 재료를 모아 다양한 작업을 한다. 위켄드랩의 오브제에는 정확한 용도가 없다. 어떻게 활용하든 사용자의 마음이다. 작품 안에 담고 싶은 이야기도,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은 위켄드랩의 두 디자이너를 만났다.

메모 1. 동갑내기 Z세대의 사업 이야기

위켄드랩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하린 (이하 이) 지속 가능성을 테마로 버려지는 소재를 활용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주로 동・식물성 폐기물을 원재료하는데, 꼭 거기에 국한된 작업만 하는 건 아니고요. 그 외에도 버려지는 온갖 소재를 재활용해서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디자인 스튜디오를 준비하면서 가장 기대했던 점과 힘들었던 점을 한가지씩 꼽아본다면요?

전은지 (이하 전) 초창기에 운이 좋게도 학교 지원 사업에 선정되었어요. 그래서 학교 교수님이나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얻을 수 있었어요. 실무적인 부분에 감을 잡는 데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그런데도 막상 실전에 뛰어드니 사업자로서 처리 해야하는 온갖 잡무를 피할 수 없었죠. 각종 세무 회계 서류를 정리하는 게 생각보다 업무의 비중을 많이 차지하더라고요.
어른이 된 기분이 들기도 했고요(웃음).
사실 커리어적으로는 큰 불평・불만이 없어요.

디자인 작업을 할 때 어디서 영감을 얻는지 궁금해요.

위켄드랩은 ‘지속 가능’하고 ‘친환경적’인 소재를 키워드를 내세우고 있는데요. 단순히 소재 활용에 그치지 않고 두 개의 키워드를 확장하는 작업을 하려고 하거든요. 쉽게 말해서 친환경적인 것만 지속 가능한 게 아니라 기존에 있던 기술을 계속 이어가려는 시도 역시 지속 가능한 일 일테고요. 또 지금은 잊힌 무언가를 현재로 다시 가져오는 작업일 수도 있고요.
인간의 삶을 지속하게 만드는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인간 철학과 디자인 사이의 연결고리를 설정해서 확장해가고 있어요. 그런 주제로 서로 얘기를 툭툭 던지다 다음 작업으로 연결해왔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진행한 프로젝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무엇인가요?

‘리코타 시리즈’라고 아직 진행 중인 작업인데, 우유 폐기물을 활용한 프로젝트예요. 이 시리즈는 낙농 폐기물에서 단백질만 추출해서 바이오 스틱 플라스틱 대체제로 만드는 소재 중심적 프로젝트거든요. 소재를 100퍼센트 생분해성으로 만드는 거라 다른 작업보다 까다롭더라고요. 연구를 계속해 나가고 있는 과정이라 애증이 담긴 프로젝트예요.
사실 리코타 시리즈는 사업의 규모가 커지기 위해서는 적합하지 않은 프로젝트긴 한데, 저희의 방향성을 잡는 데 굉장히 큰 역할을 했어요. 버려진 우유로 소품이나 가구를 직접 만들면서 앞으로도 이런 유의미한 작업을 하자, 그렇게 얘기하죠.

직접 만든 소재로 작업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소재에 대한 이해도가 중요해야 할 것 같아요.

보통 디자이너가 작업을 할 때 디자인을 먼저 하고 그 디자인에 알맞는 소재를 찾는데요. 저희는 소재를 먼저 찾고 그에 맞는 디자인을 부여해요. 그래서 이런 소재에는 이런 모양이면 잘 어울리겠다, 아니면 이런 기능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역순으로 작업하다 보니 소재에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메모 2. 친환경? 조금 식상하다.

