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위스키의 기원은 14~15세기로 추정됩니다. 아일랜드에선 12세기 문헌에 위스키가 처음 등장했다고 주장하지만, 지금과 같은 형태의 위스키는 15세기에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사실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두 나라가 서로 먼저 시작했다고 우기지만, 아무래도 아일랜드가 먼저고, 이후 바다 건너 스코틀랜드로 전해졌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어쨌든 두 나라 모두 보리의 싹을 틔운 맥아로 위스키를 만들었어요. 보리 맥아(몰트)를 발효하면 우리가 흔히 아는 맥주에 가까운 술이 됩니다. 이를 증류해 오크통에 숙성시키면 위스키가 되는 것이죠. 사실 초기 위스키와 현대 위스키의 결정적 차이는 바로 오크통 숙성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발렌타인, 시바스 리갈, 조니 워커 같은 스카치 위스키는 블렌디드 위스키입니다. 과거에는 각 증류소에서 위스키 원액을 만들고 이를 노련한 마스터가 블렌딩해 위스키를 만들었어요. 대략 50~100가지 원액을 섞는다고 하는데, 가장 부드러운 맛을 찾는 것이 목적이죠. 싱글몰트 위스키는 원래 증류소에서 일하는 사람들만 즐기다가, 1960년대 처음 시판을 시작했어요. 글렌파클라스도 그중 하나입니다. 따지고 보면 싱글몰트 위스키의 역사는 반세기에 불과한 셈이죠. 블렌디드 위스키는 굉장히 부드럽지만 맛과 향의 개성이 뚜렷하지 않다면, 싱글몰트 위스키는 증류소별로 몰팅과 숙성 방식이 달라 고유의 풍미와 개성을 품고 있어요. 이제 사진을 보면서 각 지역에 해당하는 위스키를 시음해볼까요? 먼저 떠날 곳은 하일랜드 북서부의 스카이섬입니다.
박 스카이섬은 스코틀랜드의 대표 여행지예요. 스코틀랜드 중에서도 풍경이 매우 독특하죠. 제가 갔을 때는 날이 아주 흐리고 기이할 정도로 바람이 강했어요. 공중에 빗방울이 계속 날아다녔고요. 카메라도 전부 젖었습니다. 스코틀랜드 브랜드의 재킷이나 코트는 왜 왁스 코팅이 되어 있는지, 이 지역에 직접 가보면 바로 알게 됩니다. 사진 속 장소는 올드맨오브스토르 (The Oldman of Storr)예요. 낮은 언덕 같은 산을 올라가면 기괴한 돌이 많아요. 저 돌들이 분명 위스키의 맛에 영향을 끼쳤을 거예요. 사진 속 장소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프로 메테우스〉 초반부에서 인류학자들이 외계 생명체가 남긴 동굴 벽화를 발견하는 장면을 촬영한 곳입니다.
고 탈리스커(Talisker)는 바로 이 스카이섬에 위치한 위스키 증류소예요. 1830년에 설립되어 200여 년 역사를 자랑하죠. 글로벌 주류 기업 디아지오(Diageo)가 소유한 곳이기도 합니다. 디아지오가 스코틀랜드 6개 지역의 증류소, 크래건모어 (Cragganmore), 탈리스커, 라가불린(Lagavulin), 오반(Oban), 달위니(Dalwhinnie), 글렌킨치(Glenkinchie)에서 클래식 몰트를 선정하는데, 탈리스커 10년이 그중 하나예요. 은은한 피트 향이 특징입니다. 피트 위스키 입문자들이 즐겨 마시는 편이죠. 다음으로 스코틀랜드 최북단인 던넷헤드(Dunnet Head)와 서소비치(Thurso Beach)로 떠납니다.
박 서소는 아주 작은 마을이에요. 스코틀랜드 북쪽에서는 가장 크죠. 생동감 있는 마을입니다. 생동감도 상대적인 것이라, 에든버러, 글래스고, 인버네스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주변의 적막한 자연 덕분에 활기차 보이는 거죠. NC500 도로를 타고 서소에서 서쪽으로 향하면 사람 없는 땅이 끝없이 펼쳐집니다. 마치 미국 남부를 달리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죠. 해안도로 구간도 있는데, 바로 아래가 천길 낭떠러지인 곳도 있어요. 던넷헤드는 영국 본섬의 최북단입니다. 강한 바람을 견디며 북해를 바라보면 마치 스스로가 뭐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그런 곳입니다.(웃음) 저희는 저녁 즈음 던넷비치(Dunnet Beach)에 갔는데 꽤 많은 사람이 산책을 하고 있었죠. 해수욕장 규모가 꽤 커서 놀랐고, 잠시 뒤엔 어떤 여자가 사진 속 말을 타고 바닷가를 달리는 장면을 마주쳤어요. 아주 어둡고 푸른 저녁이었죠.