낙농 폐기물 문제를 인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저희 둘 다 유럽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어요. 유럽은 우리나라보다 유제품 종류가 많으니 그만큼 쓰레기도 많이 발생해요. 또 혼자 살다 보니 생활에서 발생하는 쓰레기가 전보다 눈에 잘 보이더라고요.
진짜 친환경 소재를 만들려면 천연 재료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천연 물질이라고 해도 그냥 버리면 환경에 해가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버려진 우유를 다시 깨끗하게 정화시키기 위해서는 2만 배의 물이 필요하대요. 목장이나 공장에서 우유를 생산하는 과정에서도 잉여 생산물과 폐기물이 많이 발생하고요. 어찌 됐든 그냥 버리면 안 될 것 같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부분을 이야기 하기 위해선 대규모로 버려지는 소재를 활용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았어요.

교환학생으로 각각 독일과 스위스에서 생활하며 쓰레기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는데, 유럽의 쓰레기 처리 방식은 우리나라와 어떻게 다른가요?
스위스는 유럽 내에서 분리수거를 잘하는 편이라고 얘기를 들었어요. 처음 가서 가장 신기했던 점은 일반 가정집에 ‘컴포스트 빈(Compost bin)’이라고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화시키는 쓰레기통이있더라고요. 그런데 이것도 식구가 많은 가정집일 때 얘기고, 일반 학생이나 직장인이 사는 곳은 일반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 구분 없이 버려요. 그것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확실히 음식을 덜 남기는 문화가 있는 것 같아요. 또 유리를 색깔별로 분리해 배출하는 시스템이 있더라고요. 근데 플라스틱은 또 구분 안하고(웃음). 여러모로 좋은 점도, 아쉬운 점도 있었어요.
독일에는 '판트(Pfand)'라는 보증금 환급 제도가 있어요. 빈 캔이나 유리병을 마트에 설치된 자판기에 넣으면 수거해서 다시 회사로 돌아가요. 소비자는 개당 300원 정도(8~25유로센트)의 보증금을 돌려 받고요. 그런데 스위스와 비슷하게 플라스틱이나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려야 한다는 인식은 강하지 않더라고요. 사실 분리수거 문제는 개개인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최근 트렌드처럼 떠오른 친환경과 지속 가능성이 그저 유행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어떤 실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며칠 전에 옷을 샀는데 비닐 안에 지퍼백으로 한 번 더 포장돼 있었어요. 그 지퍼백 위에 ‘이건 여러 번 쓸 수 있으니까 지속 가능하다’라고 써 있더라고요. 짜증이 확 났죠. 아무리 재사용이 가능하다고 해도 이 지퍼백을 만들기 위해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글씨를 프린트하는 공정까지 거친 거잖아요. 제대로 분해해서 버리지 않으면 결국 또 쓰레기가 발생하는 거고요. 그런 부분은 고려하지 않고 '지속 가능'을 내세우는 게 너무 말장난 같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도 옥수수 콘 같은 소재로 만든 생분해성 종이를 사용하고 있고 과대 포장하지 않으려고 늘 주의해요. 브랜드 소개 카드 넣을까? 아니야, 과대 포장이야. 이런 식으로 서로서로 브레이크를 걸어줘요.

메모 3. 디자이너의 여행

두 분이 여행도 함께 하나요?
네, 둘이서 여행도 많이 가요.
유럽에 있던 시기가 겹쳐서 유럽에서도 많이 만났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는 어딘가요?
인도네시아 롬복섬이요. 저희 둘이 한 달을 살아볼 생각으로 갔거든요. 운이 좋게도 섬 주민이 외국에 나가게 됐다며 집을 통째로 빌려줬어요. 섬 구석구석을 누비며 정말 자유롭게 지낸 것 같아요.
특히 인도네시아 자연에 감동했어요. 등산하다가 폭포 나오면 바로 뛰어들어 수영하고 바닷속도 정말 예쁘고.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도시에서 바쁜 일상을 살다 인구 밀도가 낮은 섬에 있으니 저희만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동네 주민이 잡은 물고기도 먹고. 롬복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아요.

앞으로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있다면?
아무래도 디자인적 영감을 받으려면 유럽이나 미국으로 가는 게 좋겠죠. 그런데 저는 일상에서 한 발 떨어져서 잠시 시간을 갖기만 해도 머리 속이 정리가 되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떠오르더라고요.
저는 오랜 전통을 간직한 수작업을 배워보고 싶어요. 이를 테면, 연꽃 줄기 안에 있는 섬유를 이용해서 옷감을 만든다거나…

특별히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있나요?
시각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록스타로 꼽히는 조규형 디자이너. 보통 시각 디자인 전공하면 북 디자인, 제품 디자인 등 한 분야에 집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그런데 조규형 디자이너는 특정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시각 디자인을 아우르며 활동하는 분이에요. 타이포그래픽도 했다가 제품 디자인도 했다가. 저 역시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제품 디자인을 전공한 전은지 디자이너와 함께 작업하다 보니 다양한 분야를 다루게 됐죠. 작년에 참여한 대림미술관 단체전에 조규형 디자이너도 참가해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 분이 스웨덴에 있어서 볼 수가 없었어요.

해외에서 스튜디오를 오픈하는 국내 디자이너가 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국내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공감을 얻기가 훨씬 쉽긴 하지만, 확실히 유럽 사람들은 디자인에 대한 태도가 다른 것 같아요.
특히 어른들한테 저희 디자인 스튜디오를 설명할 때마다 되돌아오는 질문이 ‘그래서 너네는 정확히 뭘하는 팀이냐, 뭐하는 회사냐’예요. 가구 디자이너라면 가구만 해야 하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면 그림만 그려야 하고. 이렇게 전문성을 갖춰야 디자이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아무래도 유럽 쪽은 융합 예술이 더 발달돼 있으니까 유럽에서 자리를 잡는 국내 디자이너가 많아지는 것 같아요.
사실 예술의 경계가 허물어진 지 좀 됐죠. 학교 다닐 때만 해도 교수님이 ‘네가 작가야?’라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실용적인 학문과 순수 예술을 구분 짓는 게 일반적이었죠. 그런데 이제 글 쓰는 작가가 노래를 부르고 사진도 찍는 것처럼 예술 분야의 경계가 불분명해진 시대가 됐어요. 그런 갈증 때문에 국내 디자이너가 유럽으로 가는 것 같아요. 세계적으로 한국 디자이너들이 인정받고 있기도 하고요.

메모 4. 실험적 도전을 계속 하는 원동력?

위켄드랩에선 소재 기획부터 개발, 디자인, 생산까지 전부 다 하고 있잖아요. 쉽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사람이 어떤 일을 할 때 자기 자신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저희도 마찬가지로 결국 저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 왜 이런 소재를 사용하는지, 이런 쓰레기가 발생하는데 그걸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스스로를 설득하려고 던진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스스로에게 의미 있고 떳떳한 작업을 하고 싶다. 이것이 원동력이 아닐까요?
사실 친환경 에너지원인 바이오매스를 100퍼센트로 활용하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 클라이언트가 있는 작업일 경우엔 결과물이 빨리빨리 나와야 하니까 타협을 할 때도 있어요. 그 틈에서 저희가 추구하는 생각을 최대한 녹여내려고 노력해요.

창작자가 가져야 할 중요한 자질은 무엇일까요?
꾸준함.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저희의 이야기를 녹여낼 수 있는 좀 더 큰 스케일의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작은 소품일 경우엔 역할이 한정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작업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머지 않아 만나볼 수 있을 거예요.

위켄드랩이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각 시리즈마다 스토리텔링이 달라요. 직관적으로 ‘쓰레기가 이만큼이 버려지니 경각심을 가져라’라는 메시지일 때도 있고요. ‘우리가 이렇게 놓치고 있었대. 다시 한번 돌아보자’라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요.

메모 5. 위켄드랩의 활동이 궁금해지는 이유는 두 디자이너의 발랄함 때문이다. 이들의 생기 넘치고 활발한 생각이 어떤 소재와 디자인으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게 될까. 더 유명해지기 전에 작품을 몇 개 들여야 하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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