고 울프번(Wolfburn)은 저도 이번 시음회를 준비하면서 작가님 추천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생소한 신생 증류소입니다. 1821년에 설립해 1858년 이후 운영을 중단했다가 2013년부터 다시 증류를 시작했다고 해요. 첫 위스키가 바로 지금 우리가 시음하는 노스랜드(North Land)입니다. 울프번은 16세기 신화에 등장하는 ‘바다늑대’로, 마주친 사람에겐 행운이 따른다고 합니다. 아메리칸 오크의 쿼터 캐스크 숙성을 거친 위스키인데, 쿼터 캐스크(Quarter Cask)는 흔히 사용하는 오크통 사이즈의 4분의 1입니다. 한층 농밀하게 향을 입힐 수 있는 장점이 있죠. 그리고 숙성 연도가 표기되지 않았는데, 이를 ‘NAS’라 해요. No Age Statement의 줄인 말인데, 요즘은 이게 일종의 트렌드가 되었어요. 아무래도 수요가 급증하다보니 과거처럼 10년 이상 숙성을 거친 위스키를 만들기가 어려워졌는데, 도리어 이를 마케팅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죠. 자, 이제 마지막으로 하일랜드 북동부로 향합니다.
박 하일랜드의 남부가 신비롭고 중후한 풍경이라면, 하일랜드 북부는 목가적이고 평온해요. 저 풍경의 일부가 되고 싶었어요. 나중에 집값을 알아보기도 했죠. 브로라(Brora), 골스피 (Golspie), 모렌지(Morangie) 등 해안을 따라 작은 마을이 위치해 있고, 한때 유명했던 증류소도 몇몇 있어요. 저녁에 숲길을 산책하는데 수많은 양들이 저희를 보았죠. ‘쟤들도 동양인 구별할 줄 아나?’ 싶었어요.(웃음) 아무래도 사람이 적고 자연은 넓어서 그런가보다 했죠. 글렌모렌지(Glen Morangie)는 번역하면 ‘평온의 계곡’이란 뜻인데요. 진짜 평온해져요. 스코틀랜드 북부의 최대 도시 인버네스와도 가깝습니다.
고 글렌모렌지는 널리 알려진 싱글몰트 증류소입니다. 특히 루이비통 모에헤네시(LVMH) 그룹이 인수한 이후 좀 더 브랜딩이 명확해졌는데요. 글렌모렌지 오리지널이 가장 대표 위스키이고, 면세점에서 판매하는 시그넷 모델도 유명해요. 오늘 시음하는 퀸타루반(Quinta Ruban)은 굉장히 독특한 위스키로 꼽힙니다. 기존 오리지널 10년 숙성 위스키에 포트 캐스크 숙성을 4년 더 거쳤는데, 도수에 비해 굉장히 부드럽습니다. 포트와인 특유의 달콤하고 드라이한 향을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 고현 에디터가 알려주는 위스키 상식 노트
❶ 스카치 위스키(Scotch Wisky) 스코틀랜드 위스키의 통칭. 지역에 따라 스페이사이드, 하일랜드, 섬, 아일레이, 캠벨타운, 로우랜드 6개 지역으로 구분하는데, 스페이사이드 위스키는 화사한 아로마를 느낄 수 있고, 하일랜드 위스키는 각 증류소별 편차가 크며, 아일레이 위스키는 피트 향이 강한 편이다.
❷ 싱글몰트 위스키(Single Molt Wisky) 한 증류소에서 단일 맥아로 만든 위스키. 여러 증류소의 위스키 원액을 혼합해 만드는 블렌디드 위스키와 비교해 증류소별 개성이 뚜렷하다.
❸ 캐스크 숙성(Cask Mautred) 싱글몰트 위스키는 주로 스페인의 셰리주, 미국의 버번 등을 숙성한 통을 재사용한다. 캐스크 숙성 방식에 따라 컬러와 풍미가 천차만별.
❹ 캐스크 스트랭스(Cask Strength) 캐스크 숙성을 마친 위스키를 물로 희석하기 전 단계로, 도수가 50~60도에 이른다. 일반적으로 싱글몰트 위스키는 물로 희석해 도수를 40도 정도에 맞춘다.
❺ 피트(Peat) 풀, 이끼, 나무 등이 석탄처럼 변형된 것. 이탄 혹은 토탄으로도 불린다. 맥아를 건조하는 과정에서 사용한다.
❻ NAS(No Age Statement) 숙성년수 미표기 위스키. 고숙성 위스키의 수요가 늘면서 공급량을 맞추기 어려워지자, 위스키업계가 고안한 방식. 최근에는 NAS 위스키가 일종